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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33화 (3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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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지구

새로 멀티를 얻었으니 해야 할 일이 많다.

일단 제일 먼저 할 일은 카메라를 손보는 것이다. 사각이 있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으니까.

정말로 다행인 것은 카메라 두 개가 살아났다는 것.

덕분에 약간의 조정만으로 사각이 없어졌다. 정말로 다행이야.

카메라가 아예 망가지거나 그러면 구하지도 못하니 답이 없으니까.

카메라가 해결되었으니 다음 해야 할 일은 주변 정리다.

막말로 바로 옆집에 숨어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게 가장 좋다. 믿을 수 있는 이웃? 동료? 지랄 같은 소리지.

형제자매 가족도 못 믿는 세상에서 할 말은 아니야.

한 집씩 천천히 주변의 집들을 뒤졌다.

사소한 흔적, 발자국, 먼지, 거미줄….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사람이 오간 흔적을 살펴본다.

신중하게, 천천히, 꼼꼼하게.

목숨으로 연결이 되는 상황이라 설렁설렁할 수 없다. 대충하면 뭐 대충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거의 일주일을 들여서 주변을 살펴본 결과 이 주택단지에는 아무도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긴…. 그럴만 하다. 이 주택단지는 산을 끼고 움푹 들어가 있는 형태인 데다가 주변에 물자 보급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

여기에 살던 사람이 아닌 이상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서 살 메리트가 아무것도 없는 곳.

나에게는 아주 좋은 위치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렇게 걸리는 것, 찜찜한 것 하나도 없이 멀티를 구할 수 있을 줄이야.

오히려 이쪽을 본진으로 잡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뭐, 주변을 더 둘러봐야겠지만.

이제, 조금씩 수색 범위를 넓혀봐야겠다.

무엇보다도…. 여자가 급하다. 발정이 난 기분이야.

새벽을 틈타 또 한 번 야행을 나간다.

본진과 멀티 사이를 중점적으로 수색에 나섰다. 아무래도 이동로의 안전은 확보해 두어야 하니까.

가장 빠른 루트와 도주로, 피난처까지 마련해두는 게 가장 좋다.

번거롭더라도 그런 것들이 목숨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말했듯이 원코인 플레이어는 사소한 실수에도 게임오버 당할 수 있다.

기분 나쁜 건 본진과 멀티 사이에 있는 아파트단지다.

아파트는 싫다. 일단 너무 높아.

그리고 보안이 좋다. 그래서 아파트단지에는 꼭 틀어박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아파트단지마다 있는 보스 몹이라 해야 하나.

주변의 사람들을 다 잡아먹고 살아남은 마지막 보스 몹.

운이 좋든 실력이 좋든 뭐가 됐든 살아남은 사람은 꼭 있다.

간단한 예로 4,000세대 대규모 아파트단지라고 치자.

세대당 평균 2.5명만 잡아도 10,000명이고 사람당 500코인이면 500만 코인이다.

500만 코인이면 별도로 식량을 구하지 않아도 그냥 짱박혀 살면서 코인만 까먹을 수 있을 정도다.

단적인 예지만…. 그런 인간들을 제법 봤으니까.

게다가 중층 정도만 돼도 주변 정찰이 말도 안 되게 쉬워진다.

싸구려 망원경이라도 있다? 그럼 뭐 눈을 피할 수가 없을 정도.

그렇기에 내가 이런 밤중에 그늘과 어둠 속으로 기어가듯 다니는 거지.

아…. 진짜 스킬 하나만 더 얻었으면 좋겠다. 주변 인간 탐색 같은 거로.

아니면 투명화도 좋고. 아니면 순간이동…. 와. 순간이동. 정말 생각만 해도 좋네.

아파트단지를 지나니 긴장이 조금 풀리려 한다.

워워…. 이러면 안 되지. 이러다 죽어. 긴장하자.

아파트단지를 지나면 상가지구가 나온다.

제법 많은 상가 건물들, 여기도 귀찮긴 마찬가지지만 일단 상가지구에서 사람들이 짱박히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하니까.

나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집'에 대한 애착이 심하다.

뭐가 됐든 간에 본거지나 베이스캠프는 집에다 차린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발을 벗고 편안하게 몸을 쉴 수 있는 보안이 잘 돼 있는 곳.

그런 면에서 상가 건물들은 그다지 마땅한 곳은 아니다.

깨끗하지도 않고 보안이 강력하지도 않으며 편히 쉴 곳도 마땅치 않다.

그렇기에 약탈이 끝난 상가지구는 의외로 사람을 찾기 힘들다.

그래도 긴장해야지.

이제 이 상가지구만 지나고 공원을 지나면 본진 근처…. 저게 뭐지?

방금, 불빛이 깜빡였다.

몸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한다. 눈은 또렷해지고 행동은 기민해진다.

최대한 몸을 숙이고 엄폐물에 숨어 빛이 깜박인 곳을 노려본다.

뭐였을까? 별거 아니었을까?

또 깜빡.

이번에는 긴장하고 보고 있었기에 확실하게 알았다.

이건 조명 앞을 누군가가 지나간 거다. 느낌이 그래.

거리는 제법 되기에 빠르게 소리를 죽이고 다가갔다.

배달 위주의 음식점이 잔뜩 모여있는 먹거리 거리. 그 끝 귀퉁이 가게 앞.

사람들이 뭔가를 옮기고 있었다.

일단 확인한 사람은 세 명. 셋 다 남자.

그들은 차에 물건을 싣고 있었다. 맙소사. 차라니.

