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자신감의 근원 (4)
72화.
6.
한숨 자고 일어난 최종택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엔 상태창이 떠있었다.
[이름 : 최종택]
[레벨 : 38]
[능력치]
[근력 : A (0 / 100)], [민첩 : B (50 / 100)]
[체력 : B (30 / 100)], [마력 : B (70 / 100)]
'음…'
B가 난무하는 능력치를 보던 그가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상상하는 듯 골똘히 고민하던 그가 이내 눈을 부릅 떴다.
"흡!"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이름 : 최종택]
[레벨 : 38]
[능력치]
[근력 : S (0 / 100)], [민첩 : A (50 / 100)]
[체력 : A (30 / 100)], [마력 : A (70 / 100)]
[풀발이 적용된 상태입니다.]
그러자 변한 능력치가 그를 반겨주었다.
'음, 이거지.'
이 세상 발기가 아니었다.
한층 거대해진 자신감을 보며 그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젠 자유자재로 풀발을 발동할 수 있어.'
이젠 확신할 수 있었다.
풀발의 발동 조건은 더 이상 자신에게 패널티가 되지 못한다고.
'사실상 S등급이라고 봐야지.'
한 단계씩 상승한 스텟을 본 스텟으로 여겨야 하니까.
그야말로 개사기 스킬이었다.
원래라면 이제 겨우 섬의 보스를 잡고 있어야 할 수준인데 서큐버스를 잡게 해주었으니까.
패널티가 커서 그렇지, 단점이랄 게 없는 스킬.
'…아닌가?'
민망하긴 하지만, 뭐 어쨌단 말인가.
성능만 좋으면 됐지.
'게다가 풀발은 1단계가 끝이 아니니까.'
그 패널티조차 2단계의 성능을 보면 충분히 감안할 만했다.
개다가 3단계의 실마리도 잡은 상태.
기대되었다.
'3단계는 얼마나 셀가?'
2단계 극의를 다루게 된 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게 강해졌는데 3단계를 다루게 되면 어떻게 될까.
S급으로 치기엔 과분할 정도의 성능이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S등급이라…'
최종택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은.
턱을 매만지던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과연 순수 능력치가 S등급이 되면…, SS등급으로 오를까?'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뇌가 없어보이는 그여도 이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겨우 S등급인데 SS등급까지 올려주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랬으면 겨우 S등급일 리가 없다는 것을.
1단계만 있는 거면 모를까, 2단계와 3단계까지 있는 이상 SS까진 못 올릴 가능성이 컸다.
아니, 최종택은 확실하다 생각했다.
이게 의미하는바는 컸다.
'S급에서 한동안 정체되겠네.'
최종택, 그의 성장에 족쇄가 달린 것이니까.
사실 족쇄라고 표현하기도 뭐하긴 하다.
지금까지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것뿐, 이제 정상적인 궤도로 접어든 것이니까.
하나 애초에 그는 정상적인 헌터가 아니다.
'자박꼼도 더 이상 잘 오르지도 않고… 뭔가 방법이 없을…어? 잠깐만.'
늘 그랬듯이 그는 방법을 찾아냈다.
'서큐버스랑 하고 나서 능력치가 엄청 올랐었잖아.'
최종택 다운 방법을.
턱에서 손을 뗀 그가 반짝이는 눈으로 소리쳤다.
"그럼 몬스터랑 하면 되는 거 아냐!"
그가 영역을 넓히는 순간이었다.
이젠 인간이라 부르기도 뭐한 영역에 침범했지만, 사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헌터랑 하는 것보다, 서큐버스랑 했을 때 오른 능력치가 훨씬 컸으니까.
심지어 자박꼼의 능력치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분명 B급 마족이라 했어. 그럼 더 높은 마족이랑 하면?''
최초보상은 없을지언정, 제법 많은 능력치가 오르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예쁜 마족이 누가 있지?'
그의 머릿속에 온갖 마족들이 스쳐 지나갔다.
휴대폰이 진동한 건 그때였다. 상단에 뜬 알림을 확인한 최종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협회장님?"
연락을 보낸 건 협회장이었다.
의문을 표하던 그가 답장 대신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금방 연결되었다.
-자네, 혹시 바쁜가?
"음? 아뇨. 무슨 일 있어요?"
시원시원한 성격의 협회장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할 말이 있으니 와줄 수 있나. 회의할 게 있어서 말일세.
"아…"
-구성에 관한 일이네.
이 대목에서 최종택이 잠시 멈칫했다.
'구성? 나보다 작으면서 왜 팬티 안 입냐고 구박한 새끼?'
썩 안 좋게 기억이 남아서 나가기 귀찮았지만, 얘기를 들어서 나쁠 건 없을 듯했다.
'뭐, 전에 했던 우선권인가 하는 게 궁금하기도 하니까.'
판단을 마친 그가 짧게 대답했다.
"지금 갈게요."
7.
협회에 도착한 최종택은 곧장 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그렇게 회의실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그에 최종택이 인사를 건넸다.
"어, 다들 몸은 다 나은 거예요?"
"…예."
