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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힐 듯 조여오는
천가장으로 돌아온 나의 일상은 지극히 간단했다.
먹고, 자고, 채음하고, 싸고.
음양합일을 매일 매일 하면 질리지 않냐고?
아니다. 짜릿하고, 늘 새롭다. 왜 이걸 전생에는 매일매일 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될 뿐이다.
회귀 후 셀 수 없는 시간을 몸을 만드느라 인내했고, 몸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나는 채음을 하러 다녔다.
더군다나 안휘를 벗어났을 때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여인을 데리고 살았으니-
'사공희랑 1년 내내 뒹굴었을 때도 안 질렸는데 설마 질릴 리가.'
잠깐 피곤하거나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잠시 쉬면 그만이었다.
하루를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내일이 기다리고 있고, 나는 그럴 때면 새로운 마음으로 여인들을 취했다.
채음이 곧 나의 힘을 늘리는 길.
무인이 무공 수련을 매일매일 거르지 않듯이, 나는 색마로서 색공 수련을 나날이 거르지 않았다.
성교를 하면 내공이 쌓이는데 어찌 하지 않을 수 있으랴!
헙헙찹트핫하 하면서 무공 수련은 전생에 죽도록 많이 했다. 질릴 정도로 많이 했고, 가끔 그립다 싶으면 색마 짓을 하면서 실전을 통해 무공의 감각을 일깨운다.
- 전투력은 일순간이지만 경지는 영원하다.
혈소예는 말했다.
- 한 번 쌓인 실력은 영원히 이어지는 법. 그 때 그 때 전력을 낼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지 몰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힘이 있는데 사람이 마냥 하류무사 수준으로 전락할 리는 없지 않나!
아무리 내가 무공 수련을 게을리한다고 해도, 색마 짓 조금만 하면 금방 전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니까 색마로서 생활하는게 나를 강하게 만드는 길이다 이거지.'
그래서 나는 천가장과 진가장 내를 오다니며, 그리고 때로는 하북을 오다니며 내공을 쌓아나갔다.
사공희를 상대로는 점점 강해지고 예리해지는 태극혜검을 상대하며 그녀의 실력을 길렀고,
이시아를 상대로는 어린 아이에게 가르쳐주듯 하나하나 천마집안일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독고연을 상대로는 천가장 개축에 대해 고민하고 집에 들일 가구를 같이 보러간다거나,
팽유월을 상대로는 어느덧 간단한 말을 하기 시작하고 걸어다니는 월아를 상대로 아버지로서의 본모습을 보여준다거나,
하며.
나는 나날이 알찬 시간을 보냈고, 나날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결전의 날까지, 힘을 기르기 위하여.
이것은 진가장 내에서 말로 할 수 없을만큼 충격적인 일이 있기 전까지의 나의 소소한 하루 일과의 단상이다.
* * *
외부의 문파가 어느 지역에 진출하게 되면 당연히 해당 지역의 문파와 크게 충돌하게 된다.
예를 들어 종남파의 영역에 공동파가 세력을 뻗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 감히 대종남파의 영역에 문파를 세우다니! 어찌 우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도장을 열 수 있단 말인가!
- 꼬우면 한 판 붙어보든가!
비무 전쟁이다.
장문인과 장문인끼리의 싸움까지는 번지지 않더라도, 두 문파는 제자나 장로급을 보내어 서로 비무로 자존심 대결을 벌일 것이다.
특히 백도 무림의 영역에 마교나 사파, 흑도의 문파가 자리를 잡게 된다면 더더욱 문제가 크다.
-검각이 호북 무당파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호북은 현재 살얼음이 낀 것 마냥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검각주 왕소현은 무당산 인근, 진가장이라는 곳에 터를 잡았다.
천산 마교로 들어갔던 검각이 다른 곳도 아니고 호북 무당산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이는 명백한 무당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아무리 무당파가 도가의 문파라고 한들, 아무리 검각이 여류무사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는 문파라고 한들, 명백히 무당파의 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터를 잡는 것은 강호의 불문율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무당파가 검각에 정식으로 항의해야한다!
무당파 내에서도 알음알음 볼멘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결국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사고의 장소는 다름아닌 진가장.
사고의 배경은 무당파의 남자 제자들과 검각의 제자들 사이에서 사소한 언쟁이 벌어졌다는 것.
-백도제일인 태극화와 검각주 왕소현의 젊은 시절을 비교했을 때, 누가 더 강한가.
"검각주!"
