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승급시험 시작 (2)
37화
4.
포탈.
헌터 시대가 된 후 격광 받는 이동개채.
텔레포트라고도 불리는 포탈은 헌터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장치였다.
물론 모든 헌터가 해당되는 건 아니다.
‘와, 살면서 이 비싼 걸 타볼 날이 올 줄이야.’
일회 사용 비용 100만원.
2초 만에 돈 백 만원이 증발되는 게 포탈이었으니까.
심지어 거리에 따라 최대 천만 원에도 육박할 수 있는 게 이 포탈이라는 놈이었다.
대부분의 하위 헌터들이 포탈을 타지 않는 이유였다.
‘이런 걸 매번 이용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지.’
하나 고위 헌터들의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에게 있어 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100만 원정도의 푼돈을 아끼자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시간이 곧 금이니까.’
이동할 시간에 보스 몬스터 한 마리 더 잡는 게 훨씬 이득인 것이다.
불사신 지크나 파괴왕 아지르.
그들과 같은 S급 헌터들은 일반인이 지하철 타듯 포탈을 타고 다닌다는 소문도 자자했다.
뜬구름 같은 소문이 아닌, 오피셜에 가까운 소문이었다.
‘나도 SNS에서몇 번 봤으니까…’
그땐 편의점 도시락도 아까워할 때라 꽤나 배 아파했었다.
어쨌거나.
‘크으, 이걸 내가 탄단 말이지… 존나 기대된다.’
눈앞에 보이는 영롱한 푸른빛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당장 체험해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의 몸과 무기를 꼼꼼하게 확인한 보조교관이 OK사인을 내린 건 그때였다.
“최종택 헌터. 확인되었습니다. 입장하세요.”
이윽고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꿀꺽, 침을 삼킨 그가 조심스레 발을 들이밀었다.
원형 모양의 그림에 올라가자 다소 차가운 빛이 그를 감쌌다.
잠시 머리가 어지럽다고 느끼는 찰나.
파앗!
“…어?”
눈앞이 번뜩였다.
정신을 차리자 풍경이 바뀌어있다.
뒤늦게 숲이라는 걸 자각함과 동시에 머리가 살짝 지끈거려왔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누르며 그가 중얼거렸다.
“…이게 끝이야?”
놀랍도록 아무런 감상도 없다.
그냥 잠깐 눈 한 번 깜빡했더니 이동되어있던 것이다.
순간, 허탈함이 찾아왔다.
‘기대했는데…’
겨우 이런 걸 그 비싼 돈 주고 타고 다닌다니.
차라리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가 더 설렌다.
한데 다르게 생각하니 그래서 더 비싼 것 같기도 하다.
‘헌터 입장에선 최대한 컨디션 관리를 하는 게 좋긴 하니까…’
그래서 효율을 가장 중시하는 S급 헌터들이 포탈을 그리 애용하는구나.
하여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사삭-
집중하지 않아도 들리는 풀 소리에 최종택이 고개를 들었다.
‘근처에 누가 있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
척 보아하니 유망주는 아닌 것 같다.
아마 D등급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된 헌터이리라.
원래 기습에는 미리 대비하는 게 좋지만…
‘이럼 얘기가 달라지지.’
상대가 미숙하다면 말이 달라진다.
판단을 마친 최종택이 여유롭게 숲을 걸었다.
숨어있는 걸 눈치 채긴 커녕 어딘가 얼빠져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그에 수풀 속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상대의 간을 보는 듯 조용하던 수풀이 움직인 건 그때였다.
파사사삭-
“…어?”
남자가 당혹스러움을 표출했다.
떨어진지 얼마 안 돼서 유망주가 보여서 긴장했던 게 작금이다.
기습을 할지, 물러날지 고민하는데 돌연 놈이 사라졌다.
“뭐야, 저 새끼 어디 갔어?”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무슨 신기루도 아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습에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사아아-
검은 그림자가 위에서부터 덮어졌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온몸에 닭살이 올라온 그가 다급히 뒤를 돌아보자 보였다.
“안녕?”
“으아아악!”
씨익 웃으며 검을 휘둘러오는 잘생긴 남자가.
호러영화가 따로 없는 상황에 그가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상황이 종료되었다.
타앗!
순식간에 완장을 뺏은 최종택이 뒤로 물러난 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남자가 허탈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분한 듯 이를 악문다.
“이 비겁한 새끼…! 암살자였다니…”
뻔한 클리셰와 같은 반응에 최종택이 피식 웃었다.
기습을 실패한 것부터가 이미 실력에서 진 거다.
심지어 역으로 당하기까지 한 거면 말할 필요도 없는 패배.
한데 저리 우기는 꼴이라니….
가소로운 마음에 그가 천천히 배낭에 완장을 넣으며 제안했다.
“이거 가지고 싶어? 그럼 한 판 뜨자. 그럼 너도 덜 억울하지않겠어?”
