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80화 (580/813)

574 팔라툼으로 가는 길

카락스의 암살자는 숫자가 적다. 다른 라이벌 암살 집단은 물론 과거 여느 암살단보다도 적은 편이다.

점조직으로 세를 확장하며 의뢰의 수납과 관리를 동시에 진행하는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암살자로 키우는 다른 곳과 다르게, 카락스의 암살자는 세력 확장에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전통 방식이란 암살자가 임무를 맡아 대외 활동을 하던 도중 자질이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최대한 온건한 방법으로 집단에 끌어들이는 것.

주된 방식은 낙후된 촌락이나 마을일 경우 아이를 사는 것이 있고 아니면 물적 지원을 통해 보상으로서 아이를 데려오는 것 등이 있다.

그렇게 모은 아이들은 카락스의 암살자 내부에서도 아는 이가 적은 비밀 장소에서 암살과 첩보 및 공작 활동까지 다양한 방면의 훈련을 받는다.

훈련받은 아이가 특정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면 2차 훈련장으로 분리되어 이동, 그곳에서 체계적인 전문화 과정을 거치며 이때 대상이 카락스에 적합한지 심성, 인성 검증 작업을 거친다.

이때 아이들은 암살자 훈련이 아닌 어느 도시의 특수부대 육성 교육으로 알고 있는 것도 타 암살집단과의 차별점이다.

훈련생이 도무지 암살자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면 졸업이라는 핑계로 연줄이 있는 군에 입대시키는 일종의 브로커 역할도 겸하고 있는 것.

이런 식으로 정식 카락스의 암살자 칭호를 달게 되는 사람은 한해에 많아봤자 2명. 보통은 1명이며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렸을 적 거두어지자마자 카락스 본거지로 들어간 아영의 경우가 특이한 사례인 거다. 그만큼 아영의 자질이 무척이나 뛰어나기도 했고 말이다.

이렇게 소수 정예에 인성 검증을 거치고 수차례에 걸친 위기까지 이겨내다 보니 카락스는 운명 공동체 같은 성향을 띄게 되었다.

가족 의식이 강해진 거다.

이로 인해 가족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거나, 남은 가족들을 살리려 위험에 빠진 동료를 처분하는 비정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카락스 내에서도 셋뿐인 상급 송곳니, 이레아를 간호하는 건 아영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와서 그녀를 죽인다 한들 엉망진창이 된 현 상황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환인 오빠도 그녀를 살리는 걸 허락했으니까.

=이레아, 정신 들어?=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의식이 깜빡거리던 이레아가 정신을 차린 것은 지평선 한가운데에서 히스론드 산이 서서히 눈 덮인 그 머리를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여긴…….=

정신을 차린 이레아는 일순간 뒤죽박죽 섞인 기억에 두통을 호소했지만,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영을 보곤 상황인지 대강이나마 알아차렸다.

자폭 술식을 새겨놓은 왼쪽 젖가슴이 싹둑 잘려 나갔다. 그리고 멀리서 관측만 해야 할 아영이 자신의 앞에 서 있으며 의뢰 목표가 저쪽에 세워놓은 마차 근처에 멀쩡히 존재한다는 것.

임무에 실패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내가 살아있는 거니?=

=성제님의 아량과 자비로움 덕분? 내가 누누이 말했던 최악의 사태가 현실화한 거지 뭐.=

=……!=

서글서글한 인상의 미녀가 눈을 질끈 감는 모습에 아영은 킥킥흐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팡팡 때렸다.

=농담이야 농담. 암살은 실패했는데 일은 잘 풀려서 가족들도, 언니도 무사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성제님을 암살하려 했다가 실패했어. 그런데 무사할…… 윽.=

갑작스러운 심장 발작에 가슴께를 누른 이레아가 작게 신음을 토해낸다.

아영은 그런 이레아의 가슴에 치유를 걸며 말해주었다.

=당연히 아주 멀쩡하진 않아. 이미 지금쯤 본거지는 임시 안가로 이전했을 테고 훈련장도 전부 폐쇄, 훈련생도 모두 방출됐겠지. 자산은 급하게 처분하느라 반 토막 났을 거고 나도 차기 어금니가 아니게 되었어. 이 피해를 복구하는 데만 30년이 넘게 걸릴 거야.=

=네가…… 어금니가 아니게 됐다고……?=

=응. 나 환인 오빠 노예 됐다? 그 대가로 가족들 모두 살려주겠다고 오빠가 약속했어.=

=…….=

해맑게 웃으며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아영의 모습에 이레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버렸다.

나 때문이다. 차라리 자폭 술식이 발동되어 정체가 밝혀지지 않도록 녹아내렸다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텐데.

자신이 의뢰에 실패하고 자살하지도 못하는 바람에 카락스의 암살자 역대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자질의 아영이 노예가 되어버렸고 카락스는 볼품없이 쪼그라들게 되었다.

말이 30년이지, 카락스가 이렇게 되었단 소문이 퍼지면 나사라트의 암살단과 구주의 독니는 자신들이 절대 세를 되찾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와 암살을 가해올 거다.

=나,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안 좋은 선례를 남기는 한이 있어도 네가 말한 대로 늑대의 어금니를 거절했어야 했어. 내가 그 의뢰를 받자고 해서…….=

=아니지. 2대 전 어금니가 늑대의 어금니를 엘위드리스 가문에 넘겨서 그런 건데 그게 왜 언니 탓이야.=

=…….=

아영의 위로에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긴 한숨으로 토해낸 이레아는 음울해진 얼굴을 애써 감추었다.

자신의 실패를 무마하기 위해 저리된 아영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적어도 지금은…….

