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176화 (17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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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내가 아침에 세 번이나 하고 오지 않았다면, 이 여자랑 했을 거다.

두꺼운 전신 슈트로도 가려지지 않는 몸매. 그럭저럭 괜찮은 얼굴.

분명히 했겠지. 했을 거다.

매혹에 걸린 여자는 성심성의껏 봉사를 해줬겠지.

근데 지금은 아랫도리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힘을 빼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이 여자. 눈이 무섭다.

이글거리는 듯한 눈빛. 그리고 언뜻 보이는 집착과 광기 같은 것.

팔팔 끓는 냄비 같은 느낌이다. 함부로 손을 대면 손에 화상을 입을 것 같은 기분.

그렇기에 나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여자에게 물었다.

"일행들과 만나는 시간이나 장소는?"

"그때그때 달라요."

"정기적으로 만나는 게 없나?"

"정기적으로는 아니고요. 비정기적으로 만나죠. 아니면 누군가 소집을 하거나."

"비정기적으로 만나는 게 잡혀있나?"

"네. 다음 주 수요일 저녁 6시. XX아웃렛."

"거긴 또 어디야."

"남양주에 있는 곳이에요."

씨발…. 결국은 남양주네. 캐슬이 있는 곳. 결국, 거기네.

다음 주 수요일. 지금이 월요일이니 9일 뒤인가.

"좋아. 그럼…. 가진 스킬은?"

"비행이랑 투명화요."

"둘 뿐이야?"

"네."

흠…. 공격스킬은 없는 건가? 그럼 완전히 정찰용이네.

"비행 스킬에 대해 물어보겠어. 지금 비행 스킬 숙련도는?"

"마스터요."

"비행을 먼저 배운건가?"

"네."

매혹에 걸렸기에 순순히 대답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차분하다. 눈빛에 비해 너무 담담해. 자꾸 꺼림칙한 생각이 든다.

"비행 스킬은 단계가 오를수록 뭐가 달라지지?"

"고도 제한이랑 속도, 비행 유지 시간요."

"그래? 뭐 얼추 예상 범위네. 각각 어떻게 변하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데요?"

나를 바라보는 눈빛. 매혹에 걸린 거 맞지? 다시 한번 여자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시간을 확인한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여잔데…. 자꾸 기분이 좋지 않다.

다시 한번 살펴보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매혹에 걸린 여자,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근데 자꾸 이렇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걸까.

"아는 대로 말해."

"처음엔 그리 높이 뜨지 못했어요. 아파트 3층 정도? 속도도 느리고 시간도 5분 정도밖에 안 됐죠. 그리고 그다음부턴 계속 늘어났어요. 높이도, 속도도, 시간도. 지금은 높이 제한은 별도로 없어요. 높이 올라가다 보면 숨쉬기 어렵고 추워서 못 올라갈 정도죠. 시간은 20분. 속도는…. 아까 당신의 차 보다는 빨리 날 수 있어요. 대신 바람이 엄청나니 이런 겨울에는 무리지만."

담담하게 비행에 대해서 말하는 여자. 그래도 얼추 듣고 싶은 건 다 말해줬네.

아까 내 차 속도가 몇이었더라? 30킬로? 40킬로? 어쨌든 그보단 빨리 날 수 있다면…. 상당히 빠른 속도긴 하다.

시속 50킬로라고 잡아도 부산까지 가는데 8시간이면 간다는 소리잖아.

유지시간이 20분이니 24번만 쓰면 갈 수 있네. 회복 포션 두 개 분량.

역시 비행은 좋다. 그럼 페널티는 뭘까?"

"단점이 있나?"

"단점이요? 어떤?"

"비행 스킬에서 느껴지는 단점."

"글쎄요. 그렇게 없는 거 같은데요. 아. 새떼?"

"새떼?"

"까치랑 까마귀. 그 녀석들은 자기 영역에 날아다니는 것이 들어오면 공격하러 와요. 공중에서 수많은 새들의 공격을 받으면 아찔해지죠. 그래서 조심해야 해요."

의외의 단점이네. 생각도 못 했다.

까치나 까마귀가 공격한다고? 듣기만 했는데도 어이가 없네. 그런 요상한 페널티가 있을 줄이야.

"또?"

"또요? 글쎄요. 딱히…. 아. 있긴 있다. 추락사?"

"추락사? 스킬을 쓰고 있는데?"

