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자신감의 근원 (3) (71/124)



〈 71화 〉자신감의 근원 (3)

71화



"……"
"……"

정적이 가라앉았다.
싸늘한 시선에 최종택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좆됨을 감지한 그가 다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전투하다가 바지가 흘러내려서…"

그에 세바스찬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전투하면 바지가 흘러내리는 거죠?"
"……"


정곡이었다.

'와… 씨바, 이걸 어쩌냐.'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질문.
아니, 애당초 해명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서큐버스랑 했다고  수도 없고…'

그랬다간 다른 의미로 싸늘해질 것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대답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그의 모습에 눈빛이 싸늘하다 못해 혐오스럽게 변질됐다.
이제는 성추행범을 넘어 성폭행범을 보는 듯한 시선.
그중에서도 특히 협회장의 눈빛이 강렬했다.


"아리아……"


만신창이가  몸으로 쓰러진 그녀를 보는 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유일하게 손녀만을 남긴 할아버지의 분노였다.
이윽고 그 분노를 표출하려 최종택을 바라보는 순간.


"다들 아무 이상 없습니다! 멀쩡합니다!"

세 명의 상태를 살피던 협회 측 직원이 소리쳤다.
그는 헌터 전문 주치의.
믿어 의심치 않은 정보에 그제야 싸늘했던 시선이 풀렸다.


"…!"
"그게 정말인가!"

그중에는 협회장도 있었다.
도깨비처럼 일그러져있던 얼굴이 원래의 동네 할아버지처럼 돌아왔다.
그걸 실시간으로 보게  최종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씨… 좆될 뻔했다.'

권왕.
그가 진심으로 분노하는 걸 감당할 자신이 그에겐 없었다.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바지가  이리  올라가…'

커져도 너무 커진 탓인지 바지가 안 입어진다.
그가 끙끙 앓고 있을 때였다.

"다들 잊고 계신 거 같은데 지금 던전을 클리어한 사람에게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채유린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수왕이라 불리는 그녀의 기운이 담긴 호통에 헌터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차 싶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그녀가 일갈했다.

"일행들은 다 쓰러진 걸 보니 사실상 혼자 잡은 것 같은데… 이런 취급을 받을 분이 아니십니다."
"…분?"

수왕이 존대를?
협회장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존대를 하지 않은 그녀가?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협회장을 비롯한 S급 헌터들이 헛기침을 하며 최종택에게 사과를 건넸다.

"…크흠."
"미안하네. 크나큰 오해를 했구만."


그런 그들의 사과에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순간, 지금까지 예나와 아리아와 있던 일들이 떠올랐다.


'어음… 자세히 파고들면 오해가 아니긴 한데…'

특히 인자하게 손을 잡아 오는 협회장에게 괜시리 미안해진다.
그래도 사실을 말할 수는 없는 법.
최종택이 다시금 능청스레  전에 했던 변명을 했다.

"어우, 쌍검을 차다 보니 확실히 무겁더라고요. 전투가 딱 끝났을 때 바지가 흘러내려서 당황했습니다."
"아하. 그런 거였구만!"
"허허, 그럴  있지. 그러고 보니 쌍검술은 언제 배웠나?"


다행히 그들도 넘어가주는 기색이었다.
단 한 명만 빼고.
구성 길드의 S급 헌터, 세바스찬이 묵묵히 쳐다보다 이상하다는  물었다.


"그런데 팬티는 왜 내려갔습니까?"
"……"


순간 멈칫하던 최종택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제가 워낙 커서 팬티를 입지 않습니다."
"…?"


그리 말하는 그의 표정이 너무나 당당해서 세바스찬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한데  생각해보니 납득이 되긴 했다.


'…크긴 했지.'

 전에 얼핏 보였던 그것은 인간의 사이즈가 아니었으니까.
민망해진 그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던 그가 화제를 돌리는 모습에 백두산의 눈에 흥미가 일었다.

'호오… 저 샌님한테 전혀 밀리질 않는구만. 저게 각성한 지 얼마 안  놈이라…'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었다.
하긴, 그러니 B급 마족을 처치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백두산, 그만이 아니었다.

'정말로 클리어했군. 심지어 혼자서 잡은 거나 마찬가지라니…'

최현우의 눈에 최종택은 괴물 그 자체였다.


'대체 어디서 저런 물건이 튀어나온 거지?'


이레귤러였다.
역사를 뒤져도 이례적이라  수 있는 초신성 신인. 아니, 이제는 신인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미안할 지경이다.


'이미 유망주가 아니라 S등급이라 봐야겠군. 최소 스텟 하나는 S등급을 찍었거나, S등급 스킬을 몇 개 갖고 있을 테니.'


그 어떤 신입도 저런 업적들을 쌓진 못할 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욱 시선을 끄는 건…


'당당해. 대단한 자신감이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거지?'

실력?
그렇게 치기엔 부족했다.
분명 무언가 근본이 있는 자신감이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아우라에 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거물이군…"
"응?"

그 말을 귀신같이 들은 최종택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 제가 좀 크긴 하죠."
"??"


이목이 주목되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그들의 모습에 최종택이 능청스레 말을 돌렸다.


"아… 어느 방면으로든 크다는 말이죠."
"…??"

