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805화 (805/813)

805 주도 패시지

아직 완전히 날이 밝지 않은 늦은 새벽녘 푸른 하늘.

환인은 본신의 힘을 억누르고 패시지의 분신체1로 힘을 전달하면서 분신체1의 시야로 의식을 옮겼다.

요르문센 섬 쪽과 달리 아직 어스름에 잠긴 패시지가 그의 시야에 담긴다.

히스론드의 팔라툼이 산자락에 만들어진 경사진 유럽의 대도시, 벨티칼의 헤뷜트가 깎아지른 산을 배경으로 물과 함께 하는 수로형 잉카 문명의 대도시였다면 메리아놀의 패시지는 대자연과 하는 거대 도시였다.

팔라툼과 헤뷜트보다 족히 2배는 더 큰 도시 규모.

도시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은 최대 높이 1km의 중앙성.

중앙성을 기준으로 보기 좋게 분포된 숲, 호수, 초원, 바위 지역.

주거 지역과 근로 지역이 확연히 구분 지어진 친환경 거대 자연 도시.

신의 눈에 보이는 영혼을 지닌 사람의 숫자는 대략 200만. 현대의 웬만한 대도시 버금가는 인구수에 대단히 아름답고 공기 깨끗한, 살기 좋아 보이는 도시지만 풍겨오는 분위기는 톡 건드리면 터질 듯이 불안정하기 그지없다.

중앙성을 포위한 수만의 교단 병력, 그리고 교단 병력과 내성벽을 두고 대치 중인 중앙 협의회 및 왕실 기사 병력 두 집단 때문이다.

두 집단은 밤새도록 서로 대치 중이었는데 사기는 눈에 띌 정도로 중앙성 쪽 기사 병력이 낮았다.

당연한 일이다.

니오네브레스의 각 교단은 신의 뜻을 추종하며 신의 뜻을 행사하는 무력 종교 집단.

그런 곳과 싸운다고 하면 죽어 신의 정원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니까.

환인은 잠에서 깨어날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침묵에 잠긴 대도시를 내려다보며 각 측의 전력과 대처 방식에 따른 피아 변화, 성에 존재하는 불특정 변수에 이 모든 여정의 목적인 결명회의 유무를 생각했다.

‘지금 내 상태로는…….’

분신체는 어디까지나 본신의 투영이다. 반쯤 실체를 지닌 영혼 상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본신이 지닌 아스펜드 안의 물건은 분신체로 사용하지 못한다. 당연히 본신의 몸에 걸친 장비의 효과도 못 받는 상태다.

유르파가 만들어준 각종 신체 강화 마도 장신구에 천릉의 의복 효과, 그리모암의 세트 효과 또한 받지 못하니 신체 능력은 하급 전사 정도밖에 안 된다.

‘율력을 쓰면 소지품도 옮겨올 수 있을 것 같지만…….’

환인의 시선이 중앙성 정문 쪽에 마련된 교단의 주력 부대로 향했다.

수백에 이르는 영혼의 색과 빛의 세기를 보면 8급 하나에 7급 셋 정도가 핵심 전력이다. 반대편 성문에도 7급 다섯이 포진하고 있다.

저들에 더해 중앙성의 기사 전력인 7급 직업자 일고여덟까지.

사태가 최악으로 번져 저들 모두가 공격해온다 생각하면 이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하지만 그것은 근접 전투를 상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적에게 유리한 전장을 골라줄 이유는 없지. 분신체의 소멸이 본신에 어느 정도의 타격을 줄지 알 수 없는 마당이니만큼 더욱더.

원거리 전투를 상정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아드네빌라와 싸우며 유용성을 파악한 초시공이 있고 심핵력을 쓰는 신식新式 영혼술도 있다.

신력과 율력을 소모해서 쓰는 신위神位 영혼술은 불가하다 해도 애초에 전투는 신식 영혼술로만 하려 했으니 아무 문제 없다.

‘영혼고에 영혼 구슬도 1000여 개가 넘어가고 있고.’

구슬의 숫자는 지금도 늘어나는 중이다. 본신이 요르문센 섬으로 향하며 눈에 띄는 정령을 종류 불문 전부 구슬화하고 있으며 분신체2도 섬 주변을 초시공으로 살피며 이형종을 학살, 그 혼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이유는 영령화에 있다.

