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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로얄클럽.
이름도 참 거지 같네. 센스도 없고 참신함도 없다.
특권의식과 허영심이 가득해 보이는 이름. 이건 대체 어떤 새끼가 이름을 지었을까?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니 인원이 꽤 많았다. 이 녀석들이 나름 이쪽에서 난다긴다하는 놈들인가?
주소가 적혀있는 것은 대략 열 곳 정도.
원장이 연락되지 않는다고 이 녀석들이 꼬리말고 도망갈까?
그렇진 않겠지. 신경이나 쓸까 모르겠네.
약 공급처 하나가 줄었다고 아쉬워하긴 하려나?
어쨌든 코인은 많겠지? 나름 이 세상에서 정보와 힘을 갖춘 녀석들이니까?
이 녀석들은 하나하나 처리하도록 하고….
동산…. 이제는 펜스가 된 이곳도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남은 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제법 균형을 맞춰 놨으니 쉽게 망가지지는 않을 거다. 그래야지…. 안 그러면 곤란해.
여긴 내 식량이 나오는 화수분이라고.
SNS나 전화가 되는 세상이 아니니 여기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게 금세 알려지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게다가 정보가 없으니 무턱대고 여기를 노리고 쳐들어오는 놈이 있지도 않을 것이고.
만약 있더라도 쉬이 당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 충분하지. 나도 가끔 봐주면 되니까.
똑똑
그렇게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네."
"저에요."
"들어오세요."
부장이 들어오고 나를 보고 빙긋 웃는다.
왜 웃지? 여자면 몰라도 나이 많은 아저씨가 웃는 건 좀 그래.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습니다?"
"그건 또 왜요?"
"식당의 여사님에게 성철 씨 이야기를 했거든요. 이사장 이야기랑 식량 이야기. 그랬더니 이사장 놈 쳐죽인 은인이라면 소홀하게 대할 수 없다고 잔뜩 준비하고 계시네요."
"하…. 무슨 은인까지야…. 아니. 이사장이 그 정도로 평판이 나빴습니까?"
"아시잖습니까. '선별'."
"아아."
"식당 여사님들은 특히 그거에 스트레스가 많으셨죠. 밥 해먹이는 입장에선 다들 자식들 같고 동생 같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하긴…. 한국 아줌마들이 정은 또 깊지. 이기적일 때는 한없이 이기적이라도 자기 품 안에 있는 사람들은 끔찍하게 생각하니까.
"아무튼, 자고 가세요. 저랑 여기 운영에 대해서도 좀 더 이야기하고요. 급하게 가셔야 할 일이 있습니까?"
"음…. 당장 오늘 가야 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뭐, 그럼 그렇게 하죠. 도망치듯이 떠나려고 했던 건 사실이니."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왜그렇게 빨리 여기를 떠나려고 하는 겁니까?"
"제가 없어야 부장님에게 힘이 실릴 테니까요."
"하하.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여기는 제가 거의 장악하고 있었다고 보면 되니까요."
"하긴…. 그건 그렇네요."
"아…. 그리고."
"네?"
"캠프에서 저희에게 의탁해온 인원이 있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아…."
그래. 캠프에서 버스 두 대가 도망쳐 왔지. 그 녀석들이 있었네.
"어디에 있죠?"
"맞이방에 반 정도 감금해놓은 상태로 있습니다. 불만이 좀 많은 친구들이라."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조금…. 무례하더군요. 하는 짓들이 맘에 안 들었습니다."
"그래요? 부장님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그들을 여기에 융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좋긴 하지만…. 저런 이들은 별로 내키진 않는군요. 게다가 충원은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하는 거지 저렇게 덩어리째로 흡수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저들을 잘 흩어서 녹이지 않으면…. 결국 덩어리째로 남게 되니까요. 미숫가루 타보셨습니까?"
"아…. 무슨 말인지 알겠군요."
"미숫가루 덩어리를 수저로 퍼서 물에 넣고 잘 섞지 않으면 결국은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게 되죠. 그건 아무리 잘 섞고 셰이커로 흔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조금씩 흡수해야 조직에 동화되는 겁니다. 저렇게 덩어리로 들어오면 결국 저들은 파벌이 될 수밖에 없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쏙쏙 되네요."
