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97화 (39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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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 파견대

일단 짱개들 잡아 죽이는 것은 잠시 미뤘다.

짱개들 10억을 죽이는 것보다 승미세안 네 여자가 안정을 찾는 게 우선이니까.

뭐…. 안나는 멀쩡하긴 하지만.

아니, 승희나 미나, 세아도 사실 멀쩡해지긴 했다. 스킬이란 그런 거니까.

미나의 질병 해제와 승희의 힐. 거기에 포션을 곁들였기에 그것만으로도 셋은 멀쩡해졌다.

하지만 내가 불안했다.

"괜찮다니까요."

"아니야. 내가 안 괜찮아."

"너무 과보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연하지. 나는 마음 같아선 너희들을 나서지 않게 하고 싶어."

"어휴. 이렇게까지 성장시켜 놓고 그런 소리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어요."

승희의 말에 미나와 세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 혼자 있다가 위험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수하게 많은 인간을 쳐 죽여놓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 위험해진 거로 이러는 걸 보면…. 역겹겠지.

맞다.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역겨운 건 아무 의미 없다. 나는 그런 놈이 맞으니까.

"일단은 짱개놈들을 죽이는 건 잠시 보류야. 다들 몸 상태 추슬러. 그리고 숙련도 되도록 하지 마."

"뭔 숙련도 하지 말래. 오빠 너 우리 생각해주는 건 좋지만 적당히 오바해라. 너무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야."

세아의 말에 세 여자는 나를 바라본다.

암묵적으로 세아의 말을 인정하는 분위기. 하. 정말 이것들이 진짜.

"하아. 그래. 그건 그럼 맘대로 해라."

어쩌겠어. 져줘야지.

사실 이길 자신도 없고.

그렇게 강제로 휴식 기간이 되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기왕이면 나도 빨리 숙련이나 하자.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침대에 앉아 숙련하다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씨발. 대체 뭐였지? 벌? 분명 벌이었다. 게다가 그건 나도 노렸어.

아마 그걸 피할 수 있었던 건 내 짐승 같은 반사신경….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의심병이었다.

뭔가 비정상적인 것을 마주하면 바로 피해버리는 습관.

불확실한 것에 확률을 따지느니 아예 피해서 제로로 만드는 게 낫다는 판단.

어쨌든 나는 그렇게 피했다. 하지만 승희와 미나, 세아는 피하지 못했지.

근데 왜 안나는 안 건드렸지? 아니…. 그건 알겠다. 벌. 아마 테이밍이겠지?

의심 가는 스킬은 그것밖에 없다. 그리고 하급에 한 마리라면 마스터 해도 네 마리 밖에 안 되겠지.

그러니 넷밖에 못 노린 게 아닐까? 일단…. 여기까지는 타당한 추론이다.

근데 씨발…. 테이밍이라고? 그것도 벌?

호랑이나 코끼리 뭐 그런 것만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정말 창의력의 한계를 넓혀주는 계기가 됐다.

생각해보니 존나 좋잖아?

일단 기동성이 좋다. 그리고 살상력도 있다.

그 뭐냐…. 아나필락…. 아나필…. 아나필락시스? 아. 그래 뭐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암튼 그거 반응을 노리면 즉사도 가능한 거잖아? 아니. 즉사는 아닌가?

어쨌든 벌만으로도 사람을 치명상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전에 그 짱개 년이 그랬지. 테이밍 한 동물은 얼마든지 불러올 수 있다고.

게다가 테이밍 한 동물은 직접 키워야 한다고 했다.

벌은 키우기도 쉬울 거다. 꿀을 채취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벌통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키울 수 있잖아.

먹이야 뭐…. 비닐하우스에 꽃이나 심어주면 되겠지. 그건 뭐 알아서 할거고.

게다가 손실이 있어도 얼마든지 리필이 가능하잖아? 호랑이 이런 걸 키우다가 죽어버리면 손실이 크다.

근데 벌은 뭐…. 넘칠 테니까. 게다가 테이밍한 벌에게 애정을 줄 필요도 없고.

동물을 테이밍 하면 테이밍 한 동물이 죽거나 그런다면 감정적 소모가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도 무시 못 하겠지.

결론적으로 위험한 상황일 때 희생 플레이 같은 건 못 시킨다.

하지만 벌 같은 건 뭐…. 몇천 번이든 가능하지.

짱개 새끼들…. 진짜 인구가 많으니까 별별 창의적인 게 다 튀어나오는구나.

하여간 미친 새끼들이야. 그럴 창의력으로 좀 세상을 이롭게 만들지. 왜 좆같은 짓만 해대서.

그래. 테이밍한 벌이라고 치자. 그럼, 그걸 막을 방법은?

보호막? 아니…. 보호막으로 주변을 전부 막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약간의 틈이라도 있으면 들어올 수 있잖아. 의미가 없어.

금속화? 오. 이건 좀 가능성이 있네. 몸을 금속화 하면 벌이 쏘지 못하려나?

금속화라…. 그래 이것도 나쁘진 않지. 뭐가 됐든 방어력을 갖추는 것은 좋은 거야. 문제는 스킬에 여유가 있냐는 건데.

