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65화 (6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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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

"건면아!!"

당가의 가주, 당오독은 아들이 있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눈가에 검은 그늘이 짙게 깔린 병약한 청년은 가주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 읽던 책을 덮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예?"

".......??"

부자는 한참을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너, 비고에 간 것이 아니었느냐?"

"그, 그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난번에 비고에서 보물 지도를 발견했던 것처럼, 오늘도 비고에 간 게 아니었냐는 말이다!!"

가주의 호통에 당건면은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읽던 서책을 집어 들었다.

"당치도 않습니다! 백부님께서 근신하라고 명을 내리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명을 어기겠습니까...! 저, 저는 이걸 읽고 있었습니다!!"

"한중패왕 유덕현? 이, 이...!! 하라는 독공 수련은 안 하고!"

가주는 답답함에 들어 올린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당문의 후계자가 어찌 시정잡배들이나 읽을 책을 읽느냐!!"

"그, 당치 않습니다! 유덕현이라는 호걸이 천상용제쌍고검의 힘으로 의형제 둘과 함께 천하를 제패하는 고전 소설로...."

"입 다물어라! 젠장, 그래서 너는 오늘 비고에 간 적이 없다고?!"

"그, 그렇습니다."

당오독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콧김을 크게 내뿜었다. '도련님'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건만, 가문 내에 유일한 도련님은 해야 할 연구는 안 하고 자기 나름의 취미를 즐기고 있었다.

"하아. 건면아. 너는 당가의 미래다. 네가 다음 용봉지회에 나가서 독룡이 되어야 한다. 아직 4년 남았다고 한들 방심할 때가 아니다!"

"...독공을 수련 한다 하여 강해지는 게 맞습니까?"

"이놈! 또 의심을 하는구나!"

"의심이 아닙니다. 독공이 아니라...남들을 죽이기 위해 기예를 갈고 닦는 암기술이 아니라...저는 그저...."

쾅!

"입 다물어라! 그 이상 말하면 내 너를 진정으로 매로 다스릴 것이다!"

한참 화를 낸 가주는 급히 자신을 찾아오는 하인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급히 자리를 떠났다. 가주가 발걸음을 향한 곳은 화골산우진이 있는 비고 쪽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독이 아닌, 사람을 살리고 싶을 뿐인데."

당가의 무공을 바라보는 당건면의 눈빛에는 진한 환멸이 깃들어있었다.

* * *

독공의 고수들끼리 독으로 살초를 휘두르는 대결은 독과 독으로 승부가 갈린다.

상대에게 어떤 극독을 먹일 수 있느냐. 상대를 어떤 식으로 중독시킬 수 있느냐.

그런 의미에서 사천당문의 무인들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독공의 고수는 없다. 어려서부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영약과 독초로 몸에 독에 대한 내성을 쌓아온 당문의 무사에게 어쭙잖은 독을 사용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까 당가의 고수도 두려워하는 독을 뿌려보겠다."

콰아아---!!

화골산이 아래에서 솟구치며 독귀를 덮쳤다. 뒤로 몸을 날리며 화골산을 피한 독귀는 나를 향해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사출!"

도포가 흩날리기 무섭게 두 마리의 뱀이 화살처럼 나를 향해 날아왔다. 좌우로 흔들거리던 놈들은 내 근처에 오자마자 입을 쩍 벌리며 나를 물려고 했다.

"어딜."

나는 철선을 접어 붉은 뱀, 홍삼두사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강한 내기를 실어 때린 덕분에 홍삼두사는 모가지가 꺾여 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키에엑!

하지만 반대쪽에서 사출된 파란색 삼각형 대가리의 독사, 청삼두사는 내 흑의에 닿는 데 성공했다. 놈은 승기를 잡았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내 가슴에 독니를 박아넣었다.

콰득.

독니는 옷을 뚫었다. 가슴에 박혔다. 하지만 뚫리지도 상처가 나지도 않았다. 흑의에 구멍 난 났을 뿐 내 몸은 아무런 상처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날카로운 독니라고 한들, 기막을 뚫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

키엑?!

나는 청삼두사의 목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놈이 당황하여 나를 향해 독액을 쏘려고 하는 걸 두 눈 부릅뜨고 쳐다봤다. 도귀보다 훨씬 더 짙은 만류귀원신공의 내공으로 놈을 압박하자, 청삼두사는 저항을 포기하고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키, 키에엑....

"이, 이놈!!"

홍삼두사는 맥없이 죽고 청삼두사는 내게 붙잡히자 독귀는 비명을 지르듯 내게 암기를 던졌다. 아무 곳에서나 쏘아지는 화골산을 피해 나와 거리를 점점 좁히며 던져대는 암기는 두서없이 던지는 것 같으면서도 전부 치명상이었다.

"소용없다."

나는 다시 철편을 펼친 다음 크게 휘둘러 암기를 쳐냈다. 같은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간을 번다는 내 계획은 충분히 효과를 보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멀리서 깔짝댈 거냐?"