“……”
막상 제안하니 놈이 섣불리 수긍하질 않는다.
대신 의심스런 눈초리로 노려볼 뿐.
‘와… 잘생긴 남자가 저러니까 기분이 더럽구나.’
당연하지만 놈도 D등급 헌터다.
일반인보다 매우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예쁜 여자가 노려볼 땐 그것도 매력처럼 느껴졌는데, 잘생긴 남자가 저러니 괜히 기분이 더럽다.
‘잘생긴 남자가 노려보는 걸 처음 봐서 그런가?’
괜히 기분이 더러워진 최종택이 배낭을 바닥에 툭 던졌다.
그러자 정확히 남자와 그의 중앙에 떨어졌다.
“…?”
의아한 상황에 남자가 의문을 표했다.
그런 놈을 보며 피식 웃은 최종택이 슬쩍 배낭을 턱짓했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봐.
“이익…! 무시하는 거냐!”
“글쎄.”
분한 듯 소리치는 놈을 향해 최종택이 어깨를 으쓱여보았다.
그게 자존심을 건드린 걸까.
방금까진 의심하던 놈이 붉은 천을 본 투우소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꽤나 빠른 속도에 최종택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제법 빠른데…’
파앗!
동시에 그가 가볍게 땅을 박찼다.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순식간에 놈이 팔을 뻗어오는 걸 코앞에서 마주한 최종택이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았다.
사람은 벨 수 없는 서바이벌용 검.
그것을 본 남자의 눈이 커졌다.
당황한 듯 자세를 고치려하지만 이미 늦었다.
“체위술…”
손잡이를 바로 쥔 최종택이 빠르게 검을 횡단으로 휘둘렀다.
“…가위치기!”
그러자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부드러운 선이 스치고 지나가자 남자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당황한 듯 몸을 살펴보던 그가 멍한 얼굴을 했다.
“아, 안 베였…”
그 순간, 뒤늦게 몰려오는 충격에 남자가 눈을 까뒤집었다.
털썩-
“가위치기는 후폭풍이 강하지. 그리고…”
말끝을 흐리는 순간 남자의 몸 양쪽에 X자로 된 상처가 생겼다.
마치 가위로 자른 것만 같은 모습.
검을 털어낸 최종택이 등을 진 채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베어도 두 번 베어지지. 그게… 가위다.”
“그게 무슨 개소……”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진 남자.
억울함과 자괴감이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며 최종택이 말을 덧붙였다.
“내가 은신을 안 쓴다고 약한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은신은 효율을 위한 것일 뿐.
‘그나저나 체위술… 이거 생각보다 더 세네.’
실전에선 처음 사용해보는데 생각보다 딜이 더 만족스럽다.
심지어 체위술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당장 그가 구사할 수 있는 체위술만 해도 세 가지는 더 남았다.
‘확실히 S급이라 그런지 좋긴 해.’
지금 당장도 이런데, 보다 숙련되면 얼마나 다양한 기술을 사용할까.
첫 상대가 남자인 게 유일한 흠이었다.
‘뭐, 아직 기회는 많으니까.’
그리 생각하며 가방을 챙길 때였다.
“당신!”
“…!?”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갑자기 들려온 하이 톤 목소리에 당황하는 사이 말이 이어졌다.
“비겁하군요! 방심을 유도하다니! 전사의 승부가 그렇게 비겁하면 안 되는 거예욧!”
“어떤 여자가 나한테 이리 시끄러운 거야?”
인상을 찡그린 최종택이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웬 방패가 보였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거대한 방패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방패가 말을 해?”
“탱커입니다! 비겁한 당신!”
방패 뒤에 있던 여자가 불쑥 튀어나온 것은 그때였다.
금발 포니테일을 한여자였다.
새하얀 피부와 볼륨감 넘치는 몸매가 흔히 말하는 콜라병에 가까웠다.
분위기나 얼굴도 묘하게 서양적인 게……
“외국인?”
“외국인이 아니라 아리아입니다!”
역시나 외국인이었다.
한국말이 유창한 걸 보면 혼혈인 것 같기도 하다.
‘아리아나 외국인이나… 그것보다 무슨 방패가 저리 무식하게 커?’
그녀의 키가 작은 것도 아닌데 방패가 워낙 커서 몸을 전부 가린다.
저 정도면 거의 2m는 될 거 같은데.
저걸 들고 움직일 수나 있나?
그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척.
“당신의 비겁한 행동은 잘 봤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통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을 아리아라 소개한 여자가 한 손으로 방패를 들고 승부를 제안한 것이다.
한데 오른손에 든 검마저 크기가 무지막지하다.
보기보다 근력이 높은 모양이다.
‘아리아라… 유망주 아니야?’
그러고보니 들은 적이 있다.
저번 기수에 극찬을 받으며 수석으로 수료한 탱커형 헌터가 있다는 것을.
