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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민희."
"네."
나를 바라보는 민희. 항상 차려입은 것만 보다가 이렇게 캐쥬얼한 차림은 처음인 것 같다.
상당히 어울린다. 이 여자를 누가 30대 초반이라고 생각할까?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방심하거나 상대를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실내라면 내가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어. 안에 있는 녀석들 처리는 정말 말 그대로 금방 할 수 있지. 그리고 그게 내 방식이고. 근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직접 처리하고 싶어?"
잠시 생각하는 민희. 그녀가 훈련하는 모습을 못 봤기에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정확히 모른다.
쉬운 길이 있는데 돌아가는 취미는 없다. 하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존중해 줄 수는 있다.
이건 그녀의 복수니까.
"아니요. 고영준만 내 손으로 죽이면 돼요.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건 빨리 처리하는 게 낫죠."
"그래. 알겠어. 현명한 생각이야. 그럼…. 여기 잠깐 있어."
나는 일단 이 장소를 저장했다.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청평의 주방으로 돼 있던 자리에 덮어씌워 저장한 다음, 바로 몸을 띄운다.
"금방 올게. 파티가 풀려도 걱정하지 말고 주변 탐지에 신경 써."
그리고 건물로 다가간다.
건물 안에 있는 여섯 개의 기척. 크게 의심스러운 곳은 없다.
여기가 약을 받아오는 곳이라고? 연구소에서? 왜 굳이 그렇게 번거로운 짓을 할까?
연구소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그렇다면 이해 간다.
근데 어차피 여기로 사람이 왔다 갔다 한다는 거잖아? 그럼 위치가 훤히 들통나는 거 아냐?
이해가 잘 안 되긴 하지만…. 뭐 그건 녀석들의 기억을 뒤져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이니 일단 무력화시키고 생각하자.
걱정해야 할 것은 하나밖에 없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
내가 저런 놈들이라면 그걸 깔아 놓고 장사할 거야
어떤 미친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데 저렇게 담담하게 있겠어? 분명 나라면 그렇게 한다.
그리고 튼튼한 콘크리트 구조물과 지하로 통하는 비상 탈출구, 혹은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살짝 벗어나는 통로.
그렇게 준비하면 안심할 수 있을 거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지하로 도망가서 순간이동이든 게이트든 페이즈 아웃이든 쓰면 되니까.
하지만 여긴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높은 곳에서 투명화를 건 돌을 떨어뜨렸지만, 돌에 걸린 투명화는 풀리지 않았다.
뭘까. 무슨 깡으로 저렇게 당당하게 있는 거지? 혹시 아무나 저 위치를 아는 게 아닌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하나라도 알고 있으면 그건 누구나 아는 것과 마찬가지잖아.
게다가 그 원장 녀석. 그놈이 여기의 발길을 끊었다면 녀석들은 당연히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어야 했다.
근데 안 그랬단 말이지. 타성에 젖은 걸까? 아니면 나처럼 그렇게 집요하거나 강박적으로 보안을 챙기지 않는 걸까?
어쨌든 없으면 나야 좋지. 바로 페이즈 아웃을 쓰고 안으로 들어간다.
혹시 모르니 신중하게 안쪽을 살펴본다. 저번에 짱개놈들처럼 페이즈 아웃 세상 쪽에서 이상한 놈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벽을 이용해서 이리저리 살펴본 결과 딱히 특별한 건 없다.
그냥 평범한 곳. 만약 내가 지나가다가 이곳을 발견했다면 딱히 특별한 곳이라고 생각 안 하고 그냥 쓱싹 잡아 죽였을 것 같은 곳.
방 한쪽에서 두 놈이 뭔가 병 같은 것을 상자에 넣고 있는 모습.
그 옆방에선 세 놈이 고스톱을 치고 있다. 어…. 임마 이거 고도리로 나겠네. 이야. 났네. 났어.
5만 원 권으로 고스톱을 치고 있는 놈들. 휴지나 다름없는 돈이지만 기분이라도 내는 건가? 웃긴 놈들이네.
그리고 카운터처럼 생긴 곳에서 느긋하게 앉아 노트북을 보는 한 놈.
별거 없네. 별거 없어. 습격당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놈들이다.
하긴…. 이놈들이 이해 가긴 한다. 과연 누가 여길 알고 무력으로 쳐들어올 생각을 하겠어.
그러니 풀어지고 나태해질 수밖에 없겠지. 그래. 그 마음 이해한다.
포장하고 있던 두 놈을 먼저 무효화를 건 다음 재웠다.
그리고 방문을 조용히 연 다음 화투 치는 세 놈도 바로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다.
마지막 한 놈 역시 별다른 저항 없이 무효화를 걸고 수면을 건다.
정말 간단하고 시시한 작업.
이제 이런 작업은 숨 쉬듯이 금방 할 수 있다. 수면 숫자가 늘어난 건 정말 좋은 일이야.
