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정말, 미쳤나?
컨셉이 아니라, 정말 미친년이었나.
미치지 않고서야, 제 아버지를 죽여달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말을 내뱉으며 저 우수에 찬 눈빛은 무엇일까.
허어.
태수는 어이없음에 절로 탄식음을 내뱉었다.
"아버지를 죽여달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오"
"말그대로에요. 제 아버지를 죽여주세요"
"상식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달라는 여자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주홍희는 그제서야 감정의 기복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공백이 얼마나 길었는지 체감했다.
그녀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태수에게 설명해주었다.
장시간 동안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다.
듣고 있다보면 주홍희가 안쓰럽게 보일 정도이기는 했다.
'흐음-'
그녀의 아버지가 얼마나 딸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적인지는 잘 알겠다.
그로인해, 온화했던 그녀는 성격적으로 괴팍해지고 잔혹해졌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림에서 그녀가 내보인 행동들이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막말로, 천마신교의 공주라는 명함이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무림에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공주의 말을 들을 이유가 뭐요? 굳이, 천하제일인이라 불리우는 천마와 맞서 싸워서 얻을 수 있는게 뭐냔 말이오"
결정적으로 천마와 맞서 싸워서 얻을 수 있는게 없었다.
물론, 더 강해진 이후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싸울 수는 있으나 그것은 일단 정사무림을 통일하고 난 이후의 계획이다.
즉, 아직 한참 멀었다.
스윽-
사라라락-
자신의 말에 부정적인 태수의 태도를 예상했다는 듯, 주홍희는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옷가지들을 하나둘 벗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던 옷들이 바닥으로 낙하하며, 아름다운 그녀의 몸매가 밖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주홍희는 태수가 여자에 미친 호색한이라는 정보로, 미인계를 통해 태수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사용할 계획이었다.
'...!'
하지만, 태수는 그녀의 옷 벗는 모습을 보고도 그닥 반응이 없었다.
'이게 도대체 뭐 하자는거지?' 같은 태수의 분위기에 주홍희는 마음 속 깊은 불안함을 쉬이 떨쳐낼 수 없었다.
전부 다 옷을 벗은 주홍희는 천천히, 태수에게 다가갔다.
"제 몸을-"
"무슨 짓이오?"
"그게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셔서-"
"나참, 광야 녀석 때문에"
자신의 몸을 던졌음에도, 거부당한 여자의 심리는 어떠할까.
궁지에 내몰린 상황이었기에, 주홍희는 나름 태수의 괜찮은 반응이 절실했었다.
자연스레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아니, 울긴 왜 울어'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태수는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악녀惡女 중에서도 악녀였다. 심지어 광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왜 저렇고 울고 있는지.
'흠흠, 그나저나 몸매는 엄청나네. 딱 봐도 D컵에, 키가 크니 몸매가 살아나잖아. 저게 바로 여신 같은 분위기인가'
그와 별개로, 그녀의 키는 170cm가 넘어, 장신의 섹시함이 아주 잘 살아나있었다.
정상위를 할 때도, 늘씬한 두 다리가 양 옆으로 벌려질 때 따먹고 싶은 맛이 잘 살아나지 않겠는가.
스윽-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태수의 반응에 그녀는 허벅지에 가터벨트처럼 생긴 띠에 묶여져있는 단검을 꺼내 자신의 목을 향하게 했다.
"절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겠어요"
푸스스-
말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실제로 단검을 자신의 목 피부 안으로 넣고 있는 중이었다.
자연스레, 핏물이 단검의 검면으로 흘러내렸고, 핏방울이 되어 연무장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여기서 다시 돌아간다면-'
주홍희는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빈손으로 돌아가, 그 죽고 싶은 시간들을 되풀이해야 한다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을 생각이었다.
"아니, 도대체 뭐 하는 짓이오!"
태수는 주홍희가 쥐고 있는 단검을 가로채며 화를 내었다.
천마신교의 공주는 그야말로, 광녀狂女 그 자체였다.
지금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죽으나, 그곳에서 죽으나 어차피 똑같아-!"
그러자, 그녀는 울분에 찬 눈빛으로 고함소리를 내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피로 얼룩진 억울함이 묻어있었다.
벌거벗은 나체로 고스란히 보이는, 가슴부터해서 핏발 선 목선이 그 증거였다.
태수는 이제는 거의 충혈된 그녀의 눈을 마주하니, 그녀가 진심으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기가 센 듯한 분위기도, 세상 무너질듯 울분에 차 펑펑- 울고 있으니 중화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크흐흐흡-!
흐읍흐읍흐읍-
으어허헝헝헝헝헝-
주홍희의 입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울음소리는 격해졌고, 결국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 좀 제발 살려줘어- 제발.."
