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89화 (18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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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는게 불구경이라던가?

물론 피해자라던가 재산피해를 생각하면 마냥 즐겁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망한 세상. 그리고 나랑 아무 상관 없는 녀석들이라면 얼마든지 재밌게 볼 수 있다.

불은 정말 삽시간에 타올랐다.

뭐 일부러 저렇게 방화를 하고 있는데 불이 안 날 수가 없겠지?

게다가 객실이 많은 건물이라 그런지 한번 붙은 불은 정말 미친 듯이 타올랐다.

금방금방 위로 번져 오르는 불길. 게다가 송이는 건물을 돌면서 골고루 불을 붙였기에 금세 안 타고 있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저저…. 저년 과거가 의심스러워. 아무리 봐도 쟤도 정상은 아닌거 같아.

탐지로 살펴보는 안쪽의 상황은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한두 개씩 기척이 꺼져간다. 화상일 수도 있고 질식일 수도 있다.

기껏해서 건물 바깥으로 나오면 투명화를 쓰고 있는 윤서와 지원이 손수 목숨을 끊으러 간다.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죽이지 않아도 된다니…. 이렇게 편할 수가.

근데 저거 코인들은 어떻게 회수하지? 존나 귀찮겠네.

그 생각을 못했어. 어휴 병신 머저리 쪼다 새끼.

건물만 무너지지 않으면…. 불이 다 꺼진 다음에 회수하고 오면 되겠지? 그렇겠지? 건물만 무너지지 않으면….

콰지직

건물 한 모퉁이가 와르르 무너졌다.

으음…. 괜찮아. 저 정도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

코인은 파묻히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저 정도는 어떻게 회수할 수 있을 거다.

어차피 회수하게 시킬 사람들도 있고…. 뭐 상관없지. 그치?

어떤 놈이 탐지맨이고 어떤 놈이 상급자고 그런 건 따질 필요가 없다.

안에 있는 놈들 다 죽이면 뭐 알아서 죽은 거잖아? 그럼 된 거지.

건물 안에 있는 기척이 열 개 정도로 줄었다.

죽어가고 있거나 죽을 예정인 기척들.

건물은 정말 활활 타오르고 있다. 활활. 저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죽음이 예정된 사람들. 그것도 고통스럽게 죽어갈 사람들.

기척이 하나씩 꺼져간다. 이제 남은 건 여섯. 몇몇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다. 기절했나? 아니면 대피소라도 있나?

이런 열기와 연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어? 안될 거 같은데.

그렇게 남은 인간들을 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버스가 다가왔다.

아…. 씨발. 그래 저것들이 있었지?

"다 이쪽으로 와!"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여자 셋이 전부 내 쪽으로 다가온다.

"너희는 숨어있다가 저 차에서 사람이 내리면 일단 남자는 다 죽여. 여자는 기절시키고. 만약 버스가 여기서 안 멈추고 그대로 돌아가려고 하면 송이 니가 그냥 안에다가 불 질러버려. 알겠지?"

점점 더 다가오는 버스. 내 추측이지만 그대로 지나가거나 도망갈 리가 없다.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불이 얼마나 났는지, 왜 났는지, 혹시라도 자기에게 이득 될 게 있는지 알고 싶을 거다.

그대로 도망간다면 그놈들은 나름대로 대단한 놈들이겠지.

호기심보다 생존을 택하는 현명한 놈들.

하지만 세 여자는 투명화 상태로 있고 나는 몸을 숨기고 있다.

위협적인 것들이 당장 보이지 않는다면 아마도 내려서 확인할 거다. 아마도.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버스가 가까이 다가와 멈췄고 안에서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나왔다.

아마도 저들이 외부로 나갔던 인원들이겠지? 저게 전부는 아닐 테지만 그중 일부일 거다.

버스에서 내려서 불타오르는 워터파크를 어이없게 바라보는 녀석들.

불길이 조금 약하거나 하면 바로 끄러 가기라도 할 텐데 저건 그냥 재난 수준이라 어찌할 방법을 몰라 넋 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

그리고 버스의 창문으로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

숫자는 열 명 정도. 아마도 동산으로 보낼 쓰레기 스킬을 가진 녀석들이겠지?

밖에서 워터파크를 지켜보던 네 명이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졌다.

그리고 남자 셋은 거의 동시에 빛으로 변했다.

버스 안쪽에 있던 사람들은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쓰러지고 죽어버리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 비명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버스 앞쪽부터 차례차례 빛이 터져 나온다. 버스 안에 갇힌 사람들은 발버둥 쳐보지만 도망갈 곳은 없다.

버스 안은 금방 정적이 찾아왔다.

"다 처리했습니다."

이건 윤서의 목소리. 무미건조하게 사람을 다 죽였노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약간 소름 돋는다.

사람을 죽이는데 일말의 망설임 없는 모습.

역시 이 녀석들은 개개인의 능력은 나쁘지 않다. 지시를 거지같이 받은 게 문제겠지.

그리고 상대가 나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고.

버스 앞에 쓰러진 여자 하나.