"게다가…. 성철 씨가 데려온 여자들. 그녀들도 캠프에 있던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니 그다지 내키는 상황은 아닙니다."
"여자들이랑 같은 캠프 출신이라고 함께 어울려도 파벌이 커지는 꼴밖에 안 되고, 반목하면 그것도 귀찮고?"
"맞아요. 정확합니다. 어찌 됐든 번거로운 일 투성이죠."
"부장님이 원하시는게 뭔지 알것 같네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혹시 그들에 관해서 물어보면 '떠났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긴 하지만."
"의외로 단호한 면도 있으시네요. 맘에 들어요."
"이런 곳을 문제없이 운영하려면…. 맺고 끊는 걸 확실하게 할 줄 알아야죠. 그리고 성철 씨도 아시잖습니까. 제가 좋은 놈은 아닌거."
"당신이 마냥 착한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맡기지도 않았어요."
빙긋 웃고있지만, 그의 웃음은 많은 것을 포함한 웃음이었다.
그래. 이 남자는 피해자가 아니다. 사실은 이사장 밑에 있었던 가해자 중 하나다.
자신도 공조했던 그 많은 잘못들을 교묘하게 이사장에게 전부 전가하고 있는 남자.
지금도 캠프에서 온 여덟 명의 처분을 나에게 떠넘기고 있잖아.
그래서 이 남자가 맘에 든다.
착하기만 한 사람은 병신일 뿐이다. 이딴 세상에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은 전혀 필요 없다.
"좋아요. 지금 바로 다녀오죠. 맞이방에 있다고요?"
"네."
음…. 탐지에 느껴졌던 맞이방에 있던 인원들의 대부분은 여기 인원이 아니고 캠프의 생존자들이었나 보네.
"거기 누가 감시하고 있나요?"
"네. 집행부 세 명이 지키고 있습니다."
"아. 그럼 그냥 혼자 가도 절 알아보겠죠?"
"네. 그럴 겁니다."
"알았어요. 빨리 다녀오죠."
집무실을 나왔다.
요란하게 큰 건물. 크게 복잡하지 않은 구조. 나는 헤매거나 하지 않고 맞이방 쪽으로 갈 수 있었다.
본관에서 맞이방 쪽으로 가는 길. 바닥이 모래로 된 길이 나왔다.
아. 이게 그 말했던 투명화 방지책인가? 참나.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한건지.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구조다. 부장 저 사람이 생각한 걸까?
집행부 하나가 나를 알아보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나 역시 똑같이 고개를 끄덕여주고 보안검색대 앞에 섰다.
"아. 이쪽으로 오시죠."
집행부가 옆쪽의 문을 열어주며 나에게 말했다. 하긴. 내가 저길 통과할 필요는 없지.
"여기 캠프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던데."
"네. 그들을 보러 오신 겁니까?"
"응. 어디 있지?"
"이쪽으로 오시죠."
상당히 무뚝뚝한 남자다. 그래도 나에게 적의나 그런 건 없는 거 같다. 하긴, 이들이 나에게 반감을 품을 필요는 없지.
보아하니 이들은 부장을 따르는 거 같으니까.
"이쪽 방에 네명. 저쪽 방에 네명입니다."
"아. 넷씩 나눠놨어?"
"네."
"왜?"
"부장님의 지시였습니다."
별거 아닌거 같아도 나는 넷씩 나눠놓은 것에 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다 같이 모여서 의견통일을 하기 힘들게 한다는 것.
그리고 공격 스킬의 최대가 네 명이라는 것.
뭐…. 내가 너무 과잉해석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단순히 버스 한 대에 네 명씩 있었기에 따로 모아놓은 것일 수도 있지.
"가봐도 돼. 그리고 부장이 말하긴 할 테지만 이들은 모두 떠난 거야. 알겠지?"
내 말에 집행부 남자는 처음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이해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났다.
탐지를 돌려 사람들의 기척을 확인했다.
마체테를 들고 투명화를 쓴 다음 반사를 걸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열린 문을 바라보는 네 명.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없기에 의아한 표정이다.
