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25화 (42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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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흐음."

턱에 손을 괴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민희.

별다른 말은 없다.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 그녀의 입이 열리길 기다리는 내가 살짝 초조해질 정도로.

아차. 이게 민희가 노리는 건가? 아쉬울 거 없다 이거지? 어차피 내 성격상 알려줄 수밖에 없다는 걸 아는 거지?

쳇…. 쉽지 않은 여자야. 정말…. 쉽지 않아.

"에이. 됐다. 됐어. 그냥 말해줄게. 포인트는 무슨 포인트야."

나는 이런 밀당 같은 거 못한다. 자신 없어. 그냥 내 꼴리는 대로 사는 거지. 으휴.

"광역 스킬 무효화는 상대의 버프를 모두 지우는 스킬이지. 그렇지?"

"그렇죠."

"지금 숙련은 어떻게 했지?"

"반사 걸고 광역 스킬 무효화로 지웠죠. 아니면 예준이가 비행 쓰는 거 지우거나."

"아. 그 녀석 비행도 배웠어?"

"네. 투명이랑 비행 배웠어요."

"좋네. 현명한 선택이야."

"그래. 어쨌든 혼자서 숙련하면 체력이 두 배로 들어가지. 둘이서 같이하면 그나마 본전이고."

"그렇죠."

"광역 스킬 무효화는 버프 두 개를 지우면 숙련도 두번 분량이 올라가."

"어? 그래요? 아…. 그러면?"

"열 명의 버프를 지우면 숙련도가 열 배로 오르는 거지."

"세상에. 잠시만…. 그럼…."

뭔가를 막 계산하는 민희. 그래. 저 여자는 똑똑하니까 알 거다. 포션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본인이 먹는 포션이 얼마나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는지.

"버프 걸린 사람 열 명이 있으면 저는 열 배로 빨라진다는 거죠? 그럼 포션 멀미를 십 분의 일로 줄일 수 있고요?"

"맞아. 지금 당장이라도 버프형 스킬 있는 사람 모아오면 쭉쭉 숙련이 가능하지."

"이거…. 그렇군요. 그러면 지금 중급 22퍼센트니까…."

"780번이랑 5,000번 남았네? 5,780번. 40으로 나누면 포션 144개…. 아니 145개로 해야지. 근데 열 명 모아오면 15개로 되고 스무명 모아오면 8개로도 된다는 소리지."

"어머. 계산이 되게 빠르네요?"

"나야 맨날 이런 거 생각하면서 사니까. 아. 그런데…. 체력 증가 찍었어?"

"네. 찍었어요."

"그럼 신체 능력 증가는?"

"아. 그건 못 찍었어요. 코인이 없어서…."

"그래? 지금 얼마나 있는데?"

"10만도 없어요."

"더 있지 않았어?"

"포션 샀죠. 준 건 다 써서."

"아. 이런. 하긴…. 내가 너무 오래 안 왔지."

결국, 코인이다. 코인. 어디서든 나가서 사람을 죽여야 벌 수 있는 코인.

민희랑 SG 센터를 좀 돌까? 나도 코인을 벌긴 해야 하는데…. 아. 맞다. 그럴 필요 없겠구나.

"민희."

"네?"

"그동안 미루고 있었던 복수…. 하러 갈 때가 된 거 같네."

내 말에 민희의 표정이 굳는다. 상냥한 눈동자 뒤에서 언뜻 보이는 복수심.

그녀는 많은 표정을 가진 여자다. 그리고 그중에는 그 누구보다 독한 모습도 가지고 있다.

조 상무 그놈을 죽일 때 봤잖아. 그녀가 얼마나 독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복수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그녀의 독기. 그래. 그걸 모두 태워서 날려버릴 시간이 왔어.

"고영준."

"그래. 코인도 얻고 복수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지."

"하아. 항상 준비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니까 떨리네요."

"걱정 마. 지금의 너는 강하니까. 눈먼 광역 스킬에만 당하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유리하지."

"그럼 언제 갈 생각인데요?"

"바로 지금. 뭐 망설일 필요 있어? 혹시 스케쥴 같은 게 있나?"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그래요. 알겠어요. 그럼 잠깐만 기다려줘요. 혹시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 그리 어려울 건 없겠지만, 그렇다고 방심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신중하게 갈 거니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

"알겠어요. 그러면…."

그러더니 무전기를 들고 사람들을 부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에 낯익은 얼굴들이 들어왔다. 전에 민희가 컨테이너에 있었을 때 같이 있던 여자 둘이랑 남자 하나.

그리고 서예준과 박도현. 의외네. 얘들도 다 부르고.

나를 알아보고 다들 간단하게 인사를 한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여 인사해줬다.

