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풀발을 넘어서 (2)
22화.
7.
서리 길드 본부.
밀린 일처리를 하던 유종현 팀장이 서류를 보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파주 던전 이거 언제 리젠 됐어? 왜 아직도 처리가 안 되어있지?”
“잠시 만요.”
검색해본 부하직원이 눈의 휘둥그레졌다.
“어? 3개월이나 리젠이 안 됐는데요? 이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뭐?”
유종현의 표정이 변했다.
보통 보스의 리젠 주기는 한 달에 한 번이다.
간혹 두 달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 경우 그만큼 강력한 보스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두 달만 되도 돌연변이가 나오는데 세 달이면…… B등급까지 나올 수도 있다.’
그의 말투가 다급해졌다.
“지금 거기 들어간 뉴비들 있어? 없지? 없다고 해줘, 제발.”
“저, 그게… 그 A급 스킬 능력자 있잖습니까. 얼마 전에 들어온… 그 파티가 들어가긴 했는데…”
“아…”
왜 늘 불길한 징조는 틀린 법이 없는 것인가.
머리가 다 어지러운지 이마를 짚은 그가 단전에서 끌어모은 욕과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아니, 거길 왜… 하 씨발 진짜… 거기 공동 던전도 아니라서 클리어 할 때까지 못 나오는 곳이잖아!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조증 환자마냥 중얼거리다 대뜸 화를 내는 모습에 부하직원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곤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런 거 하나 커트 못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키워!?”
그런 그를 보며 유종현이 흥분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하아. 넌 사고 터지면 진짜 각오해라. 진짜 대형사고다 이거.”
“…예.”
사실 그로선 억울한 상황이다.
자기가 일처리를 한 것도 아니고 밑에서 한 걸 전해받은 것뿐인데 왜 화는 자기가 듣는단 말인가.
하나 사회생활 경력 5년.
닳을 데로 닳은 그는 이럴 때 곧이곧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아… 됐고, 당장 파주로 사람 보내!”
유종현이 이를 악물며 외치자 부하직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 직원의 뒷모습을 보던 그가 질끈 눈을 감았다.
‘제발 무사해라… 진짜 터지면 난리난다.’
대형 신인 취급받는 한지수를 받자마자 일이 터지면 안 된다.
이건 부하직원과 더불어 그도 짤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름 잔뼈가 굵은 그를 자르겠냐 싶겠지만, 서리 길드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복지가 확실한 만큼 책임도 확실한 곳이었으니까.
‘부디 오늘 리젠이 안 되기를……’
8.
콰앙!
쿵!
레드 베어와 실버 울프의 돌진을 막으며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무려 두 놈을 막았음에도 유재희는 거뜬한 모습이었다.
“나이스!”
“갑니다.”
그 모습에 따봉을 날린 최종택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검을 찔러 넣었다.
푹!
쿠어어어!
한지수의 마법과 최종택의 꾸준한 공격에 데미지가 쌓인 것일까.
온몸에 피를 흘리던 놈이 결국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키기기기-
“기생충 나왔다! 점사해요!”
죽은 놈의 상처에서 연가시 같은 벌레가 꿈틀꿈틀 기어 나온 것이다.
[패러사이트]
본체였다.
각기 다른 종류의 몬스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했다.
죽은 시체의 몸을 숙주 삼아 움직이는놈.
저대로 놔두면금방 새로운 숙주를 찾을 것이다.
‘어림도 없지.’
최종택이 곧장달려들어 검 끝으로 놈의 몸을 찔렀다.
그러자 육지에 던져진 물고기마냥 몸을 흔들더니 이내 축 늘어트린다.
죽은 걸 확인한 그가 숨을 골랐다.
‘후우… C등급 최상급이라 그런지 좀 빡세긴 하네.’
시체라서 그런지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게 확실히 위협적이다.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몇 마리씩 튀어나온다.
풀발이 있어도 솔플이었으면 제법 애 좀 먹었을 것 같다.
‘지수 쪽은 끝났나?’
뒤를 돌아보니 마침 김승현과 한지수도 레드 울프의 본체를 잡고 있다.
전투를 마친 한지수가 다가와 칭찬을 건넨다.
“이야. 종택이 얼마 전에 각성한 거 맞아? 왜 이렇게 세?”
“딜이 진짜 살벌하던데요…”
“역시 언니 친구! 친구는 끼리끼리 만난다더니…”
그들의 칭찬에 최종택이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에이, 다들 잘하셨는데요, 뭘.”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5대 길드는 새싹부터가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었다.
미숙한 훈련생들과의 파티만 하다가 훈련을 받은 그들과 하니 안전성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한 명이 실수를 하면 대기하던 일행이 메꿔주고, 한 번 기회를 잡으면 곧장 연계가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건 유재희였다.
