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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색초야신공(比色初夜身功)
과거, 나는 사공희와 함께 따로 둘이서 유람을 다닌 적이 있었다. 유람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둘이서 부부여행을 다니듯 짧은 거리를 떠났다.
섬서 화산파로의 여행!
당시에는 시간도 거리도 짧은 여행이었지만, 나름 나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강호에 언제 어디에서 현경이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특히 정파, 그중에서도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곳일수록 내가 인지하지 못한 현경 고수가 나를 죽이려고 나타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상사병으로 죽어가는 사람 한 명도 구할 수 있었다. 그녀를 통해서 화산파가 어떻게 대를 이어나가는지 알게 되었고, 나는 검을 이용한 비무의 멋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때 여행을 나선 이유는 태극화 사공희의 체면을 위해서였다.
상사병에 걸린 매화검수를 치료하기 위해 화산파에 방문하지 않으면 사공희의 인상이 대외적으로 안 좋아질 수 있었고, 내 개인적으로도 다른 둘과는 외유를 나갔으나 사공희와는 이전에 따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여행을 떠나는 것인가? 어디선가 또 무당파의 도움을 요청했을까? 아니다. 여행을 떠나도 왜 하필이면 하북으로 여행을 가는가?
팽가에 방문하기 위해.
사공희에게 팽유월과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그리고 사공희에게 월아와의 만남을 통해, 나의 2세에 관한 진실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기 위해.
'용봉지회가 시작되면 어차피 들킬 거.'
그렇다.
앞으로 10개월도 남지 않은 용봉지회가 시작되기 전에, 나는 팽유월을 사공희에게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이번 일이 잘 풀리기만 한다면, 한 명 한 명 소개시켜 줄 생각도 가지고 있다.
- 흐응, 역시나 아이가 있었네. 가슴이지? 가슴인 거야. 가슴이 크니까 아이를 낳게 하는 거지? 모유수유에 중요하니까!!!!
-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벌써 아이를 가진 여인이 있다뇨! 저, 저도 낳을 거예요!
분명 걱정은 된다. 겁도 난다. 이런 폭주가 내 헛된 망상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최악의 경우 삐뚤어지게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들이 누구 한 명이라도 월아나 팽유월을 질투하여 해코지를 하려고 한다면, 유감스럽지만 나는 과감히 선택을 내릴 것이다. 단장의 고통이라고 하는 건 분명 그런 결단을 말하는 것일 터.
'그래도 잃을 수 없어.'
처음부터 가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가진 이상 전부 다 품고 가고 싶었다. 혈소예가 나를 상대로 이상하고 복잡한 계획을 짜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천재지변과도 같은 일이고 나는 나대로 나의 여인들이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랐다.
'솔직히 자랑하고 싶기도 해.'
혈소예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쌓아온 인연들과 내 정인과의 결실을.
그리고 혈소예를 범하여 혈소예를 10개월간 배부르게 먹인 뒤, 그녀에게도 월아같은 아이를 낳게 하고 싶다는 것을 전력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 감히 중원 최고 미녀인 나를 상대로 질투심을 유발해? 확 혈녀강림 맛 좀 볼래?
걱정이 되기도 한다. 혹시나 혈소예가 내 여인들이나 내 자식들을 보고 나를 악몽의 구렁텅이로 빠뜨리지 않을까. 혈옥희와 같이, 내 여인들을 강제로 자신의 혈선녀로 만들어 내 목을 조르는게 아닐까 근심도 있었다.
- 전생, 현재, 미래. 언제나 나는 당신의 편이 될 거예요.
'그럴 것 같지는 않아.'
혈소예는 두렵지 않다. 애초에 그녀가 내 주변의 여인들을 족치려고 했다면, 혈옥희가 아니라 천가장과 진가장을 피로 물들였을 것이다.
'차라리 다른 애들이 더 무섭지.'
진가장은 차치하더라도, 천가장의 셋부터 나의 공포심을 유발했다. 그래서 사공희부터 데리고 가서 반응을 살핀 다음, 다른 이들에게도 알리려고 했다. 솔직히 말해, 가장 만만한 사공희부터 데리고 가는 셈이다.
팽유월을 보고 예상되는 반발? 이미 대처 논리는 준비해뒀다.
- 팽유월 소저가 예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화경은 아니잖아요! 이건 불공평해요!
- 임신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 화경이 아니면 많이 힘들다는 것을.
- 네?
- 전후관계가 바뀌었단다. 팽유월이 임신하고 난 뒤에 화경만 임신시키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란다.
거짓말이다.
- 화경이면 산모의 고통이 거의 없어진단다!
거짓말이 아니다.