"잠시 개인적인 원한을 해결하러 자리를 비울 거에요. 솔직히 말해서 얼마나 걸릴지 몰라요. 그러니 그동안 캐슬을 잘 부탁해요."

간단하고 깔끔한 지시. 다들 짧게 '네'라고 대답한다.

그래. 딱 이 정도 구성이 좋아. 소수정예. 뭐, 물론…. 이들은 아직 정예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리고 경아씨. 뭐 하나만 부탁할게."

"네. 말씀하세요."

"캐슬에 버프형 스킬인데 아직 마스터 못 한 사람 있으면 좀 확인해줄래요?"

"버프형 스킬이요? 보호막이나 투명화 그런 거 말인가요?"

"네. 맞아요. 비행, 금속화, 반사…. 그런 거 다 포함이에요. 일단 확인만 해줘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캐슬을 잘 부탁해요. 지금 바로 나갈 거니까."

"네."

다들 바로 밖으로 나갔고 민희는 나를 바라본다.

"뭐 준비할 거 있어요?"

"위에 뭐 하나는 걸쳐야겠네. 따듯하긴 해도 바람 쐬면 몸 차가워지니까. 그리고…. 치마 입고 갈 거 아니지?"

"당연하죠. 잠깐 있어 봐요."

그러더니 옆방으로 들어간다. 음. 여기서 갈아입어도 되는데. 하긴 그건 좀 그렇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벼운 바람막이, 헐렁한 티, 청바지, 그리고 야구 모자를 눌러쓴 민희가 나왔다.

"오. 그렇게 입으니까 나보다 어려 보이네."

"어머? 너무 립서비스 아니에요? 그래도 타이밍 좋았고 기분도 좋았으니까 포인트 10점 추가."

"이야.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구나."

내 말에 피식 웃는 민희. 그러더니 나를 보고 물어본다.

"처음에 만났을 때 줬던 방독면. 아직 가지고 있어요?"

"어. 물론이지."

수납이 없을 때도 배낭에 넣어놓고 다니던 물건이다.

수납이 생기고 배낭에 있던 물건들을 그대로 다 수납에 넣었으니 없을 리가 없다.

혹시 모르니 수납을 열어 방독면을 생각하자 뿅 하고 튀어나온다.

"근데…. 대체 이걸 왜?"

"필요할 수 있으니까요."

"궁금하다. 대체 뭘 하려고 이런 걸 챙기라는 건지."

"그땐 내가 능력이 없었으니까요. 근데 아마 이번에도 쓰긴 쓸 거예요. 아마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파티를 생성했고, 민희에게 초대를 줬다.

"당신은 소환 없죠?"

"어. 파티만 있어. 아. 도현이랑 파티해봤었어?"

"네."

"그럴 일이 있었나?"

"당신 없던 사이 외부인 몇 명이 나타나긴 했었거든요."

"뭐? 정말?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해?"

"별일 없이 끝났으니까요."

"별일이 없다니? 그냥 갔어?"

"아뇨. 죽었죠."

"아…. 그렇군. 근데 아직도 이 일대에 돌아다니는 놈이 있단 말야?"

"있더라고요."

"으음."

신기하네. 그렇게 잡아 죽이고 다녀도 아직 어딘가 사람이 있다는 게.

하긴 SG 센터에 오는 놈들을 보면 아직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짱박혀 있는 놈들이 어지간히 있을 거다.

단지 도심에 없을 뿐이겠지.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해도 땅덩이가 손바닥 만한 건 아니니까.

"그럼 바로 가자."

"네."

건물 밖으로 나와 바로 투명화와 비행을 걸고 하늘을 날아오른다.

남양주에서 분당.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패시브가 없는 민희도 30분이면 날아갈 수 있는 거리.

"아. 그럼 지금 티어 7인 거잖아?"

"네. 맞아요."

"스킬 반경 증가1이랑 스킬 지속 시간 증가 1은? 그것도 코인 없어서 못 배웠나?"

"아뇨. 그건 배웠어요. 둘 다 10만 코인이니까요."

"아. 그럼 신체 능력 증가만 50만이라 못 배운 건가?"

"네."

"코인을 많이 벌어야겠네."

"그게 어디 쉽나요."

그러게. 쉽진 않겠지. 코인을 모으는 건 사실 굉장히 어렵다.

아무리 세상에 깔린 게 코인이라지만, 그걸 하나하나 죽이면서 구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놈들이 알아서 먹잇감으로 몰리는 백마촌이나 SG 센터같은 곳이 비정상적인 곳이지.

그렇기에 남양주에서 출발한 우리는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인간을 잡기 시작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인간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서울은 서울이라는 건가?

그 상징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놈들이 아직 있는 게 이상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가.

