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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세 번째 스킬
다시 크라켄의 본부 앞으로 순간 이동한 나는 지속 회복 포션 생성 숙련을 한다.
얼마 남지 않았잖아? 빨리 마스터 해야지.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잔뜩 있는걸.
아침이 된 크라켄 본부. 어제와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느긋한 오전, 정오가 되니 또 열리는 게이트. 오늘은 세 개다.
어제는 하나더니 오늘은 왜 세 개야.
탐지를 봉인하고 세 군데의 게이트를 전부 확인한다.
두 군데는 브라질. 한군데는 칠레.
미국놈들. 아주 남미 쪽을 앞뒤로 다 따먹고 있네. 알뜰한 새끼들.
녀석들이 인간들을 학살하는 것까지 구경할 필요는 없기에 다시 크라켄 본부로 돌아와 스킬 숙련을 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나는 지속 회복 포션 생성을 마스터 했다.
하아. 됐어. 이제 남은 건 하나.
일단 패시브를 다 찍고 Q&A도 삭제 해본다.
여전히 삭제 할 수 없다는 메시지. 아직 궁금증이 많나 보지? 존나 물어보고 있나 보네.
원래대로라면 계약서 제작을 골라야 하겠지만…. 그러면 이렇게 감시하면서 스킬 숙련을 못 한다.
계약서 제작을 완료하려면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야 하니까.
게다가 계약서가 성립돼야 숙련이 하나 오르는 시스템.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아냐. 시간이 너무 걸려. 번거롭기도 하고.
그렇기에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다른 스킬을 배우기로.
때려죽여도 캔맥주 생성과 담배 생성은 배울 생각이 없기에…. 결국은 소주 생성을 고른다.
크윽…. 젠장. 처음 진영이를 보고 소주 생성 고른 걸 그렇게 욕했는데.
내가 내 손으로 소주 생성을 고르다니. 빌어먹을. 이 굴욕! 이 원통함!
음료 생성을 지운 새끼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내가 꼭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소주 생성."
내 손에 생성된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
하. 씨발. 씨발. 씨발!
마음 같아서는 이걸 원샷으로 입에 때려 붓고 싶은 마음이네.
우한 게이트에 던져버리려 하다가…. 그건 좀 아닌거 같아서 걍 수납에 넣었다.
수납에 넣을 수 있으면 넣어 놓는 게 낫지. 혹시 알아? 나중에 방주에 가져다주면 좋아할지도.
그렇게 이제는 소주 생성을 한다.
만들면서도 자괴감이 느껴지는 기분.
아니다. 적당히 하자. 자괴감 같은 걸 뭐하러 느껴. 그냥 담담하게 하자. 담담하게. 징징거리지 말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적어도 이건 글자 수가 적어.
네 글자 밖에 안 되잖아? 아! 이거 줄여졌던가? 그랬던 거 같은데.
소주라고 외치자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소주.
그래. 이거면 됐어. 이걸로 위안 삼자. 숙련을 빨리 올릴 수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아무 생각 없이 밑에 수납을 열어 놓고 '소주소주소주소주소주소주소주'를 반복한다.
병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냥 알아서 수납으로 들어가는 소주병.
마스터 하는데 필요한 횟수, 6,250번. 회복 포션 대 80병만 먹으면 마스터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걸 하루 만에 못 먹는다는 것.
멀미가 안 걸리는 스킬. 분명히 있을 거야.
장룡 그 새끼…. 그놈은 쉬지 않고 숙련했었어.
결국, 방법이 있긴 있다는 소리지. 아마 회복 스킬들을 잘 조합하면 뭔가 나오지 싶다.
어쨌든 그건 소주 생성을 마스터 한 다음의 일이다. 그리고 재료가 되는 스킬을 숙련해야 할 수도 있고.
아직은 멀고 먼 이야기.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지.
그렇게 숙련을 하고 있는데…. 크라켄 본부 게이트가 열리는 장소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쟤는…. 서부지부장 그놈이네?
LA에 있던 그놈. 나에게 여기 위치를 알려준 고마운 녀석.
그래. 녀석은 순간 이동을 가지고 있었지. 근데 왜 온 거지? 그냥 정기 보고 같은 건가?
치프의 방으로 올라간 녀석은 뭔가 대화를 했고, 치프는 바로 게이트를 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게이트를 타고 넘어간 뒤 얼마 있지 않아 치프와 다른 남자 둘만 다시 넘어왔다.
닫히는 게이트. 책상 앞에 의자를 하나 놓는 치프.
치프와 알 수 없는 남자는 그렇게 책상을 두고 앉아 뭐라고 대화를 한다.
