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승급시험 시작 (1)
36화 : 승급시험
2.
승급시험.
6개월에 한 번 치르는 시험으로, 헌터에겐 필수적인 행사다.
다른 경력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해도, 승급시험을 보는 것만의 특혜가 분명 있으니까.
물질적인 것들도 있겠지만, 실상 헌터들이 노리는 건 따로 있었다.
“이번에 얘기 들었냐? A등급 스킬 각성한 애. 걔가 B등급 승급시험에 온다던데.”
“알지. B등급 스킬 각성한 애도 온다더만. A짜리는 바라지도 않고 걔라도 섭외할 수만 있으면 봉급이 좀 오를 것도 같은데.”
스카우터.
유망주를 노리고 길드에서 온 이들.
그들에게 있어 블루오션인 것처럼, 헌터들에게도 승급시험은 기회의 장소인 것이다.
“그것보다 이번 D등급 승급시험 얘기 들었나?”
그중에서도 D등급 승급시험은 특히 남달랐다.
갓 헌터를 수료한 이들부터 제법 잔뼈가 굵은 이들까지.
다방면의 유망주들이 쏠리는 구간인 만큼 무소속의 재능 있는 헌터들이 많은 것이다.
스카우터들에게는 이보다 군침 도는 게 없었다.
“들었어. 이번 유망주들이 역대급이라며?”
특히 이번 D등급 승급시험의 라인업이 범상치 않다.
“유망주만 10명 이상 모였다고 하더라.”
“와…, 장난 없긴 하네. 다른 길드에서도 관심 많이 가지겠는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근 10년간 D등급 승급시험에 모인 유망주가 두 자리였던 건 처음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게 유망주는 수료식 수석을 뜻하니, 보통 승급시험에 6명 정도가 모일 수밖에.
이번이 유독 유망주들이 쏠린 것이다.
그런 유망주들을 보며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쟁쟁한 기운이 많긴 하네.’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와보니 세삼 와 닿는다.
기운들이 하나같이 보통이 아니다.
이 정도면 진작 D등급은 졸업했어야 맞지 않을까 싶은 헌터만 벌써 두 자리였다.
다르게 말하면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뭐, 그래봤자 나한테 다 꼼짝도 못하지.’
생각보다 쟁쟁하다일 뿐.
위협이 된다고 느껴지는이는 없었다.
혹시 모를 전력이 남았을 수도 있기에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마침 눈이 마주친 그녀가 손을 흔든다.
“종택아!”
웨이브 진 갈색 머리가 목 언저리에서 찰랑인다.
마주 인사를 건네주자 한지수가 호다닥 다가와 반가움을 표시한다.
“이제 온 거야?”
“응. 넌 일찍 왔네.”
“히히… 긴장돼서 잠이 안 오더라구.”
멋쩍은지 웃음을 흘린 그녀가 새삼 감회에 젖은 얼굴이 되었다.
“뭔가 여기서 보니까 기분 묘하다….”
“그러게.”
최종택도기분이 묘하긴 마찬가지였다.
같은 대학을 다니던 그녀와 던전에 이어 승급시험이라니…
‘우리 둘 다 헌터이긴 하구나.’
아마 그녀가 짓는 표정과 자신의 표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얼굴을 슬쩍 붉히며 물어왔다.
“…그날 이후론 뭐하고 지냈어?”
“그날 이후… 아.”
뭘 말하는 건가 생각하던 최종택이 멈칫했다.
말 뜻을 이해한 것이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그날 이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던전, 암살자, 비녀, 허리……
‘…음.’
그가 열던 입을 깔끔하게 닫았다.
‘절대 말 못해.’
평소 친구처럼 지내던 한지수다.
신서희 같은 관계면 몰라도 그녀에겐 차마 그 후의 일을 얘기할 수 없었다.
누군가 불쑥 끼어든 건 그때였다.
“역시 최종택 씨도 오셨군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평소 잘 믿지 않던속담이었는데 지금만큼은 절실하게 공감된다.
“…유연 씨?”
“어? 언니?”
주마등에 있던 장본인의 모습에 최종택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한지수 씨도 있었네요.”
“안녕하세요.”
다소 의외인 건 한지수도 그녀를 아는 눈치였다.
근데 또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고 보니 둘이 같은 길드였지.’
유연을 만나게 된 것도 지수와의 약속이 깨진 탓이었으니까.