"..."
주홍희의 감정이 폭풍의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가운데, 태수는 그 감정에 일일이 다 호응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소용돌이로 인해 일어난 편린들을 어느 정도 느낄 수는 있었다.
"공주, 내가 공주를 도와드릴 의향은 있소. 하지만, 시기가 너무 이르오"
도와주겠다는 태수의 말에 주홍희는 감정의 폭풍 속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는지, 눈물을 머금은 채 반색했다.
"현실적으로 내가 천마와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지만, 그럴 공간조차 없지 않소? 하물며, 단순히 천마만 쓰러트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의 밑으로 수천, 수만명의 신도들과도 함께 맞서야하오"
태수의 말은 지극히 이성적이면서도 상식적이었다.
천마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부스러기 같은 그 밑의 광신도들을 먼저 쓰러트려야 했다.
그리고, 애초에 그것은 천마신교라는 국가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주홍희는 태수의 생각을 이해했다.
어차피, 바로 죽여달라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에게는 언젠가 천마를 반드시 죽여줄 것이라는 희망이 필요했다.
"괜찮아요. 바로 죽여달라는 뜻은 아니었어요. 다만, 언젠가 천마를 죽여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저에겐 희망이 없었으니까-"
"아버지를 갱생할 여력은 없는 것이오?"
"..없어요"
"뭐, 알겠소. 이제 그만 옷 입으시오. 부끄럽지도 않소?"
태수의 말에 주홍희는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낯선 남자에게 나체를 보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는 듯한 자세였다.
"소문으로는 분명, 여자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요-"
주홍희는 옷을 입으며, 조금 질책하는 투로 말했다.
'감히 나를 거부해?'라는 뉘앙스가 깔려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공주는 내 취향이 아니오"
"...!"
태수가 그렇게 말하자, 여태껏 나체를 보이며 부끄러움이 없었던 주홍희는 수치스러움에 온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방금 태수의 발언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제가 취향이 아니라고요?"
"물론이오"
"이익-!"
확신을 갖고 말하는 태수의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물며, 남자가 취향이 아닌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당신, 취향 아니거든요?"
"그래서 공주처럼 들이대지는 않잖소"
"..!"
"뭐, 공주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소"
"지니고 있는 힘 치고는 상당히 입이 가벼우시네요"
주홍희는 전체적으로 '흥!' 분위기였고, 옷을 다 입은 후 연무장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잠시"
"...?"
자신의 등을 붙잡는 태수의 말에 등 돌린 그녀는 태수가 금창약을 갖고 온 걸 볼 수 있었다.
스윽-
차아아아-
태수는 단검에 의해 생긴 목의 상처를 직접 금창약을 발라주었다.
"아으으-"
주홍희는 따가웠는지 옅은 신음소리를 냈다.
"아무리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해도 자가회복 계열 무공이 아니고서야, 금창약을 발라주지 않으면 상처가 덧날 것이오"
"..이런 부분에서는 세심하시네요"
"뭐, 내 눈에만 안 예쁜 것이지, 다른 사람 눈에는 예쁠지도 모르니까"
"..설마, 그게 위안이 될 거라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 애초에 위안이 되라고 한 말은 아니오"
"쳇-"
주홍희는 태수의 말이 반은 마음에 들고, 반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금창약을 발라 자신의 몸을 챙겨주는 건 확실히 마음에 들었다.
"천마신교에 바로 갈 것이오?"
"바로 가려고 했는데, 이왕 온 김에 조금 더 무림을 구경하다 갈 생각이에요"
"뭐, 난동만 부리지 않으면. 지부장으로서 크게 상관은 없소"
"걱정이 되면 당신이 광서를 안내해주던가요"
주홍희가 그렇게 말하며, 등 돌려 연무장 밖으로 나가자 태수는 피식- 웃었다.
개인적으로 주홍희는 저렇게 재수없는 태도보다, 엉엉- 눈시울 붉히며 울고 있을 때가 확실히 더 예쁜 것 같았다.
광서 비무대회가 끝나고 며칠 이후, 당천휘는 사천당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가십니까?"
"예끼! 조금 더 지내다 가라고 하지는 못할 망정!"
"뭐, 저는 상관 없습니다만은. 더 지내고 가시겠습니까?"
"나도 그러고 싶다만, 나 역시 당문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슬슬, 돌아갈 때가 됐지. 우리 려아 잘 챙겨주고! 흠흠"
탁탁-
당천휘는 힘내라는 듯, 태수의 거대한 등을 힘껏 두드려주었다.
"녀석, 무슨 등이 거북이 등껍질이라도 되더냐? 왜 이렇게 단단해, 으잉-"
"뭐, 노인네는 외공은 익히지도 않소?"