역시 좋은 건 블링크. 근데 쥐도 새도 모르게 쏘면 답이 없지.

승희와 미나, 세아가 블링크가 없던 게 아니잖아. 나야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고.

데미지 감소…. 음. 이게 좀 궁금하긴 한데.

데미지 감소를 쓰면 스킬 효과에 버틸 수 있다는 건 들었다. 80퍼센트라고 했던가.

근데 그게 스킬 말고 다른 것에도 적용이 되냐 이거다.

벌이 쏴서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일으켜 사망하는 것도 데미지 감소가 되나?

그럼 20퍼센트만 쇼크가 오나? 그걸 모르겠단 말이지.

어쨌든 데미지 감소는 다 찍게 해야 해. 나도 언젠간 찍어야 하고.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도저히 스킬 숙련을 할 수가 없었다.

안 되겠어. 일단 가서 짱개 새끼들을 좀 족치긴 해야겠다.

몇 마리 잡아다가 궁금한 걸 다 토해내게 만들어야겠어.

기왕이면 가지고 있는 정보나 구성원의 스킬들 죄다.

"잠깐 나갔다 온다."

"어디 가는데요…?"

멀쩡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파리한 느낌의 미나.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진 것 같다. 어휴. 정말.

"금방 돌아 올 거야."

"몸조심해요."

"당연하지. 아. 페이즈 아웃 쓸 거라 파티는 못 하고 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알겠어요. 언제까지 올 거예요?"

조용히 말하는 미나지만, 왠지 거기에는 걱정시키지 말고 제 시간 안에 들어오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는 것처럼 들렸다.

"음…. 자정까진 올게."

"알겠어요. 걱정되니까 늦지 마요."

"알겠어."

옆에서 승희와 세아가 미나보고 잘했다고 몰래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이 보였다.

웃겨 정말. 그런 건 안 보이게 하란 말이다.

어쨌든 바로 중국으로 넘어갔다. 아까 지급 파견대 놈들을 죽였던 곳.

일단 주변에 인기척은 상당히 많다. 아까 물을 그렇게 쏟아냈는데도 아직 짱개놈들이 남아있다니.

신기한 새끼들이네.

이놈들이 뭘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돌아다니면서 타겟을 찾는다.

매혹을 쓸 수 있는 여자. 그래. 쟤로 하자.

나름 젊어 보이는 여자. 매혹을 써도 거부감이 별로 없는 젊은 여자.

가서 바로 무효화에 매혹을 쓰고 물어본다. 지급 파견대와 윗대가리들이 있는 위치가 어딘지.

뭐라고 말은 하는데, 씨발 지명이 너무 많다. 길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설명을 들어도 들은 것 같지가 않다.

하. 존나 답답하네.

좀 더 끈기 있게 물어봤고,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을 얻어냈다.

대답을 들었으니 잘 가렴.

빛이 된 여자. 들어온 코인은 500코인.

쯧. 예상은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신경 쓰지 않고 여자가 말한 방향으로 향했다.

한참을 가니 여자가 말한 건물과 비슷한 곳이 있었다.

바로 페이즈 아웃. 그리고 건물 안쪽을 둘러본다.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관공서 같은 곳인가보다.

구청쯤 되려나? 아니, 그러기엔 좀 작고.

어쨌든 구청과 동사무소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어쨌든 안에 들어가서 아무도 없는 곳을 확인한 다음 페이즈 아웃을 풀고 탐지를 돌렸다.

스무명 남짓한 인원. 생각보다 인원이 적네. 건물은 큰데.

대충 위치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다시 페이즈 아웃을 써서 돌아다녀 본다.

근데…. 죄다 남자 새끼들만 있다. 뭐지? 존나 웃긴 새끼들이네. 여자가 이렇게 없다고?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여자 하나를 발견했다. 근데 행색이 조금 그렇다.

아마 청소부? 그런 거 같은데. 나이도 조금 있다. 생물학적으로 여자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저건 여자가 아니지.

매혹하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난다. 게다가 매혹을 한다 해도 알고 있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하아. 매혹은 이게 문제야. 정보를 캐기는 정말 편한데, 성별을 탄다는 것.

세상이 이 꼴이 되면서 여자들의 입지는 확 줄었다. 물론 유능한 여자들도 있긴 하지만 찾기는 쉽지 않다.

하아. 어쩐다.

하나 잡아다가 수원으로 데리고 갈 수밖에 없나.

그래도 최신영이 짱개어를 알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

일단 조금 더 살펴보다가 가장 높아 보이는 놈을 찾아봤다.

커다란 방. 우리나라로 따지면 구청장이나 시장의 방같이 생긴 곳.

거기에 앉아있는 남자. 우습게도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

방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가 페이즈 아웃을 풀고 투명화, 비행, 반사를 건 다음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눈치 못 챈 녀석. 그럼…. 자라.

무효화와 수면을 걸고 바로 수원 게이트를 열었다.

잠든 녀석을 게이트 안으로 집어 던지고 나도 바로 넘어간다. 그리고 게이트를 닫았다.

