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11화 (6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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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

한 가지 확실한 건 번개 같은 반사신경과 가속화 패시브의 조합은 개씹사기라는 거다.

녀석이 땅에 발을 대고 있으니 뭐 어떻게 잡을 방법이 없네?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반응 속도로 녀석의 앞에 수납을 깔아도 녀석은 그걸 보고 그대로 피해버린다.

그나마 철근은 가느다란 데다가 숫자가 많아서 녀석에게 한두 번씩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얕다.

그때마다 철근을 잡고 뽑아 버린 뒤 절뚝거리면서 또 미친듯한 속도로 도망가는 장룡.

그리고 녀석은 도망가면서도 철근에 뚫린 몸이 천천히 재생되고 있다.

미친 새끼. 저거 인간 맞냐고.

녀석을 잡아서 한 일주일 정도 구석구석 기억을 읽고 싶지만, 그건 헛된 희망이겠지.

당장 저 새끼를 놓치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게 최선인 상황에서 포획은 무슨 포획이야.

필사적으로 도망가려는 자와 어떻게든 잡아 죽이려는 자의 경주.

문제는 녀석이 조금씩 도망가는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때마다 게이트로 막고 수납을 휘두르고 철근으로 길을 막지만, 녀석은 여왕과 폴터가이스트로 번번이 도망간다.

평지에서의 폭발적인 질주와 채찍과 염력을 이용한 입체기동.

씨발. 조사병단을 마주친 거인의 심정을 이해하겠네. 잡기 존나 귀찮아. 진짜로.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가 됐든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계속 확장하는 거다.

녀석이 스킬을 쓸 수 있는 공간에 나가는 순간, 이 게임은 끝난다.

녀석은 도망갈 거고 어딘가 짱박혀서 스킬을 배우겠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녀석은 스킬 사용 불가 지대에서도 스킬을 쓸 수 있는 몸이 돼서 돌아올 거다.

그럼 과연 저놈을 막을 수 있는 놈이 있을까? 엄두가 안 나는데.

그러니 지금 잡아 죽여야 해. 녀석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기회야.

기병대를 막아서는 창병들의 창처럼 철근이 솟아 나왔고, 녀석은 급하게 방향을 튼다.

녀석은 방향을 틀 때 꼭 왼쪽으로 튼다.

생각하고 피하는 게 아닌 무의식적인 회피라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녀석.

그걸 노리고 왼쪽에도 철근을 만들어냈고, 녀석은 또 한 번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다.

채찍을 뽑아내 뒤쪽의 신호등을 잡고 휙 하며 몸을 띄우는 녀석.

어떻게든 공중에 떴을 때 승부를 봐야 해. 지상은 너무 빨라.

물 감옥을 썼으면 좋겠는데…. 여기서는 답이 없다. 잡고 도망칠 게 너무 많아.

게다가 녀석이 채찍이나 폴터가이스트를 뿌리고 있으면 그 위치에는 게이트가 안 써진다.

아마 방해 요인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어 안 써지는 거겠지.

철근 생성을 배워 놓길 잘했네. 이거 아니었으면 분명 이놈을 놓쳤을 거야.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는 답이 없다. 녀석도 나도 뭔가 하나씩 부족해.

게다가 장기전으로 간다면 결국엔 포션을 먹어야 하는 내가 불리하다.

단순한 술래잡기로는 안돼. 결국에는 큰 거 한방을 준비해야 한다는 건데….

이놈을 쫓기도 바쁜데 그런 짓이 가능할지 모르겠네.

어쨌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다. 어떻게든 녀석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갖은 지랄을 다 한다.

만약 나중에 싱가포르에 와본 사람이 있으면 정말 의아할 거야.

바닥에 왜 이렇게 철근이 잔뜩 박혀있는지 궁금하겠지.

그것도 이렇게 부비트랩 같은 모습으로 말이지.

땅에 착지하려던 녀석에게 엇박자로 철근 생성을 쓴다.

스물한 개의 철근이 일정한 간격으로 솟아오르고 그걸 밟은 녀석의 발등이 그대로 뚫렸다.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철근에서 발을 뽑아내고 채찍을 휘둘러 근처의 가로등을 잡은 뒤 몸을 날리지만, 이번엔 내가 폴터가이스트로 가로등을 부러뜨렸다.

휘청하고 공중에서 몸의 균형이 흐트러진 녀석.

바로 블링크를 해서 수납을 휘두르지만, 이번엔 길가에 있는 차 한 대를 붙잡고 빠르게 몸을 피한다.

차는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녀석이 날아가는 방향에 또 철근을 생성한다.

급하게 또 방향을 뒤트는 녀석. 나는 바로 수납으로 차를 먹어치우고 다시 녀석을 쫓는다.

