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현무 던전 (3)
120화.
지원팀이 하는 일은 흔히 두 가지다.
헌터들이 입장하기 전에 던전에 이상이 있지 않은지 점검하는 것과 던전이 끝난 후 뒤처리를 맡는 것.
그게 그들의 주된 업무였고, 얼마나 일을 완벽하게 해내느냐에 따라 추가수당이 지급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저 두가지 일 외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헌터들이 지지고 볶든 뭘 하든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특수한 던전의 경우 추가수당을 받고 던전을 세세히 감시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번이 그 특수한 경우에 속했다.
“똑바로 확인해라, 무려 협회장님이 직접 지시한 일이야. 모처럼의 철갑 던전이니까 이전의 던전들과 같게 생각하면 안 돼.”
철갑 던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던전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측에 속하는 던전이다. 같은 등급이라도 위험도나 보상이 더욱 큰 걸로 유명한 던전.
일종의 특수 던전 같은 거다.
어디에서 굴러 떨어진 던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던전의 구조부터 클리어 방식까지 많은 게 다르다고 한다.
하나 사실 그런 건 지원팀에서는 알 바가 아니었다. 딱히 부산물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헌터들이 뭘 얻은 그들이 알 바는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주의하는 건 오직 하나였다.
던전 브레이크.
흔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예정보다 빠르게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경우는 대개 철갑 던전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말썽을 일으키는 던전이기도 하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어으, 안 그래도 눈알 빠지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세하게 점검해도 이상이 없었는데 설마 생기겠습니까. 걱정이 너무 많으십니다.”
“이 새끼가 지금 말대꾸야? 편하게 대해주니까 아주 맞먹지?”
“…죄송합니다.”
그 와중에 협회장님이 직접 신경 쓰라는 명령까지 내렸으니 어찌 신경이 예민하지 않을까.
협회 소속 지원팀인 그들로선 밤을 새서라도 지켜봐야할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헤이해진 대원의 군기를 잡은 차 팀장이었으나, 사실 그도 대원와 같은 생각이긴 했다.
‘하기야 뭔 일이 있을 리가 있겠냐만은…’
본인이 생각해도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던전을 점검했을 때도 그렇고, 탐사팀이 직접 며칠에 걸쳐 탐사하고 지켜봤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 않은가.
평소보다 더욱 각별히 신경 썼으니 확실했다.
‘애초에 철갑 던전이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는 해도 그게 확률이 몇 퍼냐 되겠냐고.’
굳이 따지면 한 20번 꼴에 한 번 정도이지 않을까?
애당초 철갑 던전이 희귀한 걸 감안하면 거의 없다시피하단 소리다. 이렇게 시간낭비할 바엔 모처럼의 휴일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에휴, 까라면 까야지.’
무려 협회장이 지시한 일인데 일개 팀장인 그가 반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대까지 얼마나 남았더라. 2시간 정도 남았나?’
학교 점심시간 10분 전이 더럽게 시간이 안 가듯, 이때가 가장 괴롭다.
곧 퇴근할 생각에 마음은 설레고, 그에 비례하듯 더럽게 가지 않은 시간이 매초 눈에 밟히는 탓이었다.
이럴 때면 차 팀장은 행복한 상상을 하며 시간을 떼우곤 했다.
집에 가면 뭐하지?
일단 잠부터 한 숨 때리고 생각할까?
밥은 뭐 먹을까?
마침 내일부터 휴일이니 길드 레이드도 돌아야겠다.
34살 먹고도 솔로인 건 슬픈 일이지만, 바가지할 마누라도 없으니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다.
차 팀장의 유일한 삶의 낙이랄까.
‘빨리 퇴근하고 싶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과 밀린 일을 떠올리며 시간을 떼우고 있을 때였다.
“…팀장님!”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상상의 나래에 젖어 듣지 못했는지 차 팀장이 멍하니 턱을 괴고있자, 이번엔 더욱 큰 소리가 터져나왔다.
“차, 차팀장님…!!”
“어어? 뭐, 뭔 일이야.”
당황한 듯 순간 얼탔지만, 이내 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감히 행복회로를 방해한 대원이 괘씸했던 것이다.
평소 멍 때리는 걸 방해받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그의 성향을 잘 알지만, 대원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더, 던전을 좀 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던전? 던전을 갑자기 왜?”
“이, 일단 오시면 알 겁니다.”
방금까지 잘 있던 던전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온단 말인가?
영문을 모를 일이었지만, 대원의 표정이 워낙 심각했기에 차 팀장도 순순히 그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이내 게이트 앞에 도착한 순간.
“미친…!”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씨발, 이게 뭔 일이야. 던전이 왜 시꺼먼 거야?’
분명 좀 전까지 영롱한 바다처럼 푸르게 빛나던 게이트가 짙은 밤하늘처럼 검게 물들어있다.
마치 어둠에 잠식된 것만 같은 모습.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보니 이 상황이 그저 꿈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이어진 대원의 말에 그는 꿈에서 벗어났다.
“마, 마력 수치가 이상합니다. 색이 검게 물들면서부터 마력량이 가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어요.”
