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예선(2)
예선전 1조가 끝난 후 잠시 반파된 경기장을 수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레온과 스피나의 전투 때문에 박살난 경기장에서 다음 조가 싸울 순 없으니 말이다.
조가 다르더라도 어디까지나 이전 조와 동일한 조건에서 진행해야 불만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수리는 금방 끝났다. 아카데미의 마법 교수들이 출동해서 마법 몇번 발동하니 순식간에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진짜 마법이 사기긴 사기야. 이과의 기술? 깝치지마.
수리가 끝나자 예선전이 이어졌다.
승리한 녀석들은 대부분 압도적인 1등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1조의 레온과 스피나처럼 박진감 넘치는 전투는 딱히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본선 진출한 녀석들 대부분이 레온보다 훨씬 약해보인다. 공격력, 방어력, 기술의 숙련도 등등 한참이나 수준이 떨어졌다.
불쌍한 레온.....실력은 되는데 대진운이 나빠서 떨어지다니, 다음 생 아니 내년대회에서는 좋은 대진표를 받기를......
예선전도 어느덧 13조에 이르렀다.
13조도 이전 조들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독주로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1조의 스피나처럼 로브를 쓴 녀석이었다. 쟤도 활쓰네.
다른 참가자들을 순식간에 잡아내고는 본선 진출을 확정지어버렸다. 저 녀석의 전투는 마치 전투가 아니라 사냥 같았다.
저 로브인과 이전 조 승자들과 차이점이라 하면.....
이전까지의 진출자들과는 비교 자체가 실례일 정도의 강함을 가진 녀석이었다.
"나의 이름은 세르피나!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가호를 받은 사냥꾼! 천세희 그녀를 사냥하고 우승을 거머쥘 것이다!"
로브를 걷자 드러난 건 아폴론 여신의 가호를 받았던 스피나와 머리색을 제외하면 똑같은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쌍둥이인가?
차이점이라 하면 스피나가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이었다면 세르피나는 은은하게 빛나는 은발이라는 것.
둘 다 활을 쓰네. 가호를 준 신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라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아르테미스 여신이라니 다행이다. TS된건 남신뿐이었어. 여신도 TS되서 남자가 되었다면 좀 많이 좆같았을텐데.
신들도 쌍둥이 자매, 가호를 받은 사람도 쌍둥이 자매라....이건 귀하군요.
아까 스피나가 마지막에 보여준 능력이 태양에 관련된 능력이었으니까 세르피나는 달과 관련된 능력을 쓰지 않을까?
스피나와 달리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 활과 화살만으로 승리를 쟁취한 녀석이라 확신은 못하겠지만 능력을 유추해보자면 그렇다.
"다음은 14조 차례입니다! 해당 조에 해당되는 분들은 나와주십시오!"
드디어 내 차례인가?
우리 조에는 스피나와 세르피나처럼 강한 녀석들이 있을까? 아니면 어중간한 녀석들 뿐일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강한 상대가 얼마나 있건, 상대가 얼마나 강하건 그대로 쓰러뜨리면 되지! 솔직히 미아 급만 아니라면 다 이길 자신 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14조 경기에 드디어! 신체 능력 1천점을 받은 폭풍의 편입생! 미노가 등장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엄청나다. 귀청 떨어지겠네.
아니 근데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어? 1천점이 그렇게 대단한거야?
사실 미노가 이렇게 주목을 받는 건 천세희와 관련이 있었다.
이전에 말했듯 아카데미 개교 이래 신체 점수 1000점을 획득했던 사람은 그녀와 미노가 유이했다.
미노는 그녀와 같은 수준의 힘을 가진 자라 할 수 있다. 사실 천점 이상은 측정 불가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엄청난 근력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라이온 교관에게 편애를 받을 정도로 탁월한 기술 이해도를 가진 자.
관중들로서는 미노에게 기대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아카데미 학생이나 교관이 아닌 외부인들은 어떻게 그를 알고 있는 거냐고?
그건 아카데미 측에서 대대적으로 그를 띄워주었기 때문이다.
천세희의 경우 원래도 용사의 칭호를 최단기간에 따낸 사람으로 유명했었지만 미노의 경우는 다르다. 이전의 외부 활동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아카데미 동안, 혹은 아카데미 이후 무력을 뽐내며 활약한다면 이 아카데미에서 '그를 이만큼 키워냈다!'라고 대대적으로 홍보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천세희를 이어 아카데미를 빛낼 인재라고 엄청나게 홍보를 해댔다.
