〈 45화 〉도서관 탐방
다음날 이뤄진 8강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4강 진출자는 나, 스피나, 세르피나, 그리고 천세희였다.
네 번의 경기 모두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상위 넷과 나머지 넷의 수준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당연한 결과지.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도서관이나 가볼까?"
뜬금없이 왠 도서관이냐고? 내가 아카데미에 온 4가지 주 목적 중 하나가 슈브 니구라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각종 정보의 집대성인 도서관이라면 그녀에 대한 기록이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아카데미 도서관이라면 일반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정보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즉시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었지만 수정구를 통해 위치를 조회할 수 있었기에 헤매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크다......!"
도착한 곳에 있던 건 끝을 모를 정도로 높이 솟아있는 건물이었다. 이게 도서관이라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들이 있는거야?
"학생 한 명이요."
지잉-
문은 자동문이네. 은근 첨단 기술이다. 아니, 여긴 마법 세계니까 그닥 첨단은 아닌가?
지구에서는 온갖 과학적 기술의 집대성도 이 세계에서는 마법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마법 만만세다.
오늘은 레아랑 같이 있는 게 아니었냐고? 레아는 졸리다고 방에 틀어박혀있었다. 어제 늦게까지 놀면서 잠을 안 자니까 당연한 결과지. 근데 만약 따라왔더라도 내가 도서관 간다고 하면 책 많은 곳은 싫다며 도망갈 것 같다.
애들은 이런 곳보다는 음식점이나 놀이방 같은 데를 좋아하니까.
도서관에는 각 층마다 무수한 책장과 책이 있었다. 건물 중앙은 뻥 뚫려있었는데 도서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부유판을 타고 중앙을 통해 층을 이동하고 있었다.
내부 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자 사서가 다가와 도서 검색 방법을 알려주었다.
"찾고자 하시는 책은 저 수정구를 통해 조회하시면 됩니다. 제목, 본문 내용, 작품 분류, 작가 등의 방법으로 검색하실 수 있습니다."
조회 방법이 뭔가 익숙한걸? 소설 검색 기능과 비슷하다.
어디보자......
[제목 검색 : 슈브 니구라스]
[검색 결과에 맞는 책을 조회하지 못했습니다.]
엥?
[내용 검색 : 슈브 니구라스]
[검색 결과에 맞는 책을 조회하지 못했습니다.]
도서관이라며. 왜 없는건데! 이러면 아카데미에 온 이유의 4분의 1이 나가리되는거라고?!
혹시 수정구가 고장난 게 아닐까?
[제목 검색 : 미노타우로스]
[검색 완료 : 총 2037권]
잘만 뜨네? 그럼 고장난 건 아니라는 거고 그냥 책이 없다는 건데......어이가 없네.
혹시 슈브 니구라스에 대한 정보는 금지어인가? 그래서 검색해도 안 뜨는건가? 조금 다른 말로 검색을 해보자. 보통 금지어라면 우회 단어로 묘사해 놓는 경우가 많으니까.
[내용 검색 : 고대신]
[검색 완료 : 총 145권]
오. 있다. 한번 봐보자.
[고대신의 광신도에 대한 기록]
해당 책을 누르자 해당 책이 마나에 감싸진 채로 내 앞으로 전송되었다. 찾는 걸 직접 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군. 저 무수한 책들 사이에서 이 한권을 찾으라 하면 정신이 나가버렸을거야.
책의 내용에 따르면 과거, 세계 각지에서 실종 사건이 일어났었는데 그 배후가 이교도들이었다고 한다. 그녀를 강림시키기 위해 사악한 이교도들이 곳곳에서 1만명들의 사람들을 납치해 제물로 바쳤다고.
의식이 끝난 후 그녀가 강림했을 때 그녀를 보고 미쳐버린 이교도들이 광신도가 되어 자해, 인신공양, 살인, 반란 등을 일삼았다.....이거 존나 미친놈들이네?
신 얼굴 한번 보겠다고 1만명의 목숨을 바친 것부터 해서 미쳐도 곱게 미칠 것이지. 뭐? 인신공양? 살인? 반란? 가지가지 한다 아주.
그나저나 슈브는 보기만 해도 미쳐버리는 존재인건가? 그런데 왜 전에 나타났을 때 기사단이 미치지 않았던거지? 그녀가 특별히 조절을 한건가?
이후 인간, 수인, 엘프 등등 종족을 불문하고 광신도가 늘어갔기에 점차 단일 세력으로는 토벌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세력이 성장했다고 한다.
그들의 세력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자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각 정부는 광신도들을 토벌하기 위해 연합군을 구축하여 엄청난 전력을 쏟아부어 토벌에는 성공했으나 결국 광신도를 완전히 소탕하지 못하였다고.
처음 의식을 주도했을 당시 자리에 있었던 이교도들의 일부는 최종전 당시 인간을 벗어난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인간의 것이 아닌 힘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힘이었다고 한다. 아마 슈브가 나눠준 힘이겠지?
참고로 토벌 당시 항복한 광신도들은 한 명도 없었고 전부 싸우다 죽거나 자살했다고 한다. 진짜 미친놈들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직을 구축하고 사람을 조종하기에는 종교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진짜 신념으로 삼아서 종교를 위해서는 목숨도 바치는 게 광신도니까. 지구에서도 종교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주 출몰했잖아.
토벌 당시 그들의 본거지는.... 그야말로 인외마경이었다고 한다. 사지가 잘린 채 나무 봉에 관통당해있는 사람들부터, 자궁을 적출당한 여자, 여러 명의 성기를 잘라 온몸에 꿰매어 붙여놓은 남자 등등 차마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짓을 해놓은 광경이었다고 한다.