이레아가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아영이 그녀의 하나 남은 봉긋한 유방의 꼭지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언니언니. 긴급 통신 마도기 상태 좀 확인해봐. 멀쩡해?=

=아, 응. ……괜찮아. 기동하고 있어.=

=다행이다. 엎드린 상태에서 등으로 충격파를 받아서 무사했나 보네. 내 마도기는 박살 나버려서 큰 이빨한테 연락도 못하고 있었어. 환인 오빠 공격을 정면에서 한 방 맞았는데 내장하고 뼈가 짓뭉개지고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니까?=

=네가 그리 말할 정도라니. 성제님이 그 정도였어?=

=100% 실패할 의뢰였어. 아무튼 일주일이나 돼서 연락망이 남아있을까 싶지만 연락은 해야하니까. 한 번 신호 보내봐.=

고개를 끄덕인 이레아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위상력과 함께 지정된 압력을 가했다.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절대 발동할 수 없는 신체 삽입형 통신 마도기가 그 신호에 발동하며…….

[이레아? 네가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아직 연결되어있네.=

카락스의 은퇴 암살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그룹, 카락스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원탁의 이빨과 신호가 이어졌다.

“거절이라고.”

[당신의 암살 의뢰를 받았을 때부터 이런 상황은 각오하고 있었소. 그리고 이런 상황에 아영을 제물로 삼아 목숨을 부지하고자 할 생각은 없소.]

큰 이빨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상을 쓰고 있던 아영이 발칵 소리를 지른다.

=아이씨. 큰 이빨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받아들인다니까! 내가 괜찮다고!=

[꼬맹이는 입 다물어라. ……이 연락망을 폐쇄하지 않은 것도 그에 따라서였소. 아영이 당신에게 잡혔다면 이 선을 통해 연락하지 않을까 싶어서.]

=큰 이빨!=

재차 고함을 지르지만 큰 이빨은 반응하지 않고 환인에게 계속 말한다.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지난 일주일간의 조사로 충분히 알게 됐소. 원한다면 우리 모두의 목숨을 충분히 거두고도 남을 능력을 갖추었겠지……. 그렇기에 아영을 노예로 줄 수 없다는 거요.]

=아 나 암살자 관둘 거니까! 카락스에서 탈퇴할 거니까 그러면 그쪽이랑 관계 없는 거 아냐! 환인 오빠 저……!=

“조용히 해라.”

환인은 자신과 큰 이빨이라는 하얀 늑대 머리의 루크랑 남자 사이에 낀 아영의 목덜미를 잡아 옆으로 밀어내며 조용히 으르렁거렸다.

“사정을 모르는 자가 본다면 이쪽이 가해자고 그쪽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겠군.”

[…그 점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소. 우리 카락…….]

“할 말이 없다면 입 다물어라. 듣고 있자니 귀가 더러워지는 기분이니까.”

[…….]

“네가 어찌 생각하는지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착각하지 마라.”

환인의 채 풀리지 않은 분노가 살기와 버무려져 주변을 채워나간다.

“이것은 제안이 아닌 결정 사항이며 네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말은 하나뿐이다. 이 둘은 이 자리에서 죽고 나는 일정을 전부 미룬 뒤 카락스의 암살자라는 이름 아래 잠시라도 머물렀던 자들을 찾아 모두 죽일 것이다.”

=윽, 오빠아.=

그간 일주일, 아영은 정말로 허튼 생각이나 딴마음 품지 않고 환인 일행의 서열 최하위로서 열심히 해왔었다.

선천적으로 모난 점 없이 밝고 활달한 아영은 그 성실함까지 인정받아 순식간에 안느와 유르파의 마음에 들었고, 백려강도 어느 정도 그녀를 인정하게 됐다.

이실리테도 데면데면하게 굴고 있지만 한 달이면 그녀도 아영을 받아들일 듯한 모습.

그랬기에 환인은 아영을 제법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헌데 이런 식으로 아영을 손에서 놓게 된다면 환인은 엘위드리스의 원로를 죽이기 전에 기꺼이 몇 달의 시간을 허비할 의향이 있었다.

방법과 수단은 이미 구상이 완료된 상태. 도망친 개를 쫓는 데는 똑같은 개를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법이다.

환인이 이레아가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수정구 속 큰 이빨을 향해 마지막 선고를 내린다.

“내 말이 단순한 허세로 들인다면, 어디 한번 해봐라.”

[그 말대…….]

-퍽.

말을 하려다 머리가 오른쪽으로 확 꺾이더니 스륵 수정구의 화면 아래로 사라지는 큰 이빨.

그가 사라진 자리는 머리에 까만 깃털 날개가 달린 분홍색 머리카락의 완숙한 미녀가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차지한다.

[큰 이빨……도 이제 아니지. 감유, 당신은 긴급 원탁회의의 안건이 통과되어 이 시간부로 큰 이빨의 자격이 박탈되었음을 선언하는 바에요. 12석 중 자리에 없는 둘을 제외한 10석의 찬성으로 80%가 동의한 사항이라는 걸 밝혀요.]

[엘미느, 아저씨 이미 기절했어요…….]

[그래도 선언과 절차는 중요해요. 루이? 이 화상을 데리고 가서 저기다 대충 처박아놔 줄래요?]

[네.]

멍한 얼굴로 환인의 옆에서 함께 수정구를 들여다보던 아영이 뒤늦게 정신 차리며 수정구에 매달린다.

=엘미 언니!=

[그래~ 우리 강아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이레아도 생각보다 건강해 보이네요. 그보다 머리 좀 치워주겠어요? 성제님과 중요한 이야기를 아직 마무리 짓지 못했잖아요.]

=어? 으응.=

홱, 라벤더색 단발머리가 찰랑일 정도로 환인을 돌아본 아영이 엉금엉금 기어서 옆으로 피해준다.

무심한 환인과 시선을 마주한 엘미느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고명하시고 찬란한 위명의 성제 예하께 불미스러운 것을 보여드려 송구합니다. 전임 큰 이빨은 자리에서 보직 해임되어 새로운 큰 이빨이 선출되기 전 두 번째 이빨인 저 엘미느가 임시로 맡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에 환인은 표정도, 안색도 하나 바뀌지 않고 냉랭한 말로 쏘아붙였다.

