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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262화 (26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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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멸

"그리고 그건 지원이 너도 마찬가지야."

"네? 저요?"

"그래. 파이어 볼이 생각보다 화력이 좋으니까. 너와 승주 둘. 잘 들어. 아까 서현이와 소희 사이에 만들어 놨던 틈. 왜 만들어 놨다고 생각해?"

"아아!"

"거기로 쏘는 거군요."

"그래. 보호막은 광역 마법을 모두 막아. 그러니 너희의 공격도 막혀. 그러니 그 틈으로 너희는 밖에다가 스킬을 난사해야 해. 근데…. 아무 데나 막 쏘면 될까?"

"아니요…."

"아뇨."

"그래. 아까 내가 바닥에 그어 놨던 금. 기억하니? 여기 발밑과 저쪽의 금."

"네."

"네."

"너희는 짱개들이 그 선만 못 넘게 하면 돼."

"아…."

"그렇군요! 스킬 범위!"

"그래. 보호막의 단점은, 단일 타겟 스킬에는 뚫린다는 거지. 정말 별 그지같은 설정이야. 이런 걸 만든 새끼들은 정말 만나게 되면 내가 잘근잘근 회를 쳐버릴 테다."

갑자기 울컥한 나의 모습에 지원이가 풉하고 웃었고, 승주도 피식하고 웃는다.

이게…. 웃겨?

"어쨌든, 짱개가 그 선을 넘으면, 보호막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해져. 그러니 너희의 최대 목표는 그 선을 못 넘게 하는 거야."

"알겠어요."

"네."

"좋아. 너희는 됐고…. 승규 형이랑 중현이랑…. 아. 진영이 너도 와라."

"네!"

계속 불러주지 않아 눈만 굴리고 있다가 내가 부르니 바로 달려오는 녀석.

"승규 형은 감전이죠. 근데 감전은 사거리가 짧아서 쓰기 쉽지 않을 거예요. 형은 무조건 탐지에요. 그리고 지시. 진영이랑 중현이. 너희 둘은 투명화잖아?"

"네."

"네."

"너희는 승규 형의 옆에 딱 붙어있어. 항상 승규 형의 지시를 받아. 저쪽에서 우리 옆쪽으로 삐져나가 도망가는 놈들은 너희가 다 잡아야 한다."

"네. 알겠어요."

"네."

"나도 계속 지켜볼 거지만, 너희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해. 그리고 위험하고. 곧 이 일대는 불바다가 될 거야. 그리고 투명화는 화기를 막아주지 않지. 그러니 조심해라. 너희는 보호막을 벗어나는 만큼 가장 취약하니까. 될 수 있으면 도망가는 녀석들 위주로 잡아. 절대 함부로 붙지 마. 상대가 탐지에 공격 스킬이면 너희는 순식간에 당할 수 있어. 그러니 조심해."

내가 가장 불안하게 느끼는 부분이 이 둘이다.

이 두 명이 가장 위험하다. 차라리…. 나가지 말라고 할까?

아니다. 내가 케어하는 수밖에 없다. 그 정도도 못하면 나는 내 여자들을 밖에 데리고 나갈 수가 없어.

"그리고 미래."

"네."

각오와 호의가 담긴 표정.

이 여자애는 진짜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걸까? 젠장. 매혹을 거는 게 아니었는데.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고를 수 있게 했어야 하는데.

"너는 축구로 따지면 풀백이다."

"네? 뭐요?"

"미안. 이래서 내가 문제야. 그러니까…. 최종 수비수란 이야기야."

"아."

"짱개가 너무 많이 몰려오거나 상황이 정신없을 때, 너는 선을 넘은 녀석들을 기절시켜야 해. 그러면 지원이와 승주가 마무리 지을 거야."

"네. 알겠어요."

"그리고 앞만 보고 있어도 안 돼. 승규 형의 지시도 들어야 하거든. 어쨌든…. 상당히 바쁠 거야."

"네. 그 정도는 해야죠."

"무리하진 말고."

얼굴 붉어지지 말라고. 다들 보고 있는데.

하아…. 아직 멀었나. 그래도 거의 다 끝나간다.

"유진이, 연서, 미연이."

내가 부르자 세 여자가 다가온다.

"내가 이 공원을 전장으로 삼은 이유. 알겠지?"

"네."

"알 거 같아요."

"식물 조종이랑 성장요?"

"그래. 맞아. 너희의 스킬은 공격용이 아니지. 하지만 여기서는 달라. 이런. 너희에게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자. 포션 받아. 포션 받고….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세팅해. 아까 연서가 했던 것처럼…. 이쪽으로 오는 놈들을 꼬치로 만들 수 있게. 이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너희가 더 잘 알겠지. 이쪽 방면엔 프로니까."