"외공은 무슨-"
외공을 무시하는 듯한 당천휘의 말에 태수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외공은 내공을 담는 그릇이오. 외공이 잘 단련되어 있지 않으면, 그만한 내공을 담을 수 없는 것이지. 노인네가 내공 훈련에 흥미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도, 외공이 잘 받쳐주지 않아 내공 훈련의 효율이 잘 안나오기 때문이오"
"그, 그런 것이었나!?"
"그런 것도 몰랐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현경 초입에 들어선 것이오?"
"하하, 내가 재능이 있었나보지"
뭐, 애초에 밤꽃무림 세계가 재능충들의 세계라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재능만 있으면 뭐든 해결될 일이었다.
"아무튼, 손녀 사위야"
"갑자기 왜 그런 호칭으로 부르시오"
"몸 조심해라. 정천맹이 널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천맹이?"
태수는 이해할 수 없는 당천휘의 말에 의문을 띄웠다.
정천맹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니.
아!
"너는 최근에 우문가를 쓰러트렸지 않느냐"
설마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순간, 당천휘가 그 답을 말해주었다.
"세 문파와 우문가를 통합해, 무림맹에 적을 두었으니 이것은 확실히 정천맹의 손해이자, 정천맹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지"
당천휘의 말대로 정천맹은 하루 아침에 대표 연맹은 아니지만, 나름 연맹의 축을 이루고 있었던 우문가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아직, 청사파는 무림맹에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다. 구두로 승인을 받은 것에 불과하지. 정식으로 승인을 받기 전, 정천맹에서 인원을 보내 청사파를 무너트리면 이것은 정사대전으로 갈 명분도 없게 된다"
"확실히 그렇군요"
태수는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는 당천휘가 고마웠다.
정천맹 소속이면서, 어떻게 보면 체제경쟁을 하고 있는 적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라. 어차피, 넌 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지 않느냐. 내 양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전에, 그 꿈을 실현해라"
"후훗, 노인네. 낯 간지러운 말도 할 줄 아는군. 알겠소. 언젠가 그 꿈을 실현해보이지"
무림통일!
듣기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말이었다.
할 수 있을까? 란 생각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이해관계에 맞물려있는 무림단체들은 계속 손익 계산을 하다가 결국 멸절에 이르게 된다.
그렇기에, 힘으로라도 하나로 뭉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첫걸음이 광서지부의 패권을 통일하는 것이었고, 파천회였다.
"가가, 괜찮을까요?"
당천휘 작별인사로 함께 지부 밖으로 나온 당가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뭐가"
"소녀가 생각하기에도, 확실히 정천맹이 저희를 그냥 내버려둘 것 같지는 않아서-"
"려아야, 날 못믿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태수를 믿지 못한다면 누굴 믿을 수 있을까.
그야말로, 무림 전체와 싸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무력을 지니고 있는데-
"아흐흣-!"
태수가 당가려의 음부를 쓰다듬으며 음핵을 살살 건드리자, 그녀는 달뜬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태수에게 안겨왔다.
"나만 믿으면 돼. 걱정할 필요없어"
"아아앙, 네에엣-"
태수는 당가려의 몸을 희롱하며, 지부 안으로 들어갔고 아내들의 이상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도, 도대체 왜 이러세요.
-처음이 힘들지, 하다 보면 괜찮을거에요.
-아니, 난 이런 거에 관심없다니까!
-에잇!
-아으읏-! 아니, 정말!
설마.
사실, 설마할 것도 없었다.
초감각을 활성화하니, 주홍희가 하고 있는 작태들이 선하게 머릿속으로 주입되기 시작했으니까.
"가가-"
당가려 역시 설마, 하는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태수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그 의미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들어가보자"
"..네"
-정말, 감당할 수 있으세요!? 아으읏-!
정확히, 그 목소리들의 출처는 선하의 방이었다.
"..."
방 안으로 들어가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선하의 몸을 어떻게든 희롱하기 위해, 옷을 벗기려는 주홍희와 그에 맞서 저항하고 있는 선하가 보였다.
"다들 뭐해?"
"가가, 이, 이건-!"
"헤에?"
태수는 역대급으로 당혹스러워하는 선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녀는 태수가 혹여 자신을 이상한 여자로 볼 것 같아, 너무나 마음이 다급했다.
그럼에도, 주홍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오히려 대놓고 자신의 목 주변에 입맞춤을 해오는 것이 아닌가.
'계속, 이러고 있으면 가가가 엄청 화내실 거야'
선하는 다급한 마음에, 어떻게든 주홍희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녀는 도저히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선하는 태수에게서 예상 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재밌네. 계속 해봐"
태수는 아예 돗자리를 깔고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선하와 주홍희가 하는 작태들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