글로만 읽는데도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토벌 이후 연합 세력도 괴멸적인 피해를 입게 되어 정부 권력이 극도로 약해지는 결과를 낳았고.....그 후 각지의 치안은 개판이 되었다고 한다. 광신도 조직 하나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개고생했을 걸 생각하니 참.....씁쓸하다.
아직도 가끔 출몰하는 잔존 세력이 남아있기에 연합 세력을 조직하여 그들을 추적하고 있다.
오크 토벌 당시 등장했었던 카리스도 잔존 세력의 일원이었을까? 그래도 슈브가 그의 존재를 알긴 알던데 광신도와 별개로 존재하던 부하인가?
워낙 전 세계적으로 위협적이었던 사건이기에 그들이 신으로 삼았던 슈브 니구라스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걸 금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염소 뿔을 가진 고대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사건 이후로 모든 종교가 신고 및 허가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허가받지 못한 종교는 종교 활동을 금지한다고. 신청하면 거의 무조건 허가해주는 형식적인 절차지만 인신공양 같은 비인도적 제사를 예방하기 위한 거라고 한다.
책을 계속해서 더 뒤져봤지만 광신도들의 악행만 줄줄이 나왔고 그녀 자체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있지 않았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딱히 없는 것 같다......어디서 조사해야 알 수 있을까....?
그때 몇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당신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당신이 태어날 때 누군가 개입했다는 사실은 아시나요? 그 존재는 너무 강한 존재라 그녀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우리는 신경을 쓸수밖에 없답니다. 그런데 그 행동의 대상이 당신이네요? 저희에게는 당신이 한번쯤 확인해봐야 하는 대상이라는 거죠.]
아프로디테와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
그리고 전생할 때 들어갔던 차원문의 마력과 유사했던 슈브의 마력 포탈.
만약 내 전생에 개입한 게 슈브고 아프로디테가 말했던 '누군가'가 슈브라면....
신이라면 슈브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할 일이 정해졌네. 조만간 신학과 건물에 가봐야겠어.
아직도 하루가 한참이나 남았으니 다른 책이나 좀 볼까?
[미노타우로스에 대한 이야기]
[현존하는 신들과 여신]
오늘은 이 두 권 정도만 읽자.
[최초의 미노타우로스는 소 수인 중 돌연변이로 탄생했다. 돌연변이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소 수인과 외형이 비슷하여 거의 구별할 수 없지만 미노타우로스가 밝힌 사실에 의하면 그들은 소 수인과는 다르게 무기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일반적인 수인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태생적으로 마나를 쓸 줄 모르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은 마나에 간섭할 수 있었다. 그 원인은 초기에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들만의 또다른 마나, 귀기라는 것이 차후 밝혀졌다.]
[초대 미노타우로스는 대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퇴치되었으며 그렇게 대가 끊길 줄 알았으나 이후 세상에 다시 출현하게 되었다.]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한 후 테세우스는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의 아이를 임신한 후 은둔하여 출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인간과 협력하는 미노타우로스가 있기도 했고 괴수로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 미노타우로스는 숲의 재앙이라고 불리었는데 그를 토벌하기 위해 S급 모험가들이 출동하였으나 전멸하고 그 이후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후로는 목격된 바가 없다. 현재는 멸종했다는 설이 유력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흐음......소 수인 중 돌연변이라.....이 부분은 그리스 신화와 다르네. 신화에서는 파시파에와 소가 교접해서 나온 아이가 미노타우로스였잖아.
전달자 아저씨, 그러니까 초대 미노타우로스가 자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로스가 맞다고 했었는데. 신화랑 다른 부분이 있는데요? 사실 전달자 아저씨의 과거와 그리스 신화는 등장인물 이름만 같은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고 멸종설이라......멸종한 게 맞나? 내가 있긴 하지만 난 순혈은 아니니까.
귀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길래 혈통 해방 관련 정보가 있을까 유심히 봤지만 그런 건 딱히 없었다. 인간과 협력했던 미노타우로스들도 그것까진 밝히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밝히려 했지만 딱히 설명할 도리가 없었거나.
다음으로 읽은 신들에 대한 책 '현존하는 신들과 여신'에는 세계에 현존하는 신들에 대한 이야기 및 정보가 적혀있었다.
지구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 외에도 북유럽 신, 이집트 신 등 여러 신화의 신들이 섞여있었다.
신들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지구의 신화와 일치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일부 남신들이 여신으로 TS되어있다는 것 정도? 다행히 여신이 남신으로 TS되어있지는 않더라. 존나 다행이야.
그런데 여러 신화가 섞여있으면 역할이 겹치는 신도 있지 않나? 이집트 신화의 라와 그리스 신화의 헬리오스 혹은 아폴론의 경우 둘다 태양신 역할이잖아.
이것도 나중에 신을 만나면 물어봐야지.
도서관을 나서자 사서가 인사해 주었다.
"원하시는 정보는 찾으셨나요?"
"네. 다행히 있더군요.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질문해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왜 책들을 책장에 꽂아서 보관하는 겁니까? 수량이 너무 많아서 공간을 엄청나게 차지하게 되던데. 아공간 마법으로 보관할 수는 없나요?"
"그건 이 도서관의 설립자께서 책은 책장에 꽂아 도서관에 진열하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셔서 그렇습니다. 아공간에 보관하면 책을 꺼낼 때 비효율적이기도 하고요. 더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아뇨.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오시길."
도서관을 나오자 어느덧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까? 내일 4강을 준비하려면 미리 쉬어둬야지."
"도서관에 와보길 잘했네."
처음 목적이었던 슈브에 대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다른 정보라도 많이 얻을 수 있었으니 만족하는 미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