=웃기지도 않는 촌극이군.=

[무어라고 비난하고 매도하셔도 감내하겠습니다. 한 번 아량을 보여주셨음에도 그 자비를 걷어차려 한 어리석은 머리이니까요.]

하지만, 하고 말을 좀 더 있는 엘미느.

[전대 큰 이빨은 고지식하고 완고한 성격으로 카락스를 수십 년간 유의미하게 이끌어온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유래 없는 위기가 닥쳐온 상황. 고지식함보다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지요……. 우리 카락스의 암살자는 말하기 민망하오나 성제 예하께서 다시 한번 관용을 보여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자비는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지당한 말씀입니다. 하여 허락해주신다면 성제 예하께 12인의 이빨 일동 전원, 예하의 발치에 몸을 숙여 사죄드리고자 합니다. 원하신다면 저희들의 수급도 바치겠사오니 부디 살인에 가담하지 않은 가녀린 아이들의 목숨만큼은 보장하여주시기를.]

환인은 좋다고 여겼다. 수틀린다면 카락스의 머리를 잘라버릴 기회가 될테니까.

“좋다. 현재 속도로 사흘이면 히스론드의 주도 팔라툼에 입성한다. 그때 이야기를 이어서 하지. 늦으면 끝이다.”

환인은 엘미느라는 조인족 여자의 대답을 듣지 않고 손을 한차례 휘저었고, 이레아는 즉시 수정구에 흘려 넣던 위상력을 끊어 통신을 종료한다.

시무룩해진 아영, 무표정으로 마네킹처럼 서 있는 이레아를 한 번씩 바라본 환인은 조롱이나 비꼼은 일절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한 투로 말했다.

“벌주를 사서 마시는 격이군.”

=진짜요……. 예전부터 꽉 막혔기로 이레아랑 막상막하였는데 이렇게 똥볼을 걷어차네. 내가 못살아…….=

철푸덕 주저앉아 한탄하는 모습이 한 해 농사를 망친 농사꾼 같아 환인의 여자들은 화가 나는 와중에도 참을 수 없어 작게 웃음을 흘렸다.

비극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지만 망연자실한 저 모습은 가까이서 보아도 희극이다.

생기기로는 안느와 버금갈 만큼 아리따운 플뢰족 아가씨가 저렇게 체면 없이 주저앉아 주절거리는 모양새라니.

그러나 그녀들과 달리 웃음 포인트를 잡지 못한 환인은 그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적잖이 심기가 상한 모양새.

=에휴.=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 있던 안느는 환인과 그를 따라가는 이실리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작게 저었다.

진짜 그의 말대로 벌주를 사서 마시는 격이네.

그렇다고 며칠 사이 마음에 든 아영이 죽는 것은 안느로서도 내키지 않았기에 넋을 놓은듯한 아영에게 다가가 조언해주었다.

=일이 이렇게 됐지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일주일 동안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똑같이 하면 도령이 널 죽이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가족이 다 죽고 저만 사는 건 의미 없는데요?=

불퉁하면서도 울상인 그 얼굴에 안느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쓴웃음을 지었다.

=흰늑대 대가리가 아니고 조인족 여자가 와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납작 엎드리면 네가 생각하는 최악은 벌어지지 않을 거란 뜻이야.=

=우음. 환인 오빠 살기는 진짜였는데…… 정말 괜찮을까요? 왔다고 얼씨구나 해서 죄다 목 쳐버리고 남은 생존자들도 쫓는 건…….=

=그거야 엘미느라는 여자 하기 나름이지?=

안느의 설명에 한숨을 폭폭 내쉬던 아영은 갑자기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팔다리를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아 진짜~! 나오기 전에 감유 그 아저씨부터 죽여놓고 올걸 그랬어어어!!=

=아영…….=

갑작스러운 떼에 당황한 이레아가 손을 내밀었지만, 아영은 그 손을 잡지 않고 되레 이레아에게 버럭 소릴 질렀다.

=이레아도 마찬가지야! 이게 뭐야! 감유 아저씨랑 네가 그토록 주장해서 벌어진 일인데 왜 나만 이렇게 마음고생 해야 하는 건데! 으아앙~!=

=미안해…….=

아영은 풀밭에 드러누워 소리 지르며 떼쓰고 이레아는 그런 아영을 내려다보며 풀 죽는다.

가족 같은 관계라는 말은 좀 전의 통신을 보았을 때 사실이겠지. 그게 뜻하는 것은 암살자로 활동하면서도 정직성을 잃지 않았다는 이야기. 아영이 이때까지 보여준 모습도 그녀의 솔직한 마음이란 뜻이 된다.

아영의 생떼를 피식거리면서 구경하던 안느는 백려강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걸 발견하고 물었다.

=강아, 왜 그래? 뭐 이상한 거라도 느꼈어?=

=네? 아뇨, 그 엘미느라는 분을 어디서 본 거 같아서요.=

=흠……?=

안느도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에 백려강은 푸르게 반짝이는 옆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고개를 돌려 자기 귀를 가리켰다.

=조인족 여자는 다른 종족 여자처럼 여기에 깃털 귀가 붙어있어요. 그런데 아까 엘미느란 암살자는 이쪽, 정수리 근방에 붙어있었잖아요.=

=그랬었지. 그런 차이에 이유라도 있어?=

=네. 머리 위의 날개 귀는 옛날 천사의 피가 세대를 뛰어넘어 발현됐다는 증거예요.=

=천사?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그런 조인족 여자는 혈족에서 귀하게 대접하고 키워요. 보통 뛰어난 능력을 각성하기 마련이라서요. 그런데 어쩌다가 암살자에……. 으음,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어디였지…… 아우리스 가문이었나…? 호톤도 가문…….=

생각에 잠겨서는 이쪽도 잊고 웅얼거리는 백려강이다.

