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이거 맛있지 않나?"
"음, 맛이 괜찮네. 이런 건 어디서 알았는가?"
"며칠 전에, 소개를 받아서 먹었지, 하하"
태수는 초감각으로 우문택과 그 일행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딱히, 수상한 건 없군'
태수는 이들의 대화에서 단서 같은 걸 듣지 못했다.
그저, 친우를 만나 할 법한 이야기들이 전부였다.
그렇게 식사가 끝났고, 우문택은 광서지부를 한 번 들르더니,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우문택의 집은 대저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큰 편이었고-
주위에는 집촌이 형성되어 있어 아무래도 우문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듯했다.
가문의 사람들은 그가 돌아오자 가볍게 인사를 건네왔다.
우문택은 대충 인사를 받은 후, 자신의 집무실이나 생활하는 곳으로 들어가 한동안 나오질 않았다.
그로부터 여섯시간 후.
이른 밤, 우문택은 잠시 소변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려던 참이었다.
"우문택"
"...!"
우문택은 자신의 이름을 낮게 부르는 남성의 목소리에 순간, 몸에 긴장이 들어갔다.
지금 이 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저런 식으로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살수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그것 역시 말이 되질 않는다.
고개를 돌리니 복면을 쓰고 있는 체구가 큰 남자, 태수가 자신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문택은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소리를 크게 내질러, 주위의 도움을 받을려던 찰나,
태수는 그 기색을 눈치채고, 순식간에 우문택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는 거미실로 그의 몸을 완전히 묶었다.
이후로, 우문택은 내공의 흐름이 완전히 차단된 걸 느꼈고
태수는 비행실을 이용해 아무도 볼 수 없는 하늘로 도약한 후, 주변 지형을 이용해 우문택을 잡아놓을 수 있는 간이 거미집을 펼쳐두었다.
"끄아아아악!"
우문택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거미실이 풀리고-
우문택이 눈을 뜨자, 폐부 깊숙한 곳으로부터 경악이 담긴 비명소리가 나왔다.
"도대체-"
우문택은 저 복면인이 자신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갈 것 같긴 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은 좀 애매하게 들어맞았다.
바닥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은 하늘에 자신의 몸이 둥둥- 떠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가진 유전자로는 자연적으로 이런 곳에 있지 않아야만 했다.
그 아릿한 감각에, 우문택은 절로 숨이 가파오르는 걸 느꼈다.
사지는 실 같은 것으로 묶여있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우문택은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도, 도대체 너는 누구냐"
공중에 펼쳐진 거미실을 밟으며, 우문택에게 다가오는 태수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묻는 말에 잘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그대로 대가리 터지고 싶지 않으면-"
"으으-"
청마지주의 내공으로 목소리를 변조하고서-
태수는 우문택의 몸을 들어,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시늉을 했다.
우문택은 질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곳에서 떨어지면 무공을 조금 익히고 있다곤 해도, 주변 장애물에 걸리는 천운이 있지 않은 이상, 즉사였다.
"이런 걸 너한테 사주한 녀석은 누구지?"
"어떻게 이걸-!"
태수는 인벤토리에서 진무가 보여줬던 문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난, 난 아무것도 몰라. 그 당시에도 녀석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어"
우문택은 태수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까, 급한 마음에 입에 침까지 튀기며 그 당시의 일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광서지부에서 관 대리인들의 모임을 주최하듯, 나는 그저 중개자로서 진사, 그리고 무백산과 그 녀석들을 이어준 게 고작이란 말이다!"
우문택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말이 먹히길 바라며 숨까지 헐떡였다.
'흐음-'
태수는 우문택의 말이 충분히 그럴 듯했다.
오늘 자신도 이런 모임을 통해 중앙상단의 송유린을 만나게 되지 않았는가-
비슷한 방식으로 진사나, 무백산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을 것이며-
오늘처럼 우문택은 그 자리를 주최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너는 왜 주최자로서 중개하는 역할을 맡게 된 거지? 언제부터?"
"우문가는 광서지부 근처의 문파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서 내가 자연스럽게 주최자의 역할을 맡게 된 거다"
"관 대리인이라는 직함도, 우문가의 뒷배경으로 들어간 거겠지-"
"...!"
우문택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
무공도 애매하고, 맹의 직함 하나 얻어내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덕분에 그는 우문가의 뒷배경으로 어느 한 마을의 관 대리인이 되어 나름 풍족하게 잘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 굳이, 이렇게 문서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나? 정작, 의뢰를 요구한 사람의 이름은 적혀져 있지 않고, 의뢰를 받은 사람의 이름과 중개자의 이름만 적혀있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태수의 말에 우문택이 일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태수는 순간, 우문택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당혹스러움을 읽어냈다.
