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안전구멍
113화.
"흐이이아각!?"
"어…?"
다소 이상한 비명에 여자가 시선을 내렸으나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말끔한 수풀과 흙, 그리고 돌멩이나 나뭇잎 따위만 보일 뿐.
예상과는 다른 광경에 여자가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서 눈치를 보던 단발 머리 여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아무 것도 없네. 너가 예민했나봐."
그에 고양이 같은 남색 머리의 여자가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다시 봐도 근처엔 아무도 없다. 영 이상함을 느낀 건지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친구에게 물었다.
"그금 분명 뭔가 소리가 들렸었는데… 여자 비명 소리 같은 거 못 들었어?"
"에이, 잘못 들은 거겠지."
"아니… 그럼 아까 전에 그 빛은?"
"누가 후레쉬 같은 걸 잠시 키고 간 거 아닐까? 어두우니까."
"그, 그런가…?"
뭔가 찝찝한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녀였지만,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친구의 말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상식적이었으니까.
오히려 아무 근거 없이 그저 들었다고 외치는 게 더 이상했다. 사실 자신도 어느정도 예민한 걸 인정하기도 하고.
하지만…
'분명 들었는데… 언뜻 금발을 본 거 같기도 하고…'
잠깐이지만 여자의 형체를 봤었다. 그것도 외국에서나 볼 법한 완벽한 몸매의 실루엣과 찬란한 금발을.
심지어 나신이었던 거 같은데…
너무 스쳐지나가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 그건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게 헛것이었다고?'
자신이 발정난 남자도 아니고 이럴 수가 있나?
혹시 몰라 눈을 비비고 쳐다봐도 아무 흔적도 안 보인다. 그저 살짝 눌린 듯한 수풀과 거대한 나무, 그리고 작은 돌멩이와 흙 정도가 전부.
"이제 빨리 가자. 너 피곤해서 그런가봐. 아까 소개팅에서 까여서 그런 거 아냐?"
"…내가 깐 거라니까."
"아무튼! 얼른 가자구. 너가 자꾸 그러니까 귀신 본 거 같아서 무섭잖아."
여러모로 의문스런 상황이었지만, 옆에서 재촉하는 친구의 말에 그녀는 끌려가듯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가는 두 여자를 보며 최종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좆될 뻔했네."
놀랍게도 그는 나무 뒤에 그대로 서있었다.
심지어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반쯤 나신으로 있는 아리아를 안고 있는 상태로. 그럼에도 두 사람이 그들을 못 본 건 당연했다.
[안전구멍이 발동되었습니다.]
[안전구멍에 있는 동안 외부에 간섭할 수 없으며, 외부의 간섭도 받지 않습니다.]
'설마하니 안전구멍이 이런 스킬이었을 줄이야…'
안전지대를 설치하는 스킬일 거라고는 생각했다. 무려 S+등급이니 상당히 튼튼하고 좋은 것일 것도 추측했고.
하나 이건 상상이상의 성능이었다.
'간섭을 아예 무시한다라… 부피가 클 거라 생각했는데 일종의 아공간 같은 느낌인가?'
그야말로 절대방어라는 것 아닌가.
내부에서도 아무것도 못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기인 건…
'안에서는 밖이 보이다니. 이게 제일 사기 아닌가?'
안을 보지 못하는 듯한 그녀들과 달리 최종택은 아무런 방해없이 그녀들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약간 반투명하게 보이긴 했지만 시야에 지장은 없었다.
'취조실에서 쓰이는 유리같은 느낌인가?'
뭔가 옵저버가 된 것도 같다.
정확히 아공간 같은 개념인지, 아니면 안과 밖이 부피 차이가 있는 것뿐이지만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장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집이든 바깥이든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유틸성.
그게 이 스킬의 진면목이었다.
'음, 역시 구멍은 절대적 피임이지.'
위험할래야 할 수가 없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소매가 끌리는 느낌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떻게 된 거에욧? 왜 눈이 마주쳤는데 못 보고 가는 거죠?"
"아."
혼란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하기야 아무것도 모르고 눈이 마주친 상태로 굳어있었을 테니 그녀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스릴러가 따로 없었을 터.
"아, 이거 스킬이야."
"스킬요?"
이걸 뭐라 설명해야할까.