안느는 그녀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며 유르파를 돌아보았다. 또 뭔가 머릿속으로 마도구의 구상 중인지 땅을 노려보는 모습이다.

아영은 이레아에게 들러붙어 괴롭히는데 그냥 봐서는 힘 넘치는 조카가 고모를 괴롭히는 모습.

머리를 긁적거리던 안느는 자신도 환인의 기분을 풀어줄 생각으로 그가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을 따라 하루를 더 이동한 환인 일행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주도 팔라툼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산맥이 아니라 해발 4,000m 정도 되는 거대한 산과 그보다 조금 작은 산 두 개가 붙어있는 모양새.

망원경을 꺼내 히스론드 산을 바라보던 유르파는 완만한 산山 모양의 드높은 봉우리 곳곳에 보이는 건축물을 발견하곤 감탄을 터트렸다.

=우와, 저거 뭐니? 산 하나가 통째로 도시야?=

=응. 플라비우스족은 다들 날개가 있잖아. 고저 차에 큰 영향을 안 받아서 플라비우스족은 높은 지대에 살고 그 외 종족은 낮은 지대에서 살아.=

안느의 설명에 백려강도 작게 감탄한다.

=아직 팔라툼까지 이틀은 더 가야 하는데 저렇게나 보이면…… 산이 대단히 크다는 뜻이네요.=

=두 다리로 산 전체를 둘러보려면 몇 주는 걸린다고 해. 그리고 주도라지만 뭐랄까, 여기까지 오면서 도시가 하나도 안 보였었지?=

=네. 보통 주도 근처면 크고 작은 마을이나 도시가 있기 마련인데 안보여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유가 주도 팔라툼의 특성 때문이야. 도시들이 모여 만들어진 도시거든. 내가 알기로 다섯 개 도시가 히스론드 산에 모여있을 거야.=

=확실히 히스론드산이 크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백려강의 시선이 다시 히스론드산으로 향한다.

산 곳곳에 자라고 있는 울창한 나무들, 그 사이로 하늘 정원처럼 매끈하게 관리되고 있는 하얀 건물들.

멀리서 보이는데도 도시가 무척이나 세련되고 아름답다는 게 눈에 보인다.

‘만년설 위에 지어진 웅장한 성이 왕궁인가……? 저런 곳에서는 살기 불편할 텐데 어째서 저곳에 성을 지었지?’

백려강의 시선을 사로잡은 테이블 마운틴 형식의 봉우리, 그곳에 지어져 있는 뾰족뾰족한 성의 자태에 그녀는 의아함을 품었다가도 뭐, 하고 알아서 해석했다.

플라비우스족은 높은 곳을 병적으로 좋아한다고 하니까.

처음 밟는 타국 땅. 그곳이 아름답기로는 메리아놀의 주도 패시지와 맞먹는다는 팔라툼이었기에 백려강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백려강의 시선이 마차 뒤에 연결된 왜건으로 향했다.

‘환인 님한테는 조금 죄송하지만…….’

적어도 팔라툼에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이 설렘을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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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이놈의 위장은 고기만 들어가면 난리네요... 이번에는 고기 덜 먹고 버섯을 많이 먹었는데 ㅠㅠ

계속 화장실 들락거렸더니 머리도 아프고 눈밑도 아프고 으으.

575++ 유르파와 환연의 수난.

※R18+ 엽기 주의※

no gore. no blood.

마차가 포장되지 않은 거친 노면을 따라 달리고 있지만, 그 진동은 마차 내부에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전부 뛰어난 설계, 그리고 그 설계를 뒷받침해주는 마도 기술 덕분이다.

=으……. 끙. 흐읏…….=

그런 마차 내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방에서는 어떻게 들어도 야릇한 느낌의 신음이 흐르고 있었다.

찔꺽…… 쯔걱…….

=아흐윽… 왜…… 이렇게, 안되는 거야…… 응읏.=

신음의 주인은 유르파.

그녀는 볼륨 소매블라우스만 입은 채로 아랫도리를 훤히 까고 끙끙거리는 중이었다.

등허리는 푹신한 쿠션으로 받치고 다리를 게처럼 벌린 야한 자세.

두 손은 사타구니 사이에 닿아있었고 손가락은 연신 꼼지락거리며 묘한 움직임을 보인다.

살짝 찌푸린 미간.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처럼 작게 깨문 아랫입술.

매끈한 발가락은 잔뜩 오그라들었다가 펴지기를 반복 중이고 때때로 허벅지를 조이며 끄응……! 무언가를 억누르는 신음을 조금 강하게 흘린다.

=하아읏…… 좀… 들어가, 제발……!=

그녀의 손에는 새끼손가락보다 더 얇고 가느다란 유리 대롱이 쥐어져 있었고, 그 대롱의 끝은 그녀의 보지 안쪽으로 깊게 들어간 상태.

대롱을 쥔 손끝이 조금씩 원을 그린다. 당연 그녀의 손에 쥐어진 대롱도 보지에 들어간 상태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그녀가 뒤늦게 자위에 빠져들었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사나흘에 한 번, 꼭 안아주며 행복을 안겨다 주는데 자위 같은 걸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물론 그가 자위하는 것을 보여달라고 한다면 기꺼이 보여주겠지만, 그는 현재 마차 후면에 연결되어있는 왜건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마차 안에서 혼자 아랫도리를 깐 채 보지 안에 작대기 같은 것을 넣고 후비는 이유는, 예전에 환인이 한 부탁 때문이었다.

자신의 채취가 유독 그의 성욕을 자극하는 듯하니 그 이유에 정현족의 체질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조사해 달라는 그의 부탁.