번거롭게 일을 안 해도 되니까.
그렇게 탐지를 돌려보니 이놈들과 저 멀리 있는 민희 말고는 아무도 없다.
바로 게이트를 열고 머리를 쑥 내밀었다.
"깜짝 놀랐잖아요."
"끝났어. 이리와."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는 민희. 신기한 듯 바라보는 모습.
"다 자고 있거든? 나는 하나씩 기억을 읽을 거니까 주변 경계 좀 해줘."
"네? 기억을 읽어요?"
"어.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줄게."
그리고 기억 읽기 시작.
포장하고 있던 두 놈은 그냥 잡부다.
아는 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놈들. 물론 그냥 잡부는 아니고 예비 인력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다지 중요한 놈들은 아니다.
민희와 다시 파티하고 그냥 바로 쳐 죽였다.
코인도 둘이 합쳐서 만오천 밖에 나오지 않는 놈들. 안쓰럽네. 어휴.
화투를 치고 있던 세 놈은 경비였다. 스킬이 네 개씩 있는 놈들. 스킬 네 개로 경비를 세운다니…. 맥이 빠졌다.
이 녀석들의 수준이 대충 가늠이 되는 것 같다. 한심해. 진심으로.
의외로 카운터에 있던 놈은 전직 의사였다. 레지던트? 암튼 그런 거.
저 녀석의 기억에서 용인 연구소의 위치를 찾아내려 했지만 우습게도 이놈 역시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말단이라 그런지 바로 건네주는 게 아니고 중간 창고 같은 곳에서 물건만 받아오는 녀석.
결국, 이놈들에겐 얻은 것은 그 창고 위치밖에 없다. 이래서 관리를 빡쎄게 안 했던 거구나.
이 말단 사무실 이곳은 알려져도 상관없는 거였어.
여기가 타격을 입어도 언제든지 본체에는 타격이 없도록 돼 있는 구조.
하긴,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 오히려 잡아 죽일 놈들을 믿을 수 있다.
너무 어설프면 함정이라고 밖에 생각 안 할 테니까.
녀석들이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게 느껴져야 나도 안심되지.
"별거 없네."
그러면서 민희에게 알아낸 것을 알려준다. 이곳이 말단 조직이라는 것과 물건을 받아오는 창고가 있다는 것.
"바로 갈 거예요?"
"어. 가야지. 이놈이 물건을 또 받아오는 건 사흘 뒤야. 그러니 그 전까진 이놈들이 죽어버린 건 알 수 없을 거야."
"거긴 어딘데요?"
"그리 멀진 않아. 용인."
"알겠어요. 그럼 가요."
"아. 여기 이 옆방에 보면 이놈들이 포장하고 있는 것들이 있거든? 그거 한번 뭔지 볼래?"
민희는 옆방으로 향했고, 나는 남은 놈들을 죽였다.
남은 네 녀석을 합쳐서 12만 코인. 아까 두 놈까지 합치면 13만 5천. 그걸 민희랑 반으로 나누니…. 별 감흥이 없다.
쯧. SG 센터가 너무 효율이 좋았어. 눈이 너무 높아졌네.
"확인했어?"
미희에게 가서 물어보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아무것도 적혀있는 게 없어서 뭔지 잘 모르겠네요. 앰플에 알파벳 한 글자만 적혀있으니 뭔지도 모르겠고."
"뭐야. A? 아. 혹시 이게 그건가 암페…. 암페 뭐였는데."
"암페타민?"
"아. 그래 그거 같다. 아까 그놈 기억에서 그렇게 본 거 같아."
"그런 것도 가능해요?"
"어. 말 그대로 타인의 기억을 읽는 거니까."
"무서운 스킬이네요. 그런 게 가능하다면. 설마 나도 읽을 수 있는 거예요?"
"접촉하고 있으면 가능하지. 걱정 마. 함부로 쓰진 않을 테니."
"그런 건 크게 걱정 안 해요. 어차피 나한테 쓸 일도 없잖아요?"
"글쎄. 민희 니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보기 위해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물어봐요. 대답해 줄 테니."
"뭐 좋아하는데?"
"어머. 지금 바로?"
"말 나온 김에 물어보는 거지."
"흐음…. 지금 말하긴 조금 부끄러운데."
"엥? 부끄럽다고?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민희는 내게 슬쩍 다가오더니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뒤로 하는 거요."
그녀의 말과 화장품 냄새가 훅 느껴지니 짜릿한 느낌이 확 든다.
크. 역시 방심해선 안 돼. 이 여자는 그런 여자야.
"마음 같아선 지금 바로 해버리고 싶은데…. 일단은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
와. 나 지금 조금 멋있던 거 같아. 어른스러운 느낌이었어.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성을 지켜냈잖아? 장하다. 권성철. 훌륭했어.