잠시 고민하던 최종택이 이내 기가 막힌 게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콘돔 같은 스킬이지."
"…?"
사실 다른 비유를 떠올렸지만, 차마 거기까진 말 안 했다. 그 충격적인 비유에 아리아는 이해하길 포기했는지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뒤늦게 뜻을 파악했는지 얼굴이 붉어진그녀가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린다.
"치, 피임도 안 하면서 무슨 콘돔 같은 소리래요."
"……"
뼈를 때리는 한 방이었다.
그러고보니 최종택도 의문이긴 했다.
'생각해보니 다 안에다 싼 거 같은데 왜 다들 멀쩡한 거지?'
옛날에는 자박꼼의 영향으로 여자들이 안에 싸라고 애원해서 별 생각없이 쌌었는데 이쯤되니 의문이긴 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아리아나 예나, 그리고 백보아의 경우 한두 번한 게 아니지 않은가.
그쯤되면 임신이 되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혹시 자박꼼의 능력인가?'
대놓고 따먹고 다니라는 뜻으로 자동피임을 해주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고 있을 때였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제가 알아서 다 피임하고 있는 거지. 매일 어필해도 안 해주는데 쓸쓸하게 피임약 먹고 있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요?"
"……"
아무래도 착각인 듯했다.
그것도 상당히 미안한 사연에 할 말이 없었던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분들도 아마 다 피임하고 있을 걸요?"
"…그래? 넌 언제부터 했는데?"
"그야 승급시험 때부터죠? 그런데 그게 이제야 궁금해진 거예요? 진짜 무책임하시네욧. 맨날 안에다 싸지르면서…"
"……"
뼈가 너무 아프다.
상상이상의 크리티컬 팩폭에 최종택이 옆구리를 살살 문질렸다. 하기야 자신이 생각해도 그간 그녀들에게 무신경하긴 했다.
멋쩍어하는 최종택을 보며 아리아가 고개를 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알면 잘하라구욧. 맨날 방치하기나 하구 말이야. 방치플 좋아해요?"
"음…"
그것도 좋긴 하지.
물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입을 다물자 그녀가 한숨을 내쉰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흘겨보지만,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는 그녀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상황과 맞지 않는 반응이었지만,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진심 어린 섹스로 인해 각성합니다.]
[능력치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스킬 '수호신의 가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스킬 '거인의 분노'를 획득하셨습니다.]
그 어느 헌터가 눈앞에 있는 메시지를 보고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특히나 동료들과 격차가 많이 벌어져있던 그녀에게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다. 그런 그녀를 가여이 여긴 건지 스킬도 두 개나 얻었다.
심지어 그 스킬의 성능도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다.
[수호신의 가호]
-등급 : S
-설명 : 반경 30M 범위 안 대상 모두에게 방어력의 200%에 달하는 피해를 흡수하는 보호막을 부여합니다.
보호막을 받은 상태에선 데미지 감소 10%효과가 부여됩니다.
자신에게 받는 효과 : 추가적으로 데미지 감소 20%효과가 붙습니다.
대상이 받는 효과 : 설명과 동일.
[거인의 분노]
-등급 : A
-설명 : 두 번의 공격을 적중할 때까지 특정 부위가 거대해지며 공격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무려 A등급과 S등급의 스킬.
특히나 S등급인 수호신의 가호는 말할 것도 없는 끝판왕 스킬 급이었다. 무식할 정도의 받는 피해 감소가 팀원 전체를 보호하는 방어막 효과.
그야말로 탱커에 특화된 아리아에게 제격인 스킬이었다.
그뿐이랴.
공격 스킬이라곤 전무하다시피한 그녀에게 있어 A등급인 거인의 분노는 유일한 약점을 채워주는 단비와도 같았다.
[아리아]
[성별 : 여]
[나이 : 21]
[등급 : B]
[레벨 : 46]
[능력치]
[근력 : A (70 / 100)], [민첩 : B (80 / 100)]
[체력 : A (85 / 100)], [마력 : A (10 / 100)]
심지어 능력치까지 몰라보게 높아졌다. 민첩은 여전히 아쉬웠지만, 다른 스텟들을 보면 웬만한 A급 헌터 이상의 수준.
스킬까지 생각하면 A+등급 헌터의 수준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진 각성……'
온몸에 힘이 넘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녀들도 이런 기분을 느껴왔던 걸까. 그렇다면 왜 그리 한순간에 강해질 수 있었는지 납득이 된다.
