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44화 (444/813)

〈 444화 〉 438 호반 도시 알소프

* * *

우당탕탕, 와장창! 콰다당!

무의식중에 상을 걷어차면서 도망치려는 사람들로 소란이 벌어진다.

이대로 두면 모두 도망쳐버릴 상황. 이실리테는 환인의 지시를 떠올리며다중 검기를 소환, 검기를 밟으며 날아올라 대청에서 나가는 문을 틀어막았다.

=비켜! 비켜어엇!=

=비켜요! 우릴 내보내줘요!!=

이어서 겁에 질려 악을 쓰는 사람들에게 강한 투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진정하세요.=

=……!=

환인에 비하면 손색이 있지만, 일반인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투기와 거대한 빛의 대검 두 자루의 형태에 위압 당한 사람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주춤주춤 물러선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세요. 주인님이 계신 이상, 혼재는 여러분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요.=

=그, 그걸 어떻게 믿으란 거요!=

이실리테는 그리 말한 사람에게 레드릭 얼터를 들이밀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들을 죽일지도 모르는 영주의 말은 들으면서, 성자이신 주인님의 말씀은 못 믿는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대답했다간 목이 달아 날듯한 살기에 사람들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슬금슬금, 자기 자리로 되돌아간다.

대청 입구에서 일어난 소란을 바라보던 환인은 르니의 목소리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러운 여덟 혼재의 등장에 예쁜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 르니가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는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서, 성자님. 이게 어떻게…… 무슨 짓을…….=

“이들이 카드람 영주에게 팽당한 들개 전사단의 영혼들입니다. 교토사주구팽, 이용만 당하다 솥에 삶긴 불쌍한 영혼들이지요. 그로 인해 분노하여 타락하기 직전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고사성어가 어떻게 번역되어 전달될지 환인은 알 수 없지만, 대충 그 뜻은 전해졌는지 르니의 하얀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다.

“이거면 제가 영혼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는 설명이 되겠습니까.”

영혼사가 가짜 영혼까지 마련해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더욱이 분노로 혼재가 되기 직전의 영혼 여덟을 어떻게 구할까.

환인은 자신의 이야기에 수긍하는 사람들을 한차례 돌아본 뒤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카드람은 이 여자들의 가족과 아들딸을 인질로 붙잡아 온갖 더러운 짓을 시켜왔습니다.”

환인의 입에서 그날, 프라버 북쪽 절벽에서 일어났던 사정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정이 밝혀질수록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이없음이 역력해져갔다.

그토록 몸 바쳐 일해온 사냥개를 솥단지에 삶아버렸다니. 그 말은 자신들도 그 꼴이 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아니, 그러면 영주님은 정말…로, 성자님을 해치려고 했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 지하 감옥으로 모시려고 했다는 거잖아.=

=자넨 지금까지 뭘 들었나. 저 전송 두루마리는 지하 감옥이 아니라 알류겔 호수 심해와 이어져 있다잖나! 성자님을 해하려 했다는 거야!=

=지하 감옥과 이어져 있다 해도 문제일세! 성자님을 감옥에 가두려 하다니, 영주님께서는 노망이라도 나신 게인가!?=

일부는 배와 사과를 차례대로 안면에 얻어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카드람에게 노골적인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성자를 죽이려 들다니, 그것도 영식을 피하고자 알류겔 호수, 생명의 바다를 죽이려 하면서까지!

사람들의 성토에 환인은 폭탄을 더 깠다.

“그리고 카드람은…… 이 모든 일을 오해라는 단어로 포장하기 위해 저 여자들의 가족마저 살해해 묻었다는 정황이 나왔습니다. 게다가 자기 보신을 위해 영도와 땅신 교단까지 이용하려 들었다는 게 지금 밝혀졌군요.”

=…….=

=…….=

“그의 악행은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카드람은 프라버를 집어삼키기 위해 정혼자였던 여자를 간악한 흉계로 자살까지 사주했습니다. 네가 살아있다면 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죽거나 크게 다칠 거라는 협박을 하면서 말입니다.”

=설마…….=

=그, 그 사람이 설마?=

르니와 사람들의 시선이 푸른 날개 한 쌍으로 나신을 가린 절세 미녀에게 향했다.

“백려강, 프라버의 영주, 백중익의 차녀입니다. 그녀가 성불할 수 있도록 제가 책임지고 데리고 다니는 중이지요.”

=세상에…….=

=아…….=

=악, 악은 프라버가 아니고 우리…… 알소프였나……?=

말을 잇지 못하는 르니와 넋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리는 참석객들.

