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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함락]
[부인함락]
불화(不和)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친구 간의 불화, 이성 간의 불화, 가족 간의 불화.
수많은 불화가 우리 주변을 떠돌아다닌다.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변만 한번 훑어보면 수많은 불화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내 앞에 존재하는 벽 너머로 부부 간의 불화가 들려온다.
“당신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냐?”
“하지만……!”
“나도 미치겠다고!”
바로 며칠 전에 옆집으로 이사 온 이들 부부는 이런 식으로 매일 같이 말다툼을 한다.
솔직히 말해서 별거 아닌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는 말다툼이다.
일에 치여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아내, 그리고 그런 아내의 잔소리에 진절머리 치며 화를 내는 남편.
서로 간에 이해심이 부족한 탓에 일어난 불화.
그런 사소한 불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들 부부의 불화에 신경 쓰는 이유는 역시……. 부인이 상당한 미인이라는 데에서 기인할 수 있었다.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인상이 아니다.
아주 보기 드문, 상당한 미모를 지닌 부인이다.
“이제 그만해!”
큰 소리로 화를 낸 남편이 쿵쿵 하고 발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부인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부인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벽 너머로 생생하게 들려온다.
‘부인의 외로움을 몰라주는 남편과 남편의 고충을 알아주지 않는 부인인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이건 아주 보기 드문 훌륭한 기회였다. 무관심한 남편을 대신해서 미인 부인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말이다.
‘어떻게 해야 부인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
일단 내게는 부인의 이웃이라는 훌륭한 이점이 존재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웃이란 존재는 솔직히 말해서 그 의미가 아주 희미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된지 오래다. 그러니 단지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인에게 접근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었다.
때문에 다른 무언가 더 좋은 수단이 필요했다.
가만히 곰곰이 생각해 보던 나는 요 며칠 간, 이들 부부를 관찰하며 얻은 정보를 적어둔 수첩을 들추어보았다.
부인 쪽의 이름은 이 예나, 올해로 26세가 되었으며 현재 별다른 일 없이 전업 주부로 살고 있다. 그에 비해 남자 쪽은 30세의 김 이혁. 모 대기업의 엘리트 사원이었다. 이 기업의 이름을 대면 누구나 다 아! 하고 절로 감탄을 내뱉을 정도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역시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이런 미인 부인을 얻는다는 건가.
바야흐로 인생의 승리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미인을 부인으로 두고 있으면서 밤마다 별다른 짓을 하지 않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부인이 처음 이사 온 날, 우리 집에 떡을 돌리기 위해 방문했을 때……. 나는 그 순간, 심장이 멎는 줄로만 알았다.
난생처음 보는 미인이었다.
아이돌이나 모델과 비교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는 미인이었다. 그 정도로 부인은 상당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미인을 두고서 남편은 무슨 짓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밤마다 늦게 들어오며 허구한 날 부인과 말다툼을 했다. 심지어 주말이면 방에서 퍼질러 잠만 잤다. 드르렁거리는 코 고는 소리가 벽 너머로 뚜렷하게 들릴 정도로 말이다.
참으로 한심한 남편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내가 부인의 남편이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6시에 칼같이 퇴근을 해서 부인을 범하고 또 범했을 것이다. 저녁을 먹기 전에 한번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 하고, 같이 목욕하면서 하고, 자기 전에 할 것이다. 그리고 아침마다 기상 펠라를 받으면서……. 아아, 나란 인간은 정말로 글러먹었다.
“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역시 망상뿐이다.
그렇다, 나는 여느 평범한, 일탈을 꿈꾸는 현실의 남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일탈을 실행하기 위해서 저들 부부의 불화를 더 크게 들추어보려 하는 음흉한 사내이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내 계획이 제대로 될 거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시도조차 제대로 못 하고 막힐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구태여 이 계획을 세워놓은 건, 역시 부인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자는 욕망이 컸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부인에게 접근을 하려면 남편과 먼저 친해져야겠지?”
더불어 남편의 이런저런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이웃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낯선 남성이다.
이틀 전에 우연을 가장해 마주친 다음에 여러 가지 이야기와 이름, 나이를 공유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타인은 타인이었다.
부인에게 접근해도 될 정도로 친근한 사이는 아니라는 뜻이다.
자칫 잘 못 했다가 불륜으로 오해를 사서 몰매를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불필요한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일단 남편 쪽과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 생각에 나는 다음날 출근길에서 부인의 남편과 친분을 쌓은 만한 이야깃거리를 착실히 준비해두었다.
“응?”
그렇게 남편 쪽과 친분을 쌓을만한 이야깃거리를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벽 너머로 부인의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가까이 벽에 귀를 가져다 대보니, 부인이 훌쩍훌쩍 코 울음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금세 그쳤군.’
평소보다 이르게 울음을 그쳤다.
아무래도 부인도 이 일상에 슬슬 적응이 되어 가는 중인 모양이었다.
매일 아침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서 서러움에 울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부인을 나 몰라라 하며 홀로 출근길을 서두른다.
참으로 야속한 아침 일상이다.
‘부인이 이 이상으로 일상에 무감각해지기 전에 서둘러야겠군.’
이런 일상에 부인이 수긍해 버리는 순간, 더 이상 불화는 일어나지 않을테니 말이다.
애초에 불화의 원인은 남편 쪽이 제공한 것이었지만, 그 불화의 불씨를 당긴 것은 역시 부인의 잔소리다. 그런데 여기서 부인이 남편의 늦은 귀가에 수긍해 버린다면, 더 이상 이들 부부 간의 불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이건 이것대로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되어버린 순간 이들 부부의 갈등은 더 이상 내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서둘러 이들 부부 간의 불화에 간섭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들의 불화가 진정되지 않도록, 그러나 겉으로는 진정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야한다. 그러면 남편은 분명 나를 부부 간의 불화를 잠재워준 친절한 이웃이라 생각할 것이고, 부인은 어느새 내 여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남편 모르게지만 말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말이지.’