이로서 더 이상 그녀들과 최종택에게 짐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 사실이 너무 기뻤지만, 그보다는 다른 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진심 어린 섹스……나도 했다구요.'
그간 어찌나 서러움을 겪어야했던가.
강해진 능력치?
일반 헌터들은 평생 꿈도 못 꿀 S급 스킬?
이젠 어딜 가도 대우받을 수 있는 A등급 이상의 헌터가 된 거?
그런 것들보단 최종택과 그토록 염원하던 진심 어린 섹스를 했단는 게 몇 배는 더 기뻤다. 이젠 그녀들 사이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푹.
"응?"
"…그냥 안겨봤어요. 그러면 안 돼요?"
그 고마움에 아리아가 품에 안긴 아리아가 괜히 틱틱거렸다. 그에 피식 웃은 최종택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적당히 힘줄이 돋은 큼지막한 손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에 아리아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헤…"
그 모습이 꼭 강아지 같다.
아리아에게도 채유린처럼 꼬리와 귀가 달려있었다면 기분 좋게 살랑이고 있지 않았을까.
묘하게 골든 리터리버와 포메라니안을 닮은 분위기에 최종택이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음. 할까?"
"……에?"
순진무구한 눈이 최종택을 올려다본다.
마치 '왜 얘기가 그렇게 돼요?' 라고 묻는 듯한 눈빛.
조금 전까지 야릇하게 신음을 토해내고 허리를 움직이던 여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어… 안 되나?'
하지만 그 모습도 잠시.
이내 큼지막한 눈을 반으로 접은 그녀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마치 자신은 관심없다는 듯 헛기침을 토해냈다.
"큼큼… 뭐,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야…"
그러면서 다리를 배배 꼬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박아달라고 외치는 듯했다.
보이기만 하면 다행인데 문제는 그녀의 위치였다.
양반다리한 최종택의 위에 올라탄 채 몸을 배배꼬니 자연스레 귀두가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자극한다.
'오우야…'
이건 참을 수 없었던 최종택이 그대로 그녀를 안으며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역시 언제 만져도 탄력 넘치는 가슴이다. 그 감촉을 즐기듯 어루만지다 유두를 튕기듯 만지자 그녀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런 그녀의 귓가를 살짝 깨물며 작게 속삭였다.
"여기도 사람 없으니까 괜찮지?"
"아흑, 좋…아 쫌! 또 넘어갈 뻔했네. 나도 멀쩡한 곳에서 하고싶다구욧! 여긴 밖이 다 보이잖아요!"
"일단 한 번 하고 가자."
"아휴 진짜 이 변태말미잘…! 이번엔 절대 안 돼요! 할 거면 다음에 해요."
그러며 고개를 홱 돌리는 아리아.
가슴도 못 만지게 양팔을 교차하며 꽁꽁 싸매는 걸 보니 이번엔 절대 뜻을 굽힐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최종택이 누구냐.
섹스에는 그 누구보다 진심인 남자다.
핥짝.
"하앙… 조, 좋… 뭐,, 뭐해요! 그, 그마안…"
계속해서 목덜미를 핥으며 위로 올라가며 손으로 허벅지 안쪽을 쓸어내리자 철통보안과도 같던 그녀의 팔에 점점 힘이 풀렸다.
이윽고 귀를 함락했을 때는, 언제 막았냐는 듯 맨가슴이 드러나있었다.
자연스레 번쩍 그녀를 안아들어 바닥에 눕히자 푹신한 무언가가 그녀의 등을 감쌌다. 마치 부드러운 살결이 감싼 듯한 감촉에 놀란 것도 잠시.
"그럼 한다."
어느새 바지까지 벗은 그의 모습에 아리아가 못살겠다는 듯 얼굴을 가렸다
"…진짜 변태라니까. 제가 대쉬할 땐 꿈쩍도 안 하더니 어떻게 버텨왔대요?"
"그땐 그때고. 지금은 못 참겠어."
"…빨리 들어오기나 해요."
기다렸다는 듯 물건을 집어넣은 최종택이 그녀에게 포개지듯 안겼고, 그날 두 사람은 다섯 번이 넘는 사정을 겪어야만 밤을 끝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