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33/90)



〈 33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혁아, 네 눈 앞에  남자는 너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니, 3수 양보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치잇-'


당우혁은 할아버지가 대놓고 비무장에서 겁박을 주니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다.

 그에 대한 반발 심리가 당우혁의 고개를 처들게 했고, 내공의 기세를 끌어올렸다.

'기껏 해봐야 초절정 밑. 제 누이보다도 못하는구나-'

태수는 당우혁이 이제야 막 초절정에 입문했음을 읽어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들어 자신감이 크게 올라왔던 것이겠지.


절정과 초절정의 차이는 일류와 절정의 차이보다 현격하게 컸다.


화경에서 현경이 되면 강기를 멀리 발출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절정에서 초절정이 되면 마찬가지로 기를 멀리 발출할  있게 된다.

사거리에 이점을 얻는다는 건, 대인전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기에 절정고수 다섯이 모여야 초절정 하나를 이길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천뢰구天雷球"


당우혁은 천뢰구 속에 담긴 파공강침에 멸독을 용독해 태수를 향해 출수했다.

천뢰구는 폭약암기로 사용자가 지정한 곳에 터트려 안에 가득 들어있는 파공강침이 적들을 말살하는 초식이었다.


거기에 사람의 몸을 녹아내리게 만드는 멸독이 용독되어 있었으니, 당우혁에게는 첫 공부터 전력이었다.

'뭐가 많이 생략됐네?'

비무는 자신의 초식명을 일일이 다 말하는 것이 암묵적인 관례였다.

본래, 비무의 목적은 서로의 무공을 겨루어보며 수양하는 것으로 서로의 상성에 따른 초식상생을 이루며 극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기는 목적이 아닌 비무는 초식의 상성을 고려하지 않고, 초식속에 담긴 저의를 모두 드러내도록 초식명을 말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우혁이 외친 초식명은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그 숨겨진 악랄한 뜻이 너무나 많았다.

-부탁한다. 못난 놈이지만, 그래도 내 손주 녀석이다. 공격에 살殺을 없애다오.


비위가 상한 태수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당천휘의 케어가 들어왔다.


아무리 손자한테 버럭버럭한다지만, 그도 역시 손녀나 손자나 둘 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인 건 변함이 없었다.

"주사강막蛛絲强幕"


태수의 몸 속에서 거미실이 방패 모양으로 출수되어, 천뢰구를 껴안듯 삼켜버렸다.

천뢰구는 거미실 안에서 폭발을 일으켰으나, 거미실 밖으로 파공강침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대로 삼켜버린 것이었다.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으나, 당천휘를 제외한 당문 사람들은 태수가 외친 초식명에 대해 기겁했다.

주사기막도 아닌, 주사강막이라니?

설마, 저 나이에 화경의 경지에 오른 것인가.


실제로 거미실에 머금고 있는 기운은 확실히 내공의 정수, 강기임이 틀림없었다.

'내, 내가 화경의 고수를 상대로 무슨 짓을. 아니, 할아버지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혹시 그 이상일지도'

당우혁은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깨달았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안면 근육과 광대는 제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경련이 일었다.


설마, 이 자는 할아버지도 도달하지 못한 전설상의 경지, 반로환동의 노장인가.


단 한 번의 초식 경합만으로 패색이 짙어졌고, 당우혁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항, 항복하겠소. 고수를 몰라뵙고 결례를 저질렀소이다"

"이대로 끝이라면 많이 재미없는데, 흐음"


"그럼, 비무는 태수 대협의 승리로 마무리짓겠습니다"


당우민은 태수가 최소 화경의 고수인 걸 깨닫고는, 아들의 항복 선언을 듣자마자 늦을세랴 비무 종료 선언을 해버렸다.

더 이상 해봤자 못난 아들 녀석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당문에서는 무림의 새로운 신성이 나타난 걸 경축하네. 흠흠- 일단, 다시 태수 대협을 환영하겠네. 하하, 시간도 늦었는데 하룻밤 당문에서 지내고 가는 건 어떻겠나? 내 극진히 준비하겠네"

아직, 오후 3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당우민은 늦은 밤이라며 어떻게든 태수를 붙잡으려 했다.


당우민은 가주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태수가 최소, 화경 이상의 고수에 심지어 출신 성분도 없다는 걸 고려하면 이보다 더 좋은 경우가 없었다.


그제서야 아버지가 왜 그토록 귀중한 손님이니, 하면서 태수를 극진히 대했는지 깨달았다.