"별로 다치지 않아서 괜찮대요."
예나와 아리아의 말에 최종택이 잠시 그녀들의 몸을 훑었다.
'음. 괜찮아 보이네.'
거짓말은 아닌지 아픈 기색이 없긴 했다.
다만, 예나의 표정이 유난히 어두운 게 걸리긴 했지만……
'피곤하신가 보네.'
뇌가 작은 최종택은 그렇게 넘길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
"그런데 보아 씨는요?"
놀리러 와야 할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게 의아해서 묻자 예나와 아리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 대신 대답해준 건 협회장이었다.
"으음… 자매님은 아직 상처가 호전되지 않아 쉬고 있네."
"아… 그 정도로 심한가요?"
"몸은 괜찮다고 하네만…"
말끝을 흐리던 협회장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너무 걱정하진 말게나. 치료가 완료되면 연락을 주겠네."
"아아… 알겠습니다."
어물쩍 넘어가는 듯한 대답에 그가 대답하면서도 침음을 흘렸다.
'그렇게 치명상을 입었나?'
서큐버스가 무언가 수작을 부리긴 했던 것 같은데….
예나와 아리아에 비해 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적어 간과했다.
다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내 상념을 떨쳐냈다.
'내가 누굴 걱정하냐. 금방 나아서 또 장난치겠지.'
이래뵈도 성녀인 그녀다.
무려 신의 은총과 S급 스킬로 도배한 서포터.
서큐버스가 저주를 내렸을지언정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자리에 앉자 협회장이 바로 입을 열었다.
"혹시 구성 길드에 대해 조금 알고 있나?"
"예, 뭐… 구성에서 만든 길드라는 건 알고 있어요."
구성 회사.
전자기기와 반도체 쪽에서 두각을 드러낸 한국 최고의 회사.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회사로 자본력이 엄청난 곳이었다. 그리고 그 자본력을 바탕으로 만든 게 바로 구성 길드.
"맞네. 10년 전까지만 해도 최강의 길드로 손꼽혔지."
그런 구성 길드의 성장은 무척 빨랐다.
엄청난 자금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불과 5년 만에 S급 헌터 4명을 영입한 것이다.
조만간 구성 길드가 5대 길드를 통합하리라 여겼을 정도.
"그때 A등급 마족 던전이 터졌네. 재앙이었지. 봉인이 풀린 마족의 힘은 결코 S등급 이하가 아니었으니까…"
"……"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봉인된 B등급 마족 던전도 그 정도였는데 A등급이면……'
한국의. S등급 헌터가 모두 모여도 감당이 될까 싶을 전력이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S급 헌터가 모두 소집되었다는 얘기에 최종택이 귀를 기울였다.
흥미롭게 얘기를 듣던 그는 이내 구성이 3명의 S급 헌터를 희생했다는 얘기에서 멈칫했다.
"혹시 그게…"
"맞네. 우선권이 생긴 배경이지. 그들에게 보상을 줘야했으니까."
이제야 이해가 됐다.
왜 구성 길드가 그리 자신만만해했는지와 시상식 날 세 길드가 혈안이 돼서 왔는지까지.
'구성 길드가 관심 가지기 전에 영입할 생각이었나 보네.'
그걸 협회장이 막은 거고.
그 대목에서 협회장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물론 자네가 마음에 안 든다면 영입을 거부해도 되네만……"
슬쩍 눈치를 살핀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구성 길드의 팀과 3번 정도는 같이 던전을 돌아야 하네…."
"……"
그 말에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뭔 소개팅인가?'
애프터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다.
그래도 이해가 되긴 한다. 단순히 영입을 우선으로 할 수 있는 것뿐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까.
3번의 기회는 주어야 타당했다.
'썩 내키지는 않은데… 뭐 잠깐만 돌고 오면 되겠지?'
그래도 한국 최고기업인 구성의 길드다.
심심치 않게 챙겨줄 터.
어차피 가야 한다면 차라리 콩고물이라도 얻겠단 생각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 과정에서 구성이랑 잘 맞는다면… 구성이랑 팀을 이뤄도 된다네,"'음?'
협회장이 갑자기 무게를 잡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최종택과 눈을 마주하던 그가 흔히 말하는 엄근진의 모습으로 덧붙였다.
"그게 약속이니까."
"……"
"여기서 떠난다 해도 그 누구도 원망할 사람은 없네."
그러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나와 아리아도 진지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협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팀을 선택하는 게 맞죠."
쓸쓸하게 웃으면서도 한편으론 후련해보이는 모습.
그에 당혹스러워진 건 최종택이었다.
'뭐야 이게…. 난 그저 예쁜 마족 좀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저들끼리 쿨거래를 하고 있었다.
이것이 중고나라 식 대화법인가.
심지어 그 수다 많던 아리아마저 묵묵히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에 최종택도 조금 진지해졌다.
'…뭐, 그런 일이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서큐버스 때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아니면 생리인가?'
순간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는 사이 예나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저희가 너무 약한 걸 체감했습니다. 종택 씨는 좀 더 종택 씨와 어울리는 팀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우리는 짐만 될 것 같네요."
