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2화 〉현무 던전 (4) (122/124)



〈 122화 〉현무 던전 (4)

121화.



스으으으-

“뭔가 공기가 차가워진 거 같지 않아요?”
“좀 끈적해진 것도 같은데. 여튼 찝찝한 기분이에요.”

다소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한지수의 물음에 백보아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최종택도 동의하는 바였다.


‘뭐지? 뭔가 달라졌어.’

단순히 하는 말이 아니다.
마치 가을의 낮에서 밤이 된 것처럼 공기의 선선함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그도 의아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나름 짐작이 가는 건 있었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이것 때문인 것 같은데……’

그가 마력을 흘려넣었을 때 뜬 메시지.
무슨 조건을 충족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마력을 흘려보낼 때 평소와는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었다.
그렇다고 자기한테 그런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비슷한  수라기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수라기가 발동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진 연출인가?’

자신이 아닌 이 던전의 문제가 아닐까?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풍경이 보인다. 달라진 건 마력만이 아니라는 듯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내부.

전체적으로 붉은 빛과 선분홍 빛을 띄던 벽들은 검붉은 빛으로 물들어 전체적으로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그 분위기에 걸맞게 따갑게 찔러오는 바람에 닭살이 돋는다.
마치 새벽의 공동묘지에  것 같다.

‘뭔진 몰라도 심상치 않긴 하네.’


좀 전의 그 평화롭던 던전이 맞는지 의심될 지경이다.
그녀들도 비슷한 감상이었는지 표정이 심각하다. 그중 특히 불안한 기색을 보이던 한지수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종택아, 어떻게 할거야?”
“뭘?”
“이대로 던전을 마저 돌 거냐는 거지. 보고를 올려야하지 않을까?”
“흠……”


평소라면 그게  상관이냐며 닥돌을 선택했을 그이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었다.


‘지수도 있고, 특수한 상황이긴 해.’


일반 던전도 아니고 무려 철갑 던전 아닌가. A등급 던전이다보니 섣불리 판단하기엔 불안요소가 너무 많았다.
자신의 섣부른 판단에 동료들까지 피해를 보는 것도 미안하고.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한데…’


무슨 조건을 충족했다는 건지, 방금 그 이질감이 느껴졌던 마력은 무엇인지 궁금한  투성이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그럼 우선 보고부터 올리고 회의를 좀 해볼까? 협회장 님이라면 뭔가 알지도 모르니까.”
“좋아. 그렇게 할까?”

예상치 못한 결정이었던 걸까.
내심 불안하게 바라보던 한지수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리고 그건 옆에 있던 백보아나 아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어머, 웬일로 좋은 생각을 하시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만날 남자는 빼지 않는다 뭐라느니 하더니만…, 갑자기 사람이 바뀌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데 혹시…?”
“……”


이게 이렇게까지 반응할 일인가.
좀 억울하긴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아니기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일단 나가자.”
“네.”
“응.”

그러며 휙 앞장서자 그녀들이 뒤를 따라온다. 던전을 빠져나오는 방법은 간단했다. 던전에 위치한 입구를 통해 빠져나가면 끝이다.
처음 입장했던 위치에 문이 생기는 일반 게이트와 달리, 철갑 던전은 클리어한 방에 뜨곤 했다.

‘철갑 던전의 특성상 던전의 구조가 특이하고 길어서라했나?’

 외에도 던전에 자아가 있다느니 여러 가지 가설은 있지만, 자세한 이유는 박사들도 아직 연구중이라고 한다.
뭐가 됐든 최종택으로선 좋은 일이었다.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침착하게 회의할 수 있게되었으니까.

탁.

그렇게 입구 앞에 도착한 최종택이 발을 들이밀었을 때였다.


파지직-!


“으헉!?”

입구에 몸이 닿는 순간, 강렬한 검은 빛이 튀어올라 최종택을 휘감았다. 살이  듯한 고통에 재빨리 발을 빼자 아리아가 당황해서 소리친다.

“흐이약! 뭐, 뭐예요!”
“흐억?”


당연하지만 누구보다 당혹스러운 건 최종택이었다.

띠링-


[던전의 지배자가 깨어난 상태입니다.]
[봉인에서 깨어난 ‘………’를 처치하십시오.]
[그 전까지 던전에서 벗어날  없습니다.]

‘이, 이게 뭐야.’

갑작스레 스파크가 튄 것도 놀라운데, 눈앞에 뜬 메시지는 그야말로 컬처쇼크였다.
이건 순 들어올 덴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아닌가.

여러모로 보고와는 전혀 다른 던전이었다.
그리고 이건 그에게만 보이는 게 아닌지 그녀들의 안색도 심각해졌다. 그중에는 외부에 연락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봉인…? 그게 뭐죠?”
“당연하지만, 밖이랑 연락도  돼요.”


그래도 핵을 만졌을 때의 알림은 못  건지 메시지가 뭘 뜻하는지까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사정을 설명할까 고민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뭔지 모르겠는데.’

아직 본인도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섣불리 말해봤자 정보과다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해결방안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해결방안이라 할 게 있나?’