좋아. 납치 성공.

비행장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놈을 테이프로 꼼꼼하게 묶었다.

입까지 틀어막고 페이즈 아웃을 써서 벙커 아래로 내려간다.

최신영과 고성연을 매혹하고 게이트를 열어 짱개를 안으로 데리고 왔다.

최신영에게 매혹을 걸게 하고 테이프를 제거한 다음 내 질문에 솔직하게 말하라고 전달한다.

하아. 정말 번거롭네. 그래도 이것만큼 정확한 게 없으니까. 감수해야지.

"니 이름이랑 직급을 말해봐."

"저는 샹허현의 현장 위쥔하이라고 합니다."

"현장? 뭐야. 너 현서기 아냐?"

"네. 현장입니다."

"아. 씨발."

씨발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아, 제일 높은 놈인 거 같아서 잡아 왔는데 왜 현장이야. 빌어먹을.

"너. 지급 파견대에 대해서 아는 거 다 말해."

"지급 파견대에 대한 정보는 현서기만 알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러니까 아는 대로 말하라고. 몇 명인지, 머무는 곳이 어딘지, 스킬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아는 대로!"

"인원은…. 여덟 명입니다. 머무는 곳은 모릅니다. 스킬 같은 것도 당연히…."

하아. 씨발. 지랄 같네. 기껏 잡아 왔더니 꽝이야.

존나 쓸모없네. 아니 씨발 뭔 정보를 그렇게 꽁꽁 감춰두고 있어.

아니지. 사실 이게 맞지. 나름 지들의 중요한 전력인데 아무나 알고 있을 수는 없잖아.

아니 그래도 현장 정도면 이인자 아냐? 그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씨발. 이 새끼가 무능한 건지, 아니면 정보 보안에 꼼꼼한 건지. 답이 없네.

한참을 더 물어봤지만, 결국 이놈이 알고 있는 건 식량 생산과 세금…. 뭐 그런 쪽이었다.

나에겐 존나 아무것도 쓸모없는 정보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현서기는 어딨는데."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랑팡에 갔습니다."

"랑팡? 거긴 또 뭐야. 아. 니들 구역이 있는 상위 지역인가?"

"네. 그렇습니다."

하아. 일도 드럽게 꼬였네. 쯧.

녀석을 더 살려놔야 할 이유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봤지만, 마땅히 그럴 이유가 없다.

그대로 마체테를 휘둘렀고, 녀석은 빛이 되었다.

[50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지랄하네. 진짜 지랄한다.

그러니까, 무력에 관련된 것은 현서기와 지급 파견대만 직통으로 연결된다는 거다.

나머지들은 그냥 생산인력과 그걸 관리하는 인원일 뿐이라는 것.

지랄 염병을 한다. 정말.

매혹이 걸린 최신영과 고성연을 놔두고 그대로 다시 중국으로 순간 이동했다.

아까 뭐랬지? 샹허현? 암튼 다시 거기로 가서 관공서 쪽으로 가보니 상당히 부산스럽다.

이런 젠장. 현장이 사라진걸 눈치챈 건가.

이래서야 원 뭘 더 해볼 수도 없잖아.

뭐라 그랬지? 랑팡시? 거기로 가야 하나? 거기로 가면 뭔가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일단 가본다. 가서 보이는 족족 여자들을 잡아 정보를 캐내 봤다.

상당히 많은 것을 알아내긴 했다. 웃긴 건 별로 커 보이지 않는 도신데 인구가 500만이 넘는 도시였다는 것.

물론 지금은 상당히 줄었긴 했다고 하지만…. 이놈들의 스케일이 새삼 다시 느껴진다.

그렇게 관공서 위치를 알아내고 가까이 가봤는데…. 생각보다 경비가 삼엄하다.

하. 우레 폭풍 마렵네.

여기다가 딱 쓰면 속이 확 시원해질 텐데.

일단 지금은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다른 수를 찾는 수밖에.

페이즈 아웃을 쓰고 돌아다녀 보는데…. 또 소름 돋는 것을 발견했다.

SG 센터 앞에서 서민준 녀석을 만났을 때의 그 느낌.

여기도 페이즈 아웃을 쓰는 놈이 있었다.

이 스킬을 배우고 두번째로 만나는 녀석.

다행히 녀석에겐 들키지 않았다. 내가 먼저 눈치채고 물러나서 다행이야. 귀찮아질 뻔했어.

쉽지 않다. 빈틈을 노려보려고 조금 늦게까지 기다려봤는데…. 내가 요즘 이 주변을 들쑤셔놔서 그런가?

녀석들의 경계가 허술해지지 않는다.

돌겠네. 너무 오바했나.

그렇게 자정이 다 돼가고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새벽까지 있으면서 빈틈을 노려보고 싶었는데…. 미나가 걱정할 테니 일단은 돌아가야지.

다시 밖으로 나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다음 벙커로 순간 이동했다.

자정 전에 내가 돌아오자 반가운 미소를 보이는 미나.

아까보단 그나마 얼굴이 좋아진 것 같네.

다행이야. 답답했던 속이 그래도 조금은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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