"태극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시간의 차이가 엄청나게 많으니 의미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비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검각주가 예전에 육봉을 모조리 꺾었던 건 모르나보죠? 용봉지회에서 자신의 별호를 지켰던 햇수만 무려 13년이에요!"
"하지만 뒤로 갈수록 아슬아슬해지지 않았나? 그에 비해 우리 무당파의 자랑, 사공희 님께서는 육봉도 아닌 백도제일화! 당연히 사공희 님께서 더 강하지."
"흥. 실종된 독고연 소저와 비교했을 때, 과연 태극화가 백도제일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아직 다른 육봉이 태극화와 맞상대 한 건 아니잖아요? 예를들어...연희봉이라거나."
"연희봉? 하, 어이가 없군. 그녀는 내 생각에 와백봉 선에서 정리될 것이오. 빙백봉은 두말하면 잔소리! 솔직히 육봉 중의 최약체가 연희봉과 산주봉이 아닌가?"
"......."
철컹!
시시비비는 결국 검각의 제자들이 무당파의 제자들을 쓰러뜨린 것으로 격화되었다.
정당한 비무로 인해 제자들이 패배하게 되었으나, 문제는 그게 마침 약선당을 찾아왔던 여러 손님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는 것이 난리의 시발점이었다.
-무당파 제자들이 영 시원찮네!
-생각해보면 무당파의 남아들, 분명 용봉지회에서 다 예선탈락했지?
-무당파의 미래, 태극화 일 명. 끝.
찬란한 한 명의 후기지수가 있으나, 문제는 이 한 명 이외에는 별다른 잠재력있는 이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심각했다.
-태극화 다음 용봉지회 나오면 사실상 끝나는 거 아니냐?
-세대교체가 못해도 강산이 바뀔 때마다 이루어져야하는데, 무당파에는 인재가 없다.
-언제까지 태극화 한 명에게 의지할 것인가?
무당파를 향한 걱정어린 목소리는 무당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로 맞물려 흐르게 되었다.
그러던 찰나에 무당파의 제자들이 검각의 제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으니, 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란 말인가?
-무당파에도 혁신이 필요하다!
전도유망한 제자의 부재!
무당파에는 사공희를 제외하면 그럴싸한 제자들이 없었다. 이게 무당파의 잘못이라고 하기보다는,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 무당파에는 왜 다른 구룡육봉에 준하는 제자들이 없단 말인가!
- 천화로 다 죽었어....
- 앗.
역병!
무당산을 뒤덮은 천화의 역병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현타도사 사정후를 제외한 장문인과 장로들이 때마침 다른 도시에 나가있었다는 것.
그리고 일대 제자들이나 무당파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후기지수들 대부분이 산 위에서 천화에 걸린 이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것.
두 가지 악재가 동시에 작용하여, 무당파의 젊은 청년들은 안타깝게도 천화로 인해 명을 달리했다.
대제자를 비롯한 항렬의 7할이 사망!
당시에는 살아남은 이들도 천화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가버렸고, 남아있던 이들도 무당파의 불안정성에 무당산에서 떠나버렸다.
사공희라는 백도제일화가 나왔다고 한들, 세간의 인식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 태극화의 경우는 몹시 특별한 경우고, 대부분은 그냥 태극검이나 조금 배우다가 일대제자로 끝나지 않겠어?
- 설령 안에서 대성한다고 한들, 태극화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나 있겠나?
- 다음대나 다다음대 장문인이 사실상 태극화로 확정이라고 생각한다면...지금 10살 이하 정도가 아니면 사실상 장로나 하다가 끝날 인생이구만!
한 문파에 들어간 이상, 당연히 누구나 장문인을 꿈꾸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공희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다면, 응당 다른 제자들은 압도적인 재능의 벽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 무당파의 마지막 불꽃이로군.
- 그러니까 검각이 무당파 영역에 대놓고 알박기를 했지.
- 무당파의 몰락도 내심 꼬숩지만...검각도 그걸 바로 비집고 들어간 거 보니 영 그런데.
구설수는 점점 흉흉해졌고, 무당파와 검각 제자들의 분위기도 점차 험악해졌다.
여느 곳이든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돌 빼내려고 하면 서로 부딪히게 되어있는 법.
두 거대한 세력이 서로 부딪히면 누가 이들을 볼 것인가?
- 제갈세가는 가만히 누워서 호북 이권을 다 가져가겠군.
- 무당파를 응원하지 않겠나? 아무래도 예전부터 같이 호북을 반으로 갈라서 먹었잖나.