태수 바로 옆에 당가려를 앉게 한 것도 이해가 갔다.


'아버지에게 그런 뜻이 있었을 줄은. 그런데 아버지는  저런 표정을 짓고 계시지?'

당우민은 그런 영업용 말투로 대하지 말라는 듯, 손짓을 취하는 당천휘의 저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굳이,  아들 녀석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네. 마음대로 하게

답답한 마음에 당천휘는 직접 태수에게 전음으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당천휘는 최대한 태수를 배려하려 했던 것이었다.


'이미, 녀석은 많이 무림에 노출되었겠지만-'


아마, 오늘밤이 지나고 나면 태수라는 이름이 전 무림에 널리 퍼질  분명했다.


당문 안에서 입막음을 한다고 해도 오늘 당문에서 비무가 있었던 일들은 절대로 어디 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물론, 내가 녀석에게 패배했다는 소문은  퍼지겠지, 설마'

 소문이 퍼진다면 그것대로 문제였다.

자신의 체면이 구겨지는 건, 지극히 사양이었다.

"뭐, 극진히 대접해주신다는데 하룻밤 있다 가겠습니다"


"오, 알겠네. 오늘 사천의 괴물 침공도 막기도 했고, 축제를 열어야겠구먼-"

당우민은 기분이 많이 좋았는지, 축제까지 언급했다.

이후로, 당문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임무로 복귀했다.


손님 중에서도 특별한 손님을 모시는 방에 들어온 태수는 그 와중에 당우혁의 사과를 받았다.

당우혁은 시야가 좁은 자신의 견문에 깊게 한탄했고, 태수는 크게 딱히 상관없어 대충 당우혁을 용서하고는 돌려보냈다.

"밖으로 나오겠나?"


태수는 초감각으로 멀리서부터 당천휘의 호흡을 느끼고 있었다.


"뭐, 심심하기도 하네요"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 좀 하겠네. 자네의 무공 경지는 정확히 어디인가?"


둘은 당문의 대정원을 걸었다.

당문의 영웅이나 다름없는 당천휘가 낯선 남자와 같이 걸으니, 당문의 잡다한 업무를 맡고 있는 경비 등이 당천휘와 태수를 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알려준 게 아니라,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현경의 중상위급 정도는 될 겁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자네는 단순히  정도의 수준이라 보기 어려웠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현경의 고수라 해도, 인간의 한계는 존재하지. 내공의 깊이가 그렇고, 초식의 한계가 그렇네. 그런데, 자네를 상대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자네는 아예 약점이 없어보였어. 그야말로 단단한 바위와 싸우는 느낌이었네"


"그랬나요"

당천휘는 이토록 일방적인 싸움은 살면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태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자네의 무공은 도대체 뭔가? 무림에  알려져 있지 않은 사마외도邪魔外道의 무공인가?"

오대세가와 그 밑의 부속가문들, 그리고 구파일방과 그 밑의 부속문파들의 무공은 대체로 정형화되어 있었다.


어딜 가든 비슷비슷하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북해빙궁, 남만, 포달랍궁 같은 새외무림의 무공은 상당히 특이했다.


그렇게 혈계전승으로 이어지는 무공들 중, 북해빙궁의 경우 익히면 몸이 자연계의 빙氷속성으로 변해, 물리적인 피해를 아예 입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내가 너무 깊게 질문을 했나보군-"


태수가 대답하지 않고, 고민을 하는 듯한 표정에 당천휘는 심심한 사과를 보냈다.

"아닙니다.  딱히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됐네, 억지로 캐내서 나 역시 기분좋을 것도 없네"

"무공의 경지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은, 저 역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현경의 중상위 급으로 추측됩니다"


"현경의 중상위라, 정말 기가 차군. 자네 나이가 이제 몇이지?"

"26입니다"

"하하, 내가 그 나이에 겨우 화경 초입에 들고, 미래의 천하제일인 소리를 들었는데 말이지. 자네는 정말-"

무공의 재능을 타고난 이들이 보통 40살 전후로 화경 초입에 드는 걸 고려하면, 녀석의 재능은 실로 폭력적이었다.


"그러면 내 부끄럽지만 질문에 대답해줄  있겠나?"


"말해보시지요"

"현경의 초입과 중상위의 차이는 무엇인가?"

"간단하면서도 어렵습니다.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의 전이입니다.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

당천휘는 쑥쓰럽게도 태수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중단전으로의 전이라니.


