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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서로
북경에서 열리는 용봉지회는 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무림의 행사지만 무인들을 보러 오는 수많은 관중들로 하여금 바라볼 수 있는 수익이 엄청나기에, 관은 항상 용봉지회를 적극 지원해왔다.
특히 이번에는 황녀까지 대동하여 지원을 나섰다. 황녀는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뽐내며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중이었다.
만약 하북성주가 용봉지회 지원을 주관하고 있었다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의 유일한 적녀, 황후가 낳은 딸이 나섰는데 어찌 관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으랴?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하하. 지나가는 길인 걸요.
-어디 관아의 병사십니까? 나중에 제가 빚은 만두라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저 금의위 인데요.
-...에그머니나!
대외적으로는 올바른 진행을 위해 애쓰며.
-저 남자에요! 저 남자가 저를 만졌어요! 금의위 무사님, 저 남자를 잡아가주세요!
-쟤도 금의위인데요.
-.......
-잡았다!
물밑에서는 대회에서 구설수에 오를 만한 것들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행여나 승부조작이나 기타 다른 구설수에 오를만한 모든 일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휘사. 이걸 봐주시겠습니까.”
황녀는 자신의 앞으로 온 투서를 보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금의위의 지휘사, 장문월은 투서의 내용을 살피고 혀를 찼다.
“...어찌 무공을 익히고 이런 잔학한 짓을?”
“하오문이 모은 정보인 듯 합니다. 숙수, 시종, 경비무사....이렇게 구체적으로 여러 방면의 사람들을 조사하는 건 하오문의 방식이지요. 이걸 무림맹이 아니라 저희에게 전했다는 건...현천백가를 제대로 망가뜨리겠다는 걸수도 있습니다.”
투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현천백가의 가주 백수광이 가문 내의 식솔들을 폭력으로 다스리며, 소가주 백보준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세가 내의 교육이라고는 하지만 그 도가 지나치며, 실제로 죽거나 크게 다쳐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이들도 수두룩하다.
현천백가의 실태를 고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이 투서가 하필이면 안휘성도 아니고 용봉지회가 열리고 있는 하북, 그것도 운영 지원부에 도착하였는가?
-...본인은 오래전부터 현천백가의 소가주, 백보준을 지켜봐왔소. 그는 오늘 전력이 아니었소. 물론 전력이었다고 해도 천무명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겠지. 하지만 그의 몸은 명백히 이상했소. 의원에 따르면, 그에게 있는 타박상은 대부분 비무 이전에 만들어진 상처라고 하더이다.
“의원이 말이 사실일까요?”
“부하를 보냈으니 곧 확인될 겁니다. ...예, 아무래도 맞는 것 같습니다.”
금의위 수하가 가져온 의원의 제보는 투서의 밀고 내용과 일치했다.
“전신에 타박상이 많으며, 특히 허벅지는 피멍이 들어있었다.”
“천무명이라는 자가 허벅지를 공격한 적이 없으니 다른 누군가의 공격을 받은 것일 터. ...절정 고수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밀고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백수광이 매를 들었다는 거지요.”
둘은 침묵했다.
“...그, 20살도 넘은 어른을 상대로 그런 벌을 내리다니. 아무리 가정교육이라고 한들….”
“지휘사. 허벅지 뿐만이 아닙니다. 전신에 피멍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도가 지나치다라. 확실히 맞는 표현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장문월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녀는 굳은 얼굴로 서찰을 접었다.
“무림세가의 가정 교육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는 싫지만, 이 일로 인해 용봉지회에 차질이 생기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호오.”
장문월은 눈썹을 들어올리며 능글맞게 웃었다.
“천 공자에게 구설수가 생기는 걸 바라지 않는게 아닙니까?”
“...하아. 천무명의 염문설에 저까지 엮으려는 겁니까?”
“천무명 개인에 대한 관심도 물론이거니와...이미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일, 한창 바쁜 와중에도 ‘6조’의 경기는 반드시 보시겠다고 하셨잖습니까.”
“.......”
황녀는 침묵했다.
“제 개인적으로 조사한 것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황녀님의 선택을 전적으로 따르고자하니 침묵하고 있습니다만...황녀님.”