- 또 모르지! 검각과 제휴를 맺을지도. 호북에서 슬슬 산동으로 세력을 옮기려고 하던데, 검각에 전낭 낭낭하게 받고 떠날 수도 있지 않겠나.
호북에는 제갈세가도 있다.
특히 무림의 세력 이동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무림맹의 군사가 있는 가문인 만큼, 제갈세가에서도 검각의 진입에 겉으로는 불만을 드러내지 못하면서도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모두를 경악하게 한 소식이 호북, 아니 중원 전체를 들쑤셨다.
- 검각주가 태극화로부터 태극혜검을 사사한다던데?
충격.
공포.
호북 일대의 모든 시선은 무당산에 꽂혀있었다.
* * *
무당파 입구.
그곳에는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른 무당파의 젊은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장로들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태극혜검을 전수하는 것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웬말이냐!"
"사형 여러분! 그리고 많은 선배님들!"
가장 험악해보이는 제자 한 명이 연단에 올라 소리쳤다.
"무당파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문파입니다. 그리고 무당파의 무공은-"
와아아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옳소! 옳소! 옳소!
"그러므로 태극혜검은-"
장문인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여러분."
저벅, 저벅.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인파가 반으로 갈라졌다. 제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방립의 여인이 연단에 오르도록 길을 텄다.
"태극혜검의 전수자로서, 잠시 말씀 올리겠습니다."
"태극화...!"
태극혜검을 무당파에 되찾아준 당사자가 성난 제자들의 앞에 섰다.
"여러분의 불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제가 선대 도사님으로부터 태극혜검의 진전을 이어받았다고 한들, 이것을 무당파의 장로들도 아니고 문파 외인에게 알려줄 수 있냐고."
"물론이오!"
"태극혜검이 아니오! 어찌 그걸 외인에게!"
무당파 제자들은 사공희의 나긋나긋한 말에도 불만을 거둘 수 없었다.
그만큼 무당파 수뇌부와 검각주가 저지른 행동은 중원 무림의 상식에서 크게 어긋나는, 무공에 대한 무례한 짓이었다.
"하지만 이건 여러분들을 위한 길입니다."
"뭐라고요?"
"사매! 그것은 말도 안됩니다! 무당파의 진전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이 어찌 저희를 위한 길입니까!"
"검각주는 마교에 잠시 몸을 담았던 분! 그런 분이 만약 마교로 태극혜검을 가져가게 된다면 어찌한단 말입니까!"
온갖 불만과 불안이 터져나왔으나, 사공희는 그저 나지막하게 웃으며 옆을 가리켰다.
"이 것들이...!"
"핫...?!"
"장문인을 뵙습니다!!"
얼굴이 시뻘게진 채 성큼성큼 걸어온 무당파의 장문인, 현철 도사는 노성을 터뜨렸다.
"네놈! 감히 우리 무당파가 마교와 손을 잡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그,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유독 현철 도사는 마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마교 출신인 검각주와 무술 제휴를, 그것도 태극혜검을 전수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검각은 예로부터 절강의 보타문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던 정통성 있는 문파! 그들이 마교에 투신한 것은 마교인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마교의 무사들을 상대로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어디 검각의 제자들 중에 마공을 익힌 자들이 있더냐!"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태극혜검인데...."
장문인의 호통에도 제자들의 불만은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았다. 이전부터 알음알음 가지고 있던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모인 제자들은 장문인과 태극화를 앞에 두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장문인."
현타도사, 사정후가 굳은 얼굴로 포권을 취하며 나타났다.
"제자들에게 알려주심이 어떠십니까?"
"......그러나."
현철도사는 사공희의 눈치를 봤고, 사공희는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가치있는 상승의 무공은 꼭 특정 누군가가 독점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요. 저를 가르쳐주신 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공희는 손을 가슴에 올리며 슬며시 미소지었다.
"
"태극화...!"
"서, 설마...!"
"크흠."
현철도사는 제자들을 달래듯, 그러면서도 근엄한 목소리로 사자후를 터뜨렸다.
"사흘 뒤! 무당파 일대제자들에게 새로운 무공 비급을 전수할 것이다! 그리고 이대제자들에게 태극혜검의 무리를 설명하실 분으로, 외부 강사를 초청했느니라!"
"앗...아아...!"
안개에 가려져있던 모든 것들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 비급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 비급은 바로...."
와아아아아아------------!!!
장문인! 장문인! 장문인!!
현철 도사를 연호하는 제자들의 환호성이 무당파를 뒤덮었다.
[작품후기]
잠시 쉬어가는 호북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