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96화 (9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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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

아무리 그래도 딱딱한 복도바닥에서 11시간이나 누워 잔 건 조금 오바였나보다.

허리가 아프다. 어휴. 나도 참 많이 배가 불렀네.

혼자 구시렁거리며 미나가 뭐 하고 있나 확인해보려고 탐지를 돌렸다.

저기는 방 쪽인가? 뭐…. 얌전히 있군. 하긴 얌전히 있어야지 뭐 할 게 있겠어?

밤새 잠은 잘 잤나 모르겠다.

갑자기 맞이하게 된 자유와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함. 어느 게 더 컸을까?

보안이 잘 된 아파트에 들어와 있다고 안심하고 잤을까? 아니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까?

내게 좀 더 매달리게 하려면 불안해 하는쪽이 더 좋은데.

일부러 더 불안해지게 해봐?

밖에 나가서 뭐 때려 부수는 소리만 들려줘도 충분히 불안해 할 텐데?

됐다. 굳이 작위적으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괜히 더 오바할 필요는 없지. 어제 겪은 일만으로도 스펙타클 했었을 테니까.

해가 질 때쯤에 들어가고 싶은데. 뭘 해야 하나.

다시 또 잠드는 게 가장 편하긴 한데. 바닥이 영 딱딱해서 맘에 안 드네.

몸도 으슬으슬 한 느낌이고…. 여기 계속 있는 건 썩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

조용히 건물을 나와 미나가 있는 집에서 밖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돌아 아파트를 나섰다.

해가 질 때까지 사냥이나 해야겠다.

아직 여자 하나는 더 잡아야 하니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여기는 무슨 동이지? 동 이름을 모르겠네. 지도 어플만 되도 참 살기 편할 텐데.

중동 경계인 거 같은데…. 모르겠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어제 미나를 데려오면서 남자들을 마주쳤던 곳으로 향했다.

이쪽에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어제 그 녀석들도 있었던 거 보면 하동이랑 비슷한 상황일 거다.

중동이랑 상동이 나랑 씹쌔끼들 때문에 사람이 씨가 말랐던 거지 다른 곳은 그 정도로 황량하진 않은 거 같으니까.

역시나 기척에 사람이 걸렸다.

사람 둘. 3층? 4층? 또 커플인가? 커플이었으면 좋겠다.

근처까지 다가갔는데…. 아파트였다.

에이씨. 아파트는 침투할 방법이 없잖아. 모텔이었으면 방법이라도 있지.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기척은 미동이 없었다.

어쩐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데 기다리고 있기는 애매하고.

남겨놓자니 찝찝하고 잡으려니 방법이 없다.

어쩌겠어, 일단 패스해야지.

의외로 아파트는 방어력이 좋아서 방법이 없다.

빠루로 현관을 따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모든 문짝이 빠루로 뜯기는 것도 아니고.

일단 위치만 기억해 놓고 다른 쪽으로 움직여본다. 이놈들만 있는 건 아니겠지.

미나가 있는 아파트를 기준으로 서서히 반경을 넓혀가면서 주변을 살핀다.

아까 두 명이 계속 탐지에 걸리는 게 기분 나쁘다. 탐지에 누군가 걸리면 나도 모르게 흠칫하게 되니까.

일부러 그 두 명이 탐지 범위에 걸리지 않게 조금 벗어나 계속 주변을 살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네 명이 이동하고 있는 게 기척에 잡힌다.

네 명이면 땡큐지. 적당히 숨어서 재우고 죽였다.

반사만 아니라면 네 명 이하는 그저 코인을 떨구는 잡몹일 뿐이다. 이것 봐봐. 네 명 합쳐서 2만 코인을 금방 벌었잖아?

또 돌아본다. 이번엔 두 명. 왜 죄다 남탕이야? 여자 없어?

깔끔하게 처리하고 코인을 얻었다. 둘이 합쳐서 7천 코인. 이놈들은 거지네.

다들 대체 왜 적극적으로 사람을 사냥하지 않는 걸까?

내가 비정상인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생존하는 게 정상인 거야?

왜 발전할 생각을 안 하는 거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마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

지금까지 한 번도 스킬이 두 개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르지. 알게 모르게 죽어간 놈 중에서 그런 놈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서 포식자라고 불릴 만한 녀석들은 본적이 없다.

다들 겉멋만 잔뜩 들었을 뿐, 실속이 없어.

이런 스킬을 얻었으면 끝이 어디인지 보고 싶어 하는 게 정상 아니야?

물론 고급에서 마스터까지 스킬 올리기가 쉬운 건 아닌 데다가 두번째 스킬을 얻으려면 코인이 제법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력을 안 하는 모습들은 이해가 안 간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겠지. 나보다 더 대단한 놈들, 나 정도는 가뿐하게 잡아 죽일 수 있는 놈들.

지금의 이런 쭉정이 같은 녀석들을 보면서 자만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그런 놈들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이나 대안을 마련해 놔야 해.

결국…. 매혹 마스터가 문제구나.

고급 스킬 찍은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꼬박 5천 번을 써야 하는데.

으으. 5천 번이면 포션이 250개네. 코인으로 50만 코인.

게다가 여자도 네 명이나 필요하고.

존나 귀찮네 진짜. 조오오온나.

시간을 들여서 짬짬이 쓰는 수밖에 없겠다. 코인 깡으로 하기엔 소비가 너무 심해.

물류센터로 가서 여자들한테 골고루 매혹을 쓰면서 올려봐야지. 티안나게 천천히.