화경에 이르면 골반이 뒤틀리고 아이를 낳는 산모의 고통이 거의 줄어든다. 정확히는 고통을 내공으로 억누르거나 아이를 '능동적'으로 낳을 수 있다.
끙끙 거리며 악을 쓸 필요 없이, 스스로의 기혈과 몸을 다스리는 내공의 힘으로 충분히 고통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얼마전 팽유월과 만난 날, 나는 팽유월에게 월아에 대해 슬슬 알려보는게 어떻냐는 제안을 했었다. 처음에는 팽유월도 상당히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나도 그녀도 한 아이의 부모로서 선택을 내렸다.
-용봉지회에서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여인들이 월아를 지켜줄 수 있게.
이기적인 부탁이지만, 혹시나 용봉지회 비무장에서 벽력탄 같은 것이 터져도 월아를 지켜줄 수 있도록 나는 내 여인들에게 부탁을 하려고 했다.
설령 내가 다치거나 내 정체를 드러내는 한이 있더라도, 월아나 아이들을 지키는 방도를 마련하고자 했다.
설령, 내가 꽁꽁 묶여 일주일 동안 착정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니까 너무 노여워하지 말거라. 응?"
"노여워하다니요. 상공, 저는 괜찮습니다."
여행을 가는 동안, 나는 사공희에게 계속 절절 멨다. 사공희는 연신 웃으며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나는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내가 너희들에게 화경이라고 단서를 단 것은, 너희들을 배려해서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란다."
"네. 상공께서 저희를 생각하여 고심끝에 내린 결론인데 제가 어찌 토를 달 수 있겠어요?"
"견희야. 그...."
"상공. 저는 진짜로 괜찮습니다."
사공희는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몸을 붙였다. 우리는 둘이서 함께 말을 타고 하북을 향해 움직였고, 말 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저를 임신시키지 않으실 생각이신가요?"
"아니지."
"그럼 됐어요. 저는 상공의 선택을 존중한답니다."
견희가 계속 말하는 단서, '저는'.
"...시아랑 연이는 네가 보기에 어떨 것 같으냐?"
"일단 일주일은 두 명 데리고 방에서 나오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사공희가 짐작하고 있는게 최소 일주일이다. 아마도 영혼까지 착정을 당하겠지.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깝다며 벽곡단으로 곡기를 해결하고 내 정기를 갈취할 것이다.
"20대 후반에 아이를 낳아도 괜찮지 않아? 무림인의 육체는 노화가 더뎌서 노산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런 거죠. 상공과 사랑을 나눈 결실을 맺고 싶다는 확신. 여인으로서 살을 섞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상공의 아이를 낳는 건 상공의 최종 '결정'이 있어서 그런 거잖아요."
"......."
이 여자를 끝까지 데리고 백년해로 하고 싶다. 사공희가 말하는 말의 무거움에 대해 나는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견희야.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나는 진정으로 너희를 평생 데리고 살려고 천가장을 만들었단다."
"알아요. 저희가 빨리 화경에 이르기를 누구보다도 바라는 분이 상공이라는 거를요."
"그래. 그래서 이번에 너부터 따로 데리고 온 것이다. 화경에 닿기 위해서 말이지."
팽유월과 월아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실토했으니,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천가장의 셋을 화경에 닿을 수 있게 각자를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안 그러면 진짜 평생 원망받으면서 착정을 당할 거야.'
서러워하면서 우는 모습은 못 본다. 아이를 낳으며 출산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모습은 못 본다. 팽유월과 월아를 질투하여 투기를 부리는 건 귀엽기야 하지만, 그게 서로에 대한 반복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나의 양물을 두고 투기를 부릴 지언정!
'그리고 이왕 낳을 거라면 화경 이상은 되고 난 상태에서 낳아야지.'
이왕 무림인으로서 좋은 점을 누린다면, 육신의 젊음에 더불어 출산에서도 이득과 효율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들을 상대로 화경으로 올릴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것이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막강한 영약을 주는 것 뿐이지만, 그거라도 하여 체면치레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상공. 책임을 떠넘기시려고 하시는 건 아니죠?"
"책임을 떠넘기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너희를 화경으로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화경이 안 된 건 너희의 노오오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란다! 현타 도사님이 제자들한테 하는 말에서 일류를 화경으로 바꿔서 말해봤어요. 후후."
현타 네 이 노 오 오 오 옴
"물론 상공은 좋은 의도로 그렇게 하시는 거겠지만, 사람 마음이라는게 참 간사하잖아요."
"크흠."