이성의 체액이나 정액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종족, 흡정족과 모든 제약과 굴레에서 벗어난 정현족의 차이점은 그녀도 궁금했기에 연구할 틈만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이 겹치고 이어지다 보니 그보다 우선시해야 할 문제가 연이어 쌓였고, 거인숲 미궁을 나오고 8일째인 지금에서야 시간이 난 것이다.

물론 사이사이 몇 가지 준비물은 마련해놨고 준비해놨기에 마지막 시료만 채취하면 되었다.

보지에 유리 대롱을 넣고 있는 것은 그 마지막 시료인 난자의 채취를 위해서인 것.

그리고 스포이드 형태의 대롱 끝은 현재 매끈한 자궁구의 작은 홈에 반쯤 끼인 상태로 더 이상의 진전을 못하고 있었다.

=아잇…… 왜 이렇게 안 들어가는 거야…….=

대롱을 빙글빙글 돌리고 드라이버처럼 회전시켜도 자궁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없다.

원활한 삽입과 채취를 위해 윤활액까지 발라놨지만, 볼 수도 없고 그저 감각만으로 하려 하니 영 진도가 안 나간다.

예전 흡정족이던 시절에는 채취가 어렵지 않았다. 그때는 인정하지 못했지만, 조임도 그렇고 속이 넓었기에 대충 한 손으로는 보지를 벌린 뒤 거울을 비춰보며 한 손으로 하면 됐기 때문.

그런데 정현족이 되어버린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조임이 너무 좋아지고 속도 좁아진 덕분에 검지와 중지를 넣고 벌려도 거울에 비친 속살의 주름이 꾸물렁거리며 움직이는 것만 보일 뿐, 안쪽이 하나도 안 보이는 거다.

‘오늘이 배란일이라서 지금 채취한 뒤에 보존해야 하는데…….’

게다가 지금 채취용으로 쓰는 대롱도 원래는 이런 용도로 상정하지 않았기에 내구성이 좀 불안하다. 안에서 부러질 것 같다고 할까.

이게 다 조임과 속이 너무 좁아진 탓이다.

‘탓이라고 하기도 그러네. 자기가 좋아하니까…….’

헤유, 작게 한숨을 내쉰 유르파는 잠시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쪽 검지와 중지를 보지에 밀어 넣고 위아래로 벌리면서 다시 대롱을 깊게 밀어 넣는다.

답답함에 아까보다 움직임이 과감해진다. 뭐 잘못되면 회복약을 먹거나 아영이한테 회복의 성술을 받을 생각을 한 것이다.

만약 환인에게 상담을 받았다면 스페큘럼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테고 훨씬 쉽게 난자를 채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남사스럽고 민망한 모습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을까.

어쨌든 몇 분 정도 더 끙끙 씨름했을 때였다.

쑥-

=아흑?=

유르파는 무언가 막혀있던 것이 쑥 들어가는 손의 감각과 아랫배 깊은 곳의 그 너머로 얇고 뾰족한 게 쑤욱하고 들어오는 두 가지 감각을 느끼며 발가락을 강하게 오므렸다.

입구를 열려고 열심히 지분거린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한 건가.

고개를 든 유르파는 대롱이 안으로 들어간 깊이를 확인하곤 아직 경부 근처인 것을 확인했다.

=좀 더 들어가야겠네…… 이 정도면 5cm인가?=

대롱 잡는 방식을 바꾼 유르파는 엄지와 검지로 펜을 잡듯이 잡고 살살 돌리며 천천히 밀어 넣는다.

그와 함께 그이의 자지가 쿵쿵 자궁을 두드리는 감각과는 좀 다른, 그보다 더 깊은 곳까지 무언가가 헤집으며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흐읏…… 기분 이상해…….=

대롱이 깊이 들어갈수록 나긋나긋한 미녀의 얼굴이 살포시 찡그려지고 희미한 금색 문신이 새겨진 매끈한 아랫배가 이물질의 삽입 감각을 오인하곤 작게 울렁인다.

앞으로 얼마 안 남았다. 이제 안쪽을 살살 훑으면서 채취를…….

「유르파, 자위하는 거야?」

=꺅?!=

뚝-

사달은 그때 벌어졌다.

=……아.=

갑자기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

그리고 안에서 벌어진 약한 충격.

예상치 못한 환연의 출현에 유르파는 깜짝 놀라 아랫배에 힘을 주고 말았고, 환인이 최고라며 속삭이길 망설이지 않는 조임이 얇디얇은 대롱을 말 그대로 조여서 부러뜨려버린 것.

손을 덜덜 떨면서 뽑은 대롱을 본 유르파의 안색이 하얘진다.

25cm의 얇고 긴 대롱의 끄트머리 약 7cm가 깔끔하게 부러진 채 투명한 액을 뚝, 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상황은 보지 않아도 명확하다. 유르파는 자궁에 여전히 느껴지는 이물감에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응? 뭐야? 뭔데?」

=연이 너 언제 들어온 거야……. 소리도 없이…….=

「안에서 야한 소리가 나길래 구경하러 온 건데? 근데 환인은 없고 너 혼자 자위하고 있길래 말 걸었지.」

=자위하는 거 아니었어…….=

「그럼 뭐 하고 있었는데?」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질문에 유르파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억지로 보지를 벌려서 손가락을 밀어 넣어보지만…….

‘안 닿아.’

신축성도, 주름도 너무 좋아진 보지는 손가락을 밀어 넣으면 덩달아 늘어날 뿐이다. 부러진 대롱의 끝은 닿지도 않는다.

‘당연하지. 자기의 그 흉기도 전부 담아내는 곳인데…….’

꺼내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하지만, 자신이 가진 도구 중에서는 마땅한 게 없다.

게다가 솔직히 좀 느낀 것도 없지 않아 질액도 제법 흐른 상황. 미끌거려서 어지간한 도구로는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거다.

