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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르라
벽력탄!
그것은 만들어내는 방법만 알면 어린 아이도 절정 고수를 일격에 보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화마를 무서워한다.
그런데 눈앞에서 불꽃과 함께 막강한 폭연이 사람을 휩쓴다?
초절정 고수도 폭발을 피해 도망친다. 최소한 받아치거나, 그도 안되면 폭발로부터 엄폐하여 몸을 보호하고는 한다.
현경?
현경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현경은 대륙 전체를 부술 정도의 위력이 아닌 이상, 막강한 내력 소모는 있어도 호신 강기로 벽력탄의 폭연을 몸으로 받아낼 수 있다.
물론 그건 벽력탄이 하나만 터졌을 때의 이야기.
벽력탄이 무서운 점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양산!
시간과 예산, 재료만 넉넉하면 수십 개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벽력탄이다. 방법만 알면 누구나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관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관리하는 물건이다.
- 벽력탄 만들면 반역도당!
벽력탄의 재료만 사들여도 관에서 바로 쌍심지를 켜고, 그거로 불을 붙이는 순간 바로 관졸이 집을 쳐들어가서 포승줄을 씌운다.
그만큼 벽력탄은 관에서 기겁을 하는 물건이다. 무림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일반인들이 과연 벽력탄의 재료를 모을 수 있을까?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중원 전역의 자금 흐름을 두 눈 부릅뜨고 보는 관에서 과연 벽력탄의 제조를 눈치채지 못할까?
못하더라.
일반, 민간인들이 만든 벽력탄은 관에서 바로 눈치챘다. 사실 벽력탄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냥 폭죽같은 수준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무(武)가 조금이라도 섞이기 시작한다면, 관에서는 벽력탄 제조를 놓치고는 했다.
그들이 바로 과거 십상련으로 악명을 널리 떨쳤던 폭탄마들이다.
연금사(燃金士)!
금속을 이용해 폭탄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폭약과 화약에 무공을 접목하기 시작했고, 관에서는 사파 무림의 일원이기도 했던 이들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대량의 벽력탄이 만들어질 때까지 숨죽이고 또 숨죽였다. 관에서 기겁을 하며 출동할 때는 이미 한 도시의 수 만 명을 인질로 삼고 난 뒤였다.
관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절정급의 은신술로 몰래 벽력탄을 심어두고, 가장 날래고 강한 존재가 폭죽을 여기저기에 터뜨리며 시선을 끌고, 다른 동료들이 길게 이어둔 심지를 연결하여 협박을 시작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그들은 모두 죽었다.
당시 도시 밖에서 달려온 무림맹주 독고자영에 의해 네 명의 연금사가 목이 달아났다. 혹자는 도시 내부에 있던 어떤 이들이 이들을 죽였다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관에서는 도시 전체가 불에 휩싸일 뻔한 일 이후로 무림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십상련은 못 참아!
그게 아마 관과 무림이 최초로 힘을 합친 순간이 아니었을까. 중원 전체를 마치 치외법권처럼 여기는 악적들에 대항하기 위해 두 세력은 힘을 합쳐 십상련을 없앴다.
그게 벌써 얼추 20년이 흘렀다.
더이상 무림에서 관아의 법도와 규칙을 어기는 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색마?
- 십상련에 비교하면 십상련 1/10 정도에 이르는 정도지!
여느 무림세가 여식이 겁간을 당했다는 것과 수만 명의 민간인이 이유도 없이 몰살당했다는 것을 두고 비교를 하자면, 당연히 관에서는 후자에 더 위험성을 두게 된다.
- 색마는 여인을 상대로 겁간한다는 논리가 있지만, 십상련은 무논리의 괴물들이다.
비상식. 비논리. 그리고 그걸 생각으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저지르는 과격함.
십상련은 죽었다.
하지만 십상련의 생존자들은 살아있었다. 관에서 미쳐 파악하지 못했던 자들이, 그리고 관에서 잠시나마 놓친 이들이 있었다.
20년간의 평화로운 시대에 타성에 젖어,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악랄한 짓을 저질러왔는지 잊어버린 것이다.
- 자기 이득이 되는 경우 이외에는 사람의 목숨, 체면, 심지어 자신의 무공조차도 중요치 않은 자들.
자기 욕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
혈겁난세의 혈교가 바로 그런 자들이었고, 나는 그들이 득세하던 시대를 두 눈으로 직접 봐왔다.
하지만 나도 어느새 타성에 젖어있었을까?
여인들의 가슴과 살결에 파묻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중원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자신이 십상련의 후예라는 것이 들킬 것을 알면서,
관아를 상대로 정면으로 벽력탄을 터뜨리는 미친 고수는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속단하고 말았다.
"와...."
나는 호북성 위로 날아오르는 붉은 봉황새를 보며 감탄이 절로나왔다.
"아주 펑펑 터뜨리는구만...."
기껏해야 뇌물로 몰래 사람을 빼돌리거나 하는 줄 알았더니, 벽력탄을 사용할 줄이야.
