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15화 (11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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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유린의 패배!

이전 용봉지회 때부터 우승후보로 점쳐지던 남궁유린의 자멸에 강호는 혼란에 빠졌다. 마냥 신진여고수의 등장에 환호하기에는 남궁가의 위세가 워낙 강했다.

"남궁가 놈, 아들내미 교육은 잘했는데 딸내미 교육은 개판으로 해놨군."

"실력은 좋지만 인성이 그래서야 어디 육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위험한 아이야. 검을 내려놓게 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군."

문파의 장문인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말이었다.

만약 남궁가의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장문인들도 그의 면목을 생각해 말을 아꼈겠지만, 남궁의 대표인 총관은 사태를 수습하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남궁세가에서는 폭룡을 배출했으니 다행인 건가? 이래서 계란은 한 광주리 안에 담으면 안 돼."

"남궁에서 괜히 남아를 선호하는 게 아니야. 여아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혀놓았으니 그 사달이 난 게지."

"쯧쯧쯧. 젊은 아이가 검에 그리도 살기가 짙어서야."

누군가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누군가는 따끔한 지적을, 그리고 누군가는 탄식하며 남궁유린의 패배를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남궁유린을 이긴 유설라에 대한 칭찬이 연이어 이어지기 시작했다.

"한상옥녀검의 설화난영이라니! 그런 초식이 있었는지도 몰랐네."

"멸보사태. 기억하네. 분명 16년 전에 아미봉과 쌍벽을 이루는 여인이었지. 행방불명 되었다고 들었네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고수는 죽기 전에 무공을 남기고 가는 셈이로군! 다행이야. 멸보사태의 진전이 아미파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사람들은 유설라가 이미 진작에 아미파에 들어간 것처럼 말했다. 그래도 정식으로 아미파 제자는 아니지 않냐는 말은 멸색사태의 행동에 따라 전부 입안에 쏙 들어가게 되었다.

"크. 장문인임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비무장 위에 달려들다니. 아미봉은 여전히 혈기왕성하군."

"장문인이 대수인가? 문파의 제자가 죽을지도 몰랐는데.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야."

"소열제 소동에서도 청성이 여제자를 납치당한 방면, 아미파는 납치당한 여제자를 구했다지? 크, 아미파가 사천에서 어깨를 펴겠어."

유설라의 압도적인 승리에 많은 이들은 아미파의 득세에 긴장했다. 하지만 긴장만 할 뿐, 견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 8강, 2경기! 아미파 정조 사태!

- 8강, 2경기! 아미파 정자 사태!

같은 문파, 사매간의 대결에 많은 이들은 탄식했다. 함께 검을 나누며 무공을 갈고닦던 두 여인은 서로 적이 되어 비무장에 올랐다.

혹자는 우려를 표했다. 다음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정조 사태가 부전승이나 신승으로 올라가지는 않을까. 실제로 누가 이기든 같은 문파가 된 유설라만 이기면 이봉은 확정이었다.

"후회 없는 비무를."

"정정당당히."

하지만 둘은 전력을 쏟아부었다. 서로 같은 스승을 두고 스승에게서 배운 모든 것을 뽐낸 둘은 300여 합을 주고받을 정도로 장기전을 펼쳤다.

승자, 정자 사태.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정자 사태에게는 이길 수 없었다. 정조 사태는 사자에게 패배한 굴욕에 고개를 떨궜지만, 곧 그녀를 향해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정자 사매, 저를 이겼으니 꼭 우승해야 합니다."

"정조 사저...!"

와락. 두 아미파 고수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진한 우애를 보였다.

아미! 아미! 아미!

관객들의 함성과 함께, 첫날의 비무는 모두 끝났다. 남궁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아미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선의 결과가 나왔다.

유설라 대 정자 사태.

누가 이기든, 아미파는 2봉에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반대쪽 조에서 승승장구하며 올라올 독고연과 함께.

* * *

새벽이 되었다.

밤새워 유설라의 안에 불주사를 놓으며 나는 그녀의 몸에서 내공을 긁어냈다. 빙백신공의 내기를 운용하면 없던 빙정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좋았다.

파스스.

유설라는 깊게 잠들었다. 독고연에게 무붕 의원이 어떻게 진찰하는지 낱낱이 보여준 그녀는 온종일 독고 세가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참으로 고생 많았다.'

유설라가 연기를 해준 덕분에 독고연의 철벽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성행위가 치료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녀는 서서히 믿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삼인성호.