그러다가 치프가 일어나 남자를 데리고 한 방으로 데려갔다.
평범한 방. 거기에 남자를 데려다준 치프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할 일을 한다.
음…. 뭘까? 궁금하네.
일단 밤까지 기다려봐야지. 그래야 녀석이 뭐 하는 놈인지 알 수 있겠지.
포션을 너무 많이 먹으면 멀미가 오게 되고 그러면 일하는 데 지장이 온다.
그렇기에 숙련은 잠시 쉬고 그저 가만히 누워서 밤이 오길 기다린다.
차라리 한숨 자고 올 걸 그랬나?
하지만 그건 또 너무 늦었다. 잠을 잘 거였으면 진작에 잤어야지.
융해와 노화로 뭔가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머리를 털고 이번엔 원트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그렇게 잡생각에 잡생각을 거듭하다가 결국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시간을 죽인다.
아.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
바보 같네. 차라리 위치스 애들을 시키면 되지 않았을까?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천리안과 투시 스크롤로 살펴보게 했으면 됐을 텐데.
쯧. 다음번엔 하청을 줘야겠네. 시간 아까워. 젠장.
이곳 시간으로 새벽 한 시.
더는 참기 힘들어서 바로 녀석의 기억을 읽으러 간다.
밤하늘을 날아가는 올빼미와 같은 몸놀림.
블링크와 페이즈 아웃. 그리고 해제와 동시에 무효화와 수면.
차려진 밥상에 기억 읽기라는 숟가락을 올린다. 어디…. 무슨 기억이 있나 볼까?
그렇게 기억 읽기를 마치고 바로 페이즈 아웃을 쓴 다음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순간 이동. 바로 벙커로 돌아간다.
"승희야!"
"네?"
돌아오자마자 승희를 찾은 나는 시계를 봤다. 한국 시각으로 오후 두 시. 어…. 그러면….
"나 밤 열 시에 깨워줘."
"알겠어요. 잘 자요."
언제까지 이러고 자야 하는 걸까.
암튼…. 자자. 딴짓할 시간이 없네.
"일어나요! 오빠!"
승희의 손길에 바로 벌떡 일어나 고맙다고 키스해주고 바로 크라켄 본부로 순간 이동했다.
내가 기억을 읽었던 녀석이 제대로 있나 확인한 뒤 그제야 좀 여유를 가진다.
서부지부장이 데려온 저 녀석. 스킬이 열네 개 있는 놈이다.
또 다른 스카우터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놈. 캐나다에서 나름 한 끗발 날리던 녀석.
녀석은 오늘 정오에 또 다른 크라켄의 본부로 간다고 했다.
좋은 기회야.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아마…. 서민준이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다면 저 남자와 같은 행보를 보였을 거다.
궁금증을 풀 좋은 기회야.
정오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어제 방주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기로 했다.
돈가스와 아직 따듯한 밥을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크라켄 본부를 지켜본다.
갓 만든 돈가스를 따로 덥힐 필요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수납 만세다. 브라보.
정오.
치프가 녀석을 데리고 본부의 게이트가 열리는 곳으로 나왔다.
혹시 모르니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봉인하고 기다리니 정오가 되자마자 바로 게이트가 열린다.
그리고 그쪽에서 나오는 한 남자. 치프와 인사하고 캐나다 녀석을 바라보더니 몇 가지 확인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녀석들이 게이트를 넘어가려고 할 때 바로 블링크와 비행으로 나 역시 게이트를 넘었다.
그리고 하늘 위로 블링크. 그럼…. 여긴 또 어디려나.
근데…. 딱 한 번만 둘러봤는데도 여기가 어딘지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너무나 유명한 건축물.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궁전.
저건…. 빅벤이잖아? 저 궁전은 버킹엄 궁전이고?
어이가 없네. 영국이라고? 그것도 런던?
저 멀리 보이는 대관람차. 저것도 유명한 랜드마크잖아? 런던아이였나?
아무튼, 황당하다. 미국 남부에서 갑자기 영국이라니? 대체 이해할 수가 없네.
밑을 내려다보니 캐나다 남자와 그를 데리러 온 남자가 버킹엄 궁전 안쪽으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페이즈 아웃을 쓰고 따라가면서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어차피 나중에 기억 읽기를 하면 되니까. 게다가 아까 거기는 정오였지만, 여기는 이미 해가 지고 있는 저녁이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 같네. 다행히.
일단 하늘 높은 곳에 현 위치를 저장하고 탐지를 돌려본다.
버킹엄 궁전 안에 느껴지는 기척들. 천리안과 투시로 안쪽을 살펴보니…. 아주 가관이다.