"미친 놈인데?"
대공자, 주지가.
'무림맹주를 폭사시킨 벽력탄을 저기다가 사용할 줄이야.'
훗날.
대공자 주지는 무림맹주를 독살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독살과는 조금 거리가 멀지만, 아무튼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는 무림맹에 숨어든 마교의 첩자들을 이용해-
콰-------앙!!
지하로 난 감옥으로 들어가는 건물이 폭발했다.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화마는 지상을 전부 뒤덮어버릴 주작과도 같았다.
"히야. 문도들이고 나발이고 자기 여자 챙기겠다 이거네."
"어떻게 할 거야? 지금 저기 홍화문의 제자들, 미친 것 같은데. 단체로 지금 폭혈쓰고 난리가 났어."
"관아를 덮치기 직전에 강제로 가르쳐 준 약식 폭혈이군.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저들은 홍화문주에게 공포로 조종당하는 살육병기들일 뿐이야."
"조금 정신력 강한 놈들은 도망친 것 같지만...수가 저래서야. 으으, 주지 이 미친 새끼. 미친 놈에게 벽력탄을 쥐어주다니."
갑작스럽게 주입된 마공으로 폭주하는 제자들의 수가 무려 250. 그들 하나하나가 최소 이류 급의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류는 약하다.
하지만 그들이 민간인을 상대하는 순간, 산토끼 우리에 던져진 호랑이와도 같아진다.
"막아야지."
"물론."
나를 따라온 이시아는 굳은 얼굴로 장갑을 당겼다. 여차하면 싸우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보였고, 나 또한 복면을 벗고 볼을 두어번 두드렸다.
"이럴 때 점수를 따놓아야 하지 않겠나. 시아, 연. 너희는 왕소현의 곁에서 보좌해. 절대 들키지 마. 알았지?"
"물론."
"안들키게 움직일게요."
이시아와 독고연은 검은색 가발을 두른 채, 전신을 가린 무복으로 왕소현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우리는 우리 대로 움직이자."
"후우, 약한 척하기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명성 쌓기에는 이런 좋은 기회 잘 없죠!"
빙백봉, 유설라.
사천염제, 당서희.
빙마와 염마가 아닌, 사천성을 도망쳐 온 백도 무림의 여고수들.
"...갑시다, 여러분."
그리고 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의협심의 소유자.
"네, 천 공자."
"위치는 발각되겠지만, 이런 걸 지나칠 수는 없죠. 의협이. 호호."
나, 천무명은 관아를 습격한 사파의 잔당을 물리치기 위해 검을 뽑아들었다.
"멈춰라, 이 악적들!!"
나는 마공으로 폭주하는 홍화문의 제자들을 향해 희아연월검을 휘둘렀다.
콰앙, 콰앙!!
폭발하는 감옥?
...그건 모르겠고.
원인 제공자? 비천색마로 인해 벌어진 일? 거짓 자백으로 환경애를 감옥에 처박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알 바냐.'
나는 지금 , 천무명이다.
* * *
"콜록, 콜록!"
감찰관은 기침을 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괜찮으십니까?!"
무너진 대들보를 한손으로 들어올리며, 신궁은 감찰관을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꺼냈다.
"이, 이건 도대체…?"
"벽력탄입니다. 아무래도 반역자들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아닌 것 같아요."
감찰관은 급히 머리를 추스르려고 했으나 관건은 잔해에 깔려 빼낼 수 없었다. 잠시 편의를 위해 벗어두었던 인피면구 또한 마찬가지.
"크윽…."
"황녀님. 지금은 우선 자리를 이탈해야합니다. 밖에 몇 천의 역도가 있을 지 모릅니다."
"......."
새삼스럽지만, 감찰관은 무림의 사람과 관아의 사람 사이의 시선이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다.
신궁의 머릿속에는 아마 습격을 당하는 대상이 감찰관일 것이다. 현실은 그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건 반역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휘말린 것일 뿐."
"네? 그럼…."
"환경애가 십상련의 잔당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녀를 품은 홍화문주도 모종의 관계가 있을 수 있죠. 아니면 뒤에 누군가가 있거나."
"지난 번에 말씀하신...마교 말입니까?"
"예. ...일단 도망을 쳐요. 지금 이곳에 있다가는 계속 폭발에 휘말릴테니."
"존명!"
신궁은 감찰관을 이끌고 불길을 빠져나왔다. 밖은 아비규환으로 가득했고,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큭…!"
신궁은 쓰러진 관병들을 보며 이를 악물고 뛰어넘었다. 이미 죽은 자들을 수습할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
"뭔가 느껴졌습니까?"
"현경의 기운이...!"
신궁은 멀리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현경의 기운을 느꼈다. 사이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기운은 멀리서 호북성 감옥 인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주세요."
"...그게."
신궁은 자신이 느낀 바를 그대로 말했다. 그에 따른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신궁은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녀오세요."
"황녀님...!"
