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52화 (35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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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가는 수레바퀴

이상하게 녀석들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이 안 됐다.

분명 저 남매는 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희대의 살인마다.

복수라는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는 저들에게 죽은 이들이 한둘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괜찮다. 복수. 그건 내가 좀 알지.

나도 복수를 해봤고, 남들의 복수도 어지간히 시켜줘 봤다.

정신을 좀먹는 살인의 충격. 분명 그건 굉장히 자극적인 행위다.

아마 세상이 망하기 전이라면 저 아이들은 상종도 못할 만큼 피폐해졌겠지.

복수는 그런 것들을 상당히 깔끔하게 해결해 준다.

살인, 뜨겁게 흥분됐던 감정, 고양된 마음.

복수가 끝나면 차갑게 식어버리면서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하잖아.

게다가 이 세계는 정말 살인에 대해 친절하게 시스템이 되어있다.

시체가 사라진다는 것.

별거 아닌 것으로 보여도 엄청난 효과다. 죽음 이후의 것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

자신이 죽인 사람을 계속 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멀쩡한 모습일 리가 없는 시체가 없다는 것. 피가 없다는 것.

그런 것들이 살인에 대한 충격을 크게 줄여준다.

흡사 게임 같이.

그 어떤 이들도 게임에서 상대방을 죽였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거다. 세상이라는 게임에서 퇴장시킨 것. 단지 그뿐.

그렇기에 저 아이들은 인성을 지켰을 확률이 높다. 아이들의 정신은 훨씬 말랑말랑하니까.

딱딱하고 굳어있는 어른들의 정신과는 다르다.

사회와 법, 윤리와 도덕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 놓은 가치관과 마음가짐은 상당히 높고 두껍다.

그게 부서졌을 때 참기 힘든 거다. 그래서 나이가 많을수록 그걸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

나이가 어릴 수록 그런 것에 대해 받아들이는 게 남다르다.

저들에겐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인 거다. 죽여도 되는 곳. 죽여도 아무런 후처리가 필요 없는 곳.

다만 그만큼 걱정해야 할 부분이 많겠지.

그만큼 죽음을 가볍게 본다는 거니까.

하지만 저렇게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아이들이라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을 거다.

잃어 봤으니까. 누구보다 그 아픔을 알 테지.

저 아이들이 상의한다는 것 자체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본다.

저 남매는, 특히 저 오빠 녀석은 외톨이로 있고 싶지 않아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준 것, 아이 같은 모습이 남아있는 것, 동생을 지키는 것.

어떻게 봐도 가능성은 있다. 비록 그들이 살인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들이 사는 집은 꽤 큰 집이었다.

평수로 따져봐도 거의 일반 아파트의 두 배는 돼 보인다.

일단…. 거실이 두 개 있어. 거기가 생각나는 집이네. 지연이가 살았던 곳. 미나를 살게 했던 아파트.

거기보다 조금 더 큰가? 어마어마하네. 정말.

"이야기가 다 끝났어요."

내게 다가와 이야기하는 오빠 녀석.

이렇게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것도 신기하다.

어른에 대한 신뢰는 잃지 않은 건가? 아마 이건…. 반년 전에 죽었다던 이모의 역할이 컸겠지?

"그래."

다시 아까 앉았던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나를 바라보는 오빠 녀석. 약간 복잡한 표정의 동생.

"갈게요."

"그래. 잘 생각했네."

"근데 조건이 있어요."

"충분히 요구할 수 있지."

"가서 맘에 안 들면 다시 돌아올 거에요."

"그것도 합당한 요구네."

"그게 된다면 저희는 손해 볼 게 없으니까요."

"손익을 따지는 건 훌륭한 자세야. 앞으로도 그런 자세를 잊지 말도록 해. 절대 정에 휩쓸리거나 불합리한 조건에 수긍하진 마."

아무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오빠 녀석. 아. 왜 사람 이름 외우는 건 이렇게 힘들까.

"괜찮나요?"

"뭐가?"

"저희가 거길 보고 맘에 안 든다고 거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일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럴 수 있지."

"걱정하진 않아요?"

"걱정? 당연히 하지. 근데 너는 니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정말 다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일산에 있던 사람들이나 니가 다 죽였다던 그놈들.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사람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안 돼."

"모든 사람이 아저씨같이 대단한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아저씨라는 말에 약간 충격을 받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니. 어쩔 수 없나?

"형이라고 하면 안 될까?"

"네?"