그 헌터의 이름이 아리아였다.
‘재밌겠는데?’
이번 기수 수석과 저번 기수 수석.
누가 더 강할지 승부욕을 자극하는 상대였다.
‘방금처럼 대충은 안 되겠는걸.’
최종택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왼손에 방패, 오른 손에 검을 든 아리아를 보며 그가 눈을 부릅뜰 때였다.
띠링-!
[풀발이 발동됩니다.]
‘음.’
대체 어떤 묘수를 부린 건지 밑에 힘이들어갔다.
스스로도 감탄한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이 지경까지 이르다니… 난 쓰레기야.’
이제는 더 이상 일반인의 범주가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인간을 벗어난 것은 아닌지 2단계까지 발동하진 못했다.
하나 걱정은 없었다.
‘1단계로도 충분하지.’
1단계만 발동해도 모든 능력치가 B등급이다.
이 정도만 충분하리라.
그리 판단하고 있을 때 아리아가 재촉했다.
“뭐하시는 거죠? 빨리 덤비시죠, 비겁한 사람.”
“오냐, 간다.”
그에 최종택이 기다렸다는 듯 땅을 박찼다.
“앗…!”
예상치 못한 속도에 아리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소 당황한 그녀가 급히 방패를 들어 올리자 묵직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까앙-!
“으윽…!”
한데 그 충격이 상상이상이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막은 탓에 버티지 못하고 날아간 것이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독기는 상당했다.
휘익-
날아가면서도 기어코 검을 휘두른 것이다.
연습을 많이 했는지 흐트러진 자세임에도 정확히 급소를 노리고 들어온다.
하지만.
‘느려.’
눈 먼 공격에 맞아줄 최종택이 아니었다.
가볍게 팔로 막아낸 그가 날아가는 그녀에게 바짝 따라붙었다.
“파, 팔로!?”
상남자스런 저돌적임에 아리아의 당황 섞인 목소리가 언뜻 들려왔다.
그러는 사이에도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달라붙은 순간, 최종택이 주먹을 뻗었다.
뻐억!
“어흑!”
배를 얻어맞은 아리아의 허리가 접혔다.
털썩-
그녀가 무릎을 꿇는 순간, 최종택에게서 무형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풀발을 가리던 은신이 풀리면서 나온 기운이었다.
‘이크, 공격하느라 풀렸나보네.’
아직 숙련되지 않은 탓일까.
전투를 하면서도 기운을 감추는 게 버거웠다.
언제 한 번 날 잡고 수련을 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일단 다시 은신을…’
다시 은신을 사용하려던 그가 비틀비틀 일어나는 아리아를 보고 멈췄다.
“하악…, 아직…, 하악,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
소리가 다소 야하게 들리는 건 착각일까.
왠지 기분이 묘해진다.
‘음. 빨리 정리해야겠네.’
재빨리 움직여 다시한 번 배에 주먹을 날렸을 때였다.
“하응…”
“…?”
소리가 이상하다.
고통스러움보다 다른 타격이 더 큰 듯한 모습.
그러고 보니 방어력이 높은지 주먹에 타격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
‘설마…?’
문득 든 생각에 그가 샤프아이를 사용했다.
그러자 보였다.
‘분홍색…’
빨간 점들 사이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분홍색 점들이.
겨드랑이와 배가 특히 선명했다.
‘서, 설마?’
방금 배를 쳤을 때를 떠올린 최종택이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이거 존나 변태새끼 아냐?’
누가 누구더러 변태라하는 걸까.
단어 그대로 풀발한 최종택이 진심으로 변태를 보듯 아리아를 바라봤다.
그때, 아리아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다시 한 번 해보시죠! 전 끄떡도 없답니다!”
“……”
그런 그녀를 한심하다는듯이 보던 최종택이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엿보기 구멍.’
[아리아]
[성별 : 여]
[나이 : 21]
[등급 : D]
[레벨 : 27]
[능력치]
[근력 : D (60 / 100)], [민첩 : D (10 / 100)]
[체력 : B (80 / 100)], [마력 : C (50 / 100)]
[상태 :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흥분 상태.]
[성감대를 자극 당함]
[특이사항]
[처녀]
[저번 기수 수석]
[B등급 스킬 ‘방어태세’ 보유.]
[C등급 스킬 ‘도발’ 보유.]
[D등급 스킬 ‘방패 돌진’ 보유.]
[낮선 남자에게 배를 허락한 이 상황을 몹시 꼴려한다.]
“……아, 그랬구나.”
진리의 문 너머를 보고 온 연금술사 같은 표정이 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알겠다는 듯 훌렁 바지를 내렸다.
신의 계시를 받은 용사처럼 결연한 얼굴과 그렇지 못한 하반신에 아리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뭐하는 거예요!”
“그래. 이해했어.”
“아니, 뭘 이해한 건데요! 얼른 다시 입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