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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르라
무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파인이거나 마인이다.
같은 정파인끼리는 어지간하면 말이 통하기 나름이지만, 마인이나 사파인과는 언어가 아니라 칼부림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녹림이다.
무림인들의 싸움은 그냥 재해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녹림이 되어 칼을 휘두르고 겁박을 하면 벌벌 떨게 되기 마련.
녹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관아다.
무림인들을 상대로 하면 무공으로 찍어누르면 되지만, 관아를 건드렸다가는 바로 대규모 토벌대가 편성되어 곤욕을 치룬다.
관에서는 녹림을 없애지 못해서 움직이지 않는게 아니다.
귀찮고, 행정력 소모가 많고, 무엇보다도 잡아봐야 다시 튀어나오는 바퀴벌레 수준이라고 생각해서 건드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림 전체다.
관에서 무림을 바라보는 시각은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는 사병집단 수준에 불과하다.
구파일방은 그저 지역 왈패에 불과하며, 팔대세가는 자신들이 유력 호족인 줄 알고 텃세를 부리는 지방 유지에 불과하다.
마인이나 사파에 이르러서는 두 말 할 거리도 없다.
이들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고 하면 좋겠지만, 관에서는 권위와 법규, 그리고 질서의 힘으로 찍어누르고 있다.
아무리 무림인이라 하더라도 살아가는 땅은 중원, 황제의 땅이 아닌가?
단순히 무공이나 전력으로 따지고 보면, 무림인은 국가에서 감당하기 조금 힘든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일기당천!
화경 고수 한 명이 천 명의 병졸을 쓸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나라에서는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할까?
전면전을 가정한다면 무림을 얼마든지 멸망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나라의 대들보가 휘청 넘어가게 되고, 살아남은 극소수의 고수들은 중원 곳곳에 피해를 입히게 되리라.
관도 그걸 알고, 무림도 그걸 안다.
그래서 관무불가침은 서로 '귀찮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자는 의미가 강했다.
그런 의미에서 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림인 중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다.
황제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는 자들.
법과 규칙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양심과 인륜도 신경쓰지 않고 하나의 성을 점거할 수 있는 광기 가득한 세력.
사파.
관에서는 말 안 통하는 사파인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리고 불과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관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칠지 종잡을 수 없는 열 개의 집단을 그들은 '십상련'이라고 불렀다.
무슨 사고를 치냐.
어느날 갑자기 멀쩡한 객잔이 수십 명이 학살당한 연쇄살인의 현장으로 발견된다거나.
추수가 끝나고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곡식을 쌓아둔 창고에 불이 난다거나.
몇 가지 재료를 섞어 만든 것으로 건물을 무너뜨리고 십수 명을 죽이는 무기, 화약을 다루는 자가 있다거나.
물론 그들은 모두 죽었다. 무림맹주 독고자영의 활약에 의해, 십상련은 여섯이 죽고 넷이 행방불명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사람, 의지, 유산은 남아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황궁에서 관리하고 있으나, 극히 일부가 남아 어두운 곳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자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막나가는, 법과 질서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논리의 무림인이다.
예를 들어 보자면, 그래.
사랑하는 여인을 감옥에서 구하겠다고 감옥을 부수고 폭발을 일으키는 미치광이라거나.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기 문파를 이끌고 관아를 습격하는 미치광이라거나.
관에서는, 이런 상식에 어긋난 폭주를 일으키는 존재를 몹시 싫어한다.
댕댕댕댕댕댕!!!
바로, 지금처럼.
* * *
"크으윽, 이게 무슨!"
호북성 성내 감옥 간수장, 육삼은 매케한 연기에 손으로 입을 막으며 급히 밖으로 뛰쳐나왔다.
화륵, 화르륵.
곳곳에 붉은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어찌나 화기가 강한지 갑옷이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이었고, 육삼은 급히 수통을 꺼내 천조각을 적셔 입을 보호했다.
"여봐라! 거기 아무도 없느냐!!"
육삼은 물에 젖은 천조각 너머로 고함을 질렀다.
"어서 화재를 진압해!! 모포를 가져와!"
병졸들이 당장이라도 나서서 부리나케 불길을 잡아야했다.
아무리 불길이 많아도 그만큼 병졸이 많으니, 불은 금방 꺼뜨릴 수 있을 것이다.
화르르륵.
하지만 화마는 더욱 기세가 강해졌다. 육삼은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인기척이 없다. 정확히는 응당 돌아다녀야 할 병사들의 인기척이 없다.
서걱, 서걱!
그저 검은 연기 사이로 휘둘러지는 검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육삼은 급히 창을 들어 진각을 밟았다.
"반란이로구나!!"