“…….”

환인은 아침이 다가오는 동쪽 수평선을 바라보다 본신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약속 시간이 되어간다 싶은 순간이었다.

즈즈즈즈즈—…….

해가 서서히 뜨기 시작하는 패시지의 동쪽 하늘에서 거대한 웜홀 같은 것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천천히 드러낸다.

흙과 바위 재질의 다소 뭉툭한 발부터 시작해 무릎과 허벅지가 나타나고, 튜닉 같은 것의 밑자락과 함께 여성의 것이 분명한 골반에 손이 웜홀을 빠져나온다.

원근감마저 이상해질 정도로 거대한 하반신이다.

이어 잘록한 허리와 적당히 부푼 가슴, 후드 망토 밑단과 함께 윗가슴 부분이 빠져나온 순간 쑤우욱— 삽시간에 후드를 쓴 머리까지 빠져나와 그 거체가 지상에 착지했다.

쿠콰아아아아앙——………!

천지를 울리는듯한 굉음과 함께 거체의 다리가 땅에 닿는 순간 미사일이 터진 것마냥 먼지구름이 치솟는다.

중앙성에서 가장 높은 첨탑이 1,000m 정도였는데 저 거신巨身 인형은 그보다 3배 가까이 크다.

중앙성과 나란히 자라다 못해 더 높이 뻗은 신목神木보다 더 거대한 모습.

착지하느라 한쪽 무릎을 꿇었던 거신이 몸을 일으키자 그 그림자가 패시지를 가로지르니, 정녕 그 모습이 태산 같다.

중앙성을 포위한 교단 병력과 중앙성 내부의 기사 병력에서 소요가 벌어지는 것이 환인의 시야에 들어오지만, 그보다 환인은 저 거신 인형의 내구력이 궁금했다.

높이 3km의 인간형 거체다.

지하율의 키와 몸무게를 기준으로 그녀를 3km로 늘리더라도 몸무게가 17만 톤은 나올 텐데 저 신체의 재질을 생각하면 그보다 무거우면 무거웠지, 가벼울 리 없지 않은가.

그런 무게를 고작 흙과 바위 재질의 두 다리로 버틴다니. 게다가 대지가 저 무게를 받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의문이다.

한쪽 다리에 85만 톤의 무게가 가해지고 있을 텐데 땅이 움푹 꺼지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이곳은 판타지니.”

환인은 깊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고, 그 순간 거인의 어깨에서 이쪽을 향해 무언가가 쏜살같이 날라왔다.

“야아아아! 이 나쁜 아저씨야!”

“왔나.”

태연자약한 환인의 모습에 지하율은 앙칼진 고양이처럼 아르릉거리며 소리쳤다.

“인간이 진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리다니! 통신 수정구도 안 받고!”

“그래. 돌아가서 마음 아프고 죄책감이 들 때마다 그렇게 날 비난하면 된다. 널 강제로 데려가는데 그 정도 원망은 받아주지.”

“뭐……!”

그의 부드러운 이야기에 지하율은 19금 욕을 내뱉으려다 목이 콱 막혔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자신이 이곳에 남아 힘들고 고통받게 할 바에 차라리 지구로 데려가겠다는 말이 아닌가.

지금처럼 자신이 죄책감에 휩싸일 때마다 원망을 전부 받아주겠다고 하면서, 지구로 돌아온 것은 내 탓이 아니라 아저씨 탓이라면서.

잠시 할 말을 잊은 지하율은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화난 강아지처럼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누가 희대의 색마 바람둥이 아니랄까봐. 날 그렇게 꼬시려고 해도 소용없거든!”

그렇게 꽥꽥거려보지만 나이 차이 크게 나는 여동생을 보는듯한 환인의 부드러운 눈빛에 지하율은 힘없이 입을 다물었다.

이 아저씨는 진짜 뭐지. 그녀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진짜…… 오빠가 있다면 이 아저씨 같은 사람일까?’

생판 남인데다 그다지 도움도 못 줬는데, 아저씨가 아신이 됐으니 혼자서 복수를 이룰 수 있을 텐데 굳이 자신을 도와주고 챙겨주는 건…….

그런 생각도 잠시, 지하율은 여러 복잡한 마음에 환인 보기 부끄러워 고개를 팩 돌렸다.