생명의 은인인 무붕 의원부터 시작해서 태극화, 마교 소공녀, 거기에 중간에 투입된 유설라까지 모두 무붕의 장침으로 몸조리를 하는데, 새장 안에 갇혀 평생을 나오지도 못한 독고연이 어찌 속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녀가 나무꾼에게 속은 것도 거짓말 때문이지.'

날개옷을 훔친 자가 나무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배신감을 느끼게 되겠지만, 이미 그때는 아이를 낳고 난 뒤였다.

'내가 나무꾼이 된다.'

츄릅, 할짝.

저기 나무막대를 아래에 받쳐 들고 천수관음봉을 입에 할짝대고 있는 독고연을 덮쳐 당장이라도 내 육봉을 입에 물리고 싶었지만, 나는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참았다.

"우웅...."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독고연은 내 남근과 똑같은 빙과봉(氷果棒)을 열심히 물고 빨았다. 그 모습에서 사공희와 이시아의 모습이 보여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역시 협력을 구하길 잘했어.'

사공희와 이시아는 독고연의 상식을 왜곡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덕분에 내 양물은 쉴 틈이 없었지만, 그럴 때마다 열기로 달아오른 양물을 빙궁에 집어넣어 식혔다.

독고연의 십팔음뇌절맥을 치료하는 그 날까지, 나는 양물을 갈고 닦으며 기회를 엿볼 것이다.

"연 소저. 천수관음봉은 맛있소?"

"네. 의원님, 이거 들고 나가서 먹어도 될까요?"

"그, 그건 안 되오. 내 비법이 담긴 영약이니."

"아.... 하긴, 그렇겠네요."

독고연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내 아랫도리와 천수관음봉을 눈으로 훑었다. 괜히 나는 독고연에게 시간당하는 것 같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여, 연 소저.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의원님."

독고연은 진중한 목소리로 내 앞에 다가왔다. 나보다 한참 작은 그녀는 당돌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 오늘 8강전에 나가요."

"알고 있소."

"제 승리를 기원해주시겠어요?"

"물론이오. 그대처럼 강한 이가 이봉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없지."

"부족해요."

와락. 독고연은 갑자기 내게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나는 피할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뭉클. 복부 위에 닿는 아담하고도 분명한 존재감에 나는 침이 꿀꺽 넘어갔다. 독고연의 백발에서는 꽃내음이 물씬 풍겼고, 갑작스러운 포옹에 나는 손을 어디에 둘지 감이 오지 않았다.

'갑자기 왜?'

어제 한 거라고는 빙마를 들쑤셨던 것밖에 없는데. 독고연이 갑자기 이럴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녀가 뭔가 말이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습-하- 습-하-

독고연은 숨만 깊게 들이마시며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공 구결을 외우다, 은근슬쩍 손을 내려 독고연의 허리를 붙잡으려 했다.

"......후우. 의원님,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맙지. 나는 속말을 삼킨 채, 이해하지 못했다는 양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이?"

"의원님 덕분에 8강전에도 오를 수 있었어요. 저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한답니다."

'뭐?'

안 된다. 독고연은 좀 더 비무의 맛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십팔음뇌절맥이 자신에게 발목이 된다는 걸 자각하고, 내게 '의원님, 제발 저를 치료해주셔요'하고 스스로 다리를 벌려야 했다.

"그,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나 제가 상처 입으면...저도 같은 방법으로 치료해주실 건가요?"

"물론이지."

"...알겠어요."

독고연은 새침한 미소와 함께 몸을 돌렸다. 뒷짐을 지며 싱긋 웃는 미소에 나는 넋이 나가고 말았다.

선녀 같다.

"그럼 안 다치게 최대한 조심할게요. 후훗."

선녀같...?

뭐지. 분명 직감상 7할 가까이는 나한테 넘어왔는데, 왜 말을 저렇게 할까. 뭔가 대답을 바랐지만, 저 멀리서 다가오는 무림맹주와 무림맹 무사들에 나는 허리를 숙이며 독고연을 배웅했다.

기억 속 무림맹주와 비교 대조하여 말뜻을 읽어보면....

'와, 소름.'

나는 독고연의 지독함에 치가 떨렸다. 그리고 동시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무르익었군."

수확의 때가 머지않았다.

* * *

"연아. 정말 괜찮은 거냐?"

"네, 물론이에요. 무붕 의원님께 약 기운도 엄청 많이 받아 온 걸요."