탐지 범위가 넓어졌기에 정말 말 그대로 이 잡듯이 훑을 수 있다는 게 컸다.

기척이 하나라도 보이면 가서 처리한다. 남자든 여자든 망설일 필요는 없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놈들이라 그런지 한 명당 만 단위의 코인은 가지고 있다.

뭐, 이것도 성에 차진 않지만.

그렇게 계속 이동한다. 암사를 지나 천호동을 지날 땐 예전 컴퍼니 놈들의 생각이 났다.

짭짤한 녀석들이었는데. 나름 괜찮았지.

그놈들도 시간만 조금 더 있었으면 충분히 강력해질 수 있는 놈들이었는데. 운이 나빴어.

천호를 지나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바로 성남. 이쪽은 사람이 없다.

그대로 쭉쭉 내려간다. 성남시 분당구잖아? 그래. 이 밑쪽이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지.

"장소가 어디라고 그랬죠?"

"어…. 보자. 잠깐만.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되네."

"어딘데요?"

"수내역 근처네."

"그럼 이쪽이요."

"아. 어딘지 알아?"

"네. 이 주변은 몇 번 와봤으니까."

맞다. 혼자서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그랬지?

그렇게 앞장서는 민희와 함께 수내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탐지에 걸리는 몇 개의 기척들.

"어디 보자. 저쪽에 여섯, 이쪽에 셋, 저쪽에 넷.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전혀 없는 건 아니네."

"사람의 기척요? 나는 잡히는 거 없는데."

"넌 100미터잖아. 아, 110미터겠구나."

"흐음…. 왠지 기분나쁜데요?"

"억울하면 스킬 팍팍 배우라고. 이 주소부터 가야겠지?"

"주소가 어느 쪽인데요?"

"지도에 찍힌 방향을 보면 저쪽. 여섯 명 있는 쪽. 어? 저기 넷은 움직이네. 저거부터 빨리 잡자."

그러면서 나는 그쪽으로 이동했다. 바로 나를 따라오는 민희.

속도를 보아하니 차로 움직이는 것 같다. 저런 건 놓칠 수 없지.

차로 움직이는 놈들은 훌륭한 영양 간식 같은 거다. 본인들이 별거 아니라고 셀프 인증 마크를 찍고 다니는 멍청이들.

"천천히 와."

차의 속도가 빨라지기에 블링크를 해서 주변의 차 한 대를 바로 수납으로 삼켰다.

그리고 다시 블링크. 수납을 열고 차 투하. 차 천장이 우그러질 정도로 박살 나며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근데 기척 하나가 남아있다. 뭐지? 왜 안 죽었데?

콰앙!

찌그러져 있는 문짝을 발로 뻥 차며 패기롭게 밖으로 나오는 한 남자.

아. 금속화인가? 운이 좋았네. 근데 뭐 어쩌라고.

바로 광역 스킬 무효화와 수면.

밖으로 나왔던 남자는 그대로 쓰러진다. 안타깝네. 겨우 살았다고 생각했을 텐데.

"벌써 끝났어요?"

"어. 잠깐만."

기왕 안 죽었으니 녀석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하나 대고 기억 읽기를 한다.

키워드는 고영준. 고 박사. 고 선생. 고 원장…. 하여간 고영준이랑 관련되어 보이는 키워드를 싹 찾아봤지만, 걸리는 건 없다.

"꽝이네."

마체테로 찍어 죽이고, 남은 코인들을 모두 먹었다.

넷이 합쳐서 30만. 나와 민희 둘이 나눠서 각각 15만. 그래도 적은 코인은 아니네.

"난 아마 그날 아울렛에서 당신 편에 서기로 한 걸 평생 다행이라고 여길 것 같아요."

"갑자기 왜? 아. 이거 수납으로 차 떨구는 거? 다들 이거에 반응이 격렬하네."

"나는 수납을 그렇게 썼는데 왜 당신처럼 쓸 생각을 못 했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 암튼, 남은 거 다 정리하고 바로 가자."

아까 목적지에 있는 여섯 말고도 세 명이 있는 쪽으로 가서 빠르게 정리한다.

페이즈 아웃을 써야 해서 파티가 풀리는 게 번거롭긴 하지만, 전부 무력화시키고 죽이기 전에 다시 파티를 하면 상관 없다.

지금까지 번 코인은 각자 32만 코인.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이동 거리와 들인 시간이 많아서 흠이지.

"이제부터가 본게임이네."

목적지에 있는 여섯. 저놈들은 어찌됐든 고영준을 알 확률이 높다.

하나하나 잡아서 차근차근 기억읽기를 해야하는 놈들.

어차피 나도 수면이고 민희도 기절이라 즉사시키는 스킬은 없으니 뭐 크게 문제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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