전기차. 그래. 전기차라면 운행할 수 있겠지. 유지도 되고 그래도 차라니. 대단한데? 이 세상에서 차를 굴릴 생각을 한단 말이야?

신기했다. 아직도 충격이 가시질 않을 정도.

저 차가 움직인다면, 대체 몇 년 만에 움직이는 차를 보게 되는 거야? 3년? 4년인가?

짐을 싣고 있는 남자 셋은 몇 번을 가게 안쪽에 왔다 갔다 하더니 다 실은 듯 차 문을 살살 닫았다.

그리고 셋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 하나를 어깨에 들쳐메고 나왔다.

와…. 정말 가지가지 하네.

여자는 기절했는지 미동도 없이 남자의 어깨에 축 늘어져 옮겨졌다.

트렁크를 열더니 거기에 여자를 넣고 문을 닫았다.

뭐냐? 쟤들 왜 저렇게 익숙하냐?

그러더니 작게 히히덕 거리고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제야 자세히 보니 셋 다 건장한 남자들이었다.

머리도 짧고, 인상도 더럽다.

머릿속에 조폭? 이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길 정도로.

세명이라. 딱 좋아. 게다가 여자까지. 너희들의 선물 잘 받을게.

녀석들이 담배를 다 피우고 바닥에 꽁초를 버리고 차에 타려는 순간 재워버렸다.

으. 새끼들. 꽁초만 바닥에 안 버렸어도 살 수 있었을 텐데.

너희의 사인은 쓰레기 불법 투척이다. 새끼들아.

녀석들이 잠들어 쓰러졌어도 일단 조금 지켜봤다. 일행이라도 더 있으면 안 되니까.

다행히 저 녀석들이 다인가 봐. 그럼 나도 내 할 일을 해야지?

일단 다가가서 녀석들의 주머니를 뒤졌다.

차키를 찾아야 하니까.

이대로 죽여버리면 차키도 증발해버리잖아?

한 놈의 주머니에서 차키가 나왔고, 나는 그걸 눌러봤다.

삑삑 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란 나는 토끼 눈이 되었다.

쉬발…. 깜짝 놀랐네.

화풀이로 차키를 가지고 있던 놈을 죽여버렸다.

[3,12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코인은 소소하네. 와…. 나 지금 3천 코인 보고 소소하다고 생각했어.

남은 놈 하나를 마저 죽이고 한 놈을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아…. 테이프도 슬슬 리필해야하네. 아직 한 상자는 남긴 했지만.

그렇게 남자를 질질 끌고 방금 이들이 나온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단출한 매장 안은 배달 전문이라 그런지 테이블이 하나밖에 없고 온통 주방이다.

대충 안에다가 놓고 다시 차로 나왔다.

트렁크를 열었다.

안에서 아직 기절해있는 여자.

긴 머리에 마른 몸, 작은 키. 적당한 가슴. 얼굴은? 오…. 이 정도면 고맙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제 스물? 스물하나? 그 정도의 아가씨다. 어쩌다 이렇게 잡혔니? 뭐, 네 이야기는 천천히 들어보자고.

여자에게 수면을 걸고 트렁크를 닫았다. 트렁크 닫는다고 질식사하진 않겠지?

자, 이제 심문의 시간이야.

눈과 입이 가려진 남자를 벽에 기대놨다.

그리고 나는 남자의 얼굴을 그대로 발로 찼다.

"읍"

참고로 내가 신고 있는건 군인들이 신는 전투화다. 이 전투화의 주인이었던 선배가 줄창 A급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전투화.

그런 전투화는 딱딱하고, 그걸로 얼굴을 맞으면 정말 아프다.

여태까지 전투화에 차였던 놈 중에 안 아프다고 한 놈이 없었으니까.

음…. 당연한가?

"읍읍읍."

"자. 니놈 새끼도 생각이란 거 있으면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바로 황천행 익스프레스를 탄다고?"

입을 다무는 남자.

"아이고 말도 잘 듣지. 자. 이제 네놈 입에 붙은 테이프를 뗄 거야. 테이프를 뗐는데 소리를 지르거나 시끄럽게 굴면 어떻게 된다? 아까 못 탔던 황천행 익스프레스를 다시 탈 기회를 줄 거야. 알겠지?"

미안해. 재미없는 농담을 계속해서.

근데 네놈이 살려면 내 농담이 재밌다고 느껴야 할 거야. 아…. 살려둘 생각 없지?

그럼 그냥 재미없어해라.

찌익

테이프가 거칠게 뜯기자 남자가 바로 말했다.

"종식이 파냐?"

"자. 내가 말 안 한 게 있는데.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하고 거짓말하지 말고,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알겠지?"

"아니면 누구야. 너 이러고도 니가 무사할 거 같아?"

나는 그대로 발로 주둥이를 차버렸다.

이크. 이빨 괜찮니?

"왜 한 번에 말을 안 듣지? 다시 이야기 해줘야 해?"

"너 이…. 개새끼…."

"너 머리 없니? 뇌도 없지? 이 안에 들은 건 순두부고 이건 순두부 포장지니?"

내 발길질에 아예 옆으로 쓰러진 남자.

"야 이 개새…."

또 주둥이를 놀리려 하길래 입을 발로 밟았다.

"한 번만 더 지랄하면 네놈 새끼 옆에 있던 두 놈 곁으로 보내준다?"

그렇게 말하고 발을 떼자 그제야 낌새가 이상한지 남자의 입이 조용해졌다.

"우리 서로 힘들게 하지 말고 빠르고 신속하게 볼일 보자. 알겠지?"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절하게 남자의 몸에 발을 얹고 다시 물었다.

"대답?"

"...네."

좋아. 이제야 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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