적당히 주변은 다 둘러본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아까 아파트에 있던 두 사람.

거기나 가서 죽치고 있어야겠다. 거기만 털면 이 주변은 그나마 잠잠해질 테니까.

빨리 미나한테 가고 싶은데. 쩝. 자지가 근질근질하다.

아이돌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들까? 뭐…. 그렇지야 않겠지. 처녀도 아니고 4년이나 당했는데.

그래도 뭔가 다르긴 하겠지. 기분도 다를 거고. 뭐 어쨌든 섹스가 목표는 아니니까.

매혹을 통한 완벽한 귀속. 그게 목적이지.

아파트 1층. 공동 현관이 보이는 곳에 적당히 거리가 되는 곳에 숨어서 몸을 편하게 눕혔다.

날씨도 적당히 포근해지고 바람도 미지근하다.

이대로 낮잠 한숨 개운하게 때렸으면 좋겠지만…. 불면증 환자한테는 꿈과 같은 소리.

나른한 상태로 누워있자니 정신이 몽롱해진다.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꿈나라로 떠났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현실과 잠의 세계 사이에서 억지로 몸이 낑겨 바둥거리는 꼴일 뿐이다.

그런 유사 낮잠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1분에 한 번꼴로 탐지를 돌리는 것은 잊지 않는다.

으. 숙련도 아까워. 탐지 써서 올리는 숙련도가 매혹으로 올라갔으면 얼마나 좋아.

그렇게 두어 시간 정도가 지나자 기척이 움직였다.

정신이 번쩍 들며 몸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밖으로 나오는 거겠지? 다행이야. 밖에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두 명은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지 천천히 1층으로 내려왔고, 공동 현관문이 열렸다.

딱 봐도 30대 중반 정도로 돼 보이는 남녀.

배 나온 아저씨와 성깔 있어 보이는 아줌마. 신기하다. 저런 조합이 아직 살아있다고?

왠지 고인물의 느낌이 난다.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피지컬이 중요한 세상에서 30대 중반이면 어지간히 몸을 단련한 사람이 아닌 이상 살아남기 힘들 텐데.

배 나온 아저씨라니…. 스킬이 개쩌는건가? 아니면 머리가 좋다거나?

게다가 아줌마도 보통은 아닌거 같다. 괜히 긴장되는 느낌.

하지만, 반사나 탐지가 없다면 경험이나 지능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내 먹잇감일 뿐.

긴장되는 마음으로 둘을 재웠고, 맥없이 남녀는 쓰러졌다.

괜히 긴장했네. 사람 쫄게 만들고 있어.

아파트에서 나왔으니 아파트 키가 있을 거다. 없으면 비밀번호라도 알아내야지.

공짜 집은 무조건 얻어놔야 해. 주변에 집이 아무리 많아도 문을 열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남자의 주머니에서 카드키를 발견했다.

그래. 상남자는 쩨쩨하게 번호 같은 거 안 누르지. 당연히 카드키 아니겠어?

잠시 이들을 놔두고 3층에 올라가 카드키를 대보았다.

경쾌한 음으로 삐로록 하고 열리는 문.

캬. 집 하나 또 얻었네. 행복하다 행복해.

즐거운 마음에 1층으로 내려와 두 남녀를 빛으로 만들어줬다.

[8,42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7,23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포스는 고인물이었는데 생각보다 시시하네.

깔끔하게 처리했으니 집으로 다시 올라가 봤다.

무난하게 정리되어있는 집. 그냥 무난하다. 무색무취라고 느껴지는 집이다.

다만 방금 죽인 그 남녀의 결혼사진이 집 곳곳에 걸려있다.

쩝. 이건 좀 찝찝하네. 치워야지.

베란다 창문을 열고 액자들을 전부 다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렇게 해놓으니 안 그래도 특색 없는 집이 더 평범해졌다.

딱 좋네. 집은 문을 잠글 수 있고 비바람만 피할 수 있으면 됐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여기서 한숨 더 자기로 했다.

주변을 더 돌아볼 필요는 없을 거 같으니 빠르게 시간을 돌리는 거지.

어서 미나를 보고 싶으니까. 두근두근 할 정도로.

푹신한 침대에 누워 수면 스킬을 쓴다.

가볍게 한 8시간 정도만 자면 딱 맞겠네. 알람을 맞춰 놓고 자야겠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은 밤 9시.

알람을 끄고 기지개를 켰다.

가벼운 몸 상태. 이정도면 이틀 정도는 안 자도 충분하겠어.

배가 고파서 부엌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열어봤다.

뭔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기밀용기에 적혀있는 이름들, 여러가지 반찬 이름이 쓰여 있다.

신기하네. 그 아줌마 참 열심히 살았구나.

이제는 없어져 버렸지만.

뭔가 호기심이 동하긴 하지만 일일이 꺼내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적당히 뒤져서 간단하게 뱃속으로 집어넣는다.

먹는 즐거움 같은 건 잃어버린 지 오래야. 그저 몸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 공급일 뿐.

언젠간 민지가 끓였던 찌개가 생각이 났다.

맛있었는데. 그 찌개. 따듯하기도 했고.

...에휴. 병신같은 여자.

예지, 민지. 이름에 지라는 글자가 들어간 여자가 문제야.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아 마음을 후벼 파네.

적당히 정리하고 집 밖을 나섰다.

이제 미나에게 가볼 시간.

겁먹은 아이돌 아가씨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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