같은 길드이니 일면식은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름 편한 분위기겠구나 했는데…
“언니는 이미 승급 확정 아니에요?”
“예. 그렇습니다만.”
“그런데 굳이 시험을 볼 이유가 있어요?”
“길드장님 명령입니다.”
“…그놈의 길드장님 명령.”
이게 웬 걸.
전혀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서로 견제하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게 지수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데 이 묘한 기류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째릿-
멀리서 반가운 얼굴이 이쪽을 보고 있다.
호텔 오너 딸.
효도인지 불효인지를 고민하게해준 11억의 아가씨.
‘…아가씨?’
정연아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가 아닌 한지수와 유연을.
그러다가도 최종택과 눈이 마주치면 아무것도 안 한척 피하더니 힐끔 곁눈질한다.
‘…뭐지, 드림 팀인가?’
놀라운 건 그들 모두 유망주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을 슥 둘러보니 무언가 생각났다.
‘잠깐만. 다 나랑 한 사람들이잖아.’
그럼 서로 마주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순간, 이 묘한 기류가 납득이 됐다.
서로 일면식도 없을 텐데 묘하게 찔리는 게 가슴 한 구석이 불안하다.
괜히 들킬까봐 겁나기도 하고…
이게 양다리 하는 남자의 마음인 건가?
‘아니지. 이 정도면 문어다리 아니냐.’
자신의 정조에 대해 심히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종택 씨.”
“…?”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
고개를 들자 정장에 와이셔츠를 입은 여자가 보인다. 검은 포니테일과 새하얀 피부, 특유의 도도한 분위기.
“…교관님?”
예나 교관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아…”
“다른 유망주 분들도 있군요. 다들 힘내시길 바랍니다.”
아는 척을 하자 그녀가 지나가듯 인사를 건넨다.
마치 회사를 가던 중 우연히 지인을 만난 커리어 우먼처럼 도도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귀는 빨갛게 물든 게 언밸런스했다.
실제로 인사를 건넨 후에도 태연한 척 그의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거 조합이 좀 이상한데…?’
대학 퀸카 한지수.
침묵 속의 박힘 유연.
당당한 커리어 우먼 컨셉 예나 교관.
11억 호텔 오너 아가씨.
이 환상적인 조합이 신기했는지 주변 헌터들의 이목이 쏠렸다.
“저기 봐봐. 뭐지? 다 유망주들 아니냐?”
“맞네. 저 갈색 머리는 서리 길드잖아. 비녀 꽂은 여자도 서리 길드 아닌가?”
“정연아도 있어. 차세대 버퍼로 유명하던데…”
“미친, 가운데 저 사람. 내 반 담당했던 교관님인데?”
소곤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럴수록 주변의 시선이 쏠렸고, 이내 그 모든 이목이 최종택을 향했다.
“저 남자는 누구길래 쟤네가 다 모여 있냐?”
“어? 나 저 사람 알아. 이번 기수 수석이잖아.”
“수석? 존나 내가 더 쎌 거 같은데?”
“지랄 자제 좀. 원래 고수들은 기운 감추고 그런다던데 저 남자도 그런 거 아님?”
그리고 그 관심엔 헌터만 있지 않았다.
“호오, 쟤가 그 수석이란 말이지.”
“겉으로 볼 땐 기운이 안 느껴지는데요?”
“쯔쯧, 지아 교관이 그러니 아직도 조교인 거다. 은신 계열 능력이 있겠지.”
“뭐요?”
“그것보다 이 정도로 숨긴 거라면 대단하네요.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건 예나 교관 아닌가? 왜 저곳에 있는 거지?”
승급시험의 관리자로 참여한 교관들도 그를 보며 수군거렸다.
10명이 좀 넘는 유망주 중 벌써 3명의 유망주가 한 명에게 달라붙어 있는 게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때, 그를 관찰하던 여교관이 물었다.
“흐음…. 교관님이 말했던신경 쓰이는 헌터가 저 사람인가요?”
“……”
이진혁 교관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의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그에게 집중하고 있던 교관들은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이진혁 교관님이 신경 쓰일 정도의 헌터라…… 하긴 그쯤 되니 그 예나 교관님이 인사를 하러 간 거겠죠.”
“이거 기대되는데요?”
몇몇은 최종택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흥, 그래봐야 아리아만하겠어요?”
“아리아라면… 저번 기수 수석 말인가? 확실히 뛰어나긴 했다만, 내가 가르쳤던 주지태가 더 화끈하지!”