"전부 다 사실을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청마흡인靑魔吸引'
우문택의 사지를 묶고 있는 거미줄이 서서히, 우문택의 수분을 갈취하기 시작했다.
"끄어억- 흐으으으어어어-"
우문택은 수분을 갈취당하며, 대사막에서 말라가는 듯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지더니 호흡 곤란 증세로 이어졌다.
"제, 제발- 죽- 죽- 죽을 것 같-"
"미안하지만, 이 능력에는 갈취하는 것만 있지, 다시 주는 건 없거든. 그 다음은 없다. 모든 일을 전부 사실대로 말해라"
"아아-"
마침내, 청마흡인이 끝나고 몸 속의 수분이 갈취당하는 듯한 그 지옥도에서 나온 우문택은 자연스레, 기식음을 냈다.
고문을 당해본 적은 없어도, 수분이 갈취당하는 고문은 그 누구도 절대 참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미, 입 안은 수분이 없어 피부가 갈라지는 듯했고-
몸에 힘이 없어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우문택은 안면근육이 뒤틀릴 정도로 발작하듯 말했다.
"제, 제발 모든 사실을 다 말할테니까, 그만, 그만해줘 제바아아알!"
"알겠으니, 사실대로만 말해라"
"남궁가에서 나한테 사람을 보냈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들과 광서지부 관 대리인들과 만나게 해달라고-"
"그래서"
"무려, 대大 남궁가에서 나한테 그러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난 당연히 응했고, 문서를 그렇게 해달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부탁을 다 들어주었던 게 전부야, 그게 전부라고-!"
"너는 그 진사, 무백산 일행이 마을사람들을 희생양 삼아, 실험을 한다는 건 알고 있었나?"
우문택의 표정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만약, 이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하면-
모든 수분이 갈취되고, 미라가 되어 죽을 것만 같았다.
"사실대로 대답해"
"나, 나는 알고 있었지만, 별 수 없었어! 난 고작 시키는 대로 한 게 전부야. 내가 거기서 트집잡을 수 있었다거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고!"
"흐음-"
태수는, 수분이 모두 갈취되어 미라로 죽을 것 같은 극도의 공포감에 눈이 시뻘겋게 변한 채로 열변을 토하는 우문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이 무공의 희생양으로 죽어나가는 건, 상관없었고?"
"그 사람들도 살릴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렸겠지!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고! 마을사람들 대신에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건가? 내 몸부터 챙기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냐고! 흐흐흑-"
속마음을 모두 털어낸 우문택은 곧, 죽음이 자신에게 찾아올 것 같아 흐느껴 울며,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다.
"푸흡, 으하하하-!"
"...?"
그런데, 미라가 되는 죽음은 다가오지 않았고-
예상 밖으로, 태수는 고개까지 젖히며 박장대소했다.
"맞아. 애초에 선과 악 같은 건 없지.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 것. 그게 곧 무림아니겠나?"
"무, 무슨-"
"오히려 네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든다고.
얼굴을 가린 복면 안에서 왠지 히죽- 웃고 있을 것 같은 태수의 모습에,
우문택은 자신에게 이렇게 겁박을 주는 남자의 의도가 궁금했다.
"도, 도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
마치, 울 것 같은 우문택의 표정에 태수는 한껏 조소했다.
"넌 지금껏 이유가 있어, 그렇게 해왔나?"
"..."
"네가 살 수 있는 방안을 주지, 무백산 임훈 등 그 계파들의 불법 행위들을 증거물로 제출할 수 있게끔 모조리 정리해서 나에게 갖고 와"
"나는 그런 증거물들을-"
"설마, 그렇게 오랫동안이나 중개자 역할을 해왔으면서, 증거물이 없다고 뒤로 물러날 셈인가?"
"하지만-"
"후훗, 네가 그렇게 나옴으로서, 우문가와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문파들과의 사이가 걱정되나보군"
태수의 말이 딱 들어맞았는지 제발, 봐달라는 듯 우문택은 고개를 미친듯이 끄덕거렸다.
"네가 그 증거물을 정리하지 않았다는 걸, 남기지 않으면 되지 않은가"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이 상황까지 와서 못한다고 할 생각인가?"
"...!"
아까 수분을 갈취하던 거미실이 태수의 몸 주위로 살랑거리자 우문택의 얼굴색이 급격하게 안좋아졌다.
"하겠다, 하면 되잖아!"