“어, 얼마나 상승했는데?”
“현재 마력량 129,841…. 883….924… 방금 막 13만 됐습니다. 지금도 계속 오르고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차 팀장의 머리에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좆됐다.’
마력량 13만.
이건 가히 A+급에 달하는 수치였다.
그것도 최상위 A+급 던전에서나 한 번씩 볼 법한 수치.
일반적인 A급 던전이 10만이고, A+등급이 12만을 좀 넘기는 걸 생각하면 지극히 높은 수치라 할 수 있었다.
당장 지금만해도 놀라운 상승폭.
하나 진짜 문제는 아직도 수치가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14만… 15만…. 방금 17만 달성했습니다.”
“미친… 어디까지 오르는 거야 대체?”
“그, 그래도 조금씩 줄어들곤 있습니다만… 이 추세라면 20만까지 찍을 것 같습니다.”
“환장하겠다.”
20만이라니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진다.
‘저 정도면 최소 S-등급 던전이잖아…!’
B등급과 A등급에는 하나의 벽이 있다.
B등급 던전이 기껏해야 5만 정도의 마력량인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거의 2배는 차이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런 A등급조차 S등급과 비교하면 그저 귀여운 아기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당장 마력량부터가 몇 배는 차이나니까.
B등급과 비교하면 수십 배까지도 차이가 나는 게 S등급 던전이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S-에서 그친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하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행복회로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나 S나 터지면 끝이라는 건 똑같잖아!’
마력량 5만인 B등급 던전만 터져도 도심이 위험하다. 한데 단순계산으로 그의 4배인 저 던전이 터진다면?
피해 정도를 상상하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처분을 받을지도.
-아끼는 헌터와 손녀가 들어갔으니 각별히 신경 써주길 바라네.
이 순간 협회장의 말이 떠오른 건 우연일까.
어느새 시꺼매진 게이트 만큼이나 참담한 미래에 꿀꺽 침이 넘어간다.
‘이건 시말서론 안 끝난다.’
최소 퇴사는 각오해야하고, 어쩌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며 발생한 피해보상까지 청구당할지도 모른다.
협회장의 성격상 그러진 않을 것 같지만, 손녀의 안전이 걸릴 일 아닌가.
‘협회장님이 자신의 사람을 지극히 아끼기로 유명했었지…’
실제로 협회장의 사촌이자 협회소속 직원을 한 대형길드에서 건드린 적이 있었다. 5대 길드만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제법 이름 좀 쓰던 길드였다.
제법 유망한 헌터들도 대거 있던 곳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산산조각났던가.’
이룩했던 기간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와해되었다.
협회장의 사람을 건드렸다는 이유 하나로.
사촌도 그럴진데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소문이 자자한 손녀딸과 S급 유망주 최종택이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어쩌면 피해보상으로 끝나는 게 다행일 수도 있지 않을까?’
소리소문없이 납치당해 고문이라도 당할까 두려웠다.
다시금 마른침을 삼킨 그가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옆에 있던 대원에게 물었다.
“…최 헌터와 일행 분들이 S-급 던전을 깰 확률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전혀 없죠. 유명한 유망주이시고 또 혼자서 A급 던전도 깨시는 분이라곤 하지만… S 타이틀은 차원이 다르잖아요.”
“……”
“어…, 방금 고조 23만 찍었습니다. 조금씩이지만 더 오르고 있습니다.”
이러다 S급 찍는 거 아냐?
순간 강한 불안감이 급습했지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내뱉어본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 아니냐? 무려 역대 최고의 유망주잖아? 이번에 사신 길드에서 집중해서 키우고 있는 유망주 보내기도 했고.”
“……”
대원은 대답 대신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때론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욱 확실하다했던가. 그의 침묵을 그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으로 받아들였는지 차 팀장이 눈을 양손으로 덮었다.
그리곤 마른 세수를 하듯 천천히 쓸어내렸다.
‘나 어쩌냐…’
세상이 미웠다.
왜 하필 자신이 담당한 시간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 기왕 일이 터질 거면 2시간 후에 터지지.
‘S-던전이 뭐야 S-던전이… 씨발.’
차 팀장도 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유망주들이라도 S-급 던전의 보스를 잡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심지어 23만이면 보통 S-급 던전도 아니다.
평균적인 S등급 던전이 30만인 걸 생각하면 사실상 ‘-’가 붙는 게 부끄러울 정도의 난이도.
잔뜩 울상을 짓던 그가 이내 발악하듯 소리쳤다.
“빠, 빨리 협회에 지원요청보내고 보고 올려!”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몰라 씨발, 나도 이젠 다 모르겠다. 헌터님들을 믿어봐야지……”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기도가 마려웠다.
-
“……”
최종택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수한 마력?
봉인?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협회에서 보낸 탐사팀에게서 들은 보고에선 이런 게 없었다.
제아무리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던전이라지만 이건 예상외여도 너무 예상외였다.
“이게 무슨 일이죠?”
“그, 그러게요……”
그녀들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여유만만하던 기세는 어디가고 다소 의아한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던전의 기류부터가 달라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