또 몇몇은 자신에게 배운 헌터가 더 뛰어날 거라 자부했다.
그 와중에도 이진혁 교관의 눈은 오로지 최종택을 향해있었다.
‘그새 또 성장했군.’
전과는 조금 달라진 그를.
왠지 흐뭇한 기분에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다.
한데 그걸 또 귀신같이 캐치한 유지아 교관이 소리를 질렀다.
“어!? 교관님 방금 웃은 거예요? 헐, 대박! 웃는 거 처음 보는데.”
“……”
“와… 교관님도 사람이었구나. 뭐 보고 웃은 거예요?”
천진난만하게 물어오는 그녀.
슬쩍 시선을 회피한 이진혁이 모른 체 시치미를 뗐다.
진행자 역을 맡은 남자가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댄 것은 그때였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응?”
“어, 시작했나보다.”
살짝 깨지는 음질에 소란스러웠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대신고개는 바쁘게 움직였다.
진행자가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함이었다.
‘나이스 타이밍.’
자연스레 시선을 돌린 최종택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자 그녀들도 덩달아 고개를 돌렸는데 다행히 진행자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단상에 올라가 있었던 탓이다.
‘저 사람이 진행자구나.’
교관이 진행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는 헌터가 아니었다.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아, 나랑 비슷한 스킬을 배운 걸 수도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또 모르겠다.
섣불리 기운의 유무로 헌터를 파악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진정된 분위기에 흡족한 얼굴로 남자가 입을 열었다.
-D등급 헌터 여러분. 승급시험장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확인 작업이 모두 끝난 관계로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승급시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3.
승급시험 일정은 간단했다.
‘2박 3일간의 서바이벌.’
꼬박 3일에 걸쳐 치러지는 시험의 타이틀은 생존이었다.
작은 섬.
그곳에서 386명의참가자들이 서바이벌을 벌이는 것이다.
룰은 간단했다.
“386명의 참가자들은 각각 식량이 든 배낭을 지급받으며 그 외의 식량은 직접 조달해야합니다. 또한 저마다 팔에 멜수 있는 완장을 차는데……”
“완장 당 1포인트이며 상대 완장을 뺏는 것이 가능합니다. 단, 뺏긴다 해도 탈락되지 않습니다. 이 시험은 3일이 지난 시점에서 종료됩니다.”
쉽게 말해 완장을 뺏겨도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혹은 다른 이에게서 갈취하거나.
‘뺏고 뺏기는 서바이벌이네.’
마지막 3일차에 가장 많은 완장을 가진 자가 승리하는 규칙.
거기에 한 가지가 추가된다.
“또한 섬 안에는 각 지역마다 보스 몬스터가 존재합니다. 그 보스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마정석이 포인트로 환산되며 이는 매우 큰 점수가 반영될 겁니다.”
“섬 안에서 파티를 이루든 공정하게 분배하든 그건 참가자들의 자유입니다.”
보스 몬스터.
그리고 자율적인 파티.
이것들만 들어도 이 시험의 난이도가 체감이 된다.
‘치열해지겠네.’
특히 유망주일수록 위험했다.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헌터들이 똘똘 뭉치기 시작할 테니까.
실제로 벌써부터 조짐이 보였다.
“야, 우리끼리 모이자.”
“유망주들부터 조져.그래야 우리가 편하지.”
“서리 길드, 걔부터 조지자. 혹시 알아? 그것 때문에 우리가 길드 눈에 띌지도.”
이미 길드에 소속된 실력자, 혹은 길드의 관심을 받고 있는 유망주.
그들을 잡기 위해 계획을 짜고 있다.
이렇게 되면 최종택을 포함한 유망주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저들끼리 뭉치거나…
‘아니면 먼저 치거나.’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자신을 경계하는 시선들을 느끼며 최종택이 조용히 맥심을 매만졌다.
“마지막으로 살인은 금지됩니다. 위험하다 판단될 시 교관이 개입될 것이니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는 사이 진행자의 말도 끝에 도달해갔다.
“무기는 날이 없는 서바이벌용 무기가 지급됩니다. 준비가 된 헌터들은 모두 포탈 앞에 서주십시오.”
그 말에 최종택은 일말의 고민 없이 서바이벌 용 목검을 챙겼다.
자주 사용하던 무기.
하나 이번엔 평소와 많이 다를 것이다.
‘체위술을 시험하기 좋은 무대야.’
최종택, 그가 입장을 앞두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