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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107화 (107/813)

〈 107화 〉 104 빛이 닿지 않는 미궁

* * *

이실리테의 작고 귀여운 흉계를 눈치챘지만, 환인은 끼어들지 않고 예정과 다르게 6층 지도의 중간쯤에 있는 자 모양의 통로로 들어섰다.

당초 계획은 자신이 눈에 보이는 이형종을 모두 정리하며 최대한 빠르게 10층까지 내려가는 것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이미 8층에 도착했을 시간이고 파인 펑거스 로머 대신 보존식량으로 점심을 해결했을 테지만…….

‘애초에 아가씨 관광이고 10일을 예정했으니 상관없겠지.’

오는 길에 3층에서 인간 부스러기들을 마주친 것도 있었고 조우한 이형종을 백려강과 레심이 상대하게 두다 보니 시간이 더 걸렸지만, 환인은 개의치 않았다. 레심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고.

“여기서 쉬겠습니다.”

5시 방향의 코너 안쪽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으니 거대한 짐가방과 펑거스 로머를 내려놓은 이실리테가 레심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간이용 조리 마도구 있죠? 그거 주세요.=

=음, 저기…… 이실리테 양?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형종을 먹는 건 좀…….=

얼굴이 굳은 레심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이실리테를 제지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서요~.=

=이실리테 양. 잠시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십시오. 아무리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사람으로서 입에 대는 것이 허락되는게 있고 안되는게…….=

=걱정 마세요. 맛있게 조리해드릴 테니까요. 이래 봬도 하녀 양성기술원에서 요리 시험 만점도 받았거든요.=

=그, 그거 기대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빨리요.=

=…….=

숙녀의 부탁은 거절하는 게 아니라고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은 레심은 속으로 ‘이실리테 양은 숙녀가 아니다. 숙녀가 아니야!’ 라고 부르짖었지만, 몸은 솔직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영애들보다 청초하게 생겼고(백려강 제외) 말투도 상냥하며(백려강 제외) 행동도 순수한 이실리테를 누구보다 어엿한 숙녀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공간 주머니에서 간이 열판?? 마도구를 꺼내준 레심은 풀죽은 강아지처럼 귀를 뒤로 눕힌 채 백려강의 울상을 마주했다.

‘그걸 주면 어떡해!’

‘너도 봤잖아. 열판 마도구 달라고 순수하게 웃는 거.’

‘그렇다고 이형종을 요리할 거라는데……!’

백려강과 레심이 눈빛으로 다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실리테는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사각형 열기판을 조작해 불을 피우고 가방에서 기다란 요리용 회칼을 꺼낸다.

그리고 짊어지고 온 펑거스 로머의 껍질을 능숙하게 벗겨내고 속살을 서걱서걱 자르기 시작했다.

=와, 자르는 촉감이 완전 싱싱한 버섯이네요. 향도 엄청 향긋해요.=

코너 쪽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바깥을 경계하는 한편 인간 부스러기들의 영혼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생각하고 있던 환인은 이실리테의 말을 듣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비상식량이 이실리테의 곁에 바짝 붙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다.

비상식량의 반응이 이 정도라면 사람이 먹어도 무방하다. 거기다 영혼 시야도 선명한 연녹색을 띄고 있고.

환인도 그 옆으로 다가와서 이실리테가 내미는 버섯 인간의 살 조각을 받아들었다. 코 밑에 대고 살짝 냄새를 맡아본 환인이 작게 감탄했다.

“설마 향기도 송이일 줄이야. 정말로 송이버섯 인간이었군.”

‘송이?’

‘송이버섯? 이게?’

=주인님은 송이버섯 드셔보신 적 있으신 가요?=

“그래. 차가운 청주를 반주 삼아 질 좋은 참숯으로 살짝 구운 송이버섯을 먹으면 상쾌한 솔향이 콧속을 머무르는듯하지. 찜으로 만들어도, 구이로 해도 좋은 게 송이다. 특히 송이로 갓 지은 쌀밥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꼴깍, 꿀꺽.

흔히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고들 한다.

송이로 지은 쌀밥이라는 것은 접해보지 못했지만, 백려강은 물론 레심도 송이 숯불구이와 주도의 명문 양조장에서 빚은 맑은 청주는 마셔본 적 있기에 자연스럽게 그 맛과 향을 떠올렸고, 부끄럽게도 침 넘기는 소리를 크게 내고 말았다.

