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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이주가 지났다.
한 달간 지속되었던 용봉지회도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바로 어제 천하제일룡이 정해진 거로 구룡의 순위가 정해졌다.
-소개하겠소!! 구룡 중 으뜸, 남궁의 자랑! 제 1룡, <폭룡> 남궁패!!
와아아아아!!
관중들의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던 놈이 다른 모든 무인을 상대로 이기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마인이 앞에 있으면 다 때려잡을 기세로군.”
“사내답기는 하네요. 체격도 건장하고.”
“응? 저런 남자가 취향인 거냐?”
“가가께서 저런 외형이 된다면 진짜 좋을 것 같기는 한데...가가는 지금 모습도 나름 좋으니까 그대로 계셔도 된답니다. 후후.”
나는 변장을 한 뒤 진사월과 관중석에서 비무장을 살폈다. 남궁패가 후기지수 중 으뜸이 되어 사람들은 함성을 내뱉었지만, 다들 다른 무언가를 더욱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희, 내일이죠?”
“그래. 결국 모두의 예상대로 되었지.”
평소의 용봉지회였다면 천하제일봉을 정한 다음, 그다음 날에 천하제일룡을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익일, 태극무봉(太極武鳳) 대 마봉희(魔鳳姬).
이미 육봉의 자리를 차지한 사공희와 소공녀는 이제 천하제일봉을 두고 겨루게 되었다. 내가 현장 의원으로 뛴 이 주 동안, 둘은 착실하게 상대를 제압하고 이기며 다른 육봉을 둘씩 꺾고 최종전에 올랐다.
“사월아, 누가 이길 것 같으냐?”
“당연히 희죠. 천마의 딸이라고 해도 희가 지금까지 보여준 게 있는데.”
태극검.
무당의 기초 검법이지만 기초만큼 무서운 게 없다. 사공희는 검 한 자루로 상대의 모든 공격을 흘려내며 반격을 몇 번이고 성공했고, 일류 고수에 이른 여인조차 가볍게 이기며 자신의 성취를 뽐냈다.
‘하지만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것도 있지.’
무림인은 실력의 3할은 숨기라고 하는 게 상식이라고는 하지만, 설마 결승전까지 태극혜검을 꺼내지 않아도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너무한 괴물을 키워낸 건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사공희의 지금 실력이라면 본래 출전이 예상되었던 무림맹주의 딸이자 검의 천재 독고연도 거뜬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은 무리더라도, 아마 향후 5년 이내에는 역전할 수 있지 않을까?
“축하드려요. 천하제일 여몸종을 가지게 된걸. 풉.”
“아직이다. 상대도 만만찮은 괴물이니라.”
사공희가 진흙 속에서 발굴한 진주라고 한다면, 소공녀는 태어날 때부터 보석의 형태로 다듬어진 원석이었다.
날 때부터 먹은 영약과 온갖 좋은 것들을 생각하면 소공녀의 내공은 10살에 이미 갑자를 돌았을 것이다.
“승패는 내일 갈리겠지.”
“가가께서는 누가 이기실 것 같아요?”
“...글쎄.”
나는 말을 아꼈다. 아낄 수밖에 없었다.
‘사공희가 10할 이긴다.’
사공희는 무조건 이기게 되어있다. 나는 멀찍이 남궁패의 구룡 등극을 축하하는 소공녀를 멀리서 보며 그녀의 경지를 가늠했다.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지난 2주, 사공희가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 동안 소공녀는 전혀 성장을 보이지 않았다. 내게는 그 원인이 훤히 보였다.
길은 뒤처져있지만 지도를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자.
조금 앞서있지만 막다른 벽에 막혀 우회로조차 찾을 수 없어 높다란 벽을 몸으로 넘어야만 하는 자.
어느 쪽이 2주간 더 많이 나아갔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내일이면 모두 결판이 나겠어.”
나 또한 마찬가지. 나는 사월을 데리고 비무장을 빠져나왔다.
“사월아,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머리를 푼 것도 아름답구나.”
사월은 기루의 여인처럼 비녀를 꽂은 게 아니라, 머리를 단정히 하나로 묶어 허리까지 늘어뜨렸다. 옷차림 또한 기녀가 아닌 평범한 제 나이대의 정숙함이 느껴졌다.
“후후, 가가 덕분에 은퇴자금을 벌었으니까요. 기녀도 이제 안녕이에요.”
“그래? 직업은 구했느냐?”
“무당의 신녀 아가씨가 요리를 그렇게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아는 분 통해서 신녀 아가씨를 모시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허허. 그것참 멋진 계획이로구나.”
나는 사월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럼 언젠가 그 아가씨의 자식을 돌봐줄 유모가 되어주는 건 어떠냐? 내 너라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머, 희아는 가가의 계획을 알고 있어요?”