“실제로 중간까지는 카드람 영주의 의도대로 되었습니다. 려강은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첨탑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프라버 영주는 수많은 도시와 마을의 호족들에게 손가락질받았고 그 탓에 광증까지 앓으며 피폐해졌었습니다. 도시는 카드람 영주의 공작에 반쯤 망하기 직전까지 내몰렸지요.”

「흐으으으…….」

「카아아드으으라아아암…….」

「아아아…….」

팔다리가 완전히 검게 물든 영혼들. 알몸의 여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적색 아우라를 강하게 내뿜는다.

그 귀곡성에 사람들이 신음을 숨기며 주춤거릴 때 르니가 물었다.

=그, 그러면 그 영혼들은……?=

“그녀들은 저에게 애원했습니다. 자신들은 영혼사를 죽이려 드는 대죄를 저질렀다. 나락에 떨어지는 것은 죄업이니 감내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을 이리 만들고, 인질로 잡고 있던 가족마저 해친 카드람만큼은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아, 아버님!?=

그때 카드람의 장남, 키드리스가 전략전술가와 녹해 기사단장, 청해 술법단장, 그리고 기사와 술법사들을 이끌고 대청 옆문을 통해 나타났다.

숫자만 족히 일흔이며 전원 직업자인 자들. 명백하게 대기 중이다가 연락을 받아 병력을 이끌고 도착한 모양새.

누가 보아도 만약의 경우가 생긴다면 무력을 동원해 해결하려 한 듯한 모습이 최후의 기폭제가 되었다.

「아… 아아…….」

「하아아……!」

「「「꺄아아아아아악—!!!!!」」」

부들부들 떨던 들개 전사단의 여자 영혼들은 심장이 서늘해지는 귀곡성과 함께 완전히 흑화, 시커먼 화염이 되어 그들을 덮쳤다.

일부는 카드람에게, 일부는 녹해 기사단장과 청해 술법단장에게, 일부는 모습을 드러낸 기사들에게.

끄아아악!?

크아아­!

쿠광, 채재쟁!

촤악! 콰광, 쿠구구궁—!

꺄아아악—!

뻐버벙! 쾅!

쩌어엉­!!

여덟 영혼에게 씌거나 지배당하거나 홀리거나.

최소 4급의 직업자들이 벌이는 상잔과 전투에 수많은 대청의 기둥이 베여 쓰러지고 무너진다.

쿠궁, 쿵. 쿠구궁…….

르니는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표정으로 환인에게 달려와 그의 팔을 잡았다.

=서, 성자님! 저건, 저것은!=

“벌을 받겠다고 다짐한 그녀들의 사정과 애원에 저는 한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끄아아아악……!!=

=캬까하하핰히히힠!!=

“그게 영혼사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

사람이 사람임을 포기하고 사람을 먹는 광경.

누군가를 먹으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 먹히는 광경.

누군가에게 죽임당하면서 누군가를 죽이는 광경.

담담한 얼굴로 지옥이 지상에 강림한 것이 아닐까 싶은 장소를 응시하는 환인의 모습에 르니는 오장육부가 옥죄이는 느낌을 받았다.

어, 어떻게 사람이…… 저 장면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지…?

=서, 성자님.=

=녹색 성자님…!=

환인은 어느새 자신에게 다가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삽살개 머리의 인견족 남자와 종을 알 수 없는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이, 일단 나가십시다! 내력기둥이 벌써 여섯이나 부서졌습니다. 잠시 후면 서까래가 내려앉을 겝니다!=

=어서, 어서 나가셔요!=

영도의 영혼 심문관들. 그들의 극공경어린 태도에 환인은 눈썹을 지그시 모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꺄아아핰핰하하하아앗—……!!

수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청의 앞마당에는 연회 참석자들이 모두 모여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잠깐만 보았을 뿐인데도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광경. 평생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운 광경이 그들의 심상에 눌어붙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환인과 그의 여자들, 그리고 땅신 교단의 사제들과 영도의 영혼사들까지 나왔을 때.

쿵, 쿠구궁… 쿠구구구구구…….

대청의 한쪽이 움푹 내려앉더니 이어서 굉음과 진동이 섞인 충격파와 함께 연쇄적으로 지붕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치솟았고 높이 20m, 폭 50m가 넘는 궐이 주저앉으며 온갖 파편이 날아든다.

그것도 길지 않았다.

고작 몇 초가 지나자 진동이 멈추었고, 땅신 교단의 사제들과 일부 멀쩡한 참석객이 펼친 바람과 땅의 보호막을 두들기던 파편도 잠시 후 잦아들었다.

