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6화 (4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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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모처럼 밤일에 들어가려는 시각, 방해를 받은 나는 잠시 사공희를 안쪽에 숨겨 야만 했다.

'네가 여기서 드러나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이 안에 숨어있거라.'

내가 가리킨 곳은 책상 아래의 공간으로, 의원 내에 유일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 한 명이 쪼그려 앉으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었고, 사공희는 안으로 몸을 숨겼다.

"여기는...?!"

"크흠!"

나는 사공희의 앞에 의자를 당겨 앉았다.

내 무릎 사이로 사공희의 얼굴이 들어왔고, 내 고간이 사공희의 눈앞에 놓였다. 좌우로 다리를 쩍 벌리고 의자를 바싹 당긴 덕분에 사공희는 얼굴만 앞으로 숙이면 내 양물에 코가 닿을 만큼 거리가 가까웠다.

"사, 상공...?"

"소리는 내지 마라. 알겠느냐?"

비천삼마까지 놓고 온 만큼, 소공녀는 지금 당장 만나야 한다. 하지만 즉시 양기를 해갈하지 않으면 터져서 죽을 것 같다.

'그럼 숨겨서 입으로 하면 되지.'

소공녀와는 상반신으로 마주하고, 사공희와는 하반신으로 마주한다. 나는 과거 혈교주가 부하들을 상대로 즐기던 행위를 떠올렸고, 임기응변으로 즉시 실행했다.

사락. 나는 의원복 앞을 좌우로 풀고 남근만 밖으로 꺼냈다. 두 개의 양기 주머니는 의복 아래에 숨긴 채, 단단한 훈육봉을 사공희의 인중 위에 놓았다.

"들어오시지요."

탁탁. 나는 약재를 빻기 위해 책상 위에 놓아둔 작은 막자사발을 두드렸다. 내 허락을 받은 소공녀는 문을 열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탁자 아래에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망이 위에 뜨거운 숨결이 스쳐 지나갔다. 약재를 빻는 막자는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입구에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미모의 소공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살포시 숙였다.

"신의의 제자를 뵙습니다."

"환자로 온 것이라면 앉고, 마교로서 온 것이라면 썩 꺼지시오."

"...듣던대로 가차 없으시군요. 오늘은 약을 지으러 왔사옵니다."

"......끙. 앉으시오."

신의의 제자, 마교와 은원이 있음. 덕분에 나는 일어나서 소공녀를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이 생겼고, 앉아서 하반신으로 사공희를 얼마든지 맞을 수 있었다.

"무슨 약을 찾으러 오셨소? 이 야심한 시각에 아녀자 혼자."

"천환단을 사러 왔습니다."

소공녀는 이래서 좋다. 남들이라면 말을 빙빙 돌리거나 딴소리를 하며 운을 떼었을 텐데, 소공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천환단? 허어,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알면서 왔단 말인가?"

"어떤 상처도 치료할 수 있는 물건 아닙니까. 혹시 없으신가요?"

"있소. 하지만 그냥 팔 수는 없지."

쯔걱. 나는 막자로 물기 가득한 약초를 꾹꾹 눌렀다. 약초에서 흘러나온 수액과 약간의 기름이 섞여, 따스하게 데워진 사발 속에서 점액이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용도가 무엇이오?"

"예비용으로 하나 두고자 합니다."

"당장 다친 사람에게 써도 모자랄 판에 예비용이라? 허, 누구에게 사용할 것이오?"

"견희 소저입니다."

움찔. 막자를 휘젓던 손이 멈췄다. 나는 내가 아는 그녀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되물어야만 했다.

"태극화?"

"예. 무당의 대표 무인입니다. 저와 함께 천하제일봉으로 호사가들이 꼽는 신진 여고수입니다."

"태극화 견희 소저에게 줄 천환단을 미리 구매한다라...."

나는 막자를 휘휘 저으며 소공녀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했다. 사발 안의 약초 진액은 막자의 끝과 사발그릇의 벽에 달라붙어 진득하고 길게 늘어지기를 몇 차례 반복했고, 안에서 더 많은 물이 흘러나와 더욱 질척거렸다.

'마교로 영입한다? 그런 건 아니야. 뭔가 있다.'

단서 하나, 소공녀가 비천삼마와 떨어져서 나를 몰래 찾아왔다는 것.

단서 둘, 소공녀가 미래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 천환단을 찾는다는 것.

단서 셋, 천환단을 사용할 대상이 자신의 결승전 상대로 유력한 견희라는 것.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

"왜, 태극화도 다른 상대들처럼 피떡으로 만들 참이오?"

"그런 게 아닙니다."

소공녀는 정색하며 내 말을 부정했다. 눈썹이 미미하게 떨리고 눈동자에 불쾌감이 스친 것으로 보아, 소공녀는 나의 우려를 기분 좋게 배반했다.