밖으로 나가는 건  된다.
외부와의 연락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누구나 느끼고 있는 답을 입밖으로 꺼내려던 찰나였다.

사아아-


“…!?”
“흡!?”


공기가 무거워졌다.
잠깐 사이 중력이 몇 배로 늘어난 듯한 압박감이 몸을 짓눌렀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만큼 강렬하다 못해 악랄한 마력.
1초나 될까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 몸을 훑고 사라졌지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에 반응하듯 내부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지진이 일어난 듯한 떨림에 가까스로 중심을 잡기도 잠시, 고개를 든 최종택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미친, 저게 뭐야.’

그런 그의 눈에 비친 건 벽이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듯 양쪽에서 검은 벽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천지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벽이움직이는 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압박감이었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자신에게 나온 건지 아닌지 분간이 안  정도로.  압도적인 절경에 모두가 말을 잃고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변화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푹신하던 바닥이 움푹 꺼지더니 이내 그들이 있는 지름 50M를 제외한 모든 바닥이   갱도가 되어있었다.

하늘섬이 있다면 이러할까.
마치 절벽 위에 있는 것처럼 허공에 붕 떠있는  상당히 낮선 일이었다. 심지어 그 광경이 아름다운 동화 속 풍경이 아닌, 희대의 공동묘지에 가깝다면 더더욱.

“이게 무슨……”
“이게 A등급 던전이라고요? 말도 안 돼…”


그 막막한 광경에  말을 잃은 건 최종택도 매한가지였다.

‘와, 미친 진짜 꽉 다물어져있네.’


인어의 밑이 저러할까.
그도 그럴게 입구가 있던 곳은 벽이 가로막고 있고, 주변은 온통 나락일 뿐이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기류의 정도가 결코 낮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막막하네.’

여기서 벗어날 방법이 있나?

‘벽을 부수고 나가? 아냐, 분명 그 전에 떨어질 거야.’

플라이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있다해도  벽이 부서지긴 하는 걸지 모르겠다. 좀 전에 스파크가 튀었던 것들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같을 확률이 클 터.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저 벽이 부서지긴 할까 싶다.

‘저건 커도 너무 크잖아.’

자기도 꽤나 크다고 자부하는데, 저건 진짜 거대한 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시도할 방법이 그거밖에 없나…’

어쩌면 한지수에게서 플라이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으로 엿보기 구멍을 사용해보려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

“…어?”
“벼, 벽이 움직여요!”


땅이 흔들린다 싶더니 이내 모세의 기적이 펼쳐졌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영원히 닫혀있을 것만 같았던 검은 벽이 스스로 멀어지고 있었으니까.

천지를 가리고, 시야를 뒤덮던 벽이 열리고 있다.
 너머는 의외로 별 거 없었다.
그저  빈 어둠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저 경외롭게 바라보게 되는 마력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그 후였다.
한술 더  바닥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모세의 기적을 재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렬한 마력이 휘몰아치더니 그들이 있는 곳과 벽 너머를 일자로 그은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을 뼈대로 하나의 다리가 생성되었다.
마치 우주를 담은 듯한 다리.
검은 마력에 알  없는 빛이 섞여있어 주변 배경과 참으로  어울리는 모습이다. 평소라면 그에 감탄이라도 할 법했으나, 그들  누구도 감탄사를 내뱉는 이는 없었다.

그 대신 식은땀을 뚝뚝 흘렸다.

‘이게 무슨…’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벅저벅.

저 다리를 지나  너머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괴물이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있어 상당히 친숙한 실루엣이라 할 수 있었다.


‘사람…?’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애매한 실루엣이지만, 그것은 분명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최종택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게 강하고 악랄한 기운이다.’

평범한 실루엣이에서 느껴지는 압박감만은 그 누구보다 거대한 거인이었으니까.
오죽하면 최종택도 긴장할 정도였다.

‘…최소 아수라보다 강해.’

이 정도면 못해도 S-급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충격에 놈에게서 시선이 떠나질 않는다.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놈은 그저 천하태평했다.


저벅저벅.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다가온다.
검은 실루엣이 좁혀질수록 최종택과 그녀들의 몸이 점점 딱딱하게 굳는  느껴졌다. 그렇게 영겹과도 같은 수초가 지나.


터벅.

[흐음…?]

그들의 앞에 도달한 실루엣이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했다.
모자를 쓰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이 훑고 지나간 건 느낄 수 있었다.
한지수부터 아리아, 백보아 예나까지 확인한 놈의 표정이 점차 의아해진다.
그러다 이내 최종택과 눈을 마주한 순간.

[호오?]

무심하던 놈의 눈이 처음으로 빛을 내더니 이내 흥미롭다는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흥미로운 걸 가지고 있구나. 그대가 나의 봉인을  것인가?]
“그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최종택이 툭 내뱉듯 참아왔던 질문을 던졌다.

“…넌 누구지?”
[나 말인가?]

그에 놈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모자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드러난 하관은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웃고있었다. 붉은 입술로 보기좋게 호선을 그린 놈에게서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위 마족, 에바리안 자작이라고한다. 너희 인간들은 나를 인큐버스라고 부르더군.]
“…!”

두 번째 마족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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