휘이이이이—

유르파가 만들어낸 바람의 회오리가 자욱한 먼지를 하늘 높이 올려보낸다.

=…….=

=…….=

=…….=

그리고 잠시 후 먼지가 모두 거두어졌을 때, 그들의 앞에는 높이만 몇 미터나 되는 궐의 잔해가 드러났다.

사람들은 아연한 안색으로 그 잔해를 바라보았다.

저 아래에는…… 알소프의 영주와 영주의 장남, 거기다 알소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력이 모두 있었는데…….

털썩, 풀썩.

몇몇 심약한 참석객들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영주와 차기 영주가 죽었다. 알소프 최대 전력도 매몰되어버렸다. 대청을 나오기 전에 벌어지던 것을 생각하면 살아있는 자는 없겠지.

=알소프는…… 끝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알소프는 수백 년의 역사를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지.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진한 체념의 분위기가 번져나간다.

그때였다.

잔해의 틈으로 시커먼 기운이 흡사 시체를 태운 연기처럼 뭉글거리면서 피어올라 뭉쳐지기 시작하니 긴장감이 고조된다.

삽시간에 형태를 잡는 여덟의…… 검은 영혼.

그 영혼들은 깔깔깔깔, 한 번 들으면 평생 잊기 어려울 것 같은 처절한 귀곡성과 함께 흐늘거리다가 지옥의 악령처럼 기어서 환인의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났을 때, 뭉쳐진 검은 기운의 일부가 걷어지더니 여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 부분 외에는 인간의 형상을 잃어버린 듯 끔찍하기 없는 모습.

악령화한 영혼 여덟은 모두 약간의 이성은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검은 눈물을 흘리며 환인에게 감사를 올렸다.

「성성성자자자니니니님님님님…….」

「가가감감감사사사…….」

「보복복수수수를를를를…….」

“만족하셨습니까.”

「「「…….」」」

환인의 질문에 울면서 웃는 얼굴로 검은 눈물을 흘리는 여덟 영혼들.

“…….”

환인은 말없이 손을 뻗어 그녀들을 영혼 구슬화시켰다.

거부 반응 없이 여덟의 검은 영혼 덩어리가 천천히 줄어들더니 동그란 형태를 갖춰간다.

자신에게 살해당해 붉게 변한 구슬도, 능력이 성장하며 커진 회백색 구슬도 아니다.

햇빛 한 점 반사하지 않는 시커먼 칠흑색의 구슬 여덟 개.

왠지 모르게 강력한 무기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한 환인은 그녀들의 영혼 구슬을 품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본 영도의 영혼 심문관, 아지에라와 흘로드 두 사람은 급기야 혼절할 것처럼 두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눈을 감고 정신없이 성호를 그렸다.

쿠구구궁…….

드드드드드드드드…….

=……이건 무슨 진동이지?=

=지진……인가? 평소 지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인데…….=

=으으. 이제는 싫어…. 더는…… 더 이상은 싫어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는 지반에 사람들이 극심한 불안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방금 겪은 일만 해도 평생 잊기 어려운 트라우마가 되기 충분했는데……!

쿵, 쿠궁. 쿠구궁…….

묵직한 진동이 연이어 발밑을 치고 지나간다. 그 감각에 안느가 환인의 옆에서 속삭였다.

=도령. 이거 평범한 지진이 아니야.=

“그래. 린덴의 개미굴이 무너질 때와 비슷한 파장이군.”

그 순간이었다.

담장이 낮은 덕분에 훤히 보이는 언덕 아래 도시, 그 한복판이 갑자기 움푹 주저앉더니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으아악­

아아아악­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마치 파도에 지반이 깎여나가다 무너지는 것처럼 도시 일부가땅속으로 사라져간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거대한 싱크홀이었다.

느닷없는 변괴에 사람들의 가슴 속에 서늘한 두려움이 차오르기 시작할 때, 구멍에서 좁쌀만큼이나 작은 것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한다.

거리가 멀어 좁쌀처럼 보일 뿐이지 가까이서 본다면 대형 마차 사이즈일테지.

=미, 미궁이…… 가라앉았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미궁의 역류다. 그것도 다섯 단계 중 최악의 상황인 미궁 폭발.

그리 중얼거리는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던 환인은 자신의 팔을 누군가 덥썩 잡는 느낌에 그쪽을 돌아보았다.

=자, 자기. 저기… 저기 호수 쪽을 봐……!=

덜덜 떨리는 목소리와 손길. 환인은 유르파가 가리키는 곳을 보곤 미간을 더욱 강하게 좁혔다.

알류겔 호수의 에메랄드빛 수평선에 거대한 해일이 일고 있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