‘B급 스킬이 있어서 그런가? 탱킹을 너무 잘하는데.’
지수야 원래 능력 있는 건 알고 있었으니 넘기고, 유재희가 상상이상이었다.
엿보기 구멍으로 본 능력치가 올 D등급인데도 불구하고 어그로가 튄 적이 없다.
‘심지어 이게 풀발 상태란 말이지.’
풀발로 페널티를 받았는데도 이 정도면 평소에는 어떻겠는가.
서로 덕담이 오갈 때 김승현이 뚱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저게 뭘 대단한 거라고.”
무엇이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작게 중얼거리는데 이들 중 그 소리를 못 들은 사람은 없었다.
일반인에 비해 월등한 청각을 가진 이들이었으니까.
다시 싸해지려는 분위기에 유재희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우리 되게 합 잘 맞는다 그쵸?”
“그러게요.”
그에 최종택도 수긍해줬지만, 영 마음에 안 드는 건 사실이었다.
‘뭐가 그리 문제야?’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까부터 계속 혼자 풀발 해있다.
웃긴 일이었다.
풀발은 자신이 해야 하는데 말이다.
‘…어? 라임 지렸다.’
하여튼 자신과 다른 의미로 풀발 해있는 놈이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잘못한 게 없지 않은가.
첫 만남부터 그러더니 이젠 아주 대놓고 저러니 영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심정을 알았는지 한지수가 작게 말을 걸었다.
“저거 열등감덩어리니까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나한테도 매번 이상한 소리해서 귀찮아죽겠다니까.”
“아, 진짜?”
“응. 틈만 나면 밥 먹자니 술 산다니… 좋게 거절해도 알아듣질 못해.”
물론 작게 말해도 듣지 못할 놈이 아니다.
슬쩍 놈을 살펴보니 부르르 떠는 게 제대로 꼽을 준 듯했다.
저놈 성격상 뭐라한 소리 하러 오겠지.
휙.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을 보니 대강 감이 잡혔다.
‘흐음… 그런 거구만.’
딱 보니 알겠다.
저놈도 한지수에게 마음이 있다.
대학교에서도 여러 남자 울리고 다니더니 그 명성 어디 안 간 모양이다.
철벽 수준이 철웅성 급이다.
하여튼 그런 상황에 웬 친해 보이는 놈팡이 하나가 굴러들어왔으니 아니꼽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
‘뭔가 남 일 같지만은 않네.’
그리 생각하니 양아치 같던 놈이 그저 귀여운 꼬마로 보인다.
피식 웃는데 한지수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마지막 몬스터까지 잡았는데 왜 던전이 클리어 되지 않는 거야?”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이곳의 몬스터 수는 100마리.
그리고 방금 잡은 패러사이트가 마지막 100마리째다.
진작 클리어 메시지가 떴어야하는데 잠잠한 게 이상했다.
“…이거 보스 리젠 된 거 아냐?”
“설마…”
“사실 그거 말고 답이 없기는 하죠.”
한지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최종택의 생각도 같았다.
‘그거 밖에 답이 없긴 하지.’
난처한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론 기대되기도 했다.
‘C등급 던전 보스면 어떤 놈이려나…’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걸까.
그들의 눈빛에 호기심이 어릴 무렵 김승현이 대뜸 허세를 부렸다.
“다들 뭐 그리쫄아 있어? 우리 파티가 보스 하나 못 잡겠어? 우리 서리 길드야. 엘리트 헌터들이라고.”
평소라면 왜 또 지랄하나 싶을텐데 지금 저러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의 말대로 5대 길드 아닌가.
심지어 그중 2명이 B등급 스킬과 A등급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김종우도 C등급 힐이 있고.
저 양아치도 나름 무난한 능력치에 D에서 C등급 공격 스킬들을 가지고 있다.
‘할 만하지 않나?’
무엇보다 자신은 S등급 스킬인 풀발이 있다.
풀발을 사용한 그의 능력치는 B등급.
이 정도면 가망이 있다.
“어차피 클리어하지 못하면 못 나가는데 바로 가자고.”
“흐음… 알았어요.”
“그러죠.”
그렇기에 최종택과 일행들은 김승현의 리드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그러나 보스 방을 발견한 순간.
“…어?”
최종택은 생각을 바꿨다.
문 앞에 선 순간 느껴지는 기운에 엄청난 신체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부랄이 쪼그라들었어.’
냉탕에 온 것만 같다
그의 본능이 위험하다고 몸에 경고를 보냈다.
슬쩍 옆을 보니 지수도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지 심각한 얼굴이다.
다른 이들은 못 느낀 건가?
‘일단 말리자.’
온몸이 오싹한 감각에 그가 일행들을 막으려고 할 때였다.
“뭐야. 막상 들어가려니까 쫀 거야? 에휴. 그럼 나부터 들어가 줘야지.”