장문월은 사나운 얼굴로 이죽거렸다.
“그를 황가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외할아버님.”
황녀는 장문월을 사적으로 불렀다. 그녀는 다소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여인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고 천장을 가리켰다.
“용상은 동생의 것이 되는게 저는 맞다고 봅니다. 외할아버님도 그걸 걱정하시어 저를 호위...가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행여나 제가 무림과 결탁하여 뭔가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지 않을까.”
“......황녀님.”
“걱정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미리 한 가지 얘기하는데….”
황녀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웃었다.
“혹시 비천색마가 저를 범하더라도, 황궁에서는 금의위에서는 결코 모른척해야합니다. 그래야 대계가 완성되니까요.”
“황녀님, 대체 무슨….”
“협박할 겁니다. 색마는 황녀를 범한 자라고. 얌전히 황궁과 손을 잡을지, 아니면 중원 땅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는지는...그의 선택에 달려있는 셈이죠.”
“허어….”
장문월은 한탄했다.
“정말...황녀님을 볼 때마다 왜 여인으로 태어났는지 안타깝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또한 하늘의 뜻이겠지요.”
“하지만 황녀님. 그 자가 황녀님을...크흠. 취하고 황궁을 배신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사실대로 밝혀야지요.”
황녀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당하지도 않은 걸 범해졌다고 하면 그건 제가 죄인이지만, 제가 진짜로 당한 걸 범해졌다고 하면 그 자가 대역죄인이 되는 거 아닙니까.”
황녀는, 색마를 상대로 올가미를 씌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범해진다면 그건 관이 무림을 상대로 승리하는 겁니다. 그의 곁에 있는 수많은 아리따운 여인을 두고 또다시 저를 범한다? 후후, 황가의 핏줄이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거지요. 주변을 모두 위험에 빠뜨릴 만큼.”
“......후우. 정말, 미쳐버리겠습니다. 저는 도저히 황녀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외할아버님...지휘사께서는 오직 하나만을 기억해주십시오.”
황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은 이 나라를 위해서. 황가에 태어난 자로서 가진 책무입니다.”
* * *
'이제 내일은 연붕으로서 2차전을 치르면 되는 건가.'
백보준 때문에 과거의 악연을 생각하느라 조금 머리가 복잡했다. 천무명으로 나가는 건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쓸 게 많지만, 연붕으로는 그냥 나가서 쉽게 이겨버리면 그만이니까.
'모용란을 상대로 져주면 되겠네.'
아마 높은 확률로 모용란이 결승에 오를 것이다. 그러면 모용란을 상대로 1:1로 싸우다 패배하거나, 그냥 실격패로 나와버리면 그만이다.
이미 나는 예선전에서 수많은 여인들에게 벌을 내렸다. 나의 여인들을 상대로 온갖 음해를 일삼았던 이들을 모조리 떨어뜨렸다.
다른 조도 마찬가지.
이시아, 독고연, 혈소예, 제갈선, 유설라.
이상 다섯에게 미리 그들의 얼굴과 신상명세를 알려줬다.
'아주 신나게 벌을 주더구만.'
이시아는 이미 이전 용봉지회부터 손속이 잔혹한 것으로 소문이 났다.
독고연은 무공 자체가 독고구검이고, 혈소예도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존재다.
제갈선?
본인의 손은 쓰지않고 아주 영악하게 예선에서 탈락시키더라. 자신을 노리는 적에게서 공격을 피하며 다른 여인들을 떨어뜨리고, 적극적으로 장외패를 노렸다.
가장 유하게, 하지만 가장 많은 여인들을 탈락시킨 사람은 유설라.
-왜 다들 저를 그렇게 바라보는 건지....
'그게 기만이지.'
천무명과의 일화 덕분에 유설라는 그 누구보다도 더 질투를 많이 받게 되었다. 인간은 남의 불행에 기뻐하는 것보다 남의 행복에 질투하는 정도가 더 크다는 것도 이번에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다음 상대가 누구든, 나는 적당히 힘을 빼고 상대할 것이다. 연붕은 중간에 탈락해야하는 사람이지, 육봉이 되면 안되니까.