독고연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경의 고수로서 독고연과 상대 사이의 압도적인 실력 차이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딸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연아, 상대를 조심해라. 내가 이런 말을 할 건 아니지만, 남궁 소저처럼 될지도 모른다."

"걱정 마셔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독고자영은 자꾸만 엄습하는 불안감에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첩보.

야인삼마 중 빙마가 허창에 들어왔다는 정보 있음.

마교 소공녀는 자신의 눈에 당당히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별다른 낌새가 없었고, 태극화와 독고연이 마교 소공녀를 옆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고 있다.

"연아, 조심해라. 혹시나 모르는 사람이 따라오라고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말고."

"아버지, 제가 어린아이는 아니잖아요."

"나한테는 아무리 봐도 아이 같구나."

"저도 이제 성인이에요. 혼인을 할 수 있는 나이라고요."

움찔. 독고자영은 딸의 말에 입이 바싹 말랐다. 자신도 독고연에게 농담으로 혼인을 운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딸의 입에서 직접 혼인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뒤숭숭했다.

'설마 무붕인가?'

주변에 남자는 그뿐이었다. 심지어 무붕을 언급할 때는 독고연의 반응도 심상찮았다.

"연아, 혹시-"

"아빠."

"!!"

독고연의 말에 독고자영은 입을 다물었다.

"...아빠는 제가 꼭 병을 치료했으면 좋겠어요?"

"당연하지. 연아, 이 아비는 말이다. 네가 잔병치레 없이 허창을 넘어 천하를 눈에 품었으면 좋겠구나."

"......."

독고연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아빠. 망설이고 있었는데...역시 아버지 말을 따르는 게 낫겠죠? 저, 의원님께 말씀드릴게요. 치, 치료과정에서 상당히 아플 수 있다고 하셨지만...괜찮아요. 태극화 선배와 소공녀 선배도 의원님의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그래. 무붕 의원님은 그 방면에 있어서 최고의 남자다. 연아, 그 만큼은 믿어도 좋다."

"......."

독고연이 다시금 얼굴이 붉어졌다. 독고자영은 생명의 은인을 마음에 품은 딸의 모습에 마음속 깊이 울컥했다.

한 번 마음에 품은 뜻이 있다면, 꺾이지 않고 공격일변도로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독고구검이다. 독고자영은 딸에게서 보이는 독고 세가의 피, 그 중 사별한 아내가 종종 보였던 모습이 자꾸만 겹쳤다.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필요할 것 같구나. 연아, 이 아비는 항상 너를 응원한단다."

"네, 네. ...알겠어요. 후우. 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두 부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에게는 보일 수 없는 울 것 같은 얼굴로 함께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이 세상에 유이하게 남은 독고 세가의 사람으로서 둘은 서로에 대한 가족으로서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맹주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알겠소. 내 채비하리다."

독고자영은 옷매무새를 가다듬다가, 독고연의 앞에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췄다.

"그런데 연아, 한 번만 더 예전처럼 불러주지 않으련? 아빠라고."

"예전...? ...아."

화륵. 독고연은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처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같은 모습을 보이는 딸의 순수한 모습에 독고자영은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소, 부인."

독고자영은 8강 3,4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 * *

저벅, 저벅.

와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 속에서 독고연은 검을 뽑았다.

상대는 화산파의 매화검수로, 맹의 정보에 따르면 분명 일류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절정 초입이 아닌가 하는 말이 많은 존재였다.

"오세요, 독고. 구파일방의 명예를 제대로 보여주겠어요."

사아아아---

아찔한 꽃향기와 함께 사방에 매화향이 퍼져 나왔다. 독고연은 화산의 상징과도 같은 꽃향기에 슬며시 웃으며 검을 들었다.

"다치지 않게, 단칼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철컥.

독고연의 연보라색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다치지 않고...."

스륵. 독고연은 남들이 보이지 않게, 일부러 검을 멋들어지게 잡으며 손가락을 스스로 베었다.

"단칼에."

번뜩. 독고연이 검이 반짝이자, 매화향이 전부 기파에 실려 폭발했다. 독고연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와 함께 허리를 숙였다.

"아."

카앙----!

상대가 놓친 검은 독고연의 발치에 스쳤다. 독고연은 붉은 실선이 생긴 손가락의 베인 상처에 배시시 웃었다.

"다쳤네...."

날카로운 종이에 베이는 수준의 상처에도, 독고연은 낮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치료, 해야되겠지...?"

승자, 독고연---!!

독고연은 4강에 올랐다.

[작품후기]

8월 첫 날 기념 3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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