세 여자는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장이라도 세팅하러 가려던 여자들이 나를 바라본다.

"주변이 불바다가 되면…. 분명 여기 나무들에도 불이 붙을 거야. 불타는 나무가 휘둘러지거나…. 사람들을 옭아매면 상대는 어떤 기분이 들까?"

"아…."

"그것까지…."

"그렇구나!"

"잘 활용해봐. 저들이 지옥을 느끼게 해줘. 그리고 보호막 바깥으로는 나가지 말고."

여자들이 세팅을 하기 위해 모두 자리에서 떠났다.

이제 남은 건….

"현정이."

"네."

"네 역할이 중요한 거 알지?"

"네."

침을 꿀꺽 삼키는 현정.

"아무리 회복 포션이 있다지만, 불의의 기습이나 감전 같은 공격을 당하면 포션 먹을 시간도 없어. 그러니 네가 다 치료해줘야 해. 너는 짱개 놈들을 볼 필요 없어. 우리 편만 봐. 눈을 부릅뜨고 누가 생채기라도 나나 지켜봐."

"네. 알겠어요."

"자. 회복 포션도 받아. 너에게 조금 많이 줄 테니까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필요한 사람들의 입에다가 들이부어. 알겠지?"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지 자신감을 얻는 현정.

그런 그녀에게 포션을 잔뜩 주고 주변을 살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건 하나.

"나는?"

지연이가 나에게 물어본다.

사실…. 이중에서가장 쓰기 까다로운 스킬.

번개 파동과 가속화 조합을 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무리겠지.

"어제, 스킬 테스트 할 때 봤지?"

"보호막?"

"그래. 보호막은 네 스킬을 막아."

"결국, 나는 보호막 밖에 있어야겠네."

"그래서 나는 너와 미친 짓을 조금 하려고 해."

"뭐?"

"어제까지라면, 이런 생각은 안 했겠지. 근데 지금이라면 할 수 있는 방법이야. 나를…. 믿어볼래?"

"불안한데."

"뭐,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거라서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어. 한번 해보고 시원찮으면 안 할 거야. 그래도 시도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하아. 하자면 해야지."

"일단은 여기 보호막 뒤쪽에 있어. 거기에서는 마음껏 스킬을 써도 되니까."

"그래. 알았어."

자. 이제 됐다. 머릿속에 있던 것들은 모두 끄집어냈어.

이제…. 이게 얼마만큼 제대로 작동하는지만 지켜보면 되는데….

이 진형의 약점은 딱 하나다. 광역 스킬 무효화.

하지만 그 녀석은 쉽게 접근하지 못 할 거다. 접근을 못 하면 스킬을 쓸 수 없다. 그게 핵심이다.

아무리 상성이 있어도 거리만 안 주면 된다. 그렇기에 지연이와 승주의 파이어 볼과 바람 칼날이 중요한 거고.

"민준아!"

"네!?"

어느새 나타나 또 양손 가득 휘발유 통을 가지러 가는 민준이를 불러 세웠다.

"어느 정도 했어?"

"아. 이제 반 정도요? 제법 커서…."

"그래? 알았어. 나는 반대로 돌 테니까 하던 거 계속해."

"네!"

그렇게 나도 휘발유를 가지러 가니 민주는 상당히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기름 생성을 계속 쓰고 있다.

"힘들지?"

"으. 아니에요. 이게 제 역할인걸요. 힘들어도 해야죠."

"그래. 미안해."

"미안할 게…. 있나요. 그런 말 하지 마요."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고 양손에 기름을 든 채 하늘을 날았다.

쏟아지는 휘발유. 길바닥과 건물들을 적시는 독한 액체.

곧 등장할 거대한 화마를 부르는 마법진을 연성하는 기분.

그렇게 한참을 옮기며 휘발유를 부은 나는 어느새 내 쪽으로 합류한 민준이랑 동현이와 함께 마저 휘발유를 부을 수 있었다.

"후우. 다들 준비됐으니…. 시작해보죠. 지원이랑 동현이. 이리 와봐."

"네?"

"뭐 더 할 일 있어요?"

"동현이. 지원이 안고 날아가. 지원이는 저 앞에서 바닥에다가 파이어 볼 쏴."

"아…."

"빨리 가. 시작할 시간이야."

"네!"

"가자."

동현이가 지원이를 안고 그대로 하늘로 떠올랐다.

그걸 보고 몇몇은 부러워하는 표정이 됐다. 식물 자매라던가, 미래라던가…. 현정이라던가.

그리고 나를 보며 슬쩍 눈웃음치는 지연이.