상식적으로, 관아를 습격한 자들이 반란분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병졸들을 죽이고, 감옥에 불을 지른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탈옥시키려고 하는, 미친 놈들인 것이다!
"감히!!"
육삼은 창을 빙빙 돌리며 바람을 일으켰다.
"이 선풍창의 육삼이 상대해주마!"
관의 사람이라고 무공을 모르는 건 아니다.
오히려 관에서는 무림인들에 대항하기 위해 무공을 익힌 자들을 적극 중용하기도 했다.
호북성 감옥의 간수장, 육삼의 경지는 무려 절정.
"오라, 반란분자들이여! 나의 쌍격이세삼식의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여느 문파에서 나름 어깨 으쓱이고 다녀도 될 정도의 무공 수위를 가진 그는 국가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창을 들었다.
사실 녹봉과 연금 때문이기는 하지만.
'토끼같은 마누라와 여우같은 자식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의 인생 설계에, 이런 과격한 일은 벌어질 리가 없었다.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서걱, 서걱!
하지만 일어나고 말았다. 육삼은 멀리서 피묻은 검을 들고 걸어오는 남자를 보며 정신이 아뜩해졌다.
"홍화문...주?"
"크흐흐, 결국 다 도망쳤나. 뭐, 상관없다."
머리칼이 산발이 된 그는 분명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기대도 아니 했으니…."
화마 때문일까? 그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충혈때문인지 흰자위 또한 시뻘겋게 피가 몰려있었다.
"이, 이 미친 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이런 참담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냐!!"
"미친 놈? 아아, 그래."
홍화문주는 손에 든 구체를 빙글 돌렸다.
"나는 사랑에 미쳤다."
휘리릭.
포환처럼 날아오는 구체를 향해 육삼은 창을 휘둘렀다. 창끝으로 포환을 쳐내는데 성공했으나, 그는 보고말았다.
타닥, 타닥.
구체의 끝에서 타들어가는 심지를. 대 무림 교본에서 보았던, 삽화 속 구시대의 유물인 벽력탄을.
"씨발, 이건 선 넘었-"
얼굴을 뒤덮는 화끈한 열기와 빛무리.
그것이, 육삼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그 시각.
철컹, 철컹.
넓고 어두운 공간. 복도의 끝에는 쇳소리만이 가득 울려퍼지고 있었다.
"...또."
노인은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에 열불이 났으나, 상대는 아무리 말을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노인이 아무리 오랜 삶을 살았다고 한들, 그의 말은 그 어떤 이유로도 상대에게 통하지 않았다.
저 멀리, 개인적인 수련을 하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당장 내일부터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하면 서와 동은 바뀌는 법.
"폐하, 금의위 지휘사 이옵니다."
"들라하라."
노인, 지휘사는 시종에게 가벼이 고개를 숙인 뒤 어두운 방의 안으로 들어갔다.
진한 땀냄새. 그리고 그에 섞인 쇠의 냄새.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지휘사."
쾅--!!
무쇠 덩어리 두 개가 땅에 떨어졌다. 원판처럼 생긴 쇳덩어리 사이에는 기다란 철봉이 달려있었고, 남자는 비단천으로 탈의한 상반신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또 외공 수련을 하고 계셨습니까."
"외공 수련이라니. 이건 쇠질일세. 하루 하루 살아가는 기분이 들어 얼마나 좋은데. 지휘사도 같이 하겠소?"
"...소신은 나이가 들어."
"흥. 내공을 사용하면 아주 가벼이 들어올릴 수 있을테지."
중년 남자는 몸에 가득한 열기를 식히며 가만히 서있었다. 당장이라도 수분이 필요해보였지만, 그는 호흡만 고르게 내쉬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끝나기를 기다려줘서 고맙소, 지휘사."
"벌써 몇 년이나 옆에서 지켜봐왔습니다. 폐하의 쇠질 주회 정도야 이제는 소리만 들어도 알지요."
"하하, 이것참 부끄럽구만…."
'폐하'라고 불린 중년의 사내, 만인지상의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른 쇳덩이를 집어들었다.
거대한 원판 두 개와 형태는 비슷하지만 한 손에 들기 딱 좋은 크기.
양쪽에는 아령(啞鈴)이라든 단어와 숫자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근력 운동에 힘을 쓰는 이 남자에게 감히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효과만 없었다면.
신하들이 감히 여느 상장군 못지 않은 풍채와 위엄, 떡벌어진 어깨와 큰 체구로부터 뿜어져나오는 황룡의 기운만 아니었다면 지휘사는 몸다친다고 대번에 그만두게 했을 것이다.
'그 놈만 아니었어도.'
"하하, 지휘사. 또 나의 벗을 탓하고 있는 것인가?"