“농담으로만 생각하고 확신을 못 하고 있더구나. 나는 처음부터 누차 말했는데.”
몸종인 동시에 내 여자다. 그러므로 나의 아이를 낳는 것도 당연하며, 나는 사공희가 현경에 이르렀을 때 아이를 가지게 하려고 계획 중이었다.
‘일찍 임산부가 되면 무공 성취가 더뎌.’
여인이 아니라 어머니가 된다면 사공희는 무공을 버리고 나의 아이를 택할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나의 반려 중 한 명으로 맞이하려 했다.
“네가 옆에서 불로 하는 요리들을 가르쳐다오. 언젠가 돌아오는 날, 그때는 내가 녀석을 몸종이 아니라 내 자식의 어머니로 맞이할 것이니.”
“......알겠사옵니다, 가주님.”
사월은 벌써 나를 향해 농담을 던졌다. 나는 사공희의 근처에 현기, 현철, 현타 도사 셋이 함께 호법을 선 것을 보고 사월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사월아. 그런데 유모도 어머니는 어머니 아니냐.”
“어머, 저까지? 저는 제 아이 낳는 것보다 그냥 아이들을 돌보기만 할게요.”
“아니, 크흠. 그게 말이다. 내일 비무라서 희아가 오늘은 무공을 가다듬고 싶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밤일이랑 내공 수련은 못하게 되었어.”
“그러세요?”
사월은 쿡쿡 웃으며 객잔을 가리켰다.
“그럼 안 되겠네요. 저기로 가서 쉬었다 갈까요?”
“끙….”
진사월이 가리킨 곳은 내가 그녀와 처음 만난 기루 옆 골목이었다.
“가가, 모처럼 여기에 왔으니까….”
진사월은 내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귀에 속삭였다.
“누님 뱃속에 종신 계약 도장 찍어주지 않으련, 우리 귀엽고 강한 가주님?”
“......내 주변에는 어째 하나같이 여우 같은 여자들밖에 없군.”
“그래서 더 매력적인 거 아니겠어요? 늑대 곁에 여우, 잘 어울리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
나는 진사월을 벽으로 밀치며 등허리에 입술을 맞췄다. 벽에 손을 짚으며 살짝 가버리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나는 그녀를 한 마디로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나 오늘 늑대로 변해서 제대로 죽여줄게, 사월이 누나?”
“크흡…! 그렇게 큰 걸 넣으면...누나...죽어…!”
좋아 죽더라, 아주.
* * *
그날 저녁.
천하제일봉을 가리는 대결이 다음 날로 다가온 가운데, 당사자를 제외한 주변인들은 각자 한 장소에 모여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무당.
"비천삼마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소?"
장문인 대리, 현철도사는 바싹 마른 입술로 무당의 다른 장로들을 다그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럴싸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장문인 대리. 워낙 신출귀몰하여...."
"남궁에서는 아예 문전박대당했습니다. 심야에 호북성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끙...."
무당 장로들의 눈이 현타도사에게로 돌아갔다. 그나마 여기서 가장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이는 사정후였다.
"...놈들의 성정을 생각하면 태극무봉의 패색이 짙을 경우, 가만히 있을 것이오."
"반대는?"
"난동을 피우겠지요. 저잣거리의 음습한 소문에 따르면, 도마라는 자는 야외에서 여인을 탐하기를 즐기는 음적이라고 하더이다. 태극무봉이 승기를 잡으면, 놈이 미친 척하고 태극무봉을 납치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크흠, 그런 반인륜적인 짓을...!!"
장로들은 눈을 찌푸렸다. 사정후 자신도 직접 말하고는 무안해져서 괜히 머쓱할 정도였다.
"어찌하면 좋겠소?"
"까딱 잘못하다가는 정마대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맹에서도 거기까지 가는 건 원치 않습니다."
무림맹에서 나온 이는 맹의 입장을 확실히 전달했다. 하지만 정작 그걸 듣는 무당파 입장에서는 영 아니꼬울 수가 없었다.
"납치를 당한다고 한들 우리보고 알아서 대처하라?"
"그럴 리가요. 맹에서 어찌 모른 척 하겠습니까. 다만, 검마와 천화의 때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요."
"크흠!"
현철도사는 헛기침을 하며 불편함을 내비쳤다. 천화로 인한 봉문은 무당의 수치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다들."
문이 열리며, 전신이 하얀 노인이 나타났다. 모두가 현기도사의 등장에 놀란 가운데, 현철도사는 소태 씹은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또 쓰러지십니다."
"허허허, 걱정하지 말지어다. 태극ㅎ...검의 주인이 무림 최고에 오르는 것을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으니."
방금 일부러 말을 흘리지 않았나? 장로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사정후는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죽을 때가 가까워지니 함부로 말하고 싶어 난리가 났구먼.