끝이 깨져서 질을 찌른다거나 살을 찢는다거나.

설명을 다 들은 환연의 고운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게 지금 안에 남아있다는 거야?」

=응.=

「미안해. 내가 놀래켜서…….」

=아냐. 자위라고 오해할만하지…….=

아랫도리만 벌거벗은 데다 질 밖으로 흐른 액이 엉덩이골을 타고 바닥에 살짝 고인 상황이다.

환연이 오해해서 자위하냐고 놀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는 말이다.

그때 유르파의 표정이 심각하게 찡그려졌다. 그녀의 얼굴을 본 환연도 덩달아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아, 큰일 났다.=

「왜, 왜?」

=안쪽으로 밀려들어 가는 거 같아. 다 들어가 버리면 배랑 자궁을 째야 하는데…….=

「악.」

상상력이 풍부한 환연은 그 장면을 연상하곤 눈을 질끈 감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사람 죽는 꼴이야 여럿 봤지만, 적이 죽는 것과 동료, 가족이 피를 흘리는 게 같을 수 있나.

환연이 조바심을 내며 묻는다.

「어떻게 해? 그거 손으로는 못 뽑아?」

=입구가 좁아서 손을 넣으려다간 찢어질지도…….=

「비술로 염력을 쓴다거나 하면?」

=염력은 시야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 꺼낼만한 도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부 억센 것들이라 끝을 깨버려서 날카롭게 만들 여지도 있고…….=

애초에 이렇게 반듯하게 칼로 자른 것처럼 끊어진 게 기적이다.

아, 혹시?

허벅지를 붙여 보지를 가린 채 고민하던 유르파가 물었다.

=정령한테 부탁하면 안 될까? 물의 정령이라던가.=

「안돼. 상급 정령은 이런 일에 자길 불렀냐고 화낼 거고 중급도…… 하급은 세밀한 통제가 어려워서 장난친다고 안에서 터질 수도 있어.」

=…….=

「난 정령이랑 정식으로 계약한 게 아니라 반쯤 흐르는 피로 부탁하는 거니까…….」

유르파와 환연의 복잡한 시선이 교차한다.

그것도 잠시, 환연은 유르파의 하얗고 늘씬한 하반신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극심하게 고민하다가……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책임질게. 내 잘못이니까.」

=응? 어떻게?=

절개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던 유르파가 의아해하자 환연은 대답 대신 입고 있던 검은색 심플라인 원피스 드레스를 벗었다.

이전에 입고 있던 노출도 높은 드레스 대신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속옷을 입기 어려운 환연을 위해서 유르파가 만들어준 캐주얼 드레스다.

그녀가 옷을 벗은데서 뭘 하려는지 깨달은 유르파가 조금 우려하는 얼굴로 물었다.

=괘, 괜찮겠어?=

「환인을 불러도 방법이 없을 거 아냐. 다른 애들도 너보다 다들 손 크고……. 백려강이 너랑 비슷한데 네 손도 안 들어간다며.」

=기름을 쓰면…….=

「됐어. 내가 들어가는 게 가장 빨라.」

환연의 키는 대강 20cm 정도다. 가슴둘레는 8.9cm에 골반은 9.2cm 가량. 팔도 유리 대롱보다 더 가늘다.

휴지 심 안에 쏙 들어가고도 남으니 들어가는 것은 문제없다.

=…….=

「…….」

둘 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마음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인체에 해가 없는 식물성 기름을 가져온 유르파는 알몸이 된 환연의 머리며 몸에 꼼꼼히 발라주었다.

들어오기 쉽게 하려는 것도 있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도 있다.

환연은 환인의 피에서 태어난 정령이다. 그리고 환인은 유르파의 체취에 성욕이 끓는다.

삼단 논법을 대입하면 유르파의 보지 안으로 들어간 환연도 흥분할 수 있는 것.

환연은 길고 매끄러운 흑발을 경단 형태로 묶으며 말했다.

「내가 들어가있을 때 너무 힘 주지마.」

=으, 응.=

무릎을 적당히 세우고 편히 누운 유르파의 사타구니 사이로 내려간 환연은 보기 좋게 정리한 하얀 음모가 적당히 치골을 뒤덮은 보지를 살폈다.

보기 흉하거나 징그럽지 않고 깔끔한데다 도톰한 대음순, 아까까지 손대고 있어서인지 살짝 충혈되어 벌어진 틈새로 아몬드 모양의 속살이 드러난다.

소음순도 얇고 가느다랗고 항문으로 이어지는 회음부도 가지런하다.

환인의 지성에 성격을 조금 이으며 약간 동성애 취향이 있는 환연의 눈에 유르파의 보지는 제법…… 아니, 매우 예쁜 보지였다.

뭔가 싱숭생숭한 기분을 억누른 환연은 자기 주먹보다 조금 더 작은 유르파의 음핵을 힐끔거리곤 위에서 내려다보는 유르파에게 말했다.

「그럼 들어간다.」

=숨 안 막히게 조심해.=

「걱정 마.」

그걸로 대화는 끊어졌다. 서로 민망함을 억누르고 있기에 발생한 침묵이었다.

환연은 오히려 그게 낫다고 여기며 두 손으로 유르파의 보지 아랫살을 밑으로 눌렀고, 그와 함께 살짝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는 축축한 분홍색 구멍을 볼 수 있었다.

‘일단 내 머리보다 크니까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겠네.’

분홍색 살덩이로 꽉 닫혀있는 구멍에 먼저 손을 밀어 넣은 환연은 움찔하고 반사적으로 속살이 조여드는 걸 느끼곤 그녀의 음핵을 찰싹찰싹 때렸다.

「야, 조이지 말랬잖아. 힘 빼」

=읏윽. 미, 미안.=

심호흡하는지 질 입구가 살짝 풀리며 뻐끔— 열렸다 살짝 닫히며 틈이 드러난다.

