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 185 성도 파르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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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은 니오네브레스로 트립한 이후 선조, 선대가 지식을 후대에 물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절절히 체감했다.
지구였다면 인터넷에 접속한 뒤 클릭 몇 번과 타이핑 몇 번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니오네브레스에서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사람을 통해 얻어야하는 게 태반이었기 때문.
발품을 파는 것은 물론이고 지식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하며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그마저도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지식의 경우다.
환인의 직업과 기술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체 실험이 동반된다.
실험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녹색 하급 정령을 강령한 환인은 1차적으로 정령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음을 파악했고, 2차적으로 의식과 의사, 행동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는 걸 파악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 두 가지를 확인한 환인은 자신의 몸 상태에 신경을 돌렸다.
강령을 펼친 순간 심박수는 분당 200회를 뛰어넘었다. 심장이 일반인의 2배 이상 고동치며 뜨거운 혈액을 뿜어냈고 체온도 덩달아 크게 올랐다.
환인은 강령을 펼친 순간 알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의 영혼술이 성장하지 않았다면 칼날 멧돼지 떼처럼 과부하가 심각하게 걸려 큰 후유증을 앓았을 거라고.
“후우우우욱…….”
길게 숨을 내뱉자 한겨울 입김처럼 하얀 숨결이 넓게 퍼져나간다.
=주, 주인님?=
=도령? 괜찮아?=
“괜찮다.”
대답하며 환인은 사라져가는 입김을 응시했다.
말이 안 되는데. 주변 온도는 이슬점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어째서 입김이 만들어지는 걸까.
혹시 입김이 아니라 증기인가? 하지만 체온이 올라 숨결이 증기가 되려면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야 하는 거지?
환인은 이 이상한 현상에 의문을 품었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기에 웃통을 벗으며 이실리테에게 말했다.
“이실리테. 냉수가 필요하다. 많이.”
=네!=
계속 체온이 오르고 있다. 머리에 열이 올라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잘은 모르지만, 체온이 38도는 넘지 않았을까.
=여기 물이요!=
잠시 후 십여 리터는 넘을법한 양동이에 물을 담아온 이실리테에게 양동이를 넘겨받은 환인은 그대로 물을 뒤집어썼다.
촤아악!
한여름의 계곡물처럼 시원한 물이 온몸을 적시자 폭주 기관차처럼 상승하던 체온이 주춤한다.
“좀 더 가져와다오.”
=네!=
이실리테뿐만 아니라 안느도 양동이를 들고 가서 물을 퍼와 쏟아부어 준다. 그렇게 여러 번 냉수를 끼얹고 나자 거침없이 오르던 체온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좀 낫군.’
방금 냉수 세례가 일종의 각성 작용이 된 걸까.
체온이 적당한 수준으로 고정되더니 본격적으로 신체가 강령의 강화 효과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환인은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물러서라고 한 뒤 가볍게 몸을 푼 다음 잼민이시절 조금 배워본 태권도를 조금 펼쳐본다.
쉿 쉬쉭! 웅!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1초에 5번의 잽과 1번의 스트레이트가 이어진다. 발차기의 경우는 바람을 찢다 못해 바지자락이 찢어질 것처럼 펄럭였다.
프로 복서의 잽 속도는 0.25초 정도로 알려져 있다. 간단한 산술로 계산해보아도 프로 복서의 속도를 1.5배가량 웃도는 수준.
더욱이 주먹질과 발차기로 인해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없다.
허공에 주먹질하면 할수록 어깨와 팔에 부하가 가해지는 법인데 바람이 찢어질 정도로 주먹을 내질러봐도 어깨는 편안하다.
‘와아…….’
안느와 이실리테는 환인의 스텝과 주먹질의 속도에 놀라기보다는 웃통을 벗은 환인의 조각 같은 몸매에 얼굴을 붉혔다.
몸에 남은 물기가 높은 체온으로 증발하며 아지랑이를 피워올린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적당히 달아오른 마른 근육 사이로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으흠! 도령, 신체 능력 점검이 필요한 거지? 내가 도와줄게.=
속된 말로 발정할 것 같아서 헛기침하며 나서는 안느였다.