"본인이 이제 살날이 머지않아서 그런지 입이 너무 쉽게 벌어지는구먼. 껄걸."
"...크흠."
사정후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현기도사는 나긋나긋한 미소로 무림맹의 사람에게 포권을 취했다.
"무당파 장문인으로서 약속드리오.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한들, 다시는 천화 사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오."
"장문인...?"
하얀 머리칼 속에서 눈빛을 번뜩인 현기도사의 눈은 광기마저 엿보였다.
"이 현기, 만사용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 * *
그리고 그 시각, 비천삼마의 은신터.
"미치겠군. 치매 걸린 노인의 말이라고 무시했는데 진짜였어."
도마는 손톱을 깨물며 방안을 계속 돌아다녔다. 눈두덩 아래는 검게 물들었고, 눈동자는 좌우로 굴러가며 좀처럼 초점이 또렷하지 않았다. 도마는 비무를 앞둔 당사자들보다도 더 긴장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진짜 내가 무림공적이 되어야 하나?"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구나, 이놈."
"환마!"
도마는 활짝 웃으며 노인을 맞이했다. 평소의 단출한 복장과 달리 태극과 팔괘가 그려진 무복과 회색 삿갓에 지팡이까지 든 환마는 또렷한 정신으로 은신처에 돌아왔다.
"어떻소?!"
"글렀다. 너 그냥 무림공적 해라."
"으아아아! 미친!"
도마는 도를 꺼내 허공에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벽에 붙어 금가락지를 만지작거리던 적마는 하품을 하며 환마에게로 다가갔다. 벽에 붙어서.
"정말로 무당 그 계집이 더 강합니까?"
"말도 마라. 내가 혹시 눈이 잘못되었나 싶어서 저놈 천기까지 읽고 오는 길이다."
환마는 지팡이 끝을 도마에게 겨눴다.
"저놈, 내일 죽어."
"으아아악! 개소리하지마, 이 미친 노인네야!!"
"그 미친 노인네도 죽어."
"...뭐요?"
"방금 '뭐요'라고 물어본 놈도 죽어."
환마는 종이 세 장을 품에서 꺼내 들었다. 그곳에는 비천삼마의 인적사항과 사주팔자가 적혀있었고, 위에 붉은 피가 'X'자로 소름 돋게 칠해져 있었다.
"비천삼마 모두가 죽는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씨발, 좆됐군."
적마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환마가 천기를 잘못 읽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차라리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게 더 가능성이 높았다.
"튑시다."
적마는 금가락지를 내던지고 짐을 챙겼다. 하지만 환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동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소용없다. 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잊었느냐?"
"으아아악! 씨발,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도마는 바닥에 도를 내팽개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어떻게 죽어! 내가 왜! 아직 살날이 창창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잘못은 엄청나게 저지르기는 했지. 이보시오, 어르신. 그래도 살 방법이 있겠지?"
"물론. 소공녀께서 태극무봉을 상대로 이기면 된다. 1,400개의 천기를 읊었지만, 우리가 살 가능성은 그 길뿐이야."
"그만큼 소공녀의 패색이 짙다는 거군. 크허허!!"
적마는 광소를 터뜨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공자 줄을 잡을 걸 그랬나? 그러면 여기서 뒈질 점괘가 나온 놈들은 지린삼마가 되었을 텐데."
"그랬으면 비천이마가 되었겠지. 걱정 마라. 소공녀는 지난 2주간 충분히 강해졌다. 도마를 상대로 한 판 따내기도 하지 않았느냐?"
"젠장!"
도마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눈동자에 살기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칩시다."
"뭐?"
"씨발, 지금 치자고! 어차피 내일 뒤지나 당장 뒤지나, 소공녀가 못 이길 게 뻔한데!!"
"여기 있었구나."
비천삼마는 무기를 들어 올렸다.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그들이 처음 들어보는 '청년'의 목소리였다.
"산에 점점 마의 기운이 낀다 싶더니, 네놈들이었구나."
끼이익.
은신처의 문이 열렸다. 달빛을 등지고 나타난 청년은 비천삼마를 바라보며 두 팔을 펼쳤다.
"현자도사냐?! 이, 이 놈! 등선을 포기하고 우리를 건드릴 생각을....?"
"현자가 아니다. 그 미친 놈이...아니다!"
"네 놈은 누구냐?!"
"나?"
달빛이 청년의 머리 앞섶을 밝혔다. 여성스러운 외형처럼 보이는 미청년은 보름달처럼 활짝 웃었다.
"너희 비천삼마의 명(命)을 가져갈...색마(色魔)."
청년의 눈동자는, 핏빛처럼 붉었다.
[작품후기]
정실부인 일러 의뢰넣었습니다
나오면 바로 표지에 넣을게요.
아마 3주 정도 걸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