물론 아카데미에서 대놓고 밀어주기에 일부 학생들은 질투심을 불태웠지만.
아카데미 내외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미노였기에 이 정도 함성은 당연한 거였다.
관중들은 이 경기를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과연 얼마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지, 혹은 그를 이기는 재야의 고수가 등장할지.
· · ·
경기장에 입성하자마자 관객석을 둘러본다. 레아랑 미아는 어디있지?
아 저깄네. 좋은 데서 보고있네. 이게 교관의 특권인가?
둘 다 잘 보고 있으라고! 좋은 활약 보여줄게!
"경기 개시!"
심판이 시작을 알렸다. 이전의 경기와 같이 대부분은 움직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나? 나야 당연히......옆의 사람한테 달려들었지. 눈치보는 건 쫄보들이나 하는 거야. 근육뇌라고 말해도 좋아.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를 근육뇌라 놀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농담이고. 정석은 당연히 상황을 관찰하는 게 우선이지.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건 그런게 아니잖아. 들어올 때 함성소리, 그 소리 들으면 당연히 호응해 줄 수밖에 없지!!
콰아아앙!
주먹의 풍압만으로 바닥에 크레이터가 생긴다. 내 힘 세긴 세구나. 몇 주간 격투술을 배우고 미아와 대련하면서 피지컬이 더 좋아졌다.
거기다가 귀기의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적혈 갑옷을 발현하지 않더라도 귀기를 사용해 신체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퍼억! 퍽! 퍽! 퍼억!
날아오는 검, 창, 화살 등을 흘리고 피하고 막으며 한 명씩 쓰러뜨렸다. 한 명당 한 방이면 충분했다. 내 주먹을 정통으로 맞고 한 번이라도 버틸 수준의 녀석은 아카데미에 거의 존재하지 않을테니.
남은 녀석들도 혼자서는 날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건지 뭉쳐서 공격하기 시작한다. 남은 인원 전부 다 연합했네. 전사도 여럿, 궁수도 여럿? 다구리는 비겁하다!
슈슈슈슈슈슈슈슉!
화살의 비가 쏟아진다. 100발은 될 것 같은데? 그런데......전혀 위기감이 안 느껴진다.
스으으으으......스르륵
공격 흘리기는 레온도 할 수 있었다. 나라고 못하겠는가? 단 한 발도 맞지 않고 모조리 흘려낸다. 마지막 한 발을 흘려내면서 주먹을 내지른다.
화살을 흘리며 팔에 누적된 충격을 그대로 분출하는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저 녀석들은 방패를 세워서 막아보려 한 것 같다만 일반 방패 따위로 막을 수 있는 위력이 아니다.
빠직빠직....빠가가각
방패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박살나버렸고 이어 충격파가 저들을 덮쳤다.
4명 정도 더 줄었나?
다구리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대체로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어지간한 강자도 여러 명이 한번에 덤비면 결국 당하는 법이다......라는 말도 일반적인 상식 내에서 통하는 말이다.
집단 공격? 개미가 아무리 덤벼봤자 공룡이 꿈쩍하겠는가? 비교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힘의 격차가 크면 물량은 그저 시간이 더 소모되는 것 뿐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젠 내 차례다.
나는 녀석들에게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움직임에 대응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겠다!
콰앙! 쾅! 콰강!
내 주먹 한방에 전사들도 쓰러진다. 나름 검으로 대응하려고 한 녀석들도 있었지만 주먹과 검이 부딪히자마자 검이 박살나버린다.
너희들 전사들이잖아? 좀 버텨 보라고! 나를 막지 못한다면 뒤에 있는 녀석들은 무방비하게 당해버릴 거라고?
! 살기!
나는 몸을 비틀어 뒤에서 휘둘러져오는 검격을 피했다. 익숙한 움직임이다. 미아와 대련할 때 겪었던 움직임과 비슷하다. 미아보다 숙련도는 한참 떨어지지만.
이녀석이 미아가 말했던 대회에 출전한 녀석인가? 너는 용서할 수 없어!
개인적인 분노가 들어간 주먹을 녀석에게 꽂아넣는다. 나름 보법을 사용해 피해보려 한 모양이지만 속도도 숙련도도 미아보다 한참이나 모자라다. 겨우 그 정도라면 어느 정도 움직임을 꿰고 있는 나한테는 통하지 않아!