"이, 이놈!!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나와라!"

"이놈! 비겁하게 멀리서 암기만 던지지 말고 접근해라!"

"이 건방진 놈이!!"

독귀는 길길이 날뛰며 화골산의 생로에 발을 디뎠다. 이미 도포 끝자락에 화골산의 방울이 튀어 도포가 군데군데 녹아내리고 있건만, 독귀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암기와 독액을 날렸다.

"하하하! 당가의 귀신이 자기네 화골산우진에 쫓겨 도망치는 모습이란! 이것도 먹어라!!"

나는 청삼두사의 아가리를 잡고 뒤에서 강하게 철편을 때렸다. 빛처럼 날아간 청삼두사는 독귀의 허벅지를 향해 이빨을 박아넣었다.

"크윽!!"

독귀는 제자리에 멈춰 허벅지 안으로 손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는 바지 안에서 엄청난 두께의 구렁이를 꺼내 들었다.

"오."

"오는 무슨! 이 미친놈, 감히 내가 아끼는 뱀들을 넷이나 죽이다니!!"

"넷? 방금 구렁이까지...아."

나는 화골산우진의 경종 역할을 해주던 뱀을 떠올렸다. 어차피 죽는 자리에 뱀을 배치해뒀으면서 아끼는 뱀이라니, 우습지도 않다.

"몸에 두른 뱀으로 독기를 보호하다니. 씁. 그러면 이러면 어떨까?"

나는 화골산우진의 진식을 살짝 비틀었다. 일부러 화골산을 역류 시켜 독귀가 발을 디디는 곳에서 터지도록 만들었다. 화골산이 파도처럼 독귀를 덮쳤다.

"흥!"

하지만 독귀는 예사 존재가 아니었다. 아래를 박차고 뒤로 물러난 그에게 화골산의 파도는 아주 약하게 튀었을 뿐이고, 심지어 피부도 녹이지 못했다.

"역시 만독불침! 화골산으로도 피부를 녹일 수 없다는 건가!"

"닥쳐라, 이놈!"

독귀는 도포의 끝자락을 잡고 하늘 높이 펼쳤다. 도포의 안감에 숨겨진 온갖 암기들이 하늘로 비산했고, 독귀는 높이 뛰어올라 암기들을 모두 나를 향해 던지고 걷어찼다.

"만천화우를 똑똑히 보아라!!"

"저런."

당가의 성명 절기나 다름없는 만천화우를 설마 내가 당하게 될 줄이야.

'피할 수도 없다.'

이곳을 피하는 순간 화골산우진의 중앙에서 벗어나게 되고, 독귀는 그 틈을 노려 화골산우진의 제어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진을 뚫느라 시간이 지체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아래에 있는 소공녀가 위험에 처한다.

'여긴 내어줄 수 없지.'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나는 흑의 안감에 꽂아둔 두 개의 소검을 뽑아 들었다. 둘 다 2척 정도로 짧은 검이지만, 부족한 길이는 내가 보충하면 된다.

"고작 검 두 자루로 나의 만천화우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가능."

긴말은 필요 없다. 행동으로 보여주면 될 뿐.

'소공녀에게 못 보여주는 게 아쉽군.'

당가의 만천화우를 막아내는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줄 특급 강사가 여기에 있거늘. 나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쌍검을 움켜쥐었다.

"천상용제----!!"

"뭐, 뭣?!"

"보아라, 너희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용제검의 힘을!"

쌍검을 비스듬히 놓는다. 좌검이우검을 방해하지 않도록, 우검이좌검을 방해하지 않도록. 날아오는 암기들의 위치를 보고 정확히 요격하여 쳐낼 수 있도록, 나는 전방을 향해 쌍검을 휘둘렀다.

"무쌍난무!"

단 하나의 암기도 남기지 않고, 정확한 때에 검을 휘둘러 요격한다.

"검제, 유영걸의 힘을 똑똑히 보아라!"

* * *

천마심안.

사소하게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쉽게 발견하는 힘이 있으며, 무공에 있어서는 상대 무공의 약점을 알아채는 힘을 가진 능력이다.

-천마심안은 세계의 이상을 탐지하는 힘이다.

소공녀는 천마심안으로 발견한 발자국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비교적 최근에 다녀간 듯한 발걸음은 다소 중구 난방하게 비고 주변을 오다니고 있었다.

‘이쪽까지 왔다가 안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발걸음.’

저벅, 저벅.

소공녀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흔적을 뒤쫓았다. 서고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아다닌 듯한 발걸음의 주인은 자료를 찾아다닌 듯했다.

‘무공 비급을 찾은 건 아니야.’

당가의 절세 비급이 있는 곳은 아예 발길도 들이지 않았다. 발걸음의 주인, 신원미상의 존재는 주로 ‘병’에 관한 내용을 찾아다녔다.

‘도대체 무슨 병을 찾으러 다닌 거지?’

