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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녀석들을 테이프 질 하고 다음 집으로 넘어간다.
이런 상황인데도 아직 아무런 반응 없는 놈들. 근데 그럴만 하다.
집 두개에 각각 누워있는 다섯과 하나. 전부 마약에 취해서 겔겔대고 있으니까.
어휴. 병신들. 염병을 하네. 대체 이런놈들에게 뭘 믿고 식량을 주는 거야?
목에다가 문신하나씩 박아놓고 껄렁한척 하면 평생 약이랑 술빨면서 룰루랄라 놀 수 있는 거야?
먼저 다섯이 있는 쪽으로 갔다.
방 하나에 한명씩 누워있고 거실에는 두명이 누워있다..
집안에 술냄새와 묘하게 역겨운 냄새가 진동 난다.
으. 이게 대마초 냄새인가? 진짜 싫다. 이놈들을 살려두는 의미가 있나 모르겠어.
솔직히 말해서 만지기도 싫다. 테이프질을 해야하는데 손이 안갈정도.
어차피 가만히 놔둬도 제대로 움직이는 것 조차 못하는 놈들이기에 그냥 수면만 걸었다.
아. 그냥 죽일까? 죽이는 게 세계평화에 이바지 하는 거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그냥 놔뒀다. 그리고 남은 집에 있는 하나.
아까부터 주시하고 있었지만, 이놈이 보스인가보다. 때깔이 달라. 혼자 있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이놈 역시 몽롱한 표정으로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겠지. 이놈은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있을거야.
열려있는 문. 페이즈 아웃 같은 건 쓸 필요 없었다. 그냥 당당하게 들어갔으니까.
천리안과 투시로 계속 녀석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잔뜩 약에 취해있는데 움직일리가 없지. 병신 같은 새끼.
일단 재웠다. 고개를 조금 떨군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모습.
주변 일대에 있는 놈들은 모두 제압했으니 이제 느긋하게 기억을 읽어도 되겠지?
이녀석이 가장 높은 녀석처럼 보이니 먼저 기억을 읽어본다. 근데 일단 환기부터 시키자. 머리가 아플지경이네.
나이는 40대 초반 정도 됐을까? 눈이 조금 음푹 들어가서 인상이 조금 무섭다.
아마 약에 취해있는 게 아니었으면 제법 분위기 나는 모습이었을 거야. 전통적인 러시아 악역? 그런 느낌.
손대기 싫지만 어쩔 수 없기에 손끝을 녀석의 손등에 댔다.
그리고 기억읽기. 이고르에 대해서 기억 읽기를 해보지만...나오는 게 없다.
아. 실망이네. 이놈도 아는 게 없어.
그렇다고 해도 크게 낙담하진 않는다.
이고르 그놈이 무슨 유명한 놈도 아니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을 확률이 높겠지.
어차피 첫날부터 그럴듯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안했잖아?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차근차근 가야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냐.
이고르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 다른 기억을 살펴본다. 키워드는 역시 마피아.
방대한 기억들. 하나하나 뒤지기엔 너무나 많은 기억.
키워드를 조금 바꿔봤다. 보스, 상급자, 대부, 멘토, 닥치는 대로 이놈의 윗놈을 연상하는 키워드를 넣어서 기억을 뒤진다.
그렇게 뒤지는데...뭔가 조금 이상하다. 원하는 기억이 있어서 읽어봐도 기억들이 불투명한 경우가 많다.
마치 끊어진 필름같은 느낌? 아니면 촛점이 뭉개진것 같은 기억들.
말소리도 끊겼다 이어지고 불분명한 것들이 많다.
기억이 세탁기에 잘못 돌려져서 잔뜩 불어 터진것 같은 느낌?
대체적으로 그런 기억들이 많았다. 어떤건 몽롱한 느낌이고 어떤건 정신없이 일렁거린다.
아오. 씨발. 기억 읽다가 멀미나겠네.
결국, 기억 읽기를 중단했다. 아마도...이새끼들이 한 약이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질병 해제로 약에 대한 의존이나 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다곤 하지만 이런 부작용은 치료가 안되나보다.
뭉게지고 또렷하지 않은 기억. 하. 씨발. 이놈이 약을 하고 있어서 이런거야? 아니면 평상시에도 이런거야?
평상시에도 이렇다면...일상생활 가능 하냐? 거의 폐급수준인데.
역시 약은 안하는 게 맞았어. 아무리 스킬이라고 해도 마약이 주는 리스크를 백퍼센트 완전히 없앤다는 건 말이 안되지.
스킬 이름이 '마약 후유증 제거' 였으면 모르겠다. 근데 질병 해제잖아?
불면증 같은 것도 완치 못하는 스킬인데 그렇게 만능일리가 없지.
어쨌든 구역질 날정도로 역겨웠지만, 그래도 기억을 더 읽어본다.