그러며 말을 끝마친 예나의 얼굴은 담담했다.
하지만 꽉 쥔 주먹은 그녀의 분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 놔뒀다간 산파극이라도 찍겠다 싶은 분위기에 최종택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설마 제가 여러분들을 두고 다른 델 가겠습니까?"
"……"
한데 반응이 없다.
오히려 씁쓸한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그에 최종택이 당황해서 횡설수설했다.
"그, 그리고 구성이면 거기 회장 손주가 하는 길드라면서요? 아, 그럼 얼마나 재수 없겠어요."
"……"
"어우, 재벌 3세 기생오라비가 있는 곳은 별로에요. 전 그런 남자는 싫어해서."
"…??"
그에 처음으로 반응이 나타났다.
한데 예나와 아리아 뿐만 아니라 협회장까지 반응했다.
의문에 찬 얼굴로 최종택을 바라보던 협회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손자가 아니라 손녀이네만……"
"…예??"
"그것도 상당히 미녀라 들었지."
"아……"
횡설수설하던 최종택의 입이 멈추었다.
그녀들은 생각했다.
'아… 가겠네.'
'무적권이다.'
저 새끼 분명 간다고.
최잘알인 그녀들이기에 가능한 확신이었다.
8.
한강이 훤히 보이는 펜트하우스.
그 꼭대기 층에서 한 여자가 의자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본다면 그리 생각할 것이다.
'고고하다.'
'숨 막히게 아름답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
대비되는 눈처럼 새하얀 피부.
주먹만 한 얼굴에 앙증맞은 입술과 날카로운 고양이 같은 눈매.
하얀 와이셔츠에 비치는 검은색 속옷.
여러모로 대비되는 특징을 가진 그녀에게선 특유의 고고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카리스마이기도 했다.
'무표정으로 쳐다보는데 눈을 못 마주치겠다니까. 어찌나 카리스마가 흐르는지… 심장이 다 떨렸다.'
그녀를 독대한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었다.
절로 사람을 위축시키는 분위기.
그녀가 단순히 구성 회장의 손녀라 길드장을 맡고 있는 게 아니라는 증거였다.
하나, 유일하게 그녀의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는 남자가 있었다.
"세바스찬."
"…그렇게 부르지 말라하지 않았습니까. 이젠 다른 길드장들도 절 세바스찬이라 부릅니다."
구성 길드 유일한 S급 헌터.
세바스찬, 본명 김수찬의 푸념에 그녀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김수찬은 너무 촌스럽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처음에 수찬이라 부르지 말라 한 거 아냐?"
"하아…"
그에 세바스찬… 아니, 김수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죄인이었다.
그리고 듣다 보니 익숙해져서 그런지 세바스찬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가볍게 농을 던지기를 잠시.
"그래서, 그 남자는 어땠죠?"
"……"
의자를 돌려 눈을 마주한 그녀의 진지한 눈빛에 세바스찬도 자세를 바로했다.
그리곤 떠올렸다.
처음 던전이 사라지고, 그 남자를 마주했던 순간을.
"…거물이었습니다."
"호오… 세바스찬이 그렇게 말할 정도란 말이지?"
"……"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괸 그녀가 도발적이게 물었다.
"어떤 의미에서 거물이었는데? 세바스찬보다 더한가?"
"……"
성희롱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잠시 대답을 못하고 있던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여러 방면으로 거물이었습니다."
"그래? 어떻길래 그러지?"
"보시면 압… 아닙니다. 실수했습니다."
"…??"
그게 왜 실수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찌푸린 그녀였지만, 궁금했기에 계속 물었다.
"성장 가능성은 어떨 것 같은데?"
"……"
이 대목에서 세바스찬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곤 진지하게 계산했다.
'지금 당장은 나보다 약하다.'
그건 확실했다.
그는 아직 S등급 헌터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으니까. 자신과 맞먹기엔 한참이나 부족했다.
다만…
'…반년.'
그 후에는 자신이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강자를 만났어도 강하다고 느낄 뿐, 훗날에 필패할 거란 느낌을 받지 못했건만.
대답을 못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여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호오… 생각보다 더 거물인가보네.'
답을 내림에 있어 정확한 그다.
그런 그가 인물의 가능성을 얘기하는데 저리 오랜 시간을 들이는 건 처음이었다.
무슨 대답이 나와도 이미 합격점을 받은 셈.
"…우선권을 써야 합니다."
그렇기에 그 말에도 별 반응을 하지 않았따.
하나, 그 후 이어진 말에는 그녀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세계랭킹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 겁니다."
"…!"
세계랭킹.
내로라하는 강자들도 쉽게 들지 못하는 영역.
세바스찬 조차 간신히 턱걸이를 하고 있는 그곳에 영향을 끼칠 정도라니. 이게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헌터가 된다.'
그 앞에서 그녀가 내뱉을 말은 하나였다.
"당장 날짜 잡으세요."
"예."
그녀, 이재희가 움직였다.
그리고,
"저도 그와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던전…."
구성의 S급 헌터 세바스찬, 그가 직접 나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