녀석이 잡을 수 있는 것들을 없애야 해.

채찍, 폴터가이스트로 잡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공중에서 급작스러운 진로 변경을 막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치우는 게 우선이야.

그리고 틈틈이 바닥에다가 철근으로 바리케이드를 세운다.

어차피 녀석이 주먹질 한방만 하면 수수깡처럼 부러질 철근이지만, 그렇게 멈추는 1초. 그게 중요하다.

한순간이라도 멈추게 해야 해. 그래야 기회가 생기지.

그리고 바다 게이트를 열어서 바닷물을 바닥에 뿌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지.

아무리 가속화를 써서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바닥에 물이 있으면 속도는 확 줄어들 거다.

게다가 균형 잡기도 어렵겠지. 철근 같은 걸 숨기기도 좋고.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한 녀석. 표정에 어두운 기색은 없다.

몸에 몇십 개의 구멍이 뚫려서 옷까지 너덜너덜해진 녀석이지만, 그 안에 보이는 몸은 제법 멀쩡해졌다.

징그러운 새끼. 괴물 같은 놈.

녀석은 왜 비행을 패시브 화 시키지 않은 걸까?

만약 녀석이 비행을 패시브로 해놨다면 이 짓거리를 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을 거다.

이미 하늘 저 멀리 도망갔겠지. 시스템적으로 막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패시브 화 안 한 이유가 없는데.

게이트의 숫자는 스물한 개.

게다가 그 크기도 어마어마하기에 끝도 없이 쏟아지는 바닷물의 양은 엄청나다.

저걸 가로지르며 가속화를 쓰기는 어렵겠지? 그래도 방심은 안 된다. 바닷물 사이에 계속해서 철근을 박아 넣는다.

맨눈으로 확인하기 힘든 덫. 제발 하나만 걸려라. 하나만 걸리면 된다.

그렇게 지루한 수 싸움을 벌이던 나와 장룡.

하지만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 승부수를 꺼내야 해.

신호등 하나를 잡고 날아가던 녀석을 따라 블링크를 써서 수납을 열자 녀석은 바로 반응하고 방향을 바꾼다.

하지만 이건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계속 녀석을 쫓아가면서 하나씩 먹어치웠던 차들을 한 번에 떨궈 버린 것.

엄청나게 커다란 수납에서 차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다른 신호등을 잡고 날아가던 녀석은 그렇게 쏟아지는 차를 미처 전부 다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부딪친다.

그와 동시에 녀석에게 파고드는 기다란 철근 하나. 배 정중앙에 정확하게 꼽힌 철근.

"커흑."

처음으로 녀석이 인간다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 타격은 꽤 제대로 들어갔어.

녀석은 재빨리 철근을 부러뜨리고 몸을 빼내려고 하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차가 너무 많았다.

주먹으로 차를 쳐내자 마치 스티로폼을 쳐내는 것처럼 차가 가볍게 날아갔지만 그사이에 녀석의 몸에 철근이 하나 더 틀어박혔다.

그리고 미처 피하지 못해 떨어지는 차에 얻어맞은 녀석. 또다시 몸에 박히는 철근.

녀석의 움직임을 봉쇄한 지금이 기회다. 조금만 지체해도 녀석은 철근을 금방 박살 내고 도망가려 하겠지.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녀석을 향해 철근을 생성했다.

몸이 꿰뚫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녀석이 꼼짝도 못 하게 하기만 하면 되니까.

주먹질도 주먹을 휘두를 수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

녀석이 아예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팔을 휘두를 수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철근을 생성한다.

가느다란 철근, 두꺼운 철근, 철근, 철근, 철근….

온몸이 구멍이 뚫리고 꼼짝할 수 없게 된 녀석.

몸을 마구 움직일 때마다 그렇게 잔뜩 박아놓은 철근이 우드득 거리면서 휘어진다.

씨발. 징그러운 새끼.

채찍과 폴터가이스트가 마구 주변을 휘둘러지며 철근을 하나씩 뽑아내고 부러뜨리긴 하지만, 녀석이 처리하는 것보다 내가 생성하는 게 더 빠르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주변에 게이트를 열었다.

고룡 녀석에게 했던 물 감옥. 도망갈 방법이 없어진 이상 녀석이라고 해도 질식은 하겠지.

철근에 몸이 꿰뚫린 채로 바닷물에 갇혀버린 녀석.

그런 녀석을 끝까지 바라본다.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듯 발악을 해보지만…. 결국 녀석은 마지막 숨을 크게 뱉어냈다.

입에서 나온 부글거리는 거품들.

그리고 녀석은 결국 눈을 감았다. 완전히 실신해버린 모습.

스킬이나 충격으로 인한 기절이 아닌,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생기는 실신.

