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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다
삼구.
산에서 약초를 캐서 약방에 납품하는 걸 생업으로 삼던 청년은 고민이 생겼다.
중년이 아니다. 청년이다. 단지 어려서부터 산을 타고 오르느라 개고생을 해서 그렇지.
피부는 쭈글쭈글해지고 머리는 반쯤 벗겨진 데다가 살결은 푸석푸석했지만, 놀랍게도 그는 서른 전후의 나이였다.
“삼구야, 아직 밥은 멀었느냐?”
누가 봐도 마흔은 되어 보이는 청년(?)이 갓 성인이 된 듯한 소년의 하대를 들으며 밥을 차린다. 삼구는 언제나처럼 ‘스승’을 위해 요리를 하고 상을 올렸다.
“삼구야, 오늘따라 간이 짜구나.”
“죄, 죄송합니다! 스승님!”
산기슭에 지은 오두막에 들어온 작은 소년은 이제 소년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육체가 성장했다.
흐르는 강에서 소년을 건져낸 지도 어언 13년.
소년은 스스로의 나이를 삼구보다 한참 어린 나이라고 천명하고 다녔고, 삼구는 밖에서 자신을 상대로 깍듯하게 존대하는 소년을 볼 때마다 심사가 뒤틀렸다.
“삼구야, 오늘따라 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구나? 무엇이 고민이냐?”
“스, 스승님께 누가 될 것 같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괜찮다. 말해보아라. 무공이 막히느냐, 아니면 돈줄이 말랐느냐? 어디 지난번처럼 백년삼이나 하나 캐다 주랴?”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은덕 덕분에 무공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고, 스승님 덕분에 재산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습니다. 단지….”
삼구는 일부러 단서를 달았다.
“말해 보아라. 무엇이 네 근심이더냐?”
“제자, 감히 스승님께 간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하느냐. 그냥 시원하게 속마음을 말해 보아라. 나는 그렇게 속 좁은 인간이 아니니라. 아주 대범하기 짝이 없지.”
대범하다 못해 좆대로-본인 내키는 대로 행동하기 일쑤라고 삼구는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과 같은 스승에게 막말할 수도 없는 상황.
“제자, 염치 불문하고 스승님께-”
“아니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부터 말해!”
“그 얼굴로 기루에 가시는 건 아주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말해버렸다. 삼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파문을 당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삼구는 두려움에 빠졌다.
“허. 나 참. 분위기 잡길래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삼구야. 네가 솔직히 말했으니, 나도 본심을 말해주마.”
소년, 성기는 다 먹은 국 접시를 집어던졌다.
“내가 성년이 되어 계집질 좀 하겠다는데 네가 왜 시비냐!!”
빠---악.
내공이 담긴 국그릇에 얻어맞은 삼구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 * *
‘여자 좀 안겠다는데 이 망할 놈이 어디서 훈계질이야?’
나는 건방진 하인을 방 안에 집어넣었다.
“녀석, 그래도 <비도왕>의 비기를 피하다니. 이제는 쓸만해 졌군.”
내기를 실어 던진 국그릇은 비도술의 묘리가 실려있었고,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려던 삼구는 날아가면서 휘어진 국그릇에 정확히 머리를 얻어맞았다.
“크으. 나란 놈, 사실 엄청난 스승이 아닌가? 약초꾼을 일류로 키워내다니. 야, 듣고 있지? 너 나한테 잘 해야 한다.”
나는 기절한 삼구를 발로 밀어 이불 위에 엎어놓았다. 삼구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나는 삼구에게 목숨을 빚진 대가로 13년 동안 옆에서 무공을 가르치며 그를 키웠다.
‘덤으로 나도 성장하고.’
삼구에게 백년삼을 먹일 때 나는 인형설삼을 먹었다. 삼구에게 대련이라는 명목으로 비무를 할 때, 나는 내 근골을 다잡고 내기를 움직여 몸을 단련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이런 것 아니겠는가. 내가 아무리 행패를 부리든 삼구는 무공을 배우는 거로 나를 진심으로 스승이라 여겼다.
“근데 오늘은 좀 많이 건방졌지. 암.”
스승이 13년 만에-전생까지 포함하면 몇십 년-만에 허리 좀 써보겠다는데 어디서 방해를 한단 말인가. 나는 하초가 뜨거워지는 감각을 즐기며 산 아래로 달렸다.
'내가 성인되는 날만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쿵, 쿵, 쿵!
초상비와 허공답보를 적절히 번갈아 가며 깎아지른 산을 타고 달린다.
일류는 커녕 고수들조차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승의 무공이지만, 나는 큰 부담 없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혈강시 시절에 눈으로 보고 배워두기를 잘했네.’
혈교의 교주에게 혈강시로 이용되며 수많은 정파의 고수들을 쳐 죽이던 시절. 혈교 교주는 나를 연구한다는 목적으로 내 몸에 온갖 무인들의 피를 섞었다.
덕분에 나는 혈교의 사술로 온갖 무인들의 무공을 익힐 수 있었다.