“음.”
짝!
안느가 내민 손바닥에 주먹을 날리자 맞는 순간 손을 적당히 털어내며 흘려낸 안느가 감탄했다.
=대단한데? 이 정도면 4급 엽사 수준의 근력이야.=
신체 강화 쪽 직업자가 아님에도 그만한 신체 능력을 갖추게 해주다니. 도령의 판단력과 기술을 생각해본다면 이건 4급 엽사가 아니라 6급 전사나 투사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가 아닐까.
환인은 안느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사의 등급 분류로는 하급이지만, 영혼 등급으로 분류하자면 중급 수준이군.’
근력과 내구력, 순발력 등이 골고루 2배가량 늘었다. 서쪽 쌍둥이산의 주인인 칼날 멧돼지의 영혼을 강령했을 때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
하지만…….
“사람의 혼으로 축복을 내리는 게 신체 강화 효과 면에서는 더 뛰어나.”
=어, 그래?=
감옥 미궁에서 엽사 여자의 몸으로 진행한 실험에서도 대충 그 정도의 효과였음을 읽었다.
“마에스티그 촌락에서 소녀의 영혼에게 부탁해 진행한 테스트에서는 이실리테의 신체 능력이 3배 가까이 늘었다. 2배면 낮은 편이지.”
동물 영혼으로 따지자면 중상급이나 상급 정도일까. 아무 단련하지 않은 어린 아이의 혼도 그 정도 힘을 냈으니 사람의 혼은 개체별 차이가 없는 거겠지.
그러나 각각 장단점이 있다.
효과만 보면 정령이나 동물보다 사람의 영혼이 압도적인 강화 효과를 보이지만…….
‘수급이 어렵다. 반대로 짐승이나 정령은 쉽게 얻을 수 있고.’
아무래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정령을 영혼 구슬로 만들어 사용해야 할 듯 하다.
그렇게 속으로 결정을 내린 환인은 후우, 다시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체온이 높아지니 조금 힘들군.’
체온 조절 마도구가 있긴 하지만 이건 체온을 올려 신체 능력이 증가하는 식이니 함부로 쓸 수 없는 방법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체력을 기르는 건데, 2배로도 몸이 이런다면 3배나 4배가 될 경우에는 체력을 기르더라도 몸이 못 버틸 거다.
이실리테는 3배에도 멀쩡했으니 그 정도로 육체를 강화시켜주는 마도기를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시원한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척추를 기준으로 좌우로 흐르던 훈기와 한기가 징 하는 느낌을 일으켰다.
뜬금없는 현상에 환인이 흠칫 놀라는 순간 돌풍이 일어 환인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위이이잉
=어?=
=앗……!=
꾸우?
선명한 녹색 돌풍이 환인을 휘감자 이실리테와 안느는 물론이고 근처에서 구경하던 비상도 깜짝 놀랐다. 저건 마력 풍이잖아. 갑자기 마력 풍이 왜 일어난 거지?
쿠에~, 쿠웃!
친구가 나랑 똑같은 힘을 썼어! 비상이 무척 좋아하며 환인에게 들러붙어 몸을 비비적거리고 난리를 친다.
그사이 녹색 바람은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깐. 비상, 엉겨 붙지 말고 좀… 기다려. 앉아!”
쿠엣!
정신없이 들러붙는 비상에게 앉으라고 명령하자 재빨리 배를 깔고 앉아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비상.
바람을 다스리는 녹색 쿠에여서 친근감을 더 강하게 느끼는 거라고 이해한 환인은 흥분한 비상을 다독여준 뒤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환인의 머릿속에 류히가 이야기해주었던 천둥소리와 새카맣게 타버린 대검 호브의 시체가 스쳐 지나갔다.
“…….”
자연스럽게 이 힘을 어떻게 다루는지 이해한 환인은 원기 흡수와 방출을 쓸 때처럼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척추를 따라 흐르는 훈기와 한기가 마치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몸 안을 흐르기 시작하고, 그때쯤에 손바닥을 펼치자 초록빛이 손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실리테도, 안느와 비상도 그런 환인의 모습에 눈을 살짝 뜬 순간.