그렇게 네 명에게 광역 스킬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다.
그대로 쓰러지는 남자 네 명. 불쌍한 놈들.
[12,554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21,45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63,52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54,326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외부조였어서 그런지 나름 쏠쏠하다. 생각해보니 여기를 치면서 처음 사람을 죽이는 거 같네.
이 커다란 곳을 사람 하나 안 죽이고 차지하다니. 그거야말로 기적이네.
코인을 회수하자마자 바로 다음 방으로 갔다.
문이 열리자 똑같이 문 쪽을 바라보는 이들.
이번엔 남자 셋에 여자 하나.
역시 모두 잠들었다. 정말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일.
여자를 보니 제법 괜찮은 스타일이다.
이 여자가 탄 버스가 조금 일찍 캠프로 왔었으면 정현이의 자리에 이 여자가 있게 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
쯧. 어쩌겠어. 인생이 그런 거지.
[42,003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22,90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81,64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9,54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짭짤하네. 여길 얻은 거로 만족하고 코인까지는 기대 안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부가수익을 얻게 되다니…. 횡재했네.
그렇게 다시 집무실로 돌아가니 그사이 미연이가 와있었다.
"어? 왔네?"
"아. 네. 다녀왔어요."
미연이와 그 뒤에 있는 여자 두 명. 그리고 여자들과 대화하고 있는 부장.
"이야기가 잘 됐나 봐?"
내가 다가가자 뒤에 여자 두 명이 나를 보고 꾸벅 인사한다.
나도 같이 인사해주고 운전기사를 바로 재워버렸다.
갑자기 남자가 쓰러지자 놀라는 여자 둘.
"혹시 이 새끼한테도 원한이 있어?"
"아뇨. 그 사람은 딱히…."
놀란 여자 둘을 바라보자 그녀들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 의외네. 그럼 얘 죽이면 안 되는 이유는 있어?"
"아뇨…."
대답을 듣자마자 운전기사를 찍어 죽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라는 여자들.
[243,42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와씨. 깜짝이야. 이 새끼는 코인이 왜 이리 많아?
24만? 엄청나네. 아…. 원장을 경호하던 놈들을 다 죽였다고 했지? 거기서 좀 얻어먹은 건가?
"이제 원장 차례네? 세 명 다 이쪽으로 오겠어?"
미연이와 여자 둘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들을 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극히 내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들어둬.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너희들이 원장에게 당한 일이 있을 거야. 그 일들이 어떤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코 가벼운 일들은 아닐 거야. 아마 평생 생각날 수도 있고 악몽으로 나올 수도 있지. 눈앞에서 원장이 죽는 걸 본다고 그게 깔끔하게 해소되지만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 직접 죽이는 걸 권하고 싶어."
나의 미친 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굳히는 세 여자.
아무리 복수라고 해도 사람 죽이라는 말을 스무스하게 받아들이기엔 그간 쌓아온 도덕과 준법의 장벽이 높다.
세상이 망하고 나처럼 꾸준히 사람을 죽인 게 아닌 이상 갑자기 이렇게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당연히 거부감이 생기겠지.
"선택은 너희들이 해.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는 부장과 함께 원장을 들고 왔다.
눈앞에 원장이 내팽개쳐지니 여자들의 눈에 불꽃이 튄다.
으음.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어디 보자…. 죽이기 전에 뭐 더 물어볼 거 없나?
여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대로 죽여도 되는지.
음…. 로얄클럽에 관한 건 종이에 다 적었으니 됐고. 약물이나 그런 거에 대해서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매혹이야 이놈보다 내가 더 잘 알 거고. 이 녀석이 캐슬이나 컴퍼니에 대해 알것 같지는 않고…. 잠깐.
컴퍼니. 민희. 민희?
"잠시만. 잠시만."
나는 여자들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 원장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뗐다.
아까 미연이가 건 매혹이 아직 남아있을 테고 명령도 그대로니 내가 물어보는 말에 바로 대답하겠지.
"야. 너. 혹시 고영준이라고 아냐? 그놈도 의사고 매혹 스킬 있는 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