음흉하게 웃어 보인 나는 여전히 벽에 귀를 바짝 댄 채로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려는 건가.’
달그락 달그락 하며 요란한 식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아침 식사에 쓴 식기를 닦고 있는 모양이었다. 더불어 그 옆에는 커피에 쓸 물을 올린 주전자가 끓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부인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의 아침상을 차려주고는 출근 전에 잠시 다툰다,
그 후 울음을 터트린 부인은 힘겨운 몸을 일으키고서 설거지를 하고 가볍게 커피를 마신다. 이게 바로 부인의 일상이었고, 몇몇 부분만 뺀다면 대다수의 부부들이 행하는 일상이었다.
“꺄악!”
그 순간, 날카로운 부인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응?”
깜짝 놀란 나는 잠시 몸을 굳혔다가 이내 서둘러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부인 집의 도어락을 눌렀다. 비밀번호는 저번에 술 취한 남편이 누르는 것을 눈여겨 보아두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손쉽게 풀고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 후, 부엌 쪽으로 달려가 보니 주저앉은 채로 벌벌 떨고 있는 부인의 모습과 그 옆에 엎어져 있는 주전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습니까, 부인?”
놀란 내가 다급히 부인의 몸을 부축해주자, 그녀는 어떨떨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주전자가 엎어진 순간 쏟아진 뜨거운 물에 손등이 데인 모양인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 한 나는 재빨리 찬물을 튼 뒤에 부인의 손등을 식혀주었다.
만약에 이런 고운 손등에 혹여나 화상자국이라도 생긴다면 그야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화상에 쓸만한 약이 있습니까? 아니면 구급상자 라도요.”
“아, 네……. 저기 서랍장 쪽에 구급상자가 들어있을 거예요.”
그 말과 동시에 부인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서랍장을 손으로 가리켜 보이자, 나는 서둘러 그 쪽으로 몸을 돌리며 부인에게 그대로 꼼짝도 하지 말라고 당부해두었다. 그러자 부인은 어떨떨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가만히 찬물에 손등을 식힌 채, 네 라고 고분이 대답해주었다.
“자, 손을 주세요.”
구급상자에서 화상에 쓸 연고와 붕대를 가져온 내가 이리 말하자, 부인은 얌전히 찬물에서 손을 떼어내며 내 쪽으로 자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찬물에서 손을 뗀 순간, 손등이 화끈거려 오는 모양인지 부인은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연신 손을 벌벌 떨었다.
하지만 그 찌푸린 표정마저도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인다. 아니, 어쩐지 더 괴롭혀주고 싶다는 사디스트 같은 기질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지금 당장 울며불며 어서 빨리 연고를 발라달라며 애원하는 부인의 자태를 감상하고 싶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이 되지 못 했다.
“일단 급한 대로.”
라고 말한 나는 수건을 대신 해서 윗옷으로 부인의 젖은 손을 닦아내어주었다. 그리고는 마음 속 깊이 이리 생각했다. 이 윗옷은 절대 빨지 않겠다고 말이다. 무려 미인의 손을 닦아낸 옷이다. 여성의 속옷과 비견해도 될 정도다.
물론 급수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좀 따가울지도 모릅니다.”
“아, 네.”
다소 사무적인 목소리로 간결하게 말한 나는 부인의 고운 손을 단단히 잡은 뒤에 빨갛게 부어오른 손등에 화상 연고를 골고루 발라주었다.
“저기 그런데…….”
“네. 말씀하세요, 부인.”
그러면서 내가 고개를 들어 올려 부인을 바라보자, 그녀는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지 양 볼을 살짝 붉히며 내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인은 슬쩍 내 쪽으로 곁눈질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떻게 저희 집에 들어오셨어요?”
“아, 제가 미처 그걸 말씀드리지 못 했군요. 죄송합니다, 워낙 경황이 없어서요.”
라고 말한 내가 황급히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부인은 크게 당황해하며 서둘러 내 고개를 일으켜주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는……! 덕분에 큰 도움도 받았고……. 다만 어떻게 저희 집에 들어오셨는지 그게 저는…….”
어쩔 줄 몰라해하며 횡설수설하는 부인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려 보인 나는 차분히 입을 열어 설명해주었다.
“잠깐 밖에 나갈 일이 생겨서 집을 나오던 중에 우연히 부인의 댁에서 비명 소리가 나는 걸 듣게 됐습니다. 물론 평상시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댁의 문이 열려있는 걸 보니 별의별 이상한 생각이 들더군요.”
“아, 그래서…….”
“네, 혹여나 도둑이나 강도가 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않고 댁에 들어오게 된 겁니다.”
이러한 내 설명에 부인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완전히 경계심을 푼 표정을 하고서 편안히 내게 손을 맡겼다. 덕분에 나는 내 손에 잡힌 부인의 고운 손결을 마음껏 맛보며 연고를 발라준다는 이유 하에 손등을 애무하듯 살살 어루만져주었다.
“그나저나 큰일을 겪게 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아, 네……. 저도, 아, 그러니까…….”
내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모양인지, 잠시 당황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부인의 모습에 나는 짐짓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다시금 내 이름을 부인에게 알려주었다.
“유 세현입니다.”
“죄송해요, 세현 씨. 저번에도 가르쳐주셨는데……. 이번에는 꼭 기억할게요.”
무척이나 미안해하는 부인의 태도에 나는 허허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