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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지고 난 뒤
새해가 밝았다.
사천 일대를 떠뜰썩하게 만든 검각 협곡 붕괴에 호사가들은 많은 관심을 가졌고, 새로운 신진 사파 고수의 등장에 천하의 이목이 주목되었다.
화룡검제, 검담!
말석이나마 천하 십 대 고수로 평가받는 신창 백주흔을 상대로 1:1로 능히 맞서 싸웠고, 종극에는 거대한 불꽃을 일으키며 협곡 전체를 무너뜨렸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신창이 순수하게 1:1로 싸웠다면 어땠을까.
급히 구한 휴대용 철봉이 아니라 황궁에 보관 중인 진짜 무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주변에 있던 다른 무인들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과연 신창은 검담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을까.
모두의 궁금증은 신창 본인에게로 이어졌고, 사천 땅을 떠나려던 신창은 결국 질린 듯이 소리를 질렀다.
'검담은 나보다 한 수 위였소! 하지만 다음번에 싸울 때는 절대 지지 않을 것이오.'
사람들에게 시달리던 신창이 분에 못 이겨 내지른 패배 선언에 전부 무의미한 이야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역시 검이 창보다 뛰어나다며 검을 만병지왕으로 꼽았으나, 사용하는 사람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 그치만 검담, 여자를 납치한 색마잖아.
검담은 와룡검과 봉추검 두 자루의 검을 회수하며 청성파와 아미파의 여인 두 명을 납치했다. 토벌대는 여제자들을 되찾기 위해 협곡에 갔으나, 아미파의 제자 정조사태만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 청성파에서 사라진 제자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 결국 검담에게 납치당해 구하지 못한 겁니까?
- 청성의 모든 여제자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여제자가 납치되었습니다!
청성파는 대혼란을 겪게 되었다. 상황을 수습할 장문인은 일검에 패배하여 큰 충격에 빠져 시름시름 앓았고, 청성의 12장로는 절반이 화상을 입고 요양에 들어갔다.
심지어 대제자 방도림도 실종되었다. 청성파는 사실상 몰락이 아닌가 하는 세간의 우려가 번지기 시작했고, 실제로 우려는 장문인의 결단으로 이어졌다.
- 청성파의 부족함에 통감하여, 3년간 봉문을 하겠소.
사실상 청성은 세가 기울었다.
천하십대고수 한 명에게 문파 전체가 패배한 것은 자연재해와도 같은 일이었으나, 고작 한 명에게 문파 전체가 패배했다는 것은 멸문이나 마찬가지였다.
- 3년? 용봉지회로 재기하겠다는 건가?
- 3년 동안 웅크려서 미래 세대에 투자하겠다는 거지. 장문인 세대는 이제 끝났군.
사실상 청성의 벽자 항렬은 이미 몸과 마음이 꺾여버렸다. 망가진 검을 다시금 단련하여 일어난다면 명검이 되겠지만, 신창마저도 닿지 못한 천외천에 일찌감치 포기하는 장로들도 늘어났다.
- 우리의 검은 검각의 협곡에 묻혔소. 하지만 청성의 제자들은 다르오. 제자들이 미래가 되어....
- 하지만 여제자 납치당한 것도 지키지 못하는데...?
- 망한 문파에는 들어가는 거 아니다.
청성에 들어오기 위해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소수의 입문 지원자들은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똑같이 검담에게 패배했지만 적어도 제자는 되찾아 온 아미파로 발걸음을 향했다.
- 그래도 아미파는 제자만큼은 살려서 되찾아오더라.
- 아미파의 정조사태, 용봉지회에서 흑도제일화에게 패배했었지? 그러면 이봉결정전에서 육봉의 말석에라도 오르면 아미파도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거 아닌가?
- 정조사태에게는 올해가 딱 마지막 기회로군!
청성과 아미.
둘 중 다시 먼저 사천 제일의 문파라는 권위를 되찾는 자는 누가 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시간만이 그 답을 알려줄 것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흘러가는 것이므로.
* * *
그리고 당문.
당가의 가장 깊숙한 곳, 화골산우진이 펼쳐진 비고 옆에 작은 전각에 식솔들이 몇몇 드나들었다.
극비리에 열린 전각에는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인이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여인은 기녀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한 번 가문을 나갔던 이가 다시 들어오기를 바란다라."
가주, 오란지병 당오독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희야."
"...네, 가주님."
"네가 지금까지 한 일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제 행동이 당가에 얼마나 많은 먹칠을 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사천당문의 방계 여식이 집에서 쫓겨나 기녀가 되었다더라! 순서는 바뀌었지만, 극소수의 아는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 비밀을 이용하여 사천당문의 여인을 취해 당문을 능욕하려는 이들도 존재했다.