“흡!”
부아앙!
주먹을 쥐고 강하게 허공을 치자 녹색의 돌개바람이 쏟아졌다.
회오리 모양의 돌개바람은 그대로 환인이 내지른 주먹의 방향, 정원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아름드리나무를 후려친다.
파사사사삭!
=……!=
=와아.=
큐삣!
수령이 30년은 넘었을 나무가 녹색 이파리를 마구 날리며 흔들리는 모습에 비상은 완전 신났고 두 여자는 경악했다.
=…….=
=…….=
이윽고 서로를 바라본 두 여자는 이내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도령/주인님이 보여주는 건 언제나 비상식의 영역이었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생각하려 하던 두 사람은 이어서 들려온 환인의 이야기에 깨끗하게 날아가 버렸다.
“현재로서는 만족스럽지 않군.”
=어디가?! 저 정도면 3급 풍술사 수준이거든?!=
=사과 선물로 받은 천칭을 쓰시면 더 강해지실 텐데…….=
“하지만 영기의 소모가 적지 않다. 방금 정도라면 10번 쓰면 내 생명이 위험할 정도지. 위력이야 바람을 압축해서 쏘면…….”
퓻
말과 함께 환인의 검지 끝에서 발사된 녹색 화살이 벽돌을 쌓아 만든 담벼락에 작은 구멍을 낸다.
“……충분하다지만 이 정도는 영혼 화살로도 낼 수 있다. 그리고 영혼 화살은 영기의 소모 없이 영혼 구슬만 있다면 몇 배나 더 많이 쏠 수 있지. 무엇보다 이 바람을 다루는 힘은 방금 녹색 하급 정령을 강령한 덕분이다. 강령하지 않으면 못쓴다.”
설명과 함께 환인이 보여준 속성력 제어와 조작 실력에 입을 딱 벌렸던 안느는 한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며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도령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머리가 아파…….=
땅신 교단의 추기경으로 있는 르아웬도 직업자로 각성한 뒤에 속성력 조작을 익히는데 반년이 걸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냥 그러려니 해. 주인님을 이해하는 건 평범한 사람한테는 어려운 일이니까.=
=…….=
환인의 대단함이 마치 자신의 대단함인 양 조금 우쭐해 하는 이실리테를 흘겨본 안느는 팔짱을 꼈……다가 팔뚝에 닿는 물컹한 감촉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나한테 가슴이 생기다니.
아무튼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응. 그 정도 제약이면 큰 의미는 안 되겠네.=
“아주 못 쓸 것은 아니다. 주변에 정령이나 영혼의 수가 적을 때면 임시로 쓴다는 방식도 있으니.”
=영기를 많이 쓴다며?=
“소비한 영기는 섹스로 보충할 수 있다.”
환인의 태연한 대꾸에 오히려 이실리테와 안느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환인은 방금의 소란에 ‘무슨 일이지?’하며 슬금슬금 모여드는 색색의 하급 정령을 본 환인은 차갑게 웃었다.
알아서 다가와주는군.
모여든 하급 정령을 영혼 구슬로 바꾸어 몇 시간에 걸쳐 이실리테, 비상, 안느에게 강령을 걸면서 하급 정령 강령을 테스트했다.
우선 강령 지속 시간은 96분이다.
신체 강화 수준은 2배인데, 정령 강령 역시 피험자의 신체 능력에 비례해서 늘어난다.
신체의 과부하, 체온의 급격한 상승은 환인에게만 나타나는 부작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2배 이상의 신체 강화는 일반인이나 술사 계통 직업자는 버티지 못한다.
이실리테나 안느는 강령을 받아도 아주 살짝 몸에 열이 오르는 수준으로 끝난 것.
=이거 몸이 적당히 따뜻해지는 게 좋네. 그치?=
=응. 몸이 확 풀리는 느낌이야. 바로 격렬한 훈련을 해도 근육이 안 다치겠어.=
또 피험자는 강령 받은 정령의 속성이 어떻든 간에 오직 신체 강화 효과만 받는다. 속성 정령의 속성술은 환인만 쓸 수 있다.