"아무리 날고 있어도 의식을 잃으면 비행 못 해요. 그대로 땅에 쾅. 그리고 빛이 되죠. 특히나 이런 겨울엔 조심해야죠. 보온이 충분하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래 비행하면 자기도 모르게 저체온이 되고 손도 못 쓴채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사람 몸이란 그렇죠. 수영하다가 발에 쥐가 나서 익사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살벌하네."

"그렇게 죽은 비행 스킬 가진 사람이 제법 되니까요."

"지금 한겨울이잖아. 너는?"

"저야. 이걸 입고 있으니까."

자신의 슈트를 한번 쓸어내리는 여자.

그러더니 손을 등 뒤로 가져가 자신의 목 뒤에 있는 지퍼를 내린다.

"뭐 하는 거야?"

내 말에 대답도 없이 지퍼를 끝까지 내린 여자는 슈트의 목 부분을 나에게 보여준다.

"보여요?"

"뭐가."

"두께요."

"두께가 뭐?"

"보세요. 두껍잖아요. 이건 수상 레저용 웹 슈트라는 거에요. 겨울 바다에서 입고 수영해도 괜찮은 옷이죠."

"그래서? 그걸 입고 있으면 괜찮다고?"

"네. 어느 정도는. 너무 오래 있으면 추운 건 마찬가지지만."

묘한 미소를 짓는 여자.

그러더니 자신의 웹 슈트를 훌렁 내린다.

드러나는 새하얀 가슴. 뭐야. 알몸에 입는 거야?

"어때요? 내 가슴?"

남자인 이상 여자의 생가슴을 보고 싫어할 사람이 있겠냐 싶지만, 지금은 별로 그럴 기분이 아니다.

평소의 나라면, 이런 유혹에 피식하면서 넘어가 줬을 거다.

매혹에 걸렸으니 쓸데없는 짓을 하진 않을 테니까.

유혹해 오는 여자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유유히 즐겼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키지 않는다.

저 눈, 저 눈이 맘에 안 든다. 유혹하는 게 아니고 잡아먹을 것 같은 눈.

"옷 다시 입어. 그럴 기분 아냐."

순간 잔뜩 일그러지는 여자의 얼굴.

갑자기 자신의 쌍안경을 집더니 그대로 내 머리를 찍었다.

"악!"

머리가 번쩍하는 느낌. 뭐지? 지금 나를 공격한 거야?

어처구니없음과 분노가 확 치밀어 올라 그대로 수면을 걸려는데 내 얼굴에 뭔가가 덮어졌다.

뭐지? 씨발 이거 방석인가?

"씨발!"

그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내 외침이었다.

상체에 느껴지는 무게에 떠밀려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은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쭈압 쭈압 쩝

"으응…. 하앙."

정신이 든 내가 처음 들은 소리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감각.

자지에 느껴지는 축축하고 따듯한 느낌. 고개를 번쩍 드니 알몸으로 내 자지를 빨면서 자위하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개년이!"

그런 여자의 몸을 발로 찼다.

깜짝 놀란 여자. 나에게 발로 차여 뒤로 나동그라진다.

"안돼! 내 자지!"

곧바로 나에게 달려들기 위해 몸을 일으키며 소리 지르는 여자.

미친년. 뭐라고 외친 거야?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느끼며 바로 여자를 재웠다.

일어서던 자세 그대로 쓰러져 버리는 여자.

"허억. 허억."

씨발…. 씨발. 이게 무슨 상황이야.

매혹에 걸린 여자가 나를 공격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매혹에 걸리면 호감도가 맥스 상태인 거 아냐?

웹 슈트라고 부르던 것을 벗어던진 알몸의 여자가 흉물스럽게 쓰러져 있다.

분명 여자의 알몸이지만, 보는 게 역겨운 느낌이다. 끔찍한 동물의 사체를 보는 기분.

"씨발. 미친년이."

머리가 따끔따끔해서 살짝 만져보니 손끝에 피가 묻어 나온다.

아까 저년이 쌍안경으로 내리찍은 부분. 머리가 찢어졌나 보다. 씨발…. 이게 뭐야.

벗겨져 있는 내 팬티와 바지를 집어 들고 부랴부랴 입었다.

미친년…. 사람을 후려쳐서 기절시키고 옷을 벗긴 다음 자지를 빨면서 자위를 하고 있어?