다음 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지만, 서희는 그만큼 당문에게 있어 두 번째 치부였다.
첫 번째 치부는 당연히 천상천하유아독룡에서 양상군자를 거쳐, 이제는 화룡검제에 오른 한 젊은 초고수. 이것만큼은 당문도 꼭꼭 숨겨야 하는 비밀이었기에, 사실상 전각에 모인 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희도 이미 알고 있지만.
"너는 당문의 일원으로서-"
"...그만합시다, 가주."
독귀 당사림은 독기가 빠진 목소리로 당오독의 어깨를 붙잡았다.
"혀, 형님?"
자신이 엄하게 나서야 독귀가 사납게 나무라지 않을 거로 생각한 당오독은 독귀의 행동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자식을 잃기 전 자상하던 남자,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던 전대 가주, 귀신이 되기 전 당문 최강이었던 독사랑(毒蛇狼)의 목소리였다.
"만약 네가 당문에 돌아오고자 한다면 네 의지를 보이거라."
"......3년."
서희는 담담한 얼굴로 등을 빳빳이 세웠다.
"3년 동안 이 전각, 아니 화골산우진의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공을 갈고닦겠습니다."
"네가?"
"중려신화정."
화륵. 서희가 가볍게 눈을 뜨자, 전각 안에 불길이 치솟았다. 두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려했으나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만만찮은 상대. 초절정의 고수이기에 독귀는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여인은 이미 자신을 아득히 뛰어넘었음을. 단지 당문의 무공이 아닌 다른 무공으로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었음을.
"3년간 두문불출하며 무공을 기르겠습니다. 그리고 3년 뒤...다가올 용봉지회에서 백도제일화가 되어보겠습니다."
3년이란 시간은 충분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기 쉬운 시간이다.
"무공은 어디서 익혔느냐?"
"이정 오라버니의 안배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런가. 너는 너 나름대로 네 해법을 찾고자 하였던 것이로구나. ...다음 번에는 우리와 상의해다오. 그것이 가족, 당가가 아니겠느냐."
왈칵. 당서희는 괜히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미 마를 대로 말라비틀어져서 더는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지킬 것이니라."
"......."
...당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염마를 품었다.
* * *
"염마를 당문에 묶어둔 건 좋은 선택일까?"
"왜, 혹시 옆에 두고 간식처럼 까먹으려고 했어?"
"그대가 옆에서 눈 시뻘겋게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어찌 그럴까."
나는 이시아를 뒤에 태운 마차를 몰며 협곡을 지났다. 내가 무너뜨린 협곡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었고, 검각 방면에 잘 닦인 대로를 따라가면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까지 당도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금제를 걸어뒀다고 한들, 여인의 마음은 갈대와도 같은 것이오. 만약 대공자가 염마의 배신을 눈치채고 사천으로 온다면? 그녀는 다시 비천염마가 아니라 지린염마가 될 것이오."
염마는 대공자를 배신하고 소공녀에게 충성하기로 했다.
하오문에서 나와 당가로 돌아가 요조숙녀로서 몸을 단정히 하며, 당가를 나올 정도로 들끓던 성욕은 무공에 대한 상승욕구로 바꿔놓았다.
- 아아앙! 내, 내공을 쌓을 때마다 안쪽이 박히는 것 같은, 하으응!!
...운기조식을 하면 자동으로 내게 범해지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도록 환술을 걸어뒀다. 실제로 남근을 박으면서 환술을 걸었고, 본인도 거부하지 않았기에 금제는 아주 쉽게 먹혀들었다.
덕분에 이제 당서희는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만약 중려신화정을 사용하지 않는 양물이 속에 들어간다면, 그녀는 모든 내공을 잃고 박아넣은 남자와 함께 불에 타죽을 것이다.
"한 번 색을 깨우친 여자가 과연 3년 동안 정조를 지킬 수 있겠소?"
"흥, 글쎄. 그런 일은 없을걸?"
"뭘로 그걸 확신하는 것이오?"
"염마는 여자니까."
이시아는 내 등을 콕콕 건드리며 나를 비웃었다.
"당신 같은 남자가 3년만 정조를 지키면 종으로라도 삼아주겠다는데 정조를 안 지키고 베기겠어? 앞으로 어떤 남자랑 해봐도 아무 느낌이 없을 텐데."
"흐하하! 그거참 듣기 좋은 말이로군. 안주인은 그대고?"
"당연하지. 내가 허락하니까 시녀로 들이는 거야. 내 부하가 되기로 했으니까."