정령 강령을 받는다고 해서 사람 영혼처럼 육체의 제어권을 빼앗긴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강령 지속 시간이 끝나면 정령들은 아주 재미있었다며 까르르 웃다가 모습을 감춘다.
「까르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재미있어하며 스르륵 투명해지는 정령을 본 안느가 후우, 열기 섞인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정령계로 돌아가나 보네.=
“음.”
감히 날 이용했겠다?! 하고 덤벼들 경우를 대비해 대응책을 마련해두었는데 그걸 쓸 일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는 환인이었다.
그후 하급 정령의 강령 테스트를 끝마친 환인은 비상과 함께 도시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하급 정령을 납치하다시피 데려왔다.
하급 정령의 숫자는 상당히 적었다.
열 마리의 정령이 있다면 그중 하급 정령은 둘 정도.
1시간 동안 돌아다녔지만, 손에 넣은 하급 정령의 영혼 구슬은 27개. 하는 수 없이 21개는 최하급으로 채웠다.
다행인 점은 정령의 등급에 따른 유지 시간의 차등이 없다는 걸까.
아무튼, 해방된 작은 빛덩어리 정령들은 잠깐 혼란스러운 듯 이리저리 헤매다가 곧 자기들이 좋아하는 장소를 찾아 떠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영혼 구슬 핸들링을 하자 최하급 정령들과 마찬가지로 신나고 재미있어하는 웃음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꺄하하하…….」
「…꺄앙~…….」
「꺄르르…….」
‘문제 생길 일은 없겠지.’
정원으로 돌아와 그늘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환인은 한 건 해결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니오네브레스에서 정보 수집은 귀찮고 성가시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싫지 않은 것은 이런 성취감과 충족감 때문일 것이다.
챙 카강, 카드득!
텅! 퍽, 파바박
환인은 정원 한가운데서 땀을 흘리며 대련 중인 이실리테와 안느를 바라보았다.
강령을 받은 두 명은 이런 경험을 쉽게 얻는 게 아니라는 듯 맹렬하게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
그런 두 명의 옷차림이 환인의 눈에 들어온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반바지에 반소매 셔츠 차림의 안느.
안느의 끈나시와 비슷한 옷에 적당히 하늘하늘한 스커트를 입은 이실리테.
그중 이실리테의 차림이 꽤…… 선정적이다.
끈나시가 땀에 젖어 브래지어의 색이 보일 정도로 비쳐보이는 것과, 격한 동작에 스커트가 펄럭이며 얼핏얼핏 치마 아래가 훤히 드러나고 있었던 것.
그뿐만이 아니다.
땀으로 살짝 젖은 하얀 목덜미. 가슴골에 고여있다가 격한 동작에 튀어 나가는 땀방울. 스커트가 팔랑일 때마다 드러나는 자주색 팬티와 그 팬티를 잡아먹은 토실토실한 엉덩이.
몸에 힘을 주느라 생기는 허벅지와 종아리의 굴곡과 힘을 쓰는듯한 살짝 찡그린 여성의 아름다운 얼굴이 마초적 시점의 페티시를 자극한다.
안느는…… 몇 주 뒤를 기대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어느샌가 가까이 다가온 비상의 머리를 쓰다듬던 환인은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니오네브레스도 그렇게 살기 나쁜 곳은 아니야.’
라고.
깨끗한 공기. 맑은 물. 맛있는 음식과 질 좋은 술. 적당히 순박하고 순진한 사람들.
중세 이전 생활상을 생각해보면 매우 더럽고 악취나는 실상을 생각할텐데, 니오네브레스의 생활상은 더럽지 않았다.
상하수도 관리와 배설물의 청결 유지를 알고 보니 슬라임slime과 흡사한 부정형 액체 괴물이 도맡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집마다 두 세 마리의 주먹만 한 액체 괴물을 키우는데 각종 생활 오수를 그 액체 괴물이 깨끗하게 분해하고 먹어 치워버린다.
오래 키운 액체 괴물이 비대해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럴 땐 액체 괴물의 핵을 추출, 살점도 일부 자른 뒤에 추출한 핵을 작게 조각내서 넣으면 작은 액체 괴물이 된다.