"너랑 나는 열 살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 그 정도 나이로 아저씨라는 소릴 듣는 건 조금…. 억울한데? 게다가 지금 가는 곳에는 민희라는 사람이 있을 거야. 실질적으로 너희와 함께 있을 사람이지. 그 여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아줌마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잖니? 기왕이면 누나랑 언니로 불러줘. 그래야 좋아할 거야."

잠시 내 말을 듣더니 둘 다 고개를 끄덕거린다.

"알겠어요."

"그럼 다시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모두 다 내 수준은 당연히 아니지. 하지만 나도 생각 없는 사람은 아냐. 그래도 감당이 되는 사람에게 너희를 소개해주는 거지. 그러니 그렇게 쉽게 죽인다는 말은 하지 마."

"알겠어요."

그리고 나는 그런 오빠 녀석을 보고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너…."

"도현이요."

"그래. 도현아. 미안해. 내가 사람 이름은 잘 못 외워. 아무튼….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이렇게 순순히 내 이야기를 듣는 거야?"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이런 어린애랑 수 싸움이나 속마음을 감추고 서로의 의중을 떠보는 짓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너무 귀찮고 번거로워. 나는 이런 건 딱 질색이라고.

"그건…."

잠시 주춤거리며 고민하는 거 같더니 결국은 입을 여는 도현이.

"하은이 때문이죠."

"역시 그런가."

"네?"

"아냐. 계속해봐."

"하아. 저 혼자라면…. 이렇게 사는 게 맞죠. 사람을 이만큼이나 죽여놓고 제가 어디 가서 웃으면서 살겠어요. 근데 하은이는 아니에요. 이 아이는 사람을 죽여본 적 없으니까. 아니…. 직접 죽인 건 없으니까."

그래? 그건 놀랐네. 직접 죽인 건 없다는 소리는 매혹으로 도움은 줬다는 소리겠고.

어쨌든 결국은 오빠 녀석이 대단한 녀석이었다.

복수심과 책임감. 똑똑한 머리와 신중한 성격이 만들어낸 괴물.

"동생은…. 사람처럼 살게 해주고 싶어요."

"니 옵션엔 내가 말한 곳에 동생만 놓고 혼자 사라지겠다는 옵션도 있나 보다?"

내 말에 도현이와 하은이가 둘 다 깜짝 놀란다.

"오빠?"

그리고 오빠를 바라보는 하은이.

나 참. 어처구니가 없네. 대체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어야 저 나이에 저런 생각을 할까?

이 녀석의 부모님과 그 이모라는 사람은 한번 만나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저 나이면 말끝마다 욕설을 붙이고 학교 끝나면 떡볶이 한 컵 들고 피시방 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나이 아니었냐고.

"그건…. 하. 그런 생각도 있었죠."

"뻥치네. 내 생각엔 아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옵션이 아니고 이미 그렇게 정했겠지. 그러니 이렇게 순순히 따라간다고 하는 거였고?"

도현이의 표정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헤헹. 짜식아. 이게 눈치고 이게 어른의 직감이라는 거다.

내가 이정도 눈치도 없이 이 세상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리 내가 남자 놈에게 관심은 없어도 그 정도는 알아본다. 임마.

"아. 젠장."

원래대로라면 '아. 씨발'이었겠지? 하여간 재밌는 녀석이야.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모습. 이제야 좀 열여섯 살다워졌다.

"됐고. 그런 머리 아픈 생각은 가서 보고 결정해라. 어차피 너도 가면 마음 바뀌게 되어있어. 민희는 이쁘니까 아마 니놈도 보면 분명 마음이 바뀔 거다. 물론 내 애인이니까 넘볼 생각은 말고."

그렇게 말한 나를 보는 녀석은 피식하고 웃었다.

"자. 그럼 일단 가자. 짐이나 챙겨라. 어차피 너 수납 있으니까 짐 정도는 금방 챙기겠지."

"네."

그렇게 말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하는 녀석들.

도현이는 짐들을 수납에 넣기 시작하는데, 내가 보기엔 약간 어설펐다.

아마 내가 수납을 쓰는 걸 보고 따라 하긴 했는데…. 그렇게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야야. 그거 수납. 이렇게 써봐. 그것보단 이게 더 낫다."

몇 가지 수납 쓰는 법을 알려주자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녀석.

그리고 금세 따라 하고는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쓰는 것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 저 정도 센스는 있어야지. 아니, 저 정도 센스가 있었으니 아직 살아남았겠지.

그렇게 짐 정리를 다 하고 하늘로 날아오른 나와 남매.

동생은 옷을 두껍게 입어서 마치 털인형 같은 모습이다.