아신이 된 아저씨다. 자신이 반항하고 발악해봤자 아저씨의 결심은 꺾지 못할 테지.

괜히 성질내봤자 나만 피곤해진다.

“너도 왔으니 그러면 시작해볼까.”

“으, 응. 어쩔 건데? 직접 보니까 여휘의 역장은 생각 이상이야. 거대 골렘으로 역장을 덮쳐도 역장에 구멍을 내긴커녕 오히려 1분도 못 버티겠어.”

난데없는 거신 인형의 출현에 난리난 패시지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눈여겨보며 묻는 지하율에게 환인은 후, 웃으며 심핵력과 영기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럴 거다.”

환인의 두 팔이 벌려지자 그의 등허리 어림에서 무수한 빛의 입자가 뻗어 나와 하늘을 뒤덮어간다.

마치 새벽녘의 은하수 같은 그 광경에 입을 헤 벌렸던 지하율은 이어진 현상에 헉, 하고 소리 없는 경악성을 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그 무수한 빛 하나하나가 영체 물질화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사람의 영혼에서부터 짐승의 영혼, 괴수의 영혼, 마물의 영혼에 마수와 이형종의 영혼까지.

색은 회색이 대부분이지만 푸른색도 적지 않고 소수지만 악령인 검은색과 혼재인 붉은색도 보인다.

저 현상의 이유를 깨달은 지하율은 살짝 어이없어했다.

“영성의 계약 물질화잖아. 그런데 무슨 숫자가 이렇게 많아……?”

영적 신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소모 심핵력과 영기 탓에 스물 남짓한 영혼만 동시에 영령화가 가능했었다.

그러나 영적 신성을 얻었기 때문일까. 그야말로 약간의 심핵력만 있으면 시간제한 없이 영령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걸 알게 된 것은 아신이 된 이후 습관적으로 영혼술 단련을 시도한 직후였다.

영혼술에 드는 거의 모든 에너지 재화의 소모가 극단적으로 낮아진 것을 영혼 폭발을 난사하면서 재차 확인한 거다.

물론 이 영혼과 모두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다.

가계약을 통해 영령화시키면 심핵력이 미세하게 더 들지만 0.0001이 0.0002가 되어봤자 변하는 것은 별로 없다. 그에 비하면 계약을 위해 소비해야 하는 시간은 막대하다.

이형종이라 말이 안 통하고 정령이라 대화가 안 통한다. 대화가 통하는 대상이라 해도 뜻이 다르면 쉽게 계약을 맺어주지 않고, 그런 대상을 설득하기 위해 협박을 동원하는 것도 귀찮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

정식 계약과 가계약으로 인한 영령화의 능력의 차이도 지금 시점에서는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정식 계약은 아신이 되며 생전의 1.5배가량 더 강하게, 가계약은 생전보다 0.2배 정도 약하게 구현되었지만, 약하다면 그만큼 숫자를 더 채우면 되는 일이니까.

지하율은 천을 넘어가는 숫자의 영령을 보며, 지금도 계속 늘고 있는 영령을 보며 소름 돋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아신이 지상을 활보하지 못하는지 알겠어. 아신이 마음먹으면 지상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어서 그런 거였네.”

“그렇겠지.”

환인은 두 마리의 괴수급 이형종을 불러내어 특별히 심핵력을 더 주입해주었다.

신장 수백 미터급 옥타 크로커스.

마찬가지로 수백 미터급 아귀곰치.

둘 다 수중 생물이지만 영혼답게 중력의 제약을 받지 않아 바닷속의 힘을 고스란히 발휘할 수 있는 괴수다.

그 둘의 등장과 동시에 힘이 빠져 무기를 놓치는 교단 병력과 중앙성 기사 병력을 보고 있으니 지하율이 묻는다.

“안 가? 인간들 반응 보니까 이랏샤이마세~하면서 성문 열어줄 거 같은데.”

“아직이다.”

올 사람이 있는데 늦는군. 지금쯤이면 도착할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길을 잃은 건가.

그렇게 몇 분을 더 기다리자 그제야 기다렸던 두 사람이 도착했다.

“형님!”

“환인 형님!”

김철수와 김영수가 환인의 근처에 차원벽을 치고 내려서며 멋쩍은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인다.