이때 거대한 기운이 저 앞에서 느껴졌다. 뭐지?
"······엘라르 아둔! 블리자드 스피어!"
뒤에서 몰래 마법사가 영창을 외우고 있었나 보다. 녀석들이 순식간에 옆으로 물러서더니 내게 거대한 얼음의 창이 덮쳐온다.
상당히 길게 영창했는지 위력이 보통이 아니다. 피하기도 늦었다. 저걸 무방비하게 맞았다가는 나름 타격이 있을텐데.
해답은 딱 하나다. 나만 할 수 있는 무식하지만 원초적인 해답.
정면에서 받는다. 강한 힘은 강한 힘으로 상쇄하면 그만이다!
나는 적혈 갑옷을 주먹 부근에만 둘러 그대로 얼음창을 향해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아앙!!
얼음창은 순식간에 부서져버렸다. 그러나 갑옷을 두른 내 주먹의 위력은 얼음창을 상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퍼져나가 다른 녀석들을 덮쳤다.
꽈과과과과과광!
빠직....빠직.....
우르르르르르르!
아, 위력이 너무 강했던 모양이다. 충격파는 경기장을 넘어 관객석까지 도달해버렸다. 충격을 받은 관객석에 금이 가더니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발! 진짜 좆됐다!
경기장에는 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녀석들은 바로 송환된 모양이다.
"스....승자! 미노!"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의 떠나갈 듯한 함성에 나는 그에 화답하듯 주먹을 들어 올렸다. 당연한 결과라 별 감흥 없을 줄 알았는데 고양감이 엄청난걸? 가수들이 팬들의 환호에 전율을 느낀다는 게 이런 거구나.
미아 일행이 있는 방향을 보자 언제 왔는지 천세희 그녀도 근처에 앉아있었다. 어머나 시발 놀래라.
갑자기 관객석에 흰 머리 여성이 있으면 얼마나 놀라는 줄 알아?
그녀를 향해 도발하듯 주먹을 내민다.
"오오오오오! 최고의 루키 미노가 챔피언 천세희 양을 향해 도발을 시전합니다! 자신감의 표현일까요!"
해설자도 내 행동을 눈치챈 듯 호들갑을 떨어준다. 분위기 좀 살릴 줄 아네.
와아아아아!
내 퍼포먼스에 관중들도 열광한다. 역시 이런 맛이 있어야지.
"경기장이 많이 무너진 관계로 잠시 수리를 거친 후에 마지막 예선 15조의 경기를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1조 때는 순식간에 수리했으면서 나 때는 왜이리 오래걸리냐고?
같은 폭발이라도 위력이 다르다. 스피나의 공격은 경기장 바닥을 부숴버리기는 했지만 관객석을 덮고 있는 쉴드 마법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기에 금방 복구가 완료되었지만 내 공격의 경우는 경기장도 훨씬 크게 부서졌고 관객석의 결계 및 관객석 자체도 완파되어버렸기에 마법 전개부터 다시 해야 한단다.
이래서 너무 강해도 문제다. 나의 강함이란....!
........귀찮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후 경기장 수리가 끝난 후에 무사히 15조의 경기도 치뤄졌다. 기억할 만한 녀석은 아니네.
이로써 예선 경기가 모두 끝나고 예선 통과자 15명+천세희로 16강 멤버가 정해졌다.
본선은 다음주부터랬지? 16강부터 천세희 만나는 건 아니겠지? 그녀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루키라고 띄워줬는데 16강딱 해버리면 쪽팔리잖아.
· · ·
예선이 있던 날 저녁, 아카데미의 교장실 내부에서는 두 명의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경기장의 결계가 부서졌다고요?"
"예. 예선 14조 미노라는 학생의 공격에 결계가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상대의 공격을 상쇄하고 남은 충격파만으로 결계를 부순 겁니다."
".....그건 좀 놀랍군요. 천세희 양의 뒤를 이을 인재라고 홍보하긴 했어도 과장이 섞였다고 생각했었는데.....이젠 단순 과장이 아니게 되었군요.
일단 알겠어요. 이만 나가봐도 좋아요."
여성의 축객령에 남자는 짧게 인사하더니 교장실을 나갔다.
"미노 학생이라.......기대하고 있답니다? 부디 멋진 활약을 보여주길...."
여성은 조용히 미소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