아무리 스킬이 있고 패시브로 떡칠을 했다고 해도 저건 막을 수 없겠지.

아마 스킬에 물 기술이 없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호흡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인간은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지잖아?

바닷속이나 우주까지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물 감옥을 치우고 녀석에게 다가가 기억을 읽고 싶지만…. 엄두가 안 난다.

고룡때처럼 마리오네트를 써볼까 했지만, 자신이 없다.

다잡은 녀석을 정보를 얻겠다고 살려뒀다가 무슨 일이 생기느니 그냥 지금 확실히 죽여버리는 게 낫지.

게다가 어차피 녀석의 능력은 어느 정도 파악했다. 얼추 어떻게 구현해냈는지도 알 거 같고.

그러니 죽게 놔둔다. 만약 나중에 궁금한 게 있으면 Q&A로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

근데…. 왜 안 죽지?

벌써 녀석이 마지막 숨을 뱉은 지 3분은 지났을 거다.

이러면 산소가 없어서 결국 질식사 해야 하는 거 아냐?

녀석이 가지고 있는 초 회복. 그게 녀석의 목숨을 붙잡고 있는 건가?

녀석을 마무리 짓기 위해 게이트 틈으로 염력 사를 집어넣는데…. 드디어 물 감옥 안쪽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 씨발. 드디어 죽네. 징한 새끼.

녀석이 죽고 바닥에 코인 주머니가 반짝인다.

근데 그걸 보고도 왠지 믿을 수가 없다. 결국, 짱개 최종 삼인방을 다 잡아냈는데도 실감이 안 나.

기억을 못 읽어서 그런가? 좀 찝찝하기도 하고…. 암튼 됐다. 녀석들을 다잡은 건 확실하니까.

코인을 먹으면 좀 실감이 나겠지.

게이트를 전부 닫자 어항의 유리가 깨진 것처럼 사방으로 물이 쏟아져 내린다.

도심 한복판에서 생겨난 해일. 그렇게 물이 전부 빠지길 기다려 녀석이 남긴 코인 주머니에 다가갔다.

[2,159.781,44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하하…. 씨발. 헛웃음이 절로 나오네.

21억이라. 문제는 이게 5등분 된 양이라는 거지.

105억…. 새끼 존나 많이 가지고 있었네. 근데 왜 이걸 안 썼지?

솔직히 이정도 코인이면 어지간한 스킬들을 전부 다 패시브로 만들 수 있는 양 아닌가?

아. 정보를 못 읽은 게 점점 아쉬워지네.

근데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어. 나는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을 뿐이야.

질식하고도 몇 분을 살아남는 놈인데…. 괜히 살려뒀다가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 것보단 낫지.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아직 메인 이벤트가 남아있잖아?

시간을 살펴보니 새벽 한 시.

어휴. 밤새도록 싸운 거 같은데 이것밖에 안 지났어?

바로 허브로 순간이동 했다.

탐지를 돌려보니…. 게이트에서 나온 지급 파견대 놈들이 하나씩 공항으로 모이고 있는 게 보인다.

아직 녀석들은 장룡이 죽었는지 모르지. 그래도 장룡 녀석의 계획은 착착 진행돼가고 있는 모습.

그래. 저걸 마저 싹 먹어치워야 오늘의 마무리가 끝나는 거지.

아오. 그럼 일단 녀석들을 마저 접수할 준비를 해야겠네.

아…. 근데 오늘이 이틀 차인가? 매혹 리필도 해야 하는데.

어제 해 놓을걸. 아. 귀찮아.

라스베이거스로 순간 이동하자 레나와 신영, 가인이 나를 반긴다.

그리고 그 뒤에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스터 샤이닝, 온몸이 결박되어있는 쉐도우.

"주인님!"

"어. 지금은 내가 힘드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무효화를 걸고 미스터 샤이닝에겐 수면을, 쉐도우에겐 매혹을 걸었다.

그리고 세 여자에게도 매혹을 리필한다음 짧게 말한다.

"저 여자 풀어주고, 서로 싸우지 말고 있어. 쉐도우? 들었지?"

결박된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

지난번에 기억 조작을 살짝 했는데…. 매혹이 걸려도 부작용은 없나 보네. 저 정도는 괜찮은 건가?

"이놈은 다시 매혹하고…. 내일 자정에 다시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대답은 듣지 않고 바로 벙커로 돌아갔다.

"오빠!"

승미세안 네 여자가 나를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우르르 다가온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코인이…."

승희의 얼떨떨한 표정. 아. 하긴 그렇지. 왕룡이 11억, 장룡이 21억이다.

합이 32억이라는 미친 코인이 들어왔으니 저렇게 놀랄만하지.

"아아. 그래. 근데 그건 아직 끝이 아니야. 다들 준비해. 이제…. 세상의 반을 먹으러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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