“늦어서 죄송해요. 오다가 길을 잃어서 조금 헤맸어요.”

“그으…… 철수 말대로 해안선을 타고 북상하면 되는데 시간 줄인다고 직선으로 오려다가……. 죄송합니다!”

한 번에 500m씩, 김영수의 연속 공간 도약으로 날아오다 패시지의 북쪽 글론드 섬으로 빠져서 빙 둘러 오느라 늦었다는 이야기였다.

“괜찮다. 그 정도는 염두에 뒀으니까.”

환인이 손을 내밀자 김철수가 얼른 손바닥만 한 보존용 목갑 상자를 두 손으로 환인에게 넘겨주었다.

혹시 모를 마지막 조각.

목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는 환인에게 지하율과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던 김철수가 물었다.

“저기, 근데 형님. 저 꼬만 누구예요?”

“꼬마아? 이 어린놈의 새끼가 지금 누구한테 꼬마래!”

김철수의 망발에 지하율이 암호랑이처럼 분노를 드러내자 김철수도 쌍심지를 뜨며 눈알을 부라린다.

“뉘 집 애새낀지 버르장머리 존나 없네. 야, 어른 보면 존댓말 쓰라는 가정교육도 못 받았냐? 어따 대고 어른한테 욕지거리야!”

“뭐이씨? 야 이 새끼야! 그러는 너도 예의범절은 똥꾸멍으로 말아처먹었냐! 초대면이면 나이랑 상관없이 존대해야 한다는 거 몰라?! 그런데 보자마자 꼬마? 꼬마아?!”

“뭐 똥구멍?! 와 이 존만한게……!”

“존만한 년한테 한번 죽어볼래!!”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된 종족연합 주화가 멀쩡한지 목갑을 열어 확인하던 환인은 서로 잡아먹을 듯이 왁왁거리는 지하율과 김철수를 잠시 바라보다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조용히 해라.』

“…….”

“…….”

김철수가 꼬마라고 먼저 한 것은 잘못이지만 지하율도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

환인에게 보자마자 반말을 던져댄데다 아무에게나 반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니까.

즉 환인의 눈에 김철수나 지하율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말.

신언으로 작게 윽박질렀던 환인은 꿀 먹은 곰처럼 입을 꾹 닫고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둘에게 상대를 정식으로 소개해 주었다.

“지하율, 이쪽은 김철수, 그리고 김영수다. 이번 일에 도움받기 위해 잠시 함께 다니는 중이다. 그리고 이쪽은 지하율, 보기에는 소녀지만 니오네브레스에서 200년 넘게 살아온 대현자다. 저곳의 거대 골렘이 그녀의 작품이지.”

그리 말한 환인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자 헉 소리날 정도로 큰 골렘을 힐끔거린 김철수가 우물쭈물 먼저 고개를 숙였다.

“꼬…마라고 해서 죄송함다. 잘못했슴다.”

“……나도 험한 말 해서 미안해.”

지하율도 어쩔 수 없이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둘 다 환인이 무서워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환인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딱히 더 언급하지 않았다. 둘 다 성인이고 자기 행동은 자기가 책임질 나이니까.

그래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김영수, 그리고 김철수. 여기서 너희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뭔지 알고 있겠지.”

“옙. 차원 관리국의 국장을 잡아 오는 겁니다.”

“그래. 내 뒤를 따라오다가 그 여자의 위치가 포착되면 김철수와 함께 가서 즉시 데리고 나와라.”

“예!!”

“옛!!”

“지하율, 너는…….”

“그 국장이란 년이 나오면 자결하거나 자해하거나 도망치지 못하게 능력을 봉쇄해야 하는 거지?”

“혹시라도 도망친 결명회의 인간들을 찾는 데 쓰일 수 있으니까. 가능한가.”

“충분히.”

짧게 대답하고 입을 다무는 지하율을 잠시 바라보던 환인은 다시 물었다.

“이번 일에 네가 바라는 건 없나. 가능하다면 이뤄주도록 노력할 테니 말해봐라.”

“없어. 여휘 그 망할 년한테 한 방 먹여주고 싶은데 그건 불가능하다는 게 판명됐고, 차원 관리국의 빌어먹을 놈들하고 투르시온 가문의 씹어먹을 개새끼들은 아저씨가 가만 안 둘 거잖아?”