"미안하오. 선입견이었군. 혹시나 천환단을 쓰지 않을 정도로 태극화를 지르밟으려고 하나 싶어서 말이야."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

소공녀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뒷말을 삼켰다. 울컥하면서 입술을 깨무는 모습에 나는 정황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뒷공작이 있구나.'

천마의 무공을 익혔지만, 성정과 행동거지가 여느 정파 무인들 못지않은 여인이다. 천마의 자식이 아니라 여느 구파일방의 제자로 태어났다면 가히 OO신녀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심성을 가지고 있다.

'내 동정 때어준 것만 해도 그렇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감찰관을 죽이고 첫 임무를 성공한 내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나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기루에 가서 여인을 하룻밤 안을 은자 세 냥만 달라고 말했다.

- 돈이 있어도 기루에서 당신을 받아주겠습니까? ...흠, 좋습니다. 그 누구도 죽이지 못했던 감찰관을 죽인 공로를 높이 사지요. 평생 잊지 못할 포상이 될 겁니다. 앞으로도 마교를 위해 헌신하셔요.

쯔어억.

막자가 사발을 꾸우욱 눌렀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니 막자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렸다. 눈앞의 소공녀에게서 여자와 한번 해보고 싶다는 소원을 자신의 몸을 내어줬던 마성의 여인이 눈에 스쳤다.

"......역시 안 될 것 같군요. 실례했습니다."

소공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내가 생각을 너무 깊게 하는 나머지, 나의 장고를 거부의 의미로 해석한 듯싶었다.

"기다리시오."

나는 사발을 양손으로 잡고 앞으로 당겼다. 막자는 사발 안에서 제멋대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소공녀를 향해 손깍지를 끼며 상체를 숙였다.

"자신은 할 생각이 없으나, 모종의 이유로 태극화가 천환단이 필요할 정도로 상처를 입을 수 있단 말이오?"

"!!"

소공녀의 눈이 등잔만 해졌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내가 진실에 도달한 것에 대한 놀라움과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혹, 그리고 나에 대한 호기심이 담겨있었다.

"나는 마교에 대해 잘 알고 있소.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마교에 대해 잘 알고 있지."

"...그럼 얘기가 빠르겠습니다. ...일다경 정도는 있을 듯한데, 괜찮습니까?"

"물론. 그런데 잠시."

나는 사발 안에 놓인 막자를 잠시 사발에서 꺼냈다. 약초에서 흘러나오는 뿌연 수액이 끈적한 꿀과 섞어, 사발에는 농밀한 약초즙이 고였다.

"손님을 모셔두고 차도 한 잔 없었군."

나는 책상 위에 올려둔 찻잔-사공희와 마시던 잔-에 약초즙을 넣고 온수를 태웠다. 수저로 휘휘 저어 소공녀의 앞에 놓은 다음, 나는 사발에 온수를 마저 부어 안에 담긴 약초즙을 전부 삼켰다.

꿀꺽, 꿀꺽.

"...하아. 맨정신으로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것 같아.... 크흠, 미안하오."

"아닙니다. 잘 마시겠어요."

소공녀 또한 약초차를 가볍게 홀짝였다. 나는 진한 탈력감에 괜히 멍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본론으로 돌아가서, 태극화가 상처를 입는다는 것 말인데...."

나는 다시 사발안에 약초와 꿀, 그리고 온수를 집어넣고 막자를 거칠게 휘휘 저었다.

"소공녀가 아닌 다른 마교의 존재가 태극화를 습격이라도 한다는 것인가?"

"......염치없게도."

한 마디로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비천삼마."

습격자의 정체였다.

* * *

십마(十魔).

탈마의 경지에 오른 지존 천마(天魔)의 아래, 감히 별호에 魔의 칭호를 하사받은 10명의 마인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 십마는 제각기 세 개의 파벌로 나뉘어있다.

남자이자 원래부터 천마의 적자인 대공자를 지지한 지린삼마(地麟三魔).

여자이지만 대공자보다 더 우수한 재능을 보이는 소공녀를 지지하는 비천삼마(飛天三魔).

어느 쪽도 아니지만, 중립을 지키고 있는 야인삼마(野人三魔).

그리고 천마 이외에는 그 누구도 정체를 모르는 일인의 무마(無魔).

대공자와 소공녀 사이의 후계자 다툼에서 십마 또한 패가 갈렸다. 그 때문에 비천삼마는 대공자의 명령이 떨어져도 귓등으로 듣지도 않고, 지린삼마는 소공녀를 틈만 나면 암살하려고 기회를 엿봤다.

- 으하하! 역시 서로 싸우니까 발전이 빠르구나! 그래, 마인이라면 그래야지!