육체에 대한 지배권은 교주에게 있었지만, 정신만큼은 또렷이 차릴 수 있었다. 오직 생각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나는 혈강시로 지내며 온갖 무공을 눈과 머리로 익혔다.
‘놈들이 알면 까무러치겠군. 자기들의 무공이 이런데 쓰인다니 말이야.’
한걸음에 산 아래로 달려가는 이유는 단 하나.
여인을 안기 위해.
마음이 맞는 여인도 아닌 돈으로 사는 여인이지만, 내가 성욕이 거세된 놈도 아니고 물 좀 빼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삼구 놈, 분명 부러워서 그런 게 틀림없다. 동정 주제에 자기가 떡칠 생각을 안 하고 스승의 사생활을 지적하다니...쯧즛.”
하인이 막는다고 멈춰설 내가 아니다. 나는 적당히 마을 근처부터 천천히 땅에 발을 딛고 대로를 걸었다.
“오랜만이오, 김 형!”
“어이쿠, 우리 성 선생 오셨는가.”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남자는 성의 관졸로 마을의 치안을 지키는 경비병이었다. 나는 그에게 몰래 주머니 하나를 품에 찔러넣었다.
“오늘도 그걸 하러 왔네. 못 본 척해주시게.”
“크흠. 뭔진 모르겠지만 잘 받지. 아, 맞다. 그 일을 하는 걸 깜빡했군.”
관졸은 손을 맞잡으며 혼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기루에 높으신 분이 온다고 하던데~”
“높으신 분이라...흠.”
나는 관졸의 수색을 무사히 빠져나와 성안으로 들어왔다. 성안에는 입구부터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확실히 얼마 전에 왔을 때보다는 경직되어 있어.’
돈 버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 저잣거리 상인들이 상당히 경직되어있다. 거리 곳곳에 깔린 경직된 분위기에 나는 봇짐에 챙겨 넣은 약초를 챙겨 빠르게 약방으로 향했다.
"이리 오너라."
"시건방진 새끼."
약방의 노인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원래는 등허리가 굽어있던 그는 반듯한 자세로 나를 맞이하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얼씨구? 자기 가게에 침을 뱉다니. 위생 상태가 엉망이구먼. 이거 딴 곳에 팔아야겠구려."
"지럴. 네놈이 어디 다른 곳에서 제값 받을 수나 있겠느냐? 입 닥치고 가져오기나 해라."
"하여튼 노인네 입 한번 더럽기는. 여기있소."
나는 봇짐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나뭇잎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적당히 내가 내키는 대로 약재를 잎 안에 집어넣은 다음, 적절한 비율로 섞어 돌돌 말아 입에 물었다.
"이번에 좋은 거 하나 발견했으니 은자 두둑이 준비했을 거라 믿소."
"뭘 발견했는데? 이 안에 따로 감싸놓은 거?"
노인은 봇짐 속 이중으로 포장된 보자기를 꺼내 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튕겨 고개를 끄덕인 뒤, 검지 끝에 삼매진화를 일으켜 잎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진짜 고생해서 얻은 것이니 잘 쓰시오. 이 근방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이니."
"인형설삼이라도 되면 몰라. 아주 건방지기 짝이 없...백수오로군."
노인은 진지한 얼굴로 상처하나 없는 백수오를 찬찬히 살폈다. 길이가 내 팔 만큼 긴 백수오는 척 봐도 오랫동안 묵은 것처럼 보였다.
"이, 이건 설마...!"
"천년하수오 같은 소리 할 거면 의원 때려치우시오."
"백 년 묵은 백수오군."
"크하하! 그래서 백수오인가?! ...크흠. 그,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시오."
나는 잎담배를 한 잎 크게 빨아당겼다. 약재 특유의 향이 내 폐부를 깊숙이 찔러 들어왔고, 나는 몸 안에 쌓인 노폐물을 적당히 숨결에 섞어 뱉으며 호흡을 골랐다.
"매처럼 빠른 거래를 원하오. 은자 석 냥만 주시오."
"...너무 빠른 결정이라 칼에 베이는 것 같군."
노인은 주섬주섬 상자를 꺼내 들었다. 안에는 무거운 은자가 무려 여덟 개나 들어있었다.
내가 부른 값보다 무려 다섯 개 나 더 많이 들어 있는, 내가 캐온 백수오가 이 근방에서 팔리는 '적정시세'였다.
"이문은 안 남기고? 이렇게 사들여서 어디 남는 게 있소? 오랜만에 척추도 섰는데 안사람에게 남편 위엄이나 한번 살려야지."
"닥쳐라, 이놈아. 어린놈 등쳐먹는 건 내 양심이 허락 못 한다. 이건 여덟 냥 값이야."
"그놈의 양심이 은자 다섯 냥 벌어주나? 나야 좋지."
나는 상자를 보자기에 챙겼다. 이걸로 군자금을 벌었으니, 이제 소비를 하러 갈 차례였다.
"잠깐만."
"또 왜 부르시오?"
"너 이 새끼, 설마 또 좆질하러 가려는 건 아니겠지?"