단전이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으로 나뉜다고 어떤 무공비전서에는 말하고 있지만, 엉터리라고 생각했었다.

"중단전으로 전이되면, 그때부터는 강기를 형성하기 위한 하단전에서의 대주천이 의미가 없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즉발 형태로 강기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태수는 전에도 그랬듯 기세를 끌어올리는 과정없이 중단전으로 내공을 운용해 즉발로 강기를 만들어냈다.

"와하아아-"

그걸 직접 가까이 본 당천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기해 했다.

"깨달음은 이렇습니다. 단전 속의 내공의 흐름은 주천을 거듭할수록 강해지고, 대주천에 이르면  내공의 흐름은 강기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내공의 흐름이 본래부터 강했다면, 주천을 통해 추진력을 얻는 과정없이 곧 바로 대주천을 할  있겠지요. 그것이 바로 중단전의 깨달음의 시작입니다"

태수의 말을 들은 당천휘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는  눈에 총명이 일며 전류가 찌릿- 했다.


그것은 당천휘에게 있어 굉장히 전율적인 느낌이었다.


무려 수십년 만에 그토록 바라던 깨달음을 얻게 되었으니, 무武를 탐구하고 숭상하는 무인으로서 발 끝부터 묵직하게 차오르는 기쁨에 온몸을 주체할  없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었으나, 내공의 부족으로 중단전으로의 전이는 이루어내지 못했다.

본래, 무공 경지의 상승이라 함은 육체적 깨달음 기체氣體와 정신적 깨달음 심의心意,  두 가지의 깨달음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당천휘는 심의 부분에서는 깨달았지만, 기체 부분이 부족했기에 중단전으로의 전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심의의 깨달음을 얻은 당천휘는 벅차오르는 기쁨에 태수를 얼싸안으며 울기까지 했다.

"흐엉엉엉- 자네에게 내 정말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네. 고맙네, 정말로- 으헝헝헝"


"그 나이 먹고 우는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흠흠-"


태수는 사실 지나가듯 말한 것이었지만, 당천휘에게는 깨달음의 입문 초석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내공이 충분하셨으면 지금 바로 중단전의 깨달음으로 환골탈태를 하셨을 겁니다"

"내 알고 있지. 내 지금껏 내공 훈련을 게을리 했건만, 죽기 전까지 이제 내공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겠네.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구만, 헛헛- 자네는 내 이름으로 보증을 걸지. 자네가 당문에서 무슨 짓을 해도 내 무조건 용서해주겠네. 아니, 자네는 내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네. 으하하하-"


당천휘는 지금 당장에라도 내공 훈련을 하지 않으면 몸이 달아올라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공 훈련하러 가시지요. 전 역시 여자랑 놀아야 재미있는  같습니다"

"자네 정도면 려아가 첩으로 들어가도 충분할 것- 아니, 이건 려아의 의지가 중요하겠지. 아무튼  가보겠네.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더 물어봐도 되겠나?"

"이제는 뭐 아무렇지 않게 훅 들어오시네요?"

"하하, 늙으면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듯하이"


그렇게 태수는 당천휘를 떠나보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당문에서의 시간은 자신이 밤꽃무림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기보다는, 무림에 처음으로 출타한 무인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이러면 안되지-"

자신은 언제까지나 밤꽃무림을 즐기는 유저였다.

그것도 마치 현실처럼 즐길 수 있는 특전을 거머 쥔 유저.


 정체성을 내려놓지 않아야만, 멘탈이 크게 흔들림없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게 가능했다.


밤꽃무림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공통 목표는 대부분 하나로 귀결되었다.

밤꽃무림의 세계관 급 히로인을 최대한 많이 따먹어보는 것.

'물론, 현실과 타협해야 해서 그렇게 하는 게 어렵긴 해도-'

태수는 당문의 개인 연무장에서 암기술을 훈련하는 당가려를 발견했다.

본래, 당가려는 주변에 누가 가까이오면 기척을 읽어냈겠지만, 태수의 기척은 감히 읽어낼 수 없었다.

그렇게 태수는 말없이 그녀의 무공 시연을 잠자코 보았다.


'그 노인네 말대로 재능은 엄청 난 것 같네. 내공을 다루는 타고난 감각이 대단해. 하지만 역시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해'


아쉬운 부분을 느낀 태수는 당가려의 무공을 손봐줄 생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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