한데 그게 더 이상했다.
자신감의 근원을 얻고 한층 더 정상을 잃은 대화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흠흠."


그 분위기를 환기시킨  협회장이었다.

"영웅에게 이러고 있는 것도 좀 아니지.  피해는 아닌  같다만, 상처도 치료해야하고 말일세."


언뜻 보면 최종택을 치하하는 말.
하나 자세히 파고들면 오늘은 그를 건들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의미를 모를 이는 이들 중 아무도 없었다.

'저 능구렁이 같은 양반.'
'기어코 또 상황을 모면시키려하는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 나서봐야 반감만  테니까.'

저렇게까지 말했는데 귀찮게 하면 그 순간,  길드는 감점을 먹고 들어가는 거니까.
경쟁자가 없으면 모를까.
저리 쟁쟁한 경쟁자들을 상대로 그런 하책을  수는 없었다.

"…마족  잡나 싶었더니만. 난 이만 돌아간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종택 씨."
-…다음에 봬요, 주인님.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때문에 그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 사이로 들려오는 전음에 최종택이 피식 웃었다. 목소리에 아쉬움과 그리움이 뚝뚝 묻어있던 탓이었다.


'다음에 한 번 따로 봐야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각자 왔던 길로 흩어지려는 길드장들에게 세바스찬이 낮게 경고했다.


"저희 구성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쯧."


마음에  든다는 듯 백두산이 혀를 찼다.
다른 이들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소 일그러져있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던 세바스찬이 마지막으로 최종택을 바라보았다.

"그럼 다음에 뵙기를."

그 말을 끝으로 세바스찬은 걸음을 옮겼다.


"저 샌님, 하여튼…"
"성가시게 됐군… 얼른 대책을 마련해야겠어.""


그걸 기점으로 길드장들도 연신 혼잣말을 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어딘가 급해 보이는 모습.
반면 홀로 묵묵히 떠나는 세바스찬을 보며 최종택은 생각했다.

'나보다 작은 새끼가 말을 거네.'


자신감이라는  폭발했다.

5.
정신이 끊기는 건 생소한 경험이다.
영양부족이 흔치 않은 현대의 일반인이 기절할 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달리 말하면 기절하는  익숙하다 느끼는 사람은 몇 없다는 거다.
하나 헌터라면 아니라면 얘기가 달랐다.
혹독한 훈련을 밥 먹듯이 하고, 보스에게 치명상을 입어 사경을 헤맬 때도 많았다.
그래서였다.


"…아."

이질감이 들 만큼 낯선 천장에도 예나가 침착할 수 있었던 건.
또한 그래서였다.

'살았구나.'


어째서 기절했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몸 상태가 멀쩡한  확인한 그녀가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푹 떨구었다.

'…또 종택 씨에게 구해졌구나.'


최종택을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에 쓰러진 게 그녀다.
당연히 보스를 잡을  있는 것도 그뿐.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보스를, 최종택은 단신으로 잡아낸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 분했다.

'종택 씨는 벌써 이렇게 강해졌는데… 난 뭘 한 거지?'

자신보다 약했던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그가 각성한 것도 마찬가지.
반면 자신은 각성한 지 수년이나 지났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너무 무력해…'


자기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뭐가 엘리트 교관이고 뭐가 엘리트 궁수란 말인가. 그녀는 이번 보스 레이드에서 짐일 뿐이었다.
깊은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길 한창.


스윽.

그녀가 돌연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녀의 눈빛에 차오른 각오가 날카롭게 반짝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녀가 지금 해야하는 건 하나였다.

'훈련해야겠어.'

애당초 그녀가 엘리트 교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타고난 재능? 마력?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결코 최고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당시 기수에서 최고점으로 뽑힌 이유는 혹독한 훈련과 정신력이었다.


'그때처럼….'

하나 지금은 어떤가.
마음이 느슨해졌다.

'아니, 그때보다 더. 나는 강해져야돼.'

각오를 마친 그녀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애당초 크게 다치지 않아서 그런지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힘차게 문을 연 순간.

"어어… 일어나셨아요?"
"…아리아 씨도 일어나셨군요."

어색하게  앞에 서 있는 아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 그녀의 눈시울이 붉었다.
아마 자신의 눈도 그녀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에 머쓱해진 예나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약간의 침묵 후에 입을 연 건 예나였다.

"…종택 씨는 괜찮대요?"
"……"

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예나도 수긍했다.

"…역시 강하군요."
"……"
"가시죠. 너무 남자에게만 의지해서는 멋있지 않잖아요."

그리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 결연해 보여서일까.


"저…"

아리아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불렀다.
하나 그녀는 이미 무심하게 등을 돌린 후였다.


"아…"


허공에서 멈춘 손을 천천히 내린 아리아가 예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쩐지 그 모습이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예나 씨도 같은 생각을  걸까.'

처음 눈을 떴을 때, 짐이라는 생각에 몹시 힘들었던 그녀였다.
그래서 예나를 찾으러  걸지도 모른다.
같은 입장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위로를 원할 걸지도 모른다.
하나 이 순간,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마치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 같아.'

겨우 자신보다 그녀가 더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리아가 이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날, 예나와 아리아는 말없이 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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