"기한은 2일이다. 2인 안으로 그 문서들을 모두 정리해놓고 있어라. 이틀 후, 이 시각 너를 찾아가겠다"
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실을 타고 내려왔고, 위에서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나를 이곳에서 내려다주고 가야지이이!"
"아, 미안-"
우문택은 여전히 거미실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 채였다.
졸지에 거미집에 갇힌 먹잇감을 그대로 냅둔 채, 집 밖으로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다음 날-
송유린은 수첩에 적힌 이름 옆에 'O' 혹은 'X'를 치며 하나둘 계약을 성사해나갔다.
물론, 태수와의 계약처럼 허둥지둥 대던 모습은 일체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5대5 혹은 최대 6대4의 계약으로-
중앙상단이 이득을 볼 수 있게끔 뛰어난 수완을 보여주었다.
"힘들었다"
괴물의 부산물들이 돈이 된다는 걸 각 지역의 상단에서 냄새를 맡았는지-
너나 가릴 것없이 무인 독점 계약에 나섰고,
이미 송유린이 해당 무인을 찾아갔을 때는 다른 상단과 독점 계약을 맺고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가 태수를 만나 독점 계약을 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재료 유통은 될 거야"
무엇보다 중앙상단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무려, 현경의 고수가 보호해준다는데 상단이 주변 상단을 위협할 정도로 커져도 음해할 세력이 과연 있겠는가.
'물론, 지금은 아무도 믿고 있지 않지만-'
상단에 대大자로, '현경의 고수가 보호하는 중앙상단과 함께하세요' 라는 현수막이 걸려져있었지만.
사람들은 피식- 웃음을 머금고 지나쳤다.
신생상단에 현경의 고수가 보호해준다는 말이 어이없어 웃겼던 것이다.
'그나저나, 태수 공자님은 뭐하실려나-'
일이 끝나고, 쉬고 있으니 너무나 자연스러운 의식의 과정 속에 태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힝- 보고 싶다'
있을 때는 자꾸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얄궃게 놀리는 장난에 지치지만, 보이지 않으면 계속 생각이 나는 부류였다.
'아직, 광서지부에 계실텐데. 흐음-'
송유린은 떡을 핑계로 다시 한 번 태수를 만날까, 심히 고민이 되었다.
'남궁가라-'
태수는 이 일에 대해 남궁가가 관여했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는, 좀 당혹스럽긴 했었다.
정천맹이 비록, 무림맹에 비해 부족하다고 알려져 있긴 해도, 남궁가만 놓고 봤을 때는 무림맹의 단일 문파와 비교하자면, 사실 이길 수 있는 문파가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결국, 남궁가는 청독각마공의 실험을 위해, 각 지부의 중개자를 통해 관 대리인을 만나 마을사람들을 희생양 삼았다는 건가'
들은 이야기를 모두 종합하자면 결국, 스토리텔링이 이렇게 되버린다.
'일단, 무백산 계파 녀석들을 조지는 데 집중한다'
듣기로, 남궁가 전 가주이자, 현 가주의 아버지가 현경의 고수라 들었다.
당연히,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에 올라있었고 그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순위에 매겨져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화경의 고수도 상당히 많았고, 남궁가 집촌을 걷다보면 초절정고수들이 밥 먹듯이 보인다고 하니, 쉽게 건드릴 세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문택 이 녀석. 역시 곱게곱게 가지는 않는구먼"
우문가의 집촌 주위에 잠입하며, 우문가 본가의 대저택으로 가까워지니 쉽게, 쉽게 가지 않으려는 우문택의 더러운 심보가 느껴졌다.
사실, 태수로서는 오히려 이렇게 한 번 반항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아니, 숙부. 도대체 오긴 오는 겁니까?"
"나이가 많이 차셔서, 헛것이 보이는 것일 수도-"
"에휴,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 이 놈들아, 내 말 좀 들어라. 녀석은 분명 온다니까?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말고 근처에 숨어있어!"
"예이예이,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들리는 소리를 보아하니, 우문가의 자제들을 어떻게든 모아 태수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이 자리에서 태수를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우문가에서는 거의 찬밥 신세군. 무공 수준이 낮아서 그런가'
뭣도 없는 뒷방 노인네가 누군가 자신을 죽일 거라며 제발, 이곳을 지켜달라는 모습이 우문가의 자제들에게는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뭐, 놀음의 시간을 한 번 정도는 가질 필요가 있겠지'
태수는 히죽 웃으며, 우문택의 주변에 우문가의 자제들이 숨어있음에도, 밖에서 서성거리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문택의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