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97화 (97/703)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횡재

미나가 있는 아파트로 향한다.

미나 생각을 하니 공동현관에서 카드를 찍을 때부터 슬금슬금 발기된다.

어휴. 씨발 답이 없는 좇 같은 좇 새끼.

아무리 그래도 이러고 들어갈 수는 없지. 바지 위로 티가 안 난다고 해도 좀 진정해야 할 필요가 있어.

애국가 4절의 충성을 다하여 부분을 부를 때쯤 발기가 가라앉았다.

힘들다 힘들어. 정말로.

탐지를 돌리니 미나는 방 안에 있는 것 같다.

매혹이 안 걸려있는데 어떤 반응이려나? 냉랭할까? 아니면 반가워할까?

카드를 찍고 집 문을 열었다.

어제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 집안.

식탁을 보니 뭘 먹기는 먹은 거 같다.

그래. 뭘 먹는다는 건 중요한 거라니까. 살기 위한 의지가 있다는 거라고.

"와, 왔어요?"

방문을 나와서 나를 바라보는 미나.

음. 역시 이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는데도 온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근데 막 달려와서 안기거나 하진 않네. 역시 매혹이 안 걸려서 그런가?

조금 실망스럽긴 하다. 하긴 애정이란 거 그렇게 급격하게 생길 리가 없지.

하루 동안 본인도 맑은 머리로 냉철하게 생각했을 테고.

나는 무심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조용히 매혹을 걸었다.

나를 보는 표정 자체가 달라지는 미나.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무뚝뚝하게 말을 했다.

"약속했으니까. 잠깐 확인하러 들렸을 뿐이야. 괜찮아 보이는 것 같으니 됐어. 혹시 무슨 문제 있어?"

"아니요…. 근데 바로 가려고요?"

"왜?"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 하는 미나.

매혹에 걸리지 않았을 때면 모를까,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다.

"없으면 됐어. 다음에 다시 올게."

그리고 바로 몸을 돌려 현관문을 잡자 미나는 당황한 듯 나를 부른다.

"저기!"

내가 대답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아무 말도 못 하는 미나.

"간다. 다음에 또 오지."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히는 틈으로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상당히 아련했지만, 저건 만들어진 감정이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

언제 오겠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조금 초조해하려나?

생각했던 만큼 쉽지는 않다. 씨발. 언제 이런 밀당짓을 해봤어야 알지.

적어도 매혹이 걸린 한 시간 동안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겠지?

왜 따듯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적극적으로 반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근데 모르겠다. 나 혼자 생지랄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자의 마음이 그렇게 쉬웠다면 남자들이 이렇게 고민하고 고생하진 않았겠지.

그냥 매혹 유지하고 바이브레이터로 녹이는 게 속 편했으려나.

이게 무슨 뻘짓거리인지.

뭔가를 잔뜩 기대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조금 짜증 난다.

하아. 진짜 어렵네 정말.

왜 병신같이 이런 일을 시작해가지고…. 멍청한 새끼.

일단 승희를 보러 가야겠다.

그나마 내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 건 승희밖에 없다.

굳이 섹스하지 않아도 그녀를 안고 누워 있으면 살아가는 보람이 느껴지니까.

멀티 근처까지 와서 탐지에 승희의 기척이 느껴지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쁘다니.

벙커로 들어가니 승희가 자신의 방 문 앞에 서서 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배낭을 벗고 자물쇠를 열어주자 다정하게 나를 안아준다.

"고생했어요."

그래. 이런 거.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거다.

고작 말 한마디일 뿐이지만, 많은 것이 녹아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승희는 게임을 하고 있었는지 티비에 게임 화면이 멈춰있었다.

귀여운 여자. 불평불만도 없는 착한 여자.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부드럽게 얽혀오는 승희의 혀.

그녀의 모든 게 다 부드럽고, 따듯하다. 입술도 혀도 몸도 마음도.

인간말종 변태에 살인마, 강간마인 내가 받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온기.

자연스럽게 그녀의 옷을 벗기고, 나 역시 알몸이 된다.

가슴을 빨고 승희의 몸을 애무하고 침대에 눕혀 그녀의 몸속에 나의 것을 밀어 넣는다.

몇 번을 해도 질리지 않는 행위.

부드럽게, 그리고 격렬하게 두번을 그녀의 몸속에 사정하고 씻은 뒤 여느 때처럼 서로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오늘은 유독 격렬하던데. 밖에서 이쁜 여자라도 보고 왔어요?"

승희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봤고, 나는 그녀의 젖꼭지를 꼬집는 것으로 대답했다.

"아잉. 그러면 또 느끼잖아."

"그래? 그럼 두 손으로 해줘야겠네."

팔베개 해줬던 손을 빼서 두 손으로 승희의 젖꼭지를 꼬집는다.

장난스럽게 응수할 거라 생각했던 승희가 오히려 야릇한 표정으로 꿈틀거린다.

그런 모습에 내 물건은 다시 한번 커졌고, 승희 역시 아래가 축축하게 젖는다.

부족했구나? 하긴 그동안 별로 못하긴 했지?

혹시나 미나랑 하게 되면 그때 써먹으려고 한동안 섹스를 안 하긴 했었다.

승희는 물론이고 나연이나 정아에게도 하지 않았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정아는 아직 맛보지도 않았네. 이렇게 정신이 없다니까.

엎드린 승희의 보지에 자지를 밀어 넣으며 다른 여자를 생각하다니. 나도 참 나쁜 새끼야.