천마는 마교가 두 패로 갈려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쟁이 발전을 낳는다'는 이유로 세력다툼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강호의 섭리! 그 정점에 바로 천마, 그리고 천마신공이 있노라!

누구든 천마의 자리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천마는 항상 모든 마인들의, 나아가 모든 무인-중원 전체의 정점에 서 있어야 한다. 십만마인의 필두이며, 언젠가 중원 전체의 으뜸이 되는 자라면 능히 그래야 한다.

"설령 한낱 꼬맹이들 소꿉놀이라도 천마가 으뜸이 되어야 한다. 어르신들, 이건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대공자는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무기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그를 향해 마기를 뿌리는 세 명의 마인, 비천삼마는 호위도 데려오지 않은 대공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새 또 무공이 느셨군."

"최근에 깨달음을 하나 얻어서."

"...하지만 병신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건 오만이오, 대공자. 우리가 그대를 죽이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거요?"

도마는 날카로운 도기를 세우며 대공자를 압박했다. 하지만 대공자는 그를 비웃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천마께서 비천삼마에게 명을 내리셨소."

"...!!"

도마는 도를 거두었다. 동시에 비천삼마는 대공자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비천삼마가 천마의 명을 따릅니다."""

상대는 대공자이기 이전에, 마교 지존의 명령을 가지고 온 전령이었다. 대공자는 입꼬리를 비틀며 품에서 죽간을 꺼내들었다.

고오오오.

죽간에서 피어오른 검은 마기가 대공자의 코로 스며들었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뜬 대공자의 눈동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붉어졌다.

"환마의 보고를 들었다."

대공자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대공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비천삼마는 더욱 고개를 조아리며 목소리를 경청했다.

"무당의 여아가 소공녀에 필적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어, 소공녀의 승리가 불확실하다. 맞느냐?"

"그렇습니다, 지존."

"제각기 승패를 점처보아라."

"도마가 보고합니다. 7:3, 소공녀 님의 승리입니다."

"적마가 보고합니다. 6:4, 소공녀 님이 이깁니다."

"...환마가 보고합니다. 2:8. 소공녀 님이 패배합니다."

삼마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붉은 달 같은 눈동자는 다른 의견을 낸 환마에게 집중되었다.

"근거는?"

"근 이주간 태극화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특히 내공이 쌓이는 양이 장강이 범람하는 것처럼 같사옵니다. 현재로도 5:5인데 만약 이 기세가 지속한다면, 소공녀 님께서는 필히 패배합니다."

"......그렇군. 독고 그놈의 딸만 이기면 될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현자도사의 제자라.... 방심했어. 그 노인네, 괴물을 만들어놨구나. 역시 천하는 넓군."

"지존, 그 말씀은...."

"도마, 네가 소공녀의 지시를 무시하고 여아를 겁간하였다고 들었다. 맞느냐?"

"......예, 지존."

하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도마의 손발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2주. 독,고자,영 그놈의 성격을 생각하면 분명 둘의 비무가 용봉지회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 전에 너희는 소공녀가 무당 따위에게 지지 않도록 만들어라. 적마는 소공녀가 상대할 자들의 정보를 수집하라. 환마는 환술로 소공녀의 비무를 도와라. 그리고 도마는...."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도저히 소공녀가 이길 기미가 보이지 않을 시, 태극화를 겁탈하라. 비무장에 난입해서 태극화를 납치해. 그리고 태극화를 범해라. 알겠느냐?"

"지존! 그랬다가는 제가 무림공적이...!"

"나는 네게 겁탈하라고 명했다."

"......명을 따릅니다!!"

마기는 사라졌다. 눈빛이 돌아온 대공자는 도마를 향해 싱긋 웃고는 바람처럼 사라졌고, 비천삼마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 * *

"...그리하여, 아버님께서는 태극화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요."

"그러니까 당신이 태극화한테 이기면 아무 문제 없지만, 질 것 같으면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

"......송구합니다. 제가 부족하여. 그러니 부디 천환단이 있다면 제게 팔아주셔요. 몇만 금이 든다고 한들 지불하겠사옵니다."

"나에게 송구할 일이 아닌데.... 고, 고개를 드시오."

소공녀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비천삼마가 소공녀를 따르는 것도 이런 소공녀의 착한 심성 때문이며, 다른 칠마가 소공녀를 지지하지 않는 것도 마인답지 않은 여림 때문이었다.

"크흠, 그런데 마교에 신의가 있지 않습니까. 천환단 없습니까?"

"그게.... 딱 하나 있었는데...."

소공녀는 울 것 같은 얼굴로, 탁자 위에 놓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만, 팽가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

나는 조용히 차를 홀짝였다.

[작품후기]

토요일 기념 한 편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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