환연은 더 망설이지 않고 두 팔로 유르파의 보지를 벌리며 머리를 안쪽으로 들이밀었다.

입구는 엄청 좁았다. 힘을 주면 늘어났기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기름을 발라 미끄러운 좁은 고무링을 통과하는 느낌.

안은 푹 젖어있었고 자신도 온몸에 오일을 발랐기에 저항은 없다. 환연은 두 팔로 질구를 밀어내듯이 쭈르륵—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가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피부보다 더 연약하면서도 주름이 촘촘하게 잡혀있는 유르파의 분홍색 보지는 정말로 따뜻하면서 촉촉하고 미끈거려 기분이 좋았던 것.

지금까지 몸을 담가왔던 그 어떤 목욕물보다 기분 좋은 따뜻함이라고 할까.

‘환인 나라에는 로션 탕이라는 게 있다던데 이런 느낌일까?’

발에 힘을 줘서 조금 더 유르파의 보지 안으로 몸을 밀어 넣던 환연은 자신의 유방 끝, 그리고 뒷머리에 묶어놓은 경단이 무언가 오돌토돌한 돌기를 드드득 긁으며 지나가는 것을 느꼈고.

[하읏! 아…… 응그읏!]

「우앗! 꺄아!」

갑작스레 위아래가 마구 요동치고 질벽이 사방에서 조여드는 것을 온몸으로 겪었다.

아프지는 않다. 괴롭지도 않지만 뭔가 살짝 답답하면서도 온몸을 꼭꼭 조여주는 느낌이…… 환인은 이런 감각을 자지로 맨날 맛보는 건가?

환연은 뭔가 이상한 것에 눈을 뜰 거 같다는 예감 속에서 퍼뜩 소리쳤다.

「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거기…… 거기 민감한데…… 성감대…….]

「아.」

방금 긁은 게 지스팟이었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사방이 쥐어짜듯 조여들고 있지만 미끈거려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기에 환연은 빠르게 끝마치기 위해 조금 과격하게 발로 보지 입구를 밀어내면서 안으로 파헤쳐 들어간다.

그런데.

‘윽, 들어갈 수록 더 움직이기 힘들어.’

엄청나게 푹신푹신한 물침대를 겹쳐놓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발이나 팔을 짚으면 그 부분이 푹푹 들어간다.

주름이 어찌나 촘촘한지 손을 짚으면 그부분이 움푹 꺼지는 것이다.

[흐에엣, 하으긋……! 여, 연아 살살… 천천히이……!]

「참아! 아니 근데 무슨 보지가 이렇게 깊은 거야?!」

되도록 온몸으로 하중을 분산시킨다는 느낌으로 질 주름을 잡아당기며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렇게 발 끝까지 유르파의 보지 안에 담게 되자 환연도 살짝 흥분해버렸다. 유르파의 촘촘하기 짝이 없는 질주름이 그녀의 젖가슴이며 가랑이 사이를 문지르면서 자극이 전해져왔던 것.

그러던 환연은 발을 뻗다가 발가락 끝에 돌기가 드드득— 밀려나는 걸 느끼곤 ‘망했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흐아아앙~!]

유르파의 보지가 재차 요동치며 자신을 밀어낼 것처럼 격렬하게 요동친다. 위아래로 그녀를 짓누르고 주름진 질벽이 그 주름으로 환연의 팔다리, 젖가슴을 잡고 문지른다.

설상가상으로 질벽에서 애액이 넘쳐날 듯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이쯤 되자 환연도 긴장했다.

자칫 [타이틀: 여자 보지 속에서 애액에 익사한 요정]을 최초 입수할 거라는 위기감이 넘쳐흘렀던 것.

‘말이 되냐!!’

그녀의 보지를 위아래로 밀어서 공간을 확보한 뒤 하읍, 달짝지근한 보지속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 환연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참으리라고 생각하며 기듯이 유르파의 보지 안을 나아갔다.

유르파의 보지가 그런 환연을 찍어 죽일 듯이 조여댄 것은 당연한 일.

그런 압박을 헤쳐 나아가고 있을 때 보지 입구가 완전히 닫혔고, 환연은 또다시 당황했다.

완전히 어두컴컴해져 안쪽이 안 보였던 거다.

「유르파! 입구 좀 열어! 안이 안 보여!」

[헤으윽. 아, 알아써허……!]

헐떡이면서 몸을 일으키는지 보지가 위아래로 출렁인다. 평행이던 보지에 경사가 생기며 입구로 주르륵 미끌어지자 또다시 보지 속살이 사방에서 조여든다.

환장하겠네.

마치 살아있는 딜도가 된 기분에 환연이 투덜거리고 있자니 뒤쪽이 열리며 다시금 분홍색으로 가득한 안쪽이 환연의 눈에 담긴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벌름거린 질벽 덕분에 빛이 유르파의 보지 깊은 곳까지 닿으며 글레이즈드 도넛처럼 도톰하고 매끄럽게 윤기 나는 자궁구를 볼 수 있었다.

저기다. 그런데…….

「망했다. 유르파! 대롱 끝이 안 보여! 안에 다 들어갔나 봐!」

[개, 갠차나하…! 나아, 갠차느니까아……!]

혀가 꼬였는데 괜찮기는!

털썩, 드러누웠는지 보지가 다시 평행이 된다. 환연은 자기 가슴이 유르파의 질 주름에 파묻히고 끼이는 걸 느끼며 자궁 입구까지 포복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도착한 자궁구, 자기 상반신만 한 도톰한 살덩이를 눈으로 살피다 두 팔을 뻗었다.

안 그래도 음란한 유르파다. 포르치오 성감까지 있을 테니까 주변을 괜히 만지면 진짜 질압에 눌려 죽을지도 모른다.

환연은 두 팔을 수줍게 벌어진 구멍, 자기 팔이 겨우 들어갈 만큼 좁은 곳에 조준. 단숨에 밀어 넣었다.