그렇게 삘받아서 한 번 더 섹스한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조바심낼 필요는 없다.

나는 적어도 승희가 있고 안전한 벙커가 있으며 생존에 유리한 스킬과 넉넉한 코인이 있다.

전혀 성급해서 할 필요도 없고 안달 낼 이유도 없어.

느긋하게 가자. 느긋하게.

뭐든지 느긋하게. 여유 챙기면서.

그렇게 시간이 또 지나 7월이 되었다.

날씨는 제법 더워지고 있어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난다.

하지만 나는 갈 곳이 많다.

본진에 있는 나연이와 정아에게도 가끔 들려야 하고 아파트에 있는 미나에게도 가야 하니까.

한층 거세진 뙤약볕을 맞으며 전동 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정말 여자고 나발이고 그냥 벙커에 처박혀 있고 싶다.

시원한 벙커 안에서 꼼짝도 하기 싫은 기분.

그래도 미나는 뭔가가 많이 변하긴 했다.

일단 가장 먼저 변한 건 아파트다.

투명 듀오와 지연이가 살고 있을 때는 그저 관리 안 된 집이었는데, 미나가 들어가서 산지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집은 몰라보게 깔끔해졌다.

할 게 없어서 청소라도 했다며 배시시 웃는 미나의 모습도 바뀐 점 중에 하나다.

매혹을 쓰지 않아도 어느 정도 마음은 연 것처럼 보이는 그녀.

게다가 그녀는 매혹이 걸려있을 때도 필사적으로 달라붙는 것을 참기 시작했다.

신기한 여자야. 그걸 참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

뭐가 됐든 느긋하게 가기로 했기에 나 역시 그녀를 보러 갈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정붙일 곳을 찾고 가꾸는 그녀의 모습은 어쨌든 좋은 현상이니까.

"답답하겠네. 밖에 못 나가니까."

내 질문에 미나가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렇긴 한데…. 무서워요. 밖에 나가고는 싶은데 나가자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그 정도야?"

"네…. 그래도 괜찮아요. 나중에는 괜찮아지겠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에 물류창고로 보낼 걸 그랬나.

지금 와서는 물류창고로 보낼 수도 없다.

거기엔 아파트의 원주인인 지연이가 있으니까. 게다가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고 있기에 그들과 미나를 만나게 둘 수는 없다.

번거로워도 이렇게 하게 된 이상 계속 가는 수밖에.

"심심하지 않아?"

"글쎄요. 그렇게 사치스러운 감정을 느끼기엔 아직 지금의 모습이 실감이 안 나서요. 그래도 뭔가를 하고 싶긴 해요."

"취미나 그런 게 있나?"

"취미…. 없죠. 노래하고 춤추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아. 걸그룹이라고 했었지."

"근데, 진짜 몰랐어요? 저 약간 마음의 상처라고요. 젊은 남자가 나를 못 알아본다는 게 얼마나 충격적인지 알아요?"

"지금이라도 알면 됐지."

"그럼 제가 노래하는 거 한 번도 못 들어 봤어요?"

"글쎄…. 노래를 들어보면 알지도? 근데 큰 기대는 하지 마."

내 말을 들은 미나는 자신의 짐에서 스마트 폰을 꺼냈다.

노래를 골라서 재생시키는 그녀.

"인터넷이 안 되는데 어떻게 노래가 나와?"

"그래도 저희 노래인데 음원도 안 가지고 있을까 봐요?"

"하긴. 그렇네. 아. 이 노래는 아는 거 같다. 들어본 적 있어."

"정말…. 진짜 관심 없었나 보네요. 음악방송에서 한참을 1위를 했던 노래인데."

안다. 그 정도로 모르진 않지.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미나야.

노래를 틀어놓은 미나는 흥얼거리더니 어느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돌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아이돌이 그렇게 음악성이 부족하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을 테고 나름 전문가들이 따져서 상품성이 있을 거라고 판단한 실력일 테니까. 물론 맴버마다 격차는 있겠지만.

게다가 페어리나인 정도면 걸그룹 계보에도 들어가는 메이저 그룹이다. 실력이 없다고 생각은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미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노래를 잘했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겁먹고 감금당했던 자신감 없는 아가씨가 아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눈앞에서 직접 라이브로 노래를 들어서 그런지 그 실력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는 느낌이다.

중간에 4년 동안 별로 좋지 못한 일이 있었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실력이 어디로 간 것은 아닌지 내가 듣기에는 충분히 훌륭한 목소리로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하아."

"와. 멋지네."

노래를 마친 미나가 한숨을 크게 내쉬자 나는 박수를 쳐줬다.

그런 나의 반응에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는 미나.

"와. 이거 되게 부끄럽네요."

"왜? 콘서트 같은데서 몇만 명 앞에서 춤추고 노래도 불렀을 텐데 겨우 이정도로?"

"그거랑…. 조금 다르죠. 남자 한 명만 앞에 두고 노래한 적은 없으니까."

"그래? 음악 녹음할 때나 연습할 때는 많이 있지 않았어?"

"나참! 그거랑 같아요? 정말!"

아니면 아니지 왜 화를 내고 그래.

잠깐 어색해진 분위기. 미나는 쑥스러운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

다음 곡으로 넘어간 스마트 폰에서 페어리테일의 다음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고, 미나는 나를 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 제가 더럽다고 생각하죠?"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하는 미나. 이건 대체 무슨 말이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