촌락, 마을, 도시의 거리가 전부 깨끗한 이유가 액체 괴물에게 있었던 것.
아무튼 중세 시대상에 걸맞지 않은 청결한 도시도 그렇고 지구인 관점에서 비상식과 비과학의 산물인 이능력의 존재 덕분에 환인은 니오네브레스의 삶이 퍽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
물론 이것은 가진 자의 눈높이에서 보았기에 가능한 생각임을 환인도 자각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평범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인 것도 말이다.
‘보통은 대비 없이 괴물을 처음 만났을 때 사망하겠지. 괴물에게서 살아남더라도 생존 지식이 없어 객사할 테고. 우연히 살아남더라도 이계인의 악의에 이용만 당하다 살해당할 수도 있다.’
이 모든 확률을 뚫고 살아남아 평온하고 쾌적한 삶을 손에 넣을 가능성은 못 해도 한 자릿수 퍼센트에 육박할 것이다.
그래서 환인은 힘을 쌓는 데 노력하고 있고, 현재까지는 순조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자기 보호를 위한 수단은 확보한 셈이니까.
=으하~ 덥다 더워. 이슬아, 물 남은거 있어?=
=거기……. 수돗가…….=
강령 지속 시간이 끝났는지 땀범벅이 된 안느와 이실리테가 떠들며 다가온다.
안느는 아직 선머슴이나 다름없이 행동하지만, 이실리테는 환인에게 땀투성이 모습을 보여주기 부끄러운지 수줍어하며 몸을 돌린 채 수건으로 몸을 닦는다.
촤아악!
=푸아아아!=
“…….”
양동이에 물을 담아 호쾌하게 머리부터 쏟아내는 안느. 그리고 얌전한 몸가짐으로 수건을 찬물에 적셔 몸을 닦는 이실리테.
외모만큼이나 행동도 극과 극이다.
환인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후에는 위상석 가공 의뢰를 하러 갈 생각이다.”
=주황색 위상석을 마도기로 만들게?=
“그래.”
=흠. 6급이면 금화 200매는 나올 텐데 그냥 팔고 2급짜리 원기 회복 마도구를 사는 게 낫지 않아? 남는 돈은 도령의 호신용 마도기를 장만하고. 그만한 회복량의 위상석을 오브나 완드로 만드는 건 낭비야.=
위상석을 가공해 만든 마도기는 개인에게 귀속되는 건가.
환인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내게 활용할 방도가 있으니까.”
이제 안느도 이실리테에게 배웠는지 ‘도령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하고 넘긴다.
=알았어. 그럼 남부로 갈거지? 갈 때 우리도 같이 갈게. 입을 옷이랑 속옷 좀 사게.=
“잘 생각했다. 너도 이제 여성스러운 옷을 장만할 때가 됐…….”
=내꺼 말고! 이슬이가 입을 거야, 이슬이가!=
빨개진 얼굴로 소리치는 안느를 보며 피식 웃는 환인과 이실리테였다.
이후 환인은 샤라난의 마도구점을 방문했다.
샤라난과 파트너십을 맺은 비술사가 마도기 제작 의뢰도 받는지 모르지만, 안면도 없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보다 그래도 떡정이 있는 여자에게 부탁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점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거라면 잘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굉장한 실력의 마도 제작자가 며칠 전에 도시를 방문했거든요.=
환인을 보자마자 떠나갔던 남자친구가 돌아온 것처럼 밝게 웃는 샤라난의 모습에 안느가 눈을 새초롬하게 뜨며 이실리테의 귀에 속삭였다.
=저 여자도 도령한테 단단히 홀린 거 같지 않아?=
=…….=
이실리테는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하라는 뜻에서 안느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주인님 귀가 얼마나 좋은데 떠드는 거야? 나중에 따로 주의를 줘야겠네.
“그만한 인물과 인맥을 맺고 있으실 줄이야. 역시 샤라난 씨를 찾길 잘한 것 같습니다.”
=별말씀을……. 그 제작자는 제게 있어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사람이거든요. 마침 2층에서 쉬고 있으니까 불러드릴게요. 동생과 대화를 나누어보세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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