양심이 아프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나는 셋이 화경에 이를 수 있게 매일 매일 내가 모은 양기를 불어넣어주고 있고, 또 무공의 수련 상대가 되어주며 전력을 다해 화경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물론이죠. 상공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저희를 키워주고 계셔요. 누가 그걸 부정하겠어요? 상공을 만나고 난 뒤로 저희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는데."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결국 시간과 개인 성취의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간극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돕는 것.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궁극의 지원을 위해, 나는 먼저 사공희를 데려왔다.
"견희야.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일단 내공부터 엄청 늘리는게 중요한 것 같더구나."
"연이에게 천년자패의 힘이 들어간 것 처럼요?"
"그래. ...아니, 잠깐.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연이 머리칼 끝에 보라색인거 보고 알았어요. 후후, 걱정마요. 엄청 조금 들어갔다고 알고 있으니까."
"......아무튼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생각해봤다.
기연 강탈.
녹색공주 환경애의 사건이 터지며, 나는 몇 가지 기억 속에 방치해두고 있던 것들을 다시 환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가령 천상용제쌍고검의 주인이었던 검제 제갈건담에게 주어진 기연!
먼 미래, 혈겁난세에서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되거나 높은 성취를 보인 이들이 얻는 기연들을 싸그리 긁어모아 각자에게 쥐여줄 것이다.
그리하여 화경에 이른다면, 그 때는 진정으로 어떤 '결실'을 얻을 수 있으리라.
주인이 있는 기연이라고?
'내가 혈겁난세를 전력으로 막을 건데, 기연이 꼭 필요하겠어?'
기연에 감히 누가 주인이 있다고 말을 할까! 꼬우면 나보다 빨리 발견하시든지.
저벅, 저벅.
"슬슬 목적지가 보이는구나."
나와 사공희가 가고자 하는 곳은 바로 산서성.
하북에 들리기 전. 우리는 평요(平遥)에 있는, 고성(古城)지대에 먼저 들릴 것이다.
전설 속 녹림황(綠林皇)의 보물을 얻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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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하북팽가는 한참 용봉지회 준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주 팽도황을 중심으로 세가의 증축과 개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직계나 방계의 사람들은 군말없이 팽도황의 진두지휘에 따라야만 했다.
"젠장...추소광 그 미친 놈은 유산을 얼마나 남긴 거야?"
"어떻게 저렇게 돈을 쳐바르는데 돈이 마르지 않지?"
압도적인 자금력!
팽도황은 자신의 약값과 의료비로 나간 돈의 수십 배에 이르는 자금을 만들어냈다.
진짜 '만들어'냈다.
팽가의 사람들이 아무리 자금 흐름을 찾아보고 탐색해도, 하늘에서 뚝 돈이 떨어졌다고 보는게 맞을 정도로 팽도황은 엄청난 자금을 가지고 있었다.
추소표국의 유산일까, 아니면 팽도황의 비자금일까?
하북팽가로부터 스리슬쩍 빠져나가려던 방계의 대부분은 본가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압도적인 술과 고기의 향연, 그리고 화경을 너머 현경을 눈앞에 둔 게 아니냐는 팽가 최강의 무인.
아무리 세가라고 한들, 아니 세가일수록 더 '힘'이 있는 자에게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
팽도황을 중심으로 다시 팽가는 확실히 부흥했고, 용봉지회가 하북에서 열린다는 소식은 직계와 방계의 대결에서 쐐기를 박게 되었다.
그리하여.
팽가에는 수많은 식객들이 찾아왔다. 많은 무사들부터 다른 세가의 이들까지, 팽가는 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후우."
팽도황의 양녀가 된 미망인, 팽유월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술 기운을 몰아냈다.
"쓰레기들이 너무 많아…."
팽유월은 옷깃을 당기며 울분을 삭혔다.
본가가 힘들 때는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다시 슬쩍 돌아와 껄껄 웃는 자들의 앞에서 웃어야 한다는 것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지만, 팽가를 위해 그녀는 억지로 웃어야했다.
"상공 보고싶다…."
힘든 때면 따스한 가슴에 안기고 싶다. 왜 월아가 아기 때부터 안겨서 깊게 잠들었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월아...어?"
"자장, 자장."
흑발의 여인이 자신의 딸을 안은 채 등을 두드리며 재우고 있었다.
팽신혜의 품에서 조차 자지 않는 월아가 저리도 깊게 자고 있다니, 팽유월은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누구…?"
"아. 안녕하세요?"
흑발의 여인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팽유월은 정말로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숨을 죽였다.
분명.
"......중최미봉?"
"따님이 정말 예쁘세요. 엄마 닮은 건가? 후후."
팽가의 식객, 중최미봉 금소예는 월아를 안고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유월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
갑작스러운 중최미봉의 말에 팽유월은 혼란에 빠졌다.
[작품후기]
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