푸욱—

[~~!!!]

「어푸, 우븝! 으그극!」

질이 재차 옥죄이며 자신을 압사시킬 것처럼 조여들었고 보지 속에서 튄 애액이 그녀의 얼굴이며 머리에 쏟아진다.

[@$%#@! ~~!!]

진동을 통해 유르파의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환연은 오히려 자궁구에 더욱 매달리며 자궁 안으로 팔을 뻗어 더듬는다.

아씨. 이거 망했네.

들어간 손끝에 딱딱한 게 안 닿는다. 유리 대롱이 지금의 요동에 안쪽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갔단 뜻이겠지.

환연은 각오를 다지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두 팔로 유르파의 좀 딱딱한 느낌의 자궁구를 벌리며 억지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와중에 그녀의 머릿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유르파 자궁에 들어갔다 나오면 난 유르파 딸이 되는 건가? 윽, 이거 더 조인다.’

자궁경부의 조임은 환연의 생각을 초월했다. 게다가 뭔가 흐르는 소리, 꿀렁이는 소리, 쿵쿵 맥박치는 소리까지.

‘사람의 몸 안에서는 온갖 소리가 다 나네.’

그렇게 뭔가 조금 딱딱하다고 감상을 남길법한 경부를 지나친 환연은 유르파의 자궁경부를 지나 안쪽에 머리를 내밀었을 때, 이 사달을 낸 보조범을 만날 수 있었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고 딱딱한 게 손에 잡혔지만, 이게 대롱이겠지.

‘근데 이거, 단면이 생각 이상으로 날카롭잖아……. 그냥 역으로 빼다간 유르파가 다칠거 같은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환연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 대롱, 자신의 팔보다 조금 더 두꺼운 그것을 잡아당겨 자신의 가슴으로 품었다.

비율로 따지면 내 가슴도 작지 않다. 가슴으로 감싸면 안 다칠꺼야.

‘으씨. 엄청 미끄러워.’

유리 대롱에 애액이 잔뜩 묻어서 그런가 너무 미끄럽다. 그걸 놓치지 않게 한쪽 팔로 꼭 감싼 환연은 잠깐 멍을 때렸다.

어떻게 잡긴 했는데 어떻게 돌아나가지?

지금 자신의 상황은 윗가슴부터 골반까지 유르파의 자궁경부에 꽉 잡힌 모양새.

어떻게 후진하려고 버둥거리고 있자니 유르파의 짐승 같은 괴성이 골전도처럼 연이어 전해져오고 보지는 위아래로 흔들리고.

‘으윽 멀미 나.’

멀미를 꾹 참으며 어떻게 머리까지 자궁경부 쪽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두 다리를 뻗어서 버둥거리며 자궁에 물린 상반신을 빼려 노력하고 있을 때 환연은 다리가 잡히는 느낌에 흠칫 떨면서 대롱을 두 팔로 꼭 끌어안았고.

쮸르르릅—

삽시간에 무언가에 의해 잡아당겨져 유르파의 보지에서 빠져나왔다.

“…….”

「……안녕.」

환인의 손에 한쪽 다리가 잡혀 거꾸로 매달린 환연은 부러진 대롱 끝을 꼭 끌어안은 채로 자신을 묵묵히 바라보는 그에게 멋쩍게 인사했다.

“…….”

말도 하지 않는 데다 저 복잡한 표정을 보자니 킥, 웃음이 흘러나온다. 나름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할까.

“…유르파의 괴성이 들리기에 찾아왔더니 이게 무슨…….”

고개를 돌리자 유르파가 땀투성이가 된 채로 눈물과 침을 흘리며 반쯤 기절한 게 보인다. 자기 몸도 유르파의 애액으로 푹 젖어버린 상태.

「뭐긴.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너 때문인데.」

환연은 그의 손에서 풀려나 몸을 띄우며 미끌미끌한 6cm 남짓 길이의 유리 대롱을 보여주면서 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랬군. 고생했다.”

「색다른 경험이었어. 어휴, 이런 몰골이 될 정도로 소릴 질러댔으니까 환인이 찾아오는 거지. 유르파 엄마. 정신 차려.」

“……엄마?”

「엄마 자궁에서 나왔으니까 엄마 딸이지 뭐.」

“…………….”

환인의 그 진귀한 표정만으로도 환연은 그 고생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유르파의 애액에 푹 젖은 채로 킥킥 웃었다.

「유르파 엄마.」

“…….”

=연아. 그, 그렇게 부르는 건 좀…….=

「왜? 엄마 배 아파 낳은 딸인데 나 외면하는 거야? 환인 아빠도 뭐라고 말 좀 해봐.」

“내가 왜 네 아빠냐.”

「어어! 내 몸에 아빠의 피가 절반이 흐르고 엄마의 배에서 나왔는데 그러기야?! 와, 이실리테! 안느! 백려강! 내 말 좀……! 읍, 으브븝.」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 그만해라.”

환인의 진귀한 표정을 볼 수 있는 이 재미있는걸 그만둘 수야 있나.

그래도 자주 하면 면역이 생길 테니까 가끔가다 한 번씩 놀려야지.

환연은 킥킥 웃으면서 환인의 코트 안주머니로 기어들어 갔다.

들어가면서 본 유르파의 얼굴은 토마토처럼 빨개져 있었고, 환인과 알게 모르게 좋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놀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유르파와 환연의 수난.

end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연이가 율이 언니한테 엄마라고 부르는 거야?=

=환인 님 부탁으로 뭔가 연구하려고 난자를 채취하려다가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환연이 언니 거기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세상에.=

=틀린 말은 아니네. 환연은 주인님의 피로 태어났고 유리 언니 배 속에서 나왔으니까.=

=……진심이야?=

=……진심이세요?=

=농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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