"명령입니다."
"......안전한 곳까지 모시겠습니다."
신궁은 황녀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조심스레 인도한 뒤, 짧게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담벼락을 단번에 뛰어넘어 달리는 신궁을 향해 손을 흔든 황녀는 급히 비상탈출로를 따라 달렸다.
"히이이익!"
통로에는 아비규환으로 도망치는 관아의 사람들로 가득 넘쳤다. 마침 통솔하는 자들도 몇몇이 보였고, 황녀는 금의위 감찰관의 완장을 차고 관졸들을 인도하려고 했다.
그 순간.
"크하하하!"
저 멀리, 불길을 뚫고 달려오는 홍화문의 무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몸에 불을 두른 채, 검을 마구 휘두르며 누군가를 죽이려고 안달이 나있었다.
"안 돼...!"
광인들은 상대로는 통제도 소용이 없다. 통로는 더욱 아비규환이 되었고, 황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깔려 완장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앗...!"
황녀는 사람들에게 치여 앞으로 넘어졌다. 누구 하나 황녀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다.
"키히히힛!"
서걱, 서걱, 서걱!
무사들은 뒤쳐지는 사람들을 직접 칼로 베어 죽이기 시작했다. 황녀는 급히 몸을 일으켜 우선 도망치려고 했다. 조금만 더 앞으로 달려나가면-
툭.
"어...?"
순간, 옆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강하게 밀쳤다. 시선이 마주쳤고, 사람들의 인파 속에 섞여서 도망치는 이는 눈에 익숙한 존재였다.
"환...!"
풀썩.
황녀는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로 광기에 찬 무사가 검을 휘두르려고 달려오고 있었다.
피하기에는, 명백히 늦은 상황!
"......하."
황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카앙.
그리고.
"...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검을 틀어막은 청년의 등을 보게 되었다. 피분수를 뿜으며 뒤로 넘어가는 무사를 배경으로 한 채, 청년은 고개를 돌렸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
어째서일까. 천환단의 약효로 인해 한계까지 억눌려있던 여성성이, 갑자기 전신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 * *
…?
낯선 여자에게서 익숙한 향이 울려퍼졌다.
조금 남상이기는 하지만, 누가봐도 여자는 확실했다. 남상이라는 것도 위엄이 넘치고 선명한 이목구비라는 것이지, 남자에게 여장을 씌워놓은 것은 아니었다.
두근, 두근.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아기색마가 그새 또 반응하기 시작했다.
'정신차려! 팽유월을 생각해!'
쿵쿵쿵쿵쿵쿵쿵!
"......괜찮소?"
나는 여인을 겁탈하려고 한 자를 옆으로 치운 뒤, 그녀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남자에게 당할 뻔한 걸 남자가 손을 내미는 건 역효과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여인은 긴장한 채로 담담히 내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고맙...습니다."
"이쪽은 위험하오. 관아의 사람이오?"
"네...관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그녀는 몹시 혼란스러워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를 호위하려고 나섰다가 놓친 것처럼 보였다.
"일단 이 자리를 피합시다. 안 그러면-"
"크아아악! 다 죽여버리겠다!!"
홍화문의 무사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여인을 바로 내 품에 안고 뒤로 돌아 달렸다.
"힉…?!"
"실례하겠소."
이미 실례를 저지르고 실례하겠다고 말하는 건 어폐지만, 그게 또 여인을 구하는 남자의 예의 아니겠는가!
의복 너머로 느껴지는 살결, 골격, 그리고 몸에서 풍겨오는 살내음.
이 여자, 남장을 하는 자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네.'
내가 추마귀로서 살기 시작한 여자. 나의 첫 암살 대상.
금의위의 감찰관.
'근데 왜 여자지.'
남자로 알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째서? 어째서 이 여자는 신궁에게 빼앗긴 나의 천환단을 복용한 것인가?
'일단 자세한 건 나중에.'
지금은 일단 도망을 쳐야하는 때.
"이 악 무시오!"
콰----앙!!!
나는 감찰관을 안고 급히 벽력탄이 터지는 반경에서 이탈했다.
"......."
나를 빤히 쳐다보는 감찰관은 어색하게나마,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천무명…?"
아주 작게, 입속에서 속삭이는 듯한 혼잣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걸로 이제 금의위에도 천무명의 이름이 널리 퍼져나가리라.
'그런데 감찰관 근처에 신창이든 신궁이든, 아니면 그 노인네든 한 명은 있어야 할텐데 왜 없지?'
나는 주변에 기감을 퍼뜨렸다. 그리고 금방 호위의 부재를 알아챌 수 있었다.
카앙, 카앙, 카아아앙!!
저 멀리, 폭심지의 주변으로부터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원흉을 제거하러 간 것일 터.
'괜히 무능 삼장군이 아니야.'
이러니까 감찰관이 나한테 암살을 당했지. 나는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애써 억눌렀다.
"......."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에는 남자였으니까.
뭐지.
역사가 바뀌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