"......."
황제가 감히 벗이라고 칭할 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흐흐, 걱정말게. 이건 나의 건전한 취미야. 주색을 잡는 것보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게 몇 배는 더 건강하지 않은가?"
"차라리 주색을 잡아주시지요."
"안 돼. 그의 말에 의하면...내공과 다르게 근육은 술을 마시고 여색을 탐하면 손실이 일어난다더군."
"황후께서 요즘 저와 만날 때마다 폐하의 벗을 탓하십니다. 아무리 명검으로 벼려진다고 한들, 휘두르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하. 이 사람…. 아무리 장인 어른이라고 하지만, 같은 남자끼리 어찌 그런 악담을 퍼붓는가? 껄껄. 손자를 둘이나 봤으면서."
황제는 껄껄 웃으며 외투, 용포를 걸쳤다.
"후우…. 오늘 밤에 침소에 다녀오면 새벽에 세 번 더 돌려야겠구만. 끙. 예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더니…. 그래서 지휘사, 무슨 일로 찾아왔다고 했지?"
"공주님에 대한 일이옵니다."
"......."
황제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노골적으로 화제를 꺼리는 모습이었으나, 지휘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공주님의 병이 고쳐진 것은 정말로 기쁘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하오나…."
"그만. 지휘사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네."
황제는 무거운 얼굴로 아령을 내려놓았다.
"황제는 언제나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지. 그 아이가 변고가 생긴다면...나는…."
"만약. 정말 만약의 이야기입니다만."
지휘사는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황태자께 변고가 생긴다면…폐하께서는 공주님을 황태녀로 올리실 겁니까?"
"......."
"두 분 다 폐하의 친자이며, 두 분 다 제 손자 손녀이기도 합니다. 외척이 권세를 부리는 것은 옳지 않으나, 적어도 이 말만은 하게 해주십시오. 제위는-"
"측천무후도 있다!"
황제는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그저 먼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자를 양자로 들여 제위를 잇게 하느니, 차라리 능력있고 정당한 자가 제위를 잇게 하는게 맞아!"
"폐하…."
"내 딸이다! 그대의 손녀야! 능력이 부족한가, 아니면 무엇이 부족한가! 남자로 태어나기만 했으면, 내가 태상황이 되어서라도 국위를 물려주었을 아이야!"
황제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무공을 익히지도 않았지만, 황제의 목소리는 사자후와도 같이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지휘사, 내 뜻은 변함이 없소."
"......그 자의 영향이 이리도 클 줄이야."
"그와는 관계없네!!"
"정녕 이 방을 두고도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화륵.
지휘사는 손에서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불꽃이 등에 불을 붙여 방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고, 황제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이곳이 중원입니까, 아니면 사술로 만들어진 별세계입니까?"
"...그저 건강한 육신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곳일뿐."
현판에는 체력단력장(體力鍛鍊場)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그 자의 말은 달콤하기 그지 없어, 환관들이 하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강호의 세평이 어떠합니까? 그 자는 십상련이 아닙니까."
"아니다!"
"그가 십상련이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금의위의 수장조차 모르는 걸 알고 계시니, 말씀해주십시오. 도대체 무슨 말을 나누었기에 공주님을 황좌에 앉힐 생각이 드신 겁니까."
"......그저 벗과 몇 마디 나누었을 뿐."
철컥.
황제는 손에 가득한 땀을 닦아낸 뒤, 손에 하얀 가루를 잔뜩 묻혔다.
"지휘사. 언제 그의 말을 들어서 틀렸던 적이 있던가? 황가의 반역을 막았던 이도 그였고, 그대의 딸이자 내 아내의 병을 고쳐줬던 자도 그였네."
"압니다. 그래서 차마 수배를 내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공으로도...지울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자입니다."
"알고 있소. 그에 의해 동창이 궤멸당했지. 하지만, 허나. 그의 덕분에 나는 이 자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소."
"......."
"그가 이야기하더군.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걷고자 하기에, 비로소 인간은 혁신을 이루고 발전할 수 있다고."
황제는 천장에 달린 사선의 철봉을 붙잡았다.
"만약 황태자가 정해진 운명대로 명이 다한다고 해도...나는 내 핏줄을 내 자리에 앉힐 것이오."
황제의 눈에는 강인한 열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니 어서 찾아보시오. 진정한 무림의 천하제일이 누구인지. 황제를 지킬 천하제일부마로 적합한 자가...누가 있는지."
"...존명."
지휘사는 조용히 허리를 숙이고 떠났다.
카앙, 카앙, 카앙.
어두운 방에는 쇠질하는 소리만이 계속 울려퍼졌다.
[작품후기]
사위나 장인이나 쌍으로 인플루언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