누구든 관계없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빠, 큰일났어."
혈소예가 급히 나를 찾았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구겨진 종이를 들고 나타났다.
"오빠, 우리 좆됐어."
"...좆 돼? 갑자기 왜?"
"이거 봐."
혈소예는 내일 열리는 본선의 대진표를 펼쳤다. 다른 여인들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존재들을 상대하거나, 내가 이미 취한 여인들을 상대하기도 했다.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없어보이는데."
"오빠 상대 봐봐."
"누구. 백천화? 얘가 왜? 그냥 평범한 여자애 아니었어?"
"오빠, 얘 경기봤어? 혹시 좆은 섰어?"
"...안 봤는데."
경기가 끝나면 바로 자리를 떠나기 일쑤여서 나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예선 때도 딱히 위험한 것 같지 않아서 방치했었지. 그냥 신비문파의 신예 아니냐?"
"얘, 곤륜파야."
"......에이, 농담도."
"곤륜파가 머무르는 객잔으로 들어갔어. 심지어 12장로 중 한 명인 보현진인의 제자로."
"......."
곤륜파. (백) 천화.
현천'백'가.
그녀는 내가 태어날 때 받은 이름과 나 스스로 버린 이름의 성을 알고 있다.
"......하하, 하. 아니, 진짜로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가 느끼지 못했다고."
독고자영은 천무명으로서의 은혜로 넘어갈 수 있다. 장인어른으로 모시는 건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독고연이 알아서 잘 해결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큰 산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독고자영에게 너무 신경을 쓰고 있었나?"
아무리 예상하지 못한 때에 나오는 것이 화경이라고 하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아니, 애초에 어떻게 산을 내려온 건데?"
"...오빠, 질싸했다며. 독고연의 선녀화도 그거로 막은 거잖아. 다른 거 다 차치하고, 오빠의 정기가 제일 효과 확실한 거 아니야?"
앗.
"소예야. 아무리 그래도 정액은 빠져나오게 되어있잖아. 벌써 몇개월도 전의 일이라고."
"오빠.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는데 설마 정액이라고 보관 못하겠어? 젠장, 그거 설마 아직까지 뱃속에 보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라면 그렇게 할 것 같은데...."
"......."
방금.
진심으로 소름 돋았다.
* * *
현천 백가의 객잔.
"......."
흑발의 양갈래 머리 여인은 홀로 방 안에서 책상에 앉아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다소 호흡은 거칠고 옷은 흐트러져있었지만, 여인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몸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데굴. 데굴.
여인은 책상 위에 올려진 단환과도 같은 구슬을 가지고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푸른 막으로 둘러쌓인 구체 안에는 희뿌연 액체가 참방거리고 있었다.
"흐흥...."
여인은 책상에 엎어졌다. 그녀는 푸른 구슬을 계속 주시하며 몇 번이고 실실거리며 웃었다.
"육봉이 되어...다른 애들을 꺾고...천무명과...."
천무명.
이미, 여인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모르는게 이상했다.
"손자는 곤륜산으로 보내고...손녀는...음...."
끼이익.
문이 열리자, 여인은 급히 구슬을 붙잡고 허벅지 안으로 밀어넣었다. 뭔가 질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인은 엎드려 자는 척 숨을 죽였다.
"...하아."
남장을 한 여인, 백천화는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책상으로 다가왔다.
"스승님. 제가 어지간하면 스승님의 유희에 어울려드리겠지만, 이 말 만은 꼭 해야겠습니다."
"...무슨?"
"그...자위는 침대가서하세요. 그리고 어지간하면 곤륜의 신물을 그런데 쓰는 건 자제해주세요. 그거, 신화시대의 보패라면서 그렇게 써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내가 쓰던 물건을 신물로 만든 것이다."
여인, 백천화라는 이름을 쓰는 검은 여인은 붉어진 얼굴로 침대로 향했다. 그녀는 허벅지를 꼭 붙인 채 침대로 향했다.
"......어휴. 사랑이 정말 뭐길래."
백청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육봉쟁패.
6조.
본선 2차전.
연붕 대 백천화.
날이, 밝았다.
[작품후기]
결승전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원래 고수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