아직은 오빠한테 반발이 없는 나이인가 봐. 남매가 친한 거 보니 약간 신기한 모습이다.

하긴 진영이랑 현정이도 친하긴 하지? 뭐, 이런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렇게 남양주로 날아가는 길.

심심하니 스킬 이야기를 하며 날아간다.

바람소리가 심해서 대화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심심한 것 보단 낫다.

"그러니까…. 수납은 단지 인벤토리 수준이 아니야. 자. 이런 것도 생각해봐. 수납에는 안에 물건이 들어가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얼음을 넣어도 수납 안에서는 그 모습이 꺼내기 전까지는 유지되지. 그래서 음식의 유통기한 같은 것도 지나지 않고. 그치?"

"네."

"그럼 이런 건 어떨까. 기름을 끓인 다음 수납에 넣는 거지. 그리고 그다음엔?"

"아."

"그치? 게다가 이런 것도 가능하지. 자. 따라와 봐."

밑에 보이는 한강으로 가서 나는 수납을 활짝 열어 한강 물을 잔뜩 퍼담았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날면서 수납의 입구를 좁고 길게 만든 다음 물을 뿜었다.

예전에 자양동에서 불을 끌 때 썼던 방법.

그걸 본 도현이는 신기한 듯 내가 하는 짓을 바라본다.

"봐라. 지금은 차가운 물이지만…. 이게 뜨거운 기름이라면 어떨까?"

"와…. 미쳤네요."

"수납은 좋은 공격 스킬이야. 이런 것도 가능하지."

수납 안에 들어있는 물을 전부 한방에 부어버리자 64세제곱미터의 물덩어리는 물 폭탄이 되어 이름 모를 서울 도심 한복판에 그대로 떨어졌다.

무게로 따져도 64톤이다. 사람이 맞는다면 그냥 뒤지는 거다.

그런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도 머리를 굴리는 듯한 도현.

옆에서 따라오고 있는 하은이는 그런 모습을 마냥 재밌다는 듯 바라본다.

나는 그렇게 남양주까지 날아가며 여러가지를 보여줬다.

차를 삼키는 것, 그런 차를 공중에서 떨궈 다른 차를 내리찍는 것.

공사장에서 발견한 벽돌들을 잔뜩 담아 공중에서 뿌리는 것….

"비행과 수납은 이런 게 가능하지. 중력은 우리의 고마운 친구야."

"근데…. 이런 걸 정말 써요?"

신기해하면서도 나에게 실용성에 대해서 물어보는 도현이.

"너 스킬이 암석 탄환이지?"

"네."

"너는 차가 네 곁을 지나가면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니?"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가로젓는 도현.

"쉽지 않죠. 운전하는 사람을 제대로 쏴서 맞추면 모를까."

"난 가능해. 비행과 수납만으로 충분히 가능하지. 수납으로 차를 떨궈서 길을 막고 차가 멈추면 다시 수납으로 차를 떠서 공중에서 떨구거든."

"아…."

내가 이런 이야기를 왜 이 녀석에게 이렇게 상세하게 해주는지 모르겠다.

아직 민희와 살 거라는 것이 확정된 녀석들도 아닌데.

오히려 떠나버린 다음 이렇게 알려준 것을 가지고 어딘가에 가서 내가 아는 사람들을 해할 수도 있는 아이다.

하지만 나는 이 녀석들이 캐슬에서 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의 행복한 추억이 있던 집을 떠나오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테니까.

게다가 도현이가 하은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물론…. 번거로운 동생을 치워 놓고 혼자 자유를 누리겠다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잖아.

동생이 있는 한 이 녀석은 제멋대로 굴지 못할 거다.

물론…. 우리도 이 녀석이 폭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 하은이를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그렇기에 캐슬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큰 걱정 근심이 없었다.

그리고 남매가 캐슬을 보고 탄성을 지르는 순간 거의 다됐다고 생각했다.

하긴…. 캐슬 생긴 건 좀 멋지긴 하지. 성채 그 새끼가 하는 짓은 쓰레기였어도 미적 감각은 있었잖아.

게다가 솔직히 어떤 열여섯짜리 남자애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성벽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더군다나 이름도 캐슬이라고. 그리고 아직 한방이 남았어. 마지막 묵직한 한방.

"어서 와. 너희들이 일산에서 온 남매니?"

항상 여왕님같이 도도하던 표정만 짓던 민희의 인자하고 따듯한 모습.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도현이와 하은이의 표정.

나는 녀석들이 캐슬에 살 거라고 확신했다.

저 새끼 저거…. 내가 반하지 말라고 했는데. 벌써 반해버린 모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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