염마를 죽이는 선택지도 있었다. 염마의 자리를 없애 소공녀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십마를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그냥 죽이고 말 잘 듣는 놈 비천염마로 세우면 될 텐데."
"그건 그다지 내키지 않는걸?"
하지만 염마는 굳이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당서희를 살려두는 걸 선택했다. 나로서는 다소 답답했지만, 이시아의 말을 듣고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 대신에 집안일 하고 내가 몸이 안 좋을 때 나 대신에 당신 좆잡고 있을 시녀가 적어도 셋은 필요하지 않겠어?"
"......셋이라."
이시아의 말은 나를 솔깃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녀의 똑똑한 머리에 한 번 더 감탄하게 했다.
"왜 하필 셋이오?"
"그야 지린삼마가 셋이니까. 지린삼마, 셋 다 여자지?"
"...이유는?"
"이유? 하나밖에 없지."
이시아는 이를 갈며 빈정거렸다.
"대공자 그 개 변태 새끼가 곁에 남자를 둘 리가 없잖아. 십마 중에 여자만 골라서 자기 옆에 두려고 했을 거야. 분명 자기 천마가 되면 부인으로 삼겠다면서."
"......그것 참."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대공자의 지린 삼마는 모두 여자였다. 이유는 이시아가 말한 대로.
"그나저나 당신, 꽃도감 좀 볼게."
"뭐, 뭐?"
"안 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의 은밀한 욕구가 가득한 꽃도감을 내놓으라는 말에 나는 순순히 넘길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꽃도감은 그녀가 앉은 마차 안의 짐보따리에 함께 놓여있었다.
"어머...이건 꽃도감이 아니라 맛집 탐방기 아니야? 남궁유린, 정조사태...도대체 꽃을 얼마나 딴 거야?"
"...크흠!"
"어디보자, ...나도 있네? 근데 왜 내 거에는 아무 표시도 없어?"
"그거야...."
적을 시간도 없었고, 꽃도감에 적을 이유도 없었다. 왜냐면 사공희와 마찬가지로 이 마음속에 품었-
"말하지 않겠소."
"어? 지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맞지?"
"그렇지 않소."
"흐흥,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시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꽃도감을 사락사락 넘겼다.
"흐흠, 백도의 아가씨들은 참 재밌다니까. 어머, 이 년 처녀가 아니었어? 와...세상 놀랍네. 그런데 태극화는 없구나. 흐음, 하긴, 태극화가 나오기 전에 만들어진 거니까. 재미있네. 정말-"
사락. 이시아의 손이 멈췄다. 나도 그만 말을 몰다가 고삐를 잡아당길 뻔했다.
"아무 표시도 안 되어 있는 여자가 나 말고 하나 더 있네? 그것도 '딱 한 명'. 헤에-그냥 평범한 여자도 아니고 말이야."
"......."
들켰다.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나를 째려보는 시선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머나, 이게 웬일이야? 마침 우리가 가는 곳에 이 여자가 있네? 우,와. 정.말.우.연.인.걸?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 좀 해봐."
"......소공녀."
나는 마차를 세운 뒤, 이시아와 마주 앉았다. 담담히, 그리고 당당하게 나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그, 앞으로 한 침대에서 언니 동생 할 사이가 될 텐데-"
"천마기승위!"
그런데 천마신공을 쓰지 말라고.
"천마의 품에서 죽어라, 이 색마!"
세 시진 뒤.
아기색마는 소천마에 의해 생기를 잃어버렸다.
* * *
"당 형, 언제 쌍검술을 익힌 거야?"
"그게 무슨 개소리냐?"
"지금 사천 일대에 날뛰는 검담이 적마일 가능성이 있다는데? 신창마저 이긴 고수래. 보자, 천상용제쌍고검? 딱 천상천하유아독룡이 쓸 별호 아니냐?"
"......이 돌대가리야. 십중팔구 그 색마 놈이 나를 사칭한 거 아니냐. 말이나 제대로 몰...아이고 저 노인네 또 지렸구만."
"비천염마! 비천염마!"
"염마 고 년은 또 왜...어이쿠, 고맙소. 삼 형."
"아닙니다. 참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제가 어르신을 보살피겠습니다. 잠시 안에 들어가서 쉬십시오, 당 형."
"...크흡. 그대를 가르친 스승을 뵙고 싶을 정도로군. 보통 우리 급 초고수로 자라면 오만하게 되기 쉽건만, 그대는 내가 본 그 어떤 자들보다 예의 바른 무인이오."
[작품후기]
아기색마도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부터 새로운 파트 시작입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