그 외에는 없냐고 눈빛으로 묻자 지하율은 없다며 전과 다르게 원한을 불태우지 않는다.

“알았다. 그러면 내려가지.”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패시지의 상황을 재차 확인하고 초시공을 발현해 하강을 시작했다.

환인이 등을 돌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하율과 김철수가 눈을 부라리며 눈싸움을 시작했지만, 김영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김철수의 뒷목을 잡고 내려가는 환인의 뒤를 쫓는 통에 눈싸움은 허무하게 중단되었다.

패시지의 외벽은 도시의 웅장함에 비해 높이가 5m밖에 되지 않았다.

팔라툼의 100m에 달하는 순백의 왜곡벽이나 아예 성벽이 전무한 헤뷜트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모습인데, 이유는 다름 아닌 여휘의 보호 때문이다.

처음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은 이유를 알 수 없어 의아해하다가 늘 여휘의 보호가 약하게 유지되기에 외적의 침입이 있을 수 없어 성벽이 낮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1000을 넘어 어느새 2000에 가까워져 가는 영혼의 군단을 이끌고 패시지의 외성문으로 이동했다.

현실의 포장도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길을 따라 도달한 곳은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과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외성문.

외성문에서 첫 마찰을 빚을 확률이 높다고 환인은 생각했지만, 그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대륙 유일의 성제이시자 아신의 권좌에 오르신 환인 님의 패시지 방문을 땅신 교단의 다섯 번째 추기경, 르아웬 아기오시스가 받드옵니다.=

활짝 열린 외성문의 한복판, 공주기사처럼 단아한 기사복 차림의 은발녹안 미녀가 무릎을 꿇고 있다가 그에게 인사를 올린 것.

그렇다 해도 이런 상황 또한 생각해두었었기에 환인은 담담한 모습으로 안느의 친언니나 다름없는 여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무척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환인의 신언을 쓴 담담한 인사에 르아웬은 머릿속의 뇌수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환인 성제 님의 관심에…….=

『그렇게 구태여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르아웬 추기경은 아무래도 안느의 언니 같은 분이 아닙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 연인의 언니로 생각했다면 신언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르아웬도 그 점을 짚었지만 그렇다고 허물없이 대할 수도, 격식을 차려 대할 수도 없는 노릇.

안느가 함께 찾아왔다면 그녀의 도움을 은연중에 희망하여보았을 테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곁에는 탈주했다 알려진 차원 관리국 소속의 방랑자 둘과…… 국가 2급 위험 요소로 지목된 천암산맥의 대마녀 뿐이다.

긴 시간의 훈련 덕분에 사고 속도가 일반인의 1.5배에 달하는 르아웬은 빠르게 입장을 정리하고 일어나 환인에게 교단식 인사를 재차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지고의 예를 다하여 환인 성제님을 환영하고 싶으나 현 상황이 좋지 않은지라 예식을 간소화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괜찮습니다. 저도 좋은 뜻에서 찾아온 것은 아닌지라 환대를 받으면 마음이 불편하니까요. 그러니 가급적 분쟁 없이 길을 비켜주셨으면 합니다만…….』

신언과 함께 신격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외성문의 일반 병사는 이미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거나 거품 물고 기절한 상태다.

각성한 직업자인 십인장이나 백인장, 기사들은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잡고 있지만, 눈앞의 대상을 적으로 삼아야 할지 아니면 귀빈으로 받들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반쯤 길을 막고 있다.

르아웬은 당황하지 않고 평온을 가장한 온화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관하여 환인 성제님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질문을 허락하여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

연유를 눈치챈 환인의 담담한 허락에 르아웬은 결사의 각오를 드러낸 얼굴로 물었다.

=성제님의 목적에 교황님, 혹은 여휘님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땅신님의 사도는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교황님은 확답을 드릴 수가 없군요. 결명회와 연관되어있다면 그분의 사도인 여휘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 죽습니다.』

=끅……!=

=허흑…….=

풀썩털썩, 터덩.

묵직한 살의를 담은 신언이 환인을 중심으로 서쪽 외성문을 뒤덮자 그때까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있던 병사와 기사들 중 태반이 거꾸러진다.

7급 성술사로서 문무 양쪽에 커다란 성취를 이룬 르아웬도 살짝 무릎을 떨었다.