저벅. 소공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발걸음의 흔적은 한 곳에 한참을 머뭇거렸고, 뭔가에 화들짝 놀라 주저앉은 것처럼 보였다. 소공녀는 흔적의 주인과 똑같이 서가의 앞에 섰다.

[창천화두].

“......에이, 설마.”

소공녀는 자기 생각이 진실이 아니기를 믿었다. 똑똑한 머리가 비천색마의 음란한 행동들 때문에 한 번은 망가져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유독 눈에 띄는 두 글자, ‘천’과 ‘화’.

“그럴, 리가….”

소공녀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서책의 안을 펼쳤다.

“........”

한참 동안 서책의 내용을 살피던 소공녀는 이를 악물고 서책을 집어던지려 했다. 하지만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손은 서책을 손톱으로 움켜쥘 뿐, 차마 바닥에 내팽개치지 못했다.

“하아, 하아.”

너무나 충격적인 정보를 들은 바람에 소공녀는 벽에 몸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발자국의 주인이 놀라 자빠진 것에 대해서 우습게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인공전염병이라니…."

치사율이 3~5할에 이르는 병의 근원이 눈앞에 있다. 심지어 자연적으로 발생한 병이 아니라, 사람이 일부러 만들어 퍼뜨릴 수 있는 병이었다.

'이게 당문인가?'

사천당문의 이율배반적인 면모는 익히 알고 있었다. 독공을 다루는 가문인 이상 인륜을 저버린 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염병을 연구하여 전염병을 개발하는 방법을 남긴다? 그걸 실제로 퍼뜨려 민중을 상대로 실험을 한다?

'아니다. 아직 이 병이 1년 전에 유행한 천화와 같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

당문에서 인공천화를 만든 건 알아냈어도, 그게 실제 유행한 천화와 관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호북성에서 천화가 유행한 원인은 다른 곳에서 천화에 걸렸던 검마가 무당파에 죽으러 갔기 때문이니까.

'이걸 찾으라는 건 아니었을 텐데.'

천화에 대한 정보를 찾은 건 분명 중요한 사안이었으나, 지금 당장은 쌍고응검의 비밀지도가 어떻게 나왔는가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 이건 나중에 확인-'

딸칵.

소공녀는 자신도 모르게 누른 뒤쪽 벽에 급히 몸을 돌렸다. 혹시나 함정이 튀어나오거나 적이 나타나나 싶어 천마신권으로 주먹을 내질렀으나, 소공녀의 공격은 그림자를 갈랐다.

“......?”

벽의 나무판이 떨어져나왔다. 천마심안으로도 보이지 않았던 곳이 갑자기 어째서 툭 튀어나왔나 싶었더니, 벽의 구멍에서 벽을 타고 흘러가는 붉은 궤적이 책이 꽂혀있던 책장과 연동되어있었다.

‘책을 들어 올리면 튀어나오는 식이구나.’

소공녀로서는 마교의 본산에 있을 때 자주 본 기관진식의 방법 중 하나였다. 나무판 안에서 피어오르는 불길한 기운에 소공녀는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보물 지도창고?’

작은 함 만한 공간에는 갖가지 보물 지도가 쌓여있었다. 그리고 소공녀는 어딘가 익숙한 필체의-하지만 보다 더 거칠게 쓰인-얇은 서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당문에 실망한 천재들을 위해 남기는 사천 제일 천재의 안배.”

필체와 서책의 상태로 보아 비교적 최근-근 삼십 년에 만들어진 것 같았다. 주변에 가득한 독기에 빨리 부패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최소 이십 년. 소공녀는 가주만이 들어올 수 있는 비고에 비밀 장치를 만든 자가 누굴까 궁금해졌다.

‘세상에.’

비천색마는 이걸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본인에게 들었던 걸까. 소공녀는 비천색마가 굳이 ‘그’의 얼굴로 비고로 들어왔던 것에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적마.”

[언젠가 가문에 큰 실망을 하여 가문에서 도망칠 동생, 조카, 후손들을 위해 여기에 내가 찾은 기연들을 남기노라. 근데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니까 알아서 도전해보시고. 음화화화화화화. 본좌는 천하의 부조리를 훔치기 위해 이 땅을 떠난다. - 전 당가 제일의 독공 고수, 천상천하유아독룡 당이정.]

“.......”

소공녀는 서찰로 자신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 * *

“젠장, 갑자기 왜 소름이 돋지?”

“아 씨, 이보쇼! 지금 바퀴 빠졌는데 혼자 뭐하시오!”

“썅, 닥쳐! 지금 할배 또 노망난 거 안 보여?!”

“뱀이여, 뱀이여! 몸에 좋은 뱀이여!! 아들, 빨리 가서 잡아 와! 뱀이 정력에 좋대!”

“나는 어르신 아들 아니라니까!!”

“저기...말씀 좀 묻겠습니다만….”

“아앙? 형씨, 여긴 어떻게 들어왔-”

그들은 열심히 동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작품후기]

천상천하유아독룡 당이정!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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