그리고 버스 안에 여자 둘.

일단 버스 안에 있는 여자 둘은 나이가 제법 있는 아줌마였다.

굳이 확인할 필요 없이 죽였다. 번거롭고 귀찮다.

둘이 합쳐서 2천 코인도 나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게 용하네.

버스에 내려있는 여자. 일단 젊다. 합격. 그리고 외부조를 할 정도면 스킬은 쓸만한 스킬이겠지.

여자에게 매혹을 걸고 깨웠다.

여지없이 나를 보고 반한 표정을 짓는 여자.

"이름이랑 나이, 스킬 뭐야."

"한정현이고요 스물넷이에요. 스킬은 투명화입니다."

이놈들 투명화 진짜 좋아하네. 아니지. 투명화를 남기고 계속 갈아치운 거겠지. 인과관계가 잘못됐다.

게다가 투명화는 애초에 인기 있는 스킬중에 하나였다. 스킬 선택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투명화 쓰고 잠시 기다리고 있어봐."

여자는 투명화를 썼다. 보이진 않지만, 내 주변엔 투명화를 쓴 여자 넷이 모여있다.

이거 참 이상한 기분이네. 투명화 부대라니. 뭔가를 해보기 딱 좋은 상태잖아?

나는 탐지를 돌린 상태에서 워터파크를 바라봤다.

어느새 워터파크 안에도 남은 인간은 둘밖에 남지 않았고 보고 있는 사이 한 명이 더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불길은 전혀 줄어들 기색이 없다. 과연 이 불은 언제까지 탈까? 꽤 오래 타는 거 아냐?

불길의 열기 때문에 추운 게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

안에 있는 코인들을 싹 회수해야 하는데…. 과연 이걸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코인을 모았으니 일찍 돌아가서 스킬 훈련을 빠르게 마치는 게 낫겠다.

적어도 월요일 저녁쯤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시간 이득을 많이 봤다.

불길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안에 있는 코인 양…. 얼마나 될지 가늠이 안 된다. 적은 양은 아닐 거다. 말 그대로 보물섬 같은 곳.

하지만 지금은 불길 때문에 주우러 갈 생각은 절대 못 한다.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외부로 나갔던 놈들. 지금처럼 이렇게 계속 돌아올 거다.

그놈들도 계속 잡아 죽여야 한다. 안 그러면 그놈들이 저 코인들을 다 주워가겠지.

그리고 이 여자들. 무작정 죽이기엔 조금 아쉽다.

사람 죽이는 것에 익숙한 데다가 투명화+공격 스킬을 가진 여자를 셋이나 모으는 건 쉽지 않을 거다.

아. 그냥 투명까지 합치면 넷이구나.

어쨌든 이 여자들을 함부로 죽이는 건 아깝다. 그렇다고 매혹을 계속 유지할 수도 없다.

어쩐다. 고민이네.

살려두자니 매혹 유지가 빠듯하고, 죽이자니 아깝고, 스킬을 배우러 가고 싶은데 자리를 비울 수도 없다.

어쩌지…. 하….

한번…. 멍청한 짓을 해볼까?

"너희들, 투명화 해제해봐."

모습을 드러내는 네 여자.

자유로운 복장의 여자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여자들답게 외모도 몸매도 적당히 훌륭하다.

보고 있으니 음란한 생각이 잔뜩 들지만, 일단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생각한 걸 한번 실행해 봐야겠어.

"너희, 가진 코인 10,000만 남기고 다 하급 포션 소로 사서 여기 담아라."

내가 배낭을 내밀자 여자들은 군말 없이 상점을 열어 포션을 사서 차곡차곡 담기 시작한다.

적당히 세면서 담다 보니 거의 160개가 넘어갔다. 제법 많네. 그럼 이건 됐고.

으…. 이 짓이 정상인지는 모르겠다.

일단 나는 반사를 다시 한번 쓰고 여자들 넷을 조금 뒤로 물렸다.

"너희 중에 지금 죽은 사람 중에서 연인이나 가족이나 절친이나 뭐 암튼 죽으면 안 될 사람이 죽은 사람 있어?"

아무런 반응이 없는 여자들. 그건 다행이네. 그냥 파트너였을 뿐인가?

그럼 이 여자 중엔 죽일 여자들은 없고…. 한번 해보자. 바보 같은 짓 같지만, 함부로 죽이는 것보단 낫지.

여자들 넷만 범위에 걸리게 광역 스킬 무효화를 썼다.

매혹이 모두 풀리면서 나에게 순종적이던 모습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여자들. 의외로 적의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까진 자신들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가 갑자기 생겨나 당황한 정도랄까?

없었던 공포심이 생기며 몸이 굳는 모습 같은 것.

"알다시피, 나는 너희들의 캠프를 몰살시켰어."

두려움과 공포심. 그것들이 여자들을 지배하고 있다.

공격할 수는 있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느낌.

알고 있는거다. 자신들이 덤비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

매혹에 걸려있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허튼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거다.