그의 살의를 느낀 르아웬의 단아한 이목구비에 혼란이 스며든다. 설마 환인 성제님은 정말 자신을 처형으로 생각해주고 계셨던 걸까?

살의가 깃든 신언과 평범한 신언은 그만큼이나 차이 났기에 르아웬은 일순간 혼란을 느꼈지만, 금방 침착을 되찾고 환인에게 허리를 굽혔다.

교황은 다시 뽑을 수 있다. 죽어도 교단에 약간의 혼란은 있을지언정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사도인 여휘님은 다르다.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환인 성제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천년궁의 정문, 천년로로 향하며 현재 패시지의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환인은 외성문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좌우 끝까지 비켜주는 것을 보고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에 앞서 저도 르아웬 추기경께 한 가지 질문하겠습니다.』

=무엇이든 여쭈어보신다면 성실히 답변드리겠습니다.=

꼴깍, 긴장한 그녀에게 그녀가 예상했던 질문이 쏟아졌다.

『당신은 결명회와 관련이 있습니까.』

=…저는, 땅신님의 뜻과 발자국을 따르며 추종하는 땅신 교단의 다섯 추기경 중 1인으로써, 현재 메리아놀을 잠식 중인 결명회와는 좋은 뜻에서 그 어떤 연관도 없음을 맹세합니다.=

『좋습니다. 패시지의 현 상황이 어떠한지는 하늘에서 모두 보았습니다. 설명은 필요 없으니 가면서 잠시 이야기나 나누면 좋겠군요.』

=예, 환인 성제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성제님의 뒤를 따르는 저… 영혼들은…….=

『적지에 들어오는 일입니다. 제 한 몸 지킬 방위 수단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게 웃음 지으며 태연하게 말하는 것에서 르아웬은 의식이 무저갱으로 추락하는듯한 환상을 일순간 맛보았다.

적지敵地, 적지라니…….

=예, 예. 그러면…… 천년궁으로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은 르아웬은 식은땀을 한 방울 흘렸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환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수백 년, 거의 반천년 만에 등장한 아신은…… 각성 후 오르빈치와 천원으로 올라가지 않고 지상에 남은 아신은 메리아놀을 적으로 여기고 있다.

사도를 제외한 모두가 죽는다고 한 말뜻은 무엇인가. 그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기분 나쁘게 했다간 도시 자체가 증발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늘 대동하던 연인들, 동생까지 두고 대신 저 방랑자들만 데려왔다는 것이 그녀의 불안을 부채질한다.

게다가 사도는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도의 존재 이유까지 이미 파악이 끝났다는 이야기니…….

어쩐지 성제 일행의 행보가 콜라이도 즈음에서부터 직선 돌파에 가까운 느낌이 들더라니.

그전까지는 정치권과 연을 만들며 국제적으로 메리아놀을 몰아가는 방식이었기에 잘 이야기만 나누면 큰 사상자 없이 사태를 온건히 마무리 지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안느에게도 히스론드 즈음부터 연락이 닿질 않았었지.

‘그때부터 성제님은 아신 진입을 준비하고 있으셨구나.’

혼자서 메리아놀을 상대할 자신이 생겼으니까, 홀로 메리아놀을 지워버릴 무력을 획득하였으니까 태도의 변화가 급격히 일어난 거야.

르아웬은 동쪽 하늘에 우뚝 선 3km의 거인, 그리고 영혼의 대군이 외성문 입구에 설치된 8급 성술, 부정한 것의 퇴치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속속 진입하는 모습에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뜬 그녀의 눈에는 체념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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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chtGPT: 키가 160cm이고 몸무게가 50kg인 경우의 BMI를 계산하고, 이를 기준으로 키가 3000m인 거인의 몸무게를 어림잡아 계산해보겠습니다.

기준 사람의 BMI 계산: 키를 미터(m) 단위로 변환합니다. 160cm는 1.6m입니다. BMI ≈ 19.53

거인의 몸무게 계산: 기준 사람과 거인의 BMI가 동일하도록 가정합니다.

몸무게 = 19.53 * (3000 * 3000)

와-오☆

유치원 중퇴 글쟁이는 장인이 아니기에 도구탓을 마구마구 해야하는 것입니당

앞으로의 계산은 챗GPT가 해줄 거야!

챗GPT! 챗GPT!(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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