“어? 자, 잠깐…!”
망설이는 최종택을 비웃은 김승현이 문을 열어버렸다.
동시에 부랄의 쪼그라들음이 더욱 강해졌다.
스으으-
머릿속에서 계속 적신호가 울리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이윽고 스산한 바람이 몸을 감싼 순간.
슈악- 쾅!
무언가 보이는가 싶더니 유재희가 뒤로 날아갔다.
벽에 처박힌 그녀가 손에 방패를 쥐고 있는 걸 보니, 간신히 막고도 날아간 모양이었다.
“재, 재희야!”
“이, 이게 뭐야 씨바알… 말도 안 돼!”
김종우의 상황판단은 빨랐다.
둘이 당황하고 있을 때 빠르게 유재희에게 달려가 힐을 준 것이다.
그걸 본 녀석이 움직였지만, 최종택의 판단도 빨랐다.
‘좋았어.’
벽에 처박힌 유재희의 찢어진 옷을 본 순간 익숙한 알림이 들려온 것이다.
그는 확인할 시간도 아껴가며 냅다 앞으로 뛰었다.
쾅-!
검으로 막자 드디어놈의 모습이 보였다.
[멘티스]
[등급 : B]
[타입 : 곤충]
[특이사항]
[네임드 보스]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절살력을 보유]
[등을 보인 먹잇감을 먼저 사냥하는 습성을 지님]
사마귀였다.
성인 남성보다 1.5배는 더 큰 사마귀.
엿보기구멍으로 정보를 파악한 최종택이 이를 악물었다.
‘B등급… 어쩐지 존나 묵직하다 했다.’
B등급이 된 최종택으로서도 막는 게 고작이었다.
정확히는 막는 것조차도 버겁다.
끼기기긱-
주르륵-
검으로 막았지만, 쭈욱 밀려나자 곧바로 한지수의 보조가 들어왔다.
퍼엉! 펑!
“최대한 버텨! 내가 계속 지원사격 할게. 종우는 재희한테힐 계속 넣고!”
화염의 구부터 창, 화살…
갖은 공격을 쏟아 부으며 그녀가 소리쳤다.
빠른 판단과 보조였다.
“크윽…”
덕분에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놈의 칼날에 밀리는 건 사실이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아귀가 터져 피가 흐른다.
그러나 그는 피하지 않았다.
[등을 보인 먹잇감을 먼저 사냥하는 습성을 지님]
엿보기 구멍으로 본 정보 때문이었다.
탱커도 넉 다운된 상황에서 자신까지 다운되면 이 파티는 전멸이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공격을 버티면서 그는 소리쳤다.
“다들 도망치지 마요! 도망치면 다 죽어요!”
파티원들의 돌발행동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데 생각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도, 도망쳐야 돼… 못 이겨… 우린 다 죽을 거야!”
압도적인 격차를 느낀 김승현의 정신 상태였다.
공포에 질린 그는 문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허겁지겁 달려갔다.
뒤돌아서 문 쪽으로 달리는 그를 본 멘티스의 눈이 빨개졌다.
마치 먹잇감을 찾은 매처럼.
최종택을 밀쳐낸 놈이 순식간에 날개를 펴고 김승현을 향해 날아간 것은 그때였다.
“안 돼! 등보이지 말라고!”
“뭐, 뭔 개소…!”
푹!
급히 소리쳤지만 한 발 늦었다.
뒤에서부터 가슴을 꿰뚫은 멘티스가 꼬챙이마냥 김승현을 들어 올린 것이다.
이어서 소름끼치는 장면이 펼쳐졌다.
우걱- 콰드득-
“……”
“……”
숨 막히는 정적이 깔렸다.
그래서인지 놈이 머리부터 먹어치우는 소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꿀꺽.
그 정적을 깬 건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였다.
그리고.
“꺄아아악!”
“주, 죽었어! 말도 안 돼…!”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둘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도 절대 뒤돌지는 않는 게 본능적으로 느낀 것 같다.
뒤를 돌면 죽는다고.
휙-탁.
딱 상체까지만 먹어치운 멘티스가 다리를 대충 던지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먹잇감을 찾는 듯한 모습.
가장 먼저 눈길이 닿은 한지수가 흠칫 몸을 떨었다.
키기기-
뒤돌지 않는 모습에 먹잇감이 아니라고 판단한 걸까.
가만히 바라보던 놈이 이내 시선을 돌린다.
이윽고 김종우에게 닿은 순간, 놈의 시선이 다시 최종택을 향했다.
키익-!
그리곤 다시 그를 향해 달려든다.
가장 위협적인 상대라고 느낀 모양이었다.
빠르게 날아오는 놈을 보며 최종택은 주머니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집었다.
‘…그걸 사용해야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