"보시다시피 나와 너희들이 저 안에 있는 놈들을 다 죽였지. 지금 저 안에 한 명이 남아있긴 한데, 곧 죽을거야."

탐지 스킬을 아는 여자들이다. 그리고 내가 탐지가 있는 것을 알고 있고.

"저 불이 꺼질 때까진 저 안에 있는 코인들을 가져갈 순 없어. 그리고 외부에 나갔던 캠프 외부조들이 아까처럼 계속 돌아올 거야. 나는 너희들이 여길 지키고 있으면서 그 녀석들을 계속 죽였으면 좋겠다."

"왜 그걸 순순히 할 거라고 생각하지?"

내게 물어본 건 윤서. 나에게 맨 처음 잡히고 나와 섹스까지 한 여자.

섹스가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나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호감이 더 있을 거다.

지금 당장은 매혹에 걸렸었던 걸 모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자신들에게 뭔가를 했다는 것은 깨닫겠지?

그럼 도망가든지 복수하든지 둘 중 하나일 텐데….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알고 있으니 도망가는 것을 택할 거다. 아마도.

"저 잔해에 있는 코인은 적은 양이 아닐 테니까? 나는 너희들에게 만 코인만 남겨놨어. 그거론 당장은 안 죽어도 오래 생활하는 데는 빠듯하겠지? 그러니 하는 말이야. 그리고…. 나는 너희가 아까워."

내 말에 넷 다 의아한 표정이 된다.

궁금증. 아까도 말했듯 호기심은 많은 것을 망친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호기심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어한다. 지금처럼.

"아깝다니…?"

"너희는 너희의 능력을 충분히 살려서 좀 더 발전할 수 있었어. 근데 너희의 윗사람이 병신이었지. 결과는? 어떻게 됐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불타는 캠프와 몰살해버린 사람들.

"아. 마침 지금 저 건물의 마지막 사람이 죽었어. 이제 이 주변에서 살아있는 건 나와 너희 넷이 전부야."

넷 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불타는 워터파크를 한 번씩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는 여자들.

"생각해봐. 나는 너희의 가치를 알고 살려줬지. 지금도 얼마든지 너희를 죽일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있어. 너희가 저 안에 있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야. 너희는 나 때문에 산 거야."

궤변이지만, 지금 이 여자들에게 그런 걸 상세하게 따질 만큼 이성적인 생각 같은 것은 무리다.

어쨌든 결과만 보면 내가 말한 것들은 다 맞는 거니까. 그걸 논파할 만큼 냉정한 상태들이 아니다.

"비즈니스적인 자세로 이야기해 보자고. 나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들으면 너희에게 동산을 줄게."

내 말에 다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오로지 윤서만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표정.

"그게 가능한지 아닌지는 보면 알게 될 거야.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단독으로 너희들의 캠프를 박살 냈어. 동산이 어느 정도인지는 난 잘 몰라. 하지만 그리 불가능하다고 생각은 안 해. 잘 생각해봐. 5분 줄게."

"싫다면…?"

한송이. 나이는 있지만, 매력적인 여자가 나를 보고 물어본다.

"죽겠지. 알잖아? 나는 너희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어."

아무 말이 없는 송이. 주변은 워터파크 건물이 불타는 소리만 요란하다.

그렇게 일렁이는 화광 속에서 의외로 맨 마지막에 살아남은 정현이 말했다.

"전 할래요."

세 여자가 정현을 바라본다. 뭐 본 것도 없으면서 얘는 왜 이러냐? 라는 표정.

"캠프에 소속됐긴 했지만…. 지긋지긋하던 참이었어요. 이대로 부려지다가 언제 죽게 될지 걱정했으니까. 캠프는…. 외부 인력에 그다지 자비롭지 않았어요. 도망갈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지금 이런 기회는 오히려 제게 이득이죠. 어차피 전 스킬도 투명화 하나뿐이고."

"좋아. 하나는 됐고. 또 있나?"

"저도 하죠."

윤서가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런 윤서를 바라보는 지원과 송이.

"처음부터 그쪽이 하는 것을 모두 봤으니 대충 알 거 같아요. 그쪽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이 있진 않을 거 같네요. 이기지 못할 거면 그쪽 편에 서는 게 현명하겠죠."

맘에 드는 여자다. 순순히 따르는 게 살짝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 정도 의심은 누구나 있는 게 당연하지.

"좋아. 두 명 됐고. 남은 둘은? 아직 시간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봐."

"따르거나 죽거나인데 생각할 게 있나요?"

송이의 질문.

"왜? 도망간다는 선택지도 있잖아."

"도망 다니는 것은…. 질렸어요."

굳이 길게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이 세상은 여자들에게 호의적인 세상이 아니다. 무슨 일을 당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리 좋은 일은 아니겠지.

"저도 하죠. 근데 궁금한 건, 그럼 당신의 부하가 되라는 말인가요?"

마지막 남은 지원의 질문에 내가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너희를 부하처럼 두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저 유능한 관리자가 필요할 뿐이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네 여자.

나는 그런 여자들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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