노인의 말에 나는 절로 발걸음이 멈췄다. 어째 아침부터 밥맛이 뚝 떨어진다더니, 여기서도 한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거참. 내가 힘들게 캐낸 하수오로 고작 여자를 안으려고 하는 줄 아시오? 그리고 좆질이 뭐요? 상스럽게."
"내가 틀렸냐? 네가 이 백수오로 기루에 가는 게 아니라면 내가 이 백수오 도로 돌려주마."
"좆질을 하려는 게 아니라 운우지정을 나누려고 하는 것이외다."
노인은 나를 '그러면 그렇지'하는 얼굴로 쳐다봤다. 나 또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기에 상자를 넣은 보자기를 단단히 동여매었다.
"어린놈이 대가리만 까진 줄 알았더니 좆대가리도 까져가지고는.... 쯧쯧쯧. 세상 말세군, 말세야."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어린놈이라니! 나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오!"
"보통은 뒤에 더 화를 내야 하는 게 아니냐?"
"어린놈이라는 것이 더 화가 나는군! 안 그래도 오늘 아침부터 한 소리 들었소! 이 얼굴로 기루에 드나들면 오해한다고!"
나는 약방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하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되기 직전인 상태까지 체격은 건장하게 자랐다.
나이는 분명 성인이다. 나이는.
"보시오, 이 다부진 몸을! 가히 외공의 초고수가 아닌가!"
"곱상하게 생긴 게 옷만 좀 꾸며 입히면 영락없는 계집이나 마찬가지인데?"
"계집.... 크흠, 역시 수염을 길러야 하는 건가?"
나름 안휘 제일 미녀의 피가 반쯤 흐르기 때문일까. 망가지지 않은 내 얼굴은 노인의 말대로 생각보다 곱상했다. 진짜 여장을 하면 여인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뭐, 얼굴이야 어떻든 상관없지! 여자를 품는데 얼굴이 필요한가? 이것만 있으면 되는 법!"
나는 바지 앞섶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겼다.
"보시오! 이게 어디 애새끼인가? 애 만드는 새끼지!"
"...개새끼 말하는 거 하고는."
노인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바지 안에 있는 나의 천마(天馬)는 머리를 들지도 않았는데도 그 존재감이 겉으로 드러날 정도였다.
"얼굴이 애새끼라도 이건 어른이면 되는 거 아니겠소?"
"나야 네 놈의 성질머리를 알고 있으니 여기서 끝나지만, 오늘 여기에 오는 예의범절 따지는 것들은 조심하라는 말일세."
"아니, 나는 기루를 갈 예정인데 공맹 따지는 샌님들을 조심하라? 그자들이 기루에 온다는 말인가?"
"앞에서는 무림의 정사를 논하면서 뒤로는 여체를 탐하는 게 놈들 아닌가?"
"과연. 그래서 정사를 돌보는...크흠. 알겠네, 알겠소. 거참. 하인 놈은 이런 거 다 받아주던데."
나는 몸을 돌려 약방을 나왔다. 마침 약방 앞에 트인 대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비켜서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뭐야?"
달그락, 달그락.
말발굽 소리와 함께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들려온, 그리고 중후한 내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
마차 안. 창틀에 붙여진 창호지의 틈으로 보인 단아한 흑발의 미녀에 나는 입안의 침이 말랐다.
"팽유월?"
참마도(斬魔刀).
하북팽가의 여식으로 백대 고수의 반열에 올랐을 만큼 무공이 출중한 여자.
오호단문도를 극의까지 익혀 정마대전에서 크게 활약을 한 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무인과 눈이 맞아 결혼하여 하북팽가를 이끌 후계자를 낳은 여걸.
'어렸을 때도 예쁘네. 맨날 피를 뒤집어쓴 나찰 같은 모습만 봤는데.'
나는 마차가 대로를 지나갈 때까지 그녀의 얼굴을 마음껏 구경했다. 창호지로 창을 가리고 면사포까지 둘러 얼굴을 가렸지만, 내기를 발현하여 투시안까지 사용한 내 눈은 피할 수 없었다.
"역시 여섯 봉황 중 한 명...!"
"응? 그게 무슨 말이오, 형장?"
"무슨 말이긴? 방금 지나간 마차 안에 탄 팽가의 여식이 여섯 봉황 중 한 명이 아닌가?"
"미친 소리."
"...육봉은 못해도 약관 근방의-아차차."
나는 손을 흔들며 자리를 피했다. 애를 가졌으면서 남편이 상처를 입자 태도를 들고 뛰쳐나와 마인들을 도륙하던 장면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그녀의 나이를 순간적으로 착각하고 말았다.
'하여튼 과거로 돌아오면 이게 문제야.'
수십 년 전으로 돌아온 나머지, 내가 생각하던 이들이 지금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에 오한이 들었다.
당장 팽유월만 하더라도 백대고수가 아닌, 여섯 봉황은커녕 후기지수 중 조금 빼어난 수준의 무공을 가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좋아, 결정했다."
나는 봇짐을 꽉 움켜쥐고, 원래 목적지인 기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팽유월 닮은 기녀로 긴 밤이다."
한 발로는 부족하니 하룻밤을 사면 되리라.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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