녀석들의 정보는 녀석들만 알 수 있다. 마피아 같이 역사와 전통이 깊은 조직이라면 더더욱 그럴거다.
정보란 아무나 알 수 없기에 가치를 지니는 거고, 이놈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명맥을 이어온 놈들이잖아?
그러니 참고 읽어야해. 아무리 엉망진창이 되어있어도 어떻게든 건질건 건져야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은 세절기에 조각난 돈조각을 맞추고 있는 기분이다.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 웃긴건 조각난게 돈조각인지 휴지조각인지 모른다는 것.
한참을 더 기억을 읽고, 정말 말그대로 기진맥진했다.
몸의 피로보다는 정신이 혹사당한 느낌. 아. 씹새끼들. 이런걸 그렇게 좋다고 쳐 해댄거야?
마체테를 들어서 녀석의 허벅지를 푹 찔렀다.
"끄아아악!!"
새끼. 약에 취해있으면서도 통증은 느끼나보네. 마약은 진통제 아니었나?
아. 아무리 그래도 칼로 허벅지를 찌르면 그건 아픈가?
그렇게 비명지르는 놈을 다시 재웠다.
하지만 통증이 심해서 그런지 금방 다시 깨는 녀석.
재우고 찌르고 깨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녀석은 기절했다. 이야. 기절은 안깨나보네? 신기한 새끼.
마무리로 녀석의 목에 마체테를 찔러넣었고 녀석은 빛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빛으로 변해서 죽는건 너무 화사해. 잿가루가 되거나 몸이 녹아서 죽어야 조금 어울릴텐데.
다른 집에 있는 약에 취한 네명. 그놈들은 기억을 읽지도 않고 바로 죽였다.
다시 손을 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약한놈 기억 읽는 건 다신 하고 싶지 않아.
카드를 하고 있던 놈들. 그놈들의 기억을 읽었지만 역시 건질 건 없다.
그리고 녀석들의 기억도 불투명한 게 많았다. 어휴. 전체적으로 문제 있는 놈들이네.
계속 이런식이면 기억읽기로도 한계가 있는데.
하나하나 남은 놈들을 다 처리하고 결국 마피아들의 아지트였던 곳에서 홀로 남게 된 나는 주변을 돌아봤다.
여기저기 나있는 대마들. 으. 꼴도 보기 싫네. 다 태워버려야지.
녀석들의 창고에서 기름통을 잔뜩 발견한 나는 대마밭에 골고루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스녀석이 있던 집으로 들어가 멋들어지게 생긴 지포라이타 하나를 가져왔다.
이야. 생긴건 참 멋진데. 아마 내가 흡연자였으면 눈이 돌아갔을 만한 전리품이었겠지?
하지만 나는 관심 없다. 내게는 그저 도화선에 불붙이는 용도일 뿐.
불을 붙이고 기름이 뿌려진 대마밭에 지포라이타를 던진다.
금방 불이 붙었고 순식간에 불길이 커졌다.
그렇게 타는 불을 바라보는데...매캐한 냄새가 난다. 아. 씨발. 그생각을 못했네.
여기 있으면 나도 취하는 거 아냐? 빨리 물러나야겠다.
대마밭에 골고루 기름을 뿌려놨기에 불은 금방 크게 번졌다.
집에도 붙기 시작한 불들은 금방금방 타올라 검은 연기를 내뿜는다.
와. 이래서는 온 동네방네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다 알겠네.
근데 오히려 그게 내가 원하는 거다.
녀석들의 기억만으로 다른 조직이나 상위 조직을 알 수 있었으면 이렇게 요란한 짓은 안했다.
하지만 얻은 게 없잖아. 단편단편의 기억은 있지만 정작 중요한 핵심은 없으니까.
여기서 계속 지켜보며 이쪽으로 오는 놈들을 잡아다가 기억을 읽어봐야지.
적어도 이 소식이 알려지면 녀석들과 관계 있던 놈들이 나타나겠지.
이 넓은 러시아 땅을 뒤지면서 정보를 찾는 것보다는 그나마 정보를 알고 있을 놈이 알아서 오는 걸 기다리는 게 나을거라는게 내 생각이다.
불타는 마피아 아지트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이제 뭘하지? 마냥 기다리고 있긴 시간이 아까운데. 지루하기도 하고.
스킬도 능력도 없던 옛날에야 무지성으로 잠복하고 매복했었지...지금은 그럴 때가 지났잖아?
얼마든지 멀티테스킹이 가능해졌다. 이곳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니까.
일단 이 장소를 저장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지간해선 사람이 오지 않을 것 같고 마피아 아지트가 탐지범위에 걸리는 그런 곳.
이제 여기에 10분에 한번 정도씩만 오면 된다. 뭐, 10분도 짧지. 30분도 되겠네.
어차피 여기 조사하러 와서 10분만 있다가 가진 않을테니까.
자. 이제 뭘해볼까. 다른 쪽을 확인해봐?
녀석들의 기억에서 그나마 이놈들의 활동 반경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다.