궁전을 마치 자기 숙소처럼 쓰는 녀석들.
백인, 흑인, 히스패닉, 중동계, 아시아인…. 인종도 다양하고 나이도 제각각이다. 여자도 제법 보이네.
그야말로 제각각인 인간들이 궁전을 점거하고 있는 모습.
캐나다인과 같이 궁전으로 들어간 남자는 한 여자에게 뭔가를 물어봤고, 셋은 궁전 복도를 걸어 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리를 뜨는 여자.
남자와 캐나다인은 그 안으로 들어가 뭔가를 길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참 뒤 남자만 방에서 나왔다.
캐나다인은 자기가 버킹엄 궁전 안에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나는 듯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며 신기해한다.
마치 관광온 사람처럼 해가지는 창밖을 둘러보고 다시 방 안쪽을 살펴본다.
이거…. 아무리 봐도 영국은 망한 거 같은데.
미국에서 온 놈들이 저렇게 궁전을 호텔처럼 쓰고 있다는 건, 결국 아무도 저들을 몰아낼 수 없다는 소리잖아?
하. 이거 진짜 웃기네. 미국놈들. 드디어 영국에게 복수한 거야? 어처구니가 없네.
근데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
이미 궁전을 점거하고 있을 정도라면 영국에 저들이 있을 이유가 없다.
저 남자는 스킬이 열네 개 있는 놈.
그런 놈을 이런 곳에 박아놓을 이유가 없다. 버킹엄 궁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건 말이 안 되지. 여기에 뭐 대단한 게 있다고.
밤까지 시간이 있으니 조금 돌아본다.
어차피 이따가 기억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굳이 저놈들에게만 기억을 읽을 필요는 없으니까.
탐지를 켜고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며 살아있는 사람이 있나 확인해보지만…. 없다.
텅 빈 도시. 텅 빈 거리.
런던 역시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니잖아? 세계의 대도시 중 하난데.
역시, 대도시의 운명은 몰살인가? 하긴, 인구가 몰려있다는 건 그만큼 코인이 집중되어있다는 소리니까.
탐지를 돌리며 아무리 돌아봐도 결국 잡히는 기척은 하나도 없다.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존나 꼼꼼하게 잡아 죽였네.
조금 교외로 나가 돌아본다. 비행 속도가 빠르니 영국같이 작은 땅은 돌기가 편하네.
금방금방 돌 수 있어.
내친김에 북쪽으로 쭉 올라가 봤다.
EPL에서 봤던 지명들이 나오니 상당히 반가운 느낌이네.
리버풀, 맨체스터, 리즈…. 다 아는 이름들이구만.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기척은 없다.
이야. 씨발. 미국 새끼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쥐잡듯이 잡아 죽였데?
하긴, 크라켄 그놈들이 남미에 하는 짓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하루에 여섯 시간씩 한팀, 혹은 여러 팀이 곳곳에 흩어져서 잡아 족치면…. 답이 없지.
그야말로 채로 치듯이 인간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거잖아?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볼까 하다가 관뒀다. 굳이 더 볼 필요는 없을 거 같으니까.
차라리 여기까지 왔으니 유럽 본토로 넘어가보는 게 좋겠다.
밤이 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그게 더 낫겠네.
다시 런던으로 순간이동 한다음 프랑스 쪽으로 날아갔다.
이야. 씨발. 비행 속도가 빨라지니 좋구나. 런던에서 프랑스 땅까지 10분 거리라니.
그렇게 프랑스 땅에 올라가 간판을 보며 길을 따라 파리 쪽으로 가봤다.
일단 대도시들은 확인해 봐야지. 그러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됐는지 대충 알 수 있을 테니까.
근데…. 굳이 파리로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 같다.
여기도 사람이 하나도 없네. 영국 꼴 난 건가?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를 돌아보면서 사람을 하나도 못 만났다는 게 정말 이해가 안 갈 정도다.
대체 얼마나 꼼꼼하게 잡아 족친 거지?
산골이나 사람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사람이 조금이라도 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없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해가 안 가. 이해가.
그렇게 날다 보니 드디어 파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들어섰다.
역시 사람 하나 없는 도시. 이런 큰 도시에 사람이 없는 게 익숙하니 다행이지…. 모르는 사람이 왔으면 상당히 무서울 거 같네.
표지판을 보면서 도시 중앙으로 계속 날아가 봤다.
그리고 얼추 도심 근처까지 왔을 때 내 눈앞에 보인 것은…. 박살 나서 반쯤 부러진 에펠탑이었다.
이야. 드디어 제모습을 유지하지 못하는 랜드 마크를 보게 됐네.
그게 에펠탑이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