미쳤다. 정말 미친년이야.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다시 한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발기됐다면…. 그대로 나를 강간하고 있었겠지? 억지로 당하니 강간은 맞잖아. 씨발. 기분 좇같네.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팔도 다리도 묶여있는 곳은 없다. 이 여자가 나를 묶어놨다면 나는 꼼짝없이 이 여자의 생체 딜도가 될뻔했다.

매혹에 걸려서 구속까지는 못한 건가? 아니 그럼 후려친 건 뭐야? 기절은 시킬 수 있는데 구속은 못한 거야?

말이 안 된다. 그냥 이 여자가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다.

아니면 눈앞에 쓰러져있는 나의 자지에 정신이 팔려서 아무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고.

매혹에 걸린 여자였으니 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로 보였겠지.

만약 이 여자가 경험이 많아서 팔과 다리를 구속하고 입까지 막았다면?

그럼 꼼짝없이 나는 2시간 동안 생체 딜도로 쓰이다가 매혹이 풀린 여자한테 죽었을 것이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

씨발. 용서가 안 된다. 매혹 씨발. 이 스킬 미친 거 아냐?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아니다. 가능할 수도 있겠다. 나도 알고 있잖아. 얀데레라고.

눈앞의 여자가 그런 부류인 거다. 애정과 사랑이 집착과 비틀린 표출로 나타나는 형태.

"미친년. 씨발. 어떻게 이런 년이."

아직도 분이 안 풀린다. 마체테를 들어 그대로 여자의 목을 내리찍었다.

"크륵…."

평소 같았으면 내리치자마자 죽었겠지만, 화가 잔뜩 나 있는 나는 살짝 엇나가게 후려쳤다.

고통과 공포에 피를 철철 흘리며 허우적거리는 여자.

기도가 상했는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다.

그저 목을 감싸 쥐고 허우적거리는 여자.

더 끔찍한 것은 그런 상황인데도 나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눈을 마주친다는 거다.

미친년. 싸이코 같은 년.

결국, 여자는 자신의 피 웅덩이 위에서 숨을 거뒀다.

그리고 빛이 되어 사라졌고 코인 주머니가 남았다.

"씨발. 진짜 좇같네."

욕이 멈추질 않는다. 잔혹하게 죽였음에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142,84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얼래? 씨발. 코인은 또 존나 모아놨네?"

웃긴다. 들어온 코인을 확인하니 화가 조금 식는다.

미치겠네. 이게 바로 금융치료인가?

나 자신에게 한심한 생각이 든다. 죽을뻔한 경험이 고작 코인 14만에 화가 누그러진다고?

"어쩌겠어. 씨발. 이미 죽은 년한테 뭘 더 할 수도 없고."

내 머리를 찍은 쌍안경. 그대로 들어 냅다 던졌다.

알이 박살 나버리는 모습을 보자 화가 조금 더 풀렸다.

미치겠네. 역시 나도 제정신은 아냐.

가방, 담배, 장갑…. 한쪽에 널브러져 있는 웹 슈트. 마치 내용물이 녹아내린 사람 같다.

괜히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발로 한번 휙 차버렸고 벽에 부딪힌 웹 슈트는 바닥에 힘없이 떨어진다.

"씨발. 죽을뻔하고 고추 한번 빨리고 코인 14만이라니. 기분 참 좇같네. 어휴."

좌식 방문을 열고 나오니 유리문이 부서져서 그런지 실내가 제법 싸해졌다.

밖으로 나오자 훨씬 더 찬바람이 나를 맞이 한다.

이런 날 벙커까지 걸어가야 했으면 진짜 기분 최악이었을 거야.

하지만, 나에겐 차가 있다. 그래 다행이야. 한결 기분이 나아지네.

끔찍한 경험을 했지만, 찬 바람을 쐬면서 다 잊었다.

저런 것들, 물론 쉽게 경험해 보지 못할 일이지만, 저런 것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다간 이미 대가리가 맛이 갔을 거다.

잊어야 해. 뭐 좋다고 저런 걸 기억해.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다. 다시는 안 당하게 조심만 하면 되는 거야.

그대로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차를 돌려 아까 가던 길을 다시 가기 시작한다.

있었던 일에 깊게 생각 할 필요 없다.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생각해야지.

다음 주 수요일. 아웃렛이라.

거기 가면 컴퍼니 놈들이 모인다고? 앞으로 9일? 시간이 별로 없다. 빨리 투명화까지 배워야겠어.

9일…. 가능할지 모르겠다. 포션을 대체 얼마나 먹어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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