"흐응. 안 넘어오네."
그러더니 자신의 수납을 열어 약물들을 잔뜩 챙기는 민희.
"그건 왜 챙기는 거야?"
"폐기해야죠. 여기가 이렇게 내버려 둬 놓을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러네. 아. 그럼 저기 선반 저기에 있는 것도."
"저기 뭐가 더 있어요?"
"프로포폴이랑 미다졸람."
"아."
선반을 가서 열어보고 안에 있는 앰플을 살펴보는 민희.
나도 가서 봤더니 앰플에는 P라고 적혀있다. 밑을 열어보니 M이라고 적혀있는 앰플도 있었고.
이거 말고는 없나? 기억에는 이거 말곤 없었는데.
민희는 전부 다 자신의 수납으로 집어넣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털어 넣었다.
"저건 맞으면 무슨 느낌인가?"
"호기심 갖지 말아요."
"당연하지. 맞을 생각은 없어. 설마 내가 나 스스로 무방비해지는 모습을 만들 거라고 생각해?"
"그건…. 그렇네요."
"다 챙겼으면 가기나 하자. 아직 할 일이 많아."
스마트 폰을 꺼내서 지도를 켠 다음 아까 기억에서 읽은 주소를 찍어봤다.
얼마 멀지 않은 거리. 금방 갈 수 있겠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나와 민희는 바로 창고 쪽으로 이동한다.
한 5킬로 온 거 같은데. 대충 이 근방인가? 아. 저기 기척이 있네. 저쪽인가 보다.
아까 그놈의 기억에서 봤었던 창고. 기척은 하나밖에 없다.
뭐지. 왜 이렇게 허술해?
"뭐 있어요?"
"이상하네. 한 명밖에 없어."
"한 명요?"
"어. 기억에서는 몇 명이 더 있었던 거로 봤는데."
아. 이래서는 함부로 처리하기가 힘든데.
아니지. 꼭 처리할 필요는 없구나. 이놈을 처리해버리면 그 윗선에서 금방 알아버리잖아.
어차피 기억 읽기니까 녀석을 매혹하거나 죽일 필요는 없다. 그래. 그게 기억 읽기의 장점이지.
"내가 가서 저놈 기억만 읽고 올게."
"괜찮겠어요?"
"하늘에 떠 있다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내 쪽으로 와. 알겠지?"
"알겠어요."
나는 바로 블링크를 해서 창고 있는 쪽으로 다가가 바로 페이즈 아웃을 썼다.
처음 와본 곳인데도 방금 기억을 봐서 그런지 와봤던 곳처럼 느껴진다.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피며 기척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녀석. 하. 팔자도 좋네. 하긴, 춘곤증은 참기 힘들지.
마침 잘됐다. 완전 범죄가 가능하겠어.
사각으로 이동해 무효화와 수면을 또 건다. 자는 상대에게도 수면이 걸리는 건 조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잠 속의 잠인가? 팽이라도 돌려야 하는 거 아냐?
깔끔하게 생긴 남자. 녀석의 몸에 살짝 손을 대고 기억 읽기를 썼다.
고영준과 연구소의 위치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억을 읽으니 뭔가가 나왔다.
이놈은 제법 급이 있는 놈인가 보네. 뜨는 게 많아.
그렇게 기억을 읽고 바로 광역 스킬 무효화를 건 다음 바로 페이즈 아웃을 썼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억을 읽혔다는 건 죽어도 모를 거다.
기억 읽기를 배운 건 잘한 일이야. 아. 근데 이것도 빨리 마스터 찍어야 하는데. 91퍼니까 하루면 올릴 수 있긴 한데…. 코인이 문제네.
제발 이번 민희의 일을 하면서 코인이 많이 들어오길 바라야겠어.
한참 떨어진 곳까지 이동하여 페이즈 아웃을 풀고 바로 민희에게 갔다.
"금방 오네요."
"그치. 내가 저놈의 인생을 전부 훑어볼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서, 뭐 좀 건졌나요?"
"어. 혹시 고영준 그 새끼 얼굴이 좀 갸름하고 동그란 안경 썼나? 좀 재수 없게 생기고, 신경질적으로 생기고."
"네…."
이를 악물며 대답하는 민희.
와…. 저 표정은 조금 무섭네. 역시 민희 심기는 건드리면 안 되겠구나.
조 상무 그 새끼 죽였을 때도 저 정도 표정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찾은 거 같다. 그 연구소에 있어."
"후우. 그래요."
모자를 벗은 다음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고 다시 모자를 꾹 눌러쓴다.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의. 그녀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는지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럼, 가자.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겠지?"
"물론이죠."
그렇게 나는 알아낸 주소를 지도에 찍어봤다.
역시나 여기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 금방 도착하겠네.
부디 민희의 복수가 수월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는데…. 과연 어떠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