이스트라 시와 그 일대. 그럼 그 밖에도 이런 놈들이 잔뜩 있을 수 있다는 건데.
어차피 놈들이 찾아올 수 있는데 내가 찾으러 갈 필요가 있을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굳이 마피아 놈들만 정보를 캘 필요는 없잖아? 다른 쪽에서도 접근을 해봐야지.
이고르 그 녀석은 8년 전에도 상당히 거물인사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노는 물이 다르다는 거겠지.
그럼 부자나 콧방귀좀 끼는 놈들이라면 그 놈을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거다.
그러니 그놈들을 찾아보는 게 조금 더 확률이 높아질거야.
문제는 어디서 그런 놈들을 찾느냐가 문제인데.
다행히 그 해답은 얻었다. 이놈들의 기억에서 나온 곳. 루블료프카? 루블료브카? 암튼 그런 이름.
아이. 진짜. 이놈의 러시아어. 이름 정말 드럽게 어렵네.
통역과 번역 스킬이 있는데도 이정도니 그 두개 스킬이 없었으면 이곳에 오는건 정말 불가능했을 거야.
암튼 그런 곳이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러시아의 부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동네.
우리나라의 부자동네 그런 수준이 아니다. 녀석들의 단편적인 기억에서 본것만 해도 상당히 으리으리한곳이었으니까.
거기라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사람이 살던 흔적은 있겠지.
부잣집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잖아? 돈이 썩어나는 놈들은 이런 상황이 왔어도 다 제 살 궁리를 만들어 놨을거다.
거길 가보기로 했다. 허구언날 이렇게 남자냄새만 잔뜩 나는 마피아 새끼들하고만 부대낄 수는 없지.
나도. 어? 좋은거. 어? 기깔난거. 그런것도 보고. 먹고. 여자도 좀 보고. 그래야할거 아냐.
결정했으면 바로 실행하는 게 나의 장점 아니겠어?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 불타오르는 집과 밭이 더욱 더 부각되기 시작하는 시간.
해가 진다고 나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밤이 친근하지.
불면증 시스템을 장착한 나에게 밤이란 남들이 방심하게 되는 좋은 시간이다.
진짜 웃기는 일이다. 다들 밤에 자기가 잘때 다른 사람들도 잘거라고 생각한단 말야?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하거든.
게다가 진짜 재밌는 일은 항상 밤에 일어나는 법이니까.
바로 몸을 띄워 이동한다.
루블료프카의 위치는 모스크바의 서쪽.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는 남동쪽.
기억을 읽은 바에 따르면 루블료프카라는 행정 지역명은 없다. 그냥 한 지역을 일컫는 지명.
그렇기에 나도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대충 어디일거라고 짐작만 하지만...그것도 정확하진 않다.
우리나라의 지역도 이름만 듣고 어딘지 모르는데 하물며 이런 러시아의 거지같은 이름만 듣고 어찌 알겠어.
그래도 간다. 가면 뭐라도 나오겠지.
내가 믿는 건 압도적인 반경의 내 탐지. 그리고 멀리까지 볼 수 있는 천리안과 투시.
그것만으로도 뭔가를 발견하는데 남들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설 수 있다. 그걸 믿는다. 그렇기에 일단 가는 거고.
이 세상에 전기가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무제한으로 유지가 된다는 건 상당히 좋은 일이다.
적어도 이렇게 해가졌을 때 온 세상이 어둠에 물들지는 않잖아?
아직 켜있는 가로등, 건물들에 켜있는 불빛들.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 끄지 못했던 전등.
그런것들이 사람들 사는 곳의 윤곽을 그려준다. 진짜 어지간히 길치가 아닌 이상 길을 헤매긴 힘들 정도.
근데 분명 있겠지? 길치는 어디에도 있고 어느곳에도 있으니까.
생존능력이 있다고 해도 길치면 정말 피곤할거야. 아니 길 찾는 것도 생존 능력이니 이미 다 죽고 없으려나?
거리가 그렇게 먼건 아니다. 모스크바 중심에서 여기 이스트라까지의 거리도 50킬로 정도 밖에 안된다.
루블료프카의 위치는 모스크바 서쪽 지역이라고 했으니 적어도 그만큼의 거리는 안될거다.
하지만 목적지를 정확하게 모르니 가는 길이 더디다. 인기척이 나타날 때마다 하나하나 가서 확인해야 하는 것도 컸고.
그렇게 한참을 헤매며 날아가다가 드디어 그럴듯한 곳을 발견했다.
저 멀리, 다른 곳보다 조금 더 휘황찬란해 보이는 곳.
조명의 느낌이 다르다. 살기 위해, 필요해서 조명을 켜놓은 곳과는 확연히 다른 곳.
게다가 인기척도 제법 있다. 얼추 안 헤매고 온거 같네. 한시간 넘게 걸리긴 했지만...이정도면 뭐 선방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