그래. 해봤다 이거지?

하늘에서 불덩이 하나가 떨어진다.

마치 밤하늘을 가르는 혜성 같은 모습.

그리고…. 그 혜성은 바로 지옥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상을 내달리는 화염.

마치 그린 것처럼 완만한 곡선을 만들며 불이 붙는 그 모습에 우리는 우리가 해놓은 짓인데도 불구하고 넋을 잃고 바라봤다.

나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그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어느 고명한 서예가가 자신의 키만 한 붓을 들고 검은 종이에 붉은색 물감으로 크게 원을 그리는 것 같은 모습.

"미쳤네."

불꽃과 화염.

기름을 먹고 자라난 그 화마는 계속해서 대지를 내달린다.

마치 땅이 갈라지면서 안쪽의 마그마가 튀어나오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다.

미쳤어. 내가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야.

화염은 계속해서 번져서 갔고 결국 우리가 있는 공원 옆쪽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주변의 모든 것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런 그 불꽃의 원 안쪽은…. 난리가 났다.

튀어나오는 바퀴벌레들. 안 그래도 시끄러운데 더 시끄러워진 녀석들.

하지만 아직 녀석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다.

저 커다란 건물 안쪽에 있는 놈들은 좀 느낄까? 이 광경을 다 지켜보고 있을 테니?

탐지를 키자 멀미가 나는 느낌이 든다.

엄청나게 많은 기척, 그리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 모습들.

정신병이 걸릴 것 같은 모습이다.

이거…. 탐지를 계속 써야 하나?

땅으로 내려와 민준이와 동현이를 불렀다.

"너희들, 기름 붓느라 고생한 거 알지만…. 너희의 역할도 중요해. 알지?"

"네. 당연하죠."

"물론이죠."

"민준이. 금속화하면 바람칼날에 상처 나나?"

"아뇨. 해봤어요. 마스터 한다음에는 안나요."

"그래? 그럼 나이스하네. 네 역할은 그거다. 저 선. 보이지?"

"네. 저 선 넘지 못하게 하라고요?"

"그래. 물론 안에 들어가서 마음껏 날뛰어도 돼. 하지만…. 넌 몸이 튼튼하고 빠른 거지 단일 타겟 스킬에 안 당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 들어가진 마. 니가 안에서 당하면 널 구할 수 없어."

"알겠어요. 외곽으로만 돌게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여기 앞에 있을게요."

"그래. 니가 금속화랑 가속화 쓰고 대충 몸으로 박아도 그놈은 골절과 뇌진탕 중 뭘 골라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테니까."

"네. 알겠어요."

"그리고 동현이."

"네."

"너도 여기서 옆이랑 뒤쪽 백업 맡아. 다시 말하지만…. 백업이야. 너도 공격으로 들어가진 마."

"네. 알겠어요."

"이제…. 조금 더 지켜보자. 바람이 강해서…. 이거 아무 짓도 안 하고 다 태워 죽일 수도 있겠어."

솔직히 말해서 그게 가장 낫다.

어차피 우리 손에 죽나 불에 타죽나 그게 그거잖아. 죽는 것은 똑같지.

그리고 스킬중에는 물에 관련된 스킬이 없다.

있어 봐야 얼음 회오리? 하지만 고작 그걸로는 이 불길을 잡을 수는 없을 거다.

눈보라? 그건 티어5 스킬이다. 과연 찍은 사람이 있긴 있는 거야?

인간이 아무리 스킬로 강해지고 물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고 해도…. 이런 화마 하나 어쩌지 못하는 세상.

오히려 스킬이 없던, 세상이 멸망하기 전이었다면 이 불길을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한 일이야. 인간은 더 강해졌는데…. 약해졌다니.

펑!!!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뭐지? 가스? 주유소? 알게 뭐야.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탐지를 켰다.

아…. 현기증 나네. 아직도 이렇게 많아?

여기저기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는 기척들, 그리고 그중 일부가 이쪽을 향해 오기 시작했다.

"준비해!"

멍한 눈빛으로 불타는 도심을 바라보고 있던 물류센터 사람들은 퍼뜩 정신 차리며 진형을 갖춘다.

반쯤 얼이 빠진 짱개들이 불타지 않은 길을 발견하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리고 그 녀석들이 본건 커다란 반원형의 보호막. 그리고 그 틈에서 나온 파이어 볼과 바람 칼날.

영문도 모르고 사지가 잘려나가는 놈들과 날아오는 불덩이를 보고 공황에 빠진 듯 그대로 주저앉는 놈들.

내가 놈들을 너무 과대평가 했나 봐. 아니면 불을 너무 과소평가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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