민망해하는 레심과 다르게 백려강은 호기심이 창피함을 이긴 모습으로 이실리테의 옆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이게 송이버섯 인간이었군요. 이실리테 양은 이걸 조리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요. 양성기술원의 선생님이 송이를 요리하는 것만 봤어요. 아가씨는 실물을 보신 적 있으세요?=

=조리되어 나온 송이는 본 적 있지만, 펑거스 로머는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에요. 와, 그런데 정말 솔잎 향이 강하네요. 요리되어 나온 송이는 소스의 냄새뿐이었는데.=

=그렇죠? 향이 정말 좋아요. 흐으응~.=

=흐으음…….=

잠시 향을 음미하던 이실리테는 조리용 팬을 짐가방에서 꺼낸 뒤 얇게 얇게 뜬 송이버섯 인간의 살점을 굽기 시작했다.

환인은 이실리테에게 받은 살점의 향기를 맡다가 입에 넣고 씹었다.

꼬들꼬들한 식감도 그렇고 향기도 송이버섯 그 자체다.

=아앗. 새, 생으로 드셔도 괜찮은 건가요?=

“예. 솔향이 매우 좋군요. 이 정도면 중상품 정도인 것 같습니다. 드셔보시겠습니까?”

=…….=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환인은 말없이 검지 길이로 송이버섯 인간의 속살을 잘라 건네주었다.

=……음!=

첫 한입이 어려웠을 뿐이었다.

백려강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환인에게 더 원하는 눈빛을 보냈고, 환인은 백려강뿐만 아니라 식욕에 패배한 인랑족 전사에게도, 송이버섯 인간을 팬에 굽고 있는 이실리테의 입에도 살점을 잘라 물려주었다.

=으, 으흐으음.=

=으응~. 이 식감…….=

쿠엣!

물론 비상식량에게도 잊지 않고 먹여준다.

그 후 이실리테의 요리 솜씨에 힘입어 네 명과 플러스 한 마리는 각종 송이 요리로만 배를 채웠다.

먹으면서 레심에게 버섯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 세상의 버섯은 종류를 막론하고 매우 비싼 식재에 속했다.

이 세상에는 괴물이 존재한다. 그리고 도시나 마을 외곽에는 안전이 확보된 만큼 사람들이 많이 다니기에 버섯이나 약초 등은 구하기 어렵다.

구하려면 멀리 나가야 하는데 도시나 마을에서 멀어지면 그만큼 괴물과 마주칠 확률이 올라간다.

마찬가지로 촌락 주변은 사람이 얼마 없는 대신 괴물이나 괴물에 가까운 짐승이 많이 서식하기 때문에 버섯이나 약초를 채집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와 다름없다.

양식도 어렵고 채집은 더 어렵고.

이러한 탓에 버섯은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으며 송이나 표고버섯 등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쌀 정도라는 게 레심의 설명이었다.

“우리는 그런 송이를 수십 킬로그램이나 먹어 치웠군요.”

파인 머쉬룸pine mushroom의 펑거스 로머는 13살 남짓한 아이의 체형이었다. 무게는 대략 40kg 정도. 상반신을 껍질만 제외하고 다 먹어 치웠으니 23kg은 족히 먹은 셈이다.

모두의 시선이 남아있는 펑거스 로머의 하반신으로 향했다.

이실리테는 말없이 송이버섯 인간의 절단면을 정리한 다음 레심에게 내밀었고, 레심은 그 하반신을 아공간 주머니에 담았다.

=나가면 호텔 요리사에게 맡겨서 정식 요리로 먹어봅시다. 찬성하시는 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의 휴식 시간을 가졌던 일행은 대열을 변경했다.

전열에 레심, 중열에 이실리테와 백려강, 후열에 환인이다.

=로브 잘 썼습니다, 이실리테 양.=

레심은 로브를 벗은 뒤 곱게 개어서 이실리테에게 넘겨주었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은색 철판이 덧대진 타원형 방패를 꺼내 들었다.

누가 봐도 완벽한 검방전사다.

환인은 레심에게 빛 막대를 건네받고 이실리테에게는 단검 벨트와 단검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이실리테. 점심 맛있었다.”

=가, 감사합니다아.=

환인의 칭찬에 이실리테는 삐죽삐죽 움직이려는 입술을 억누르느라 혼이 났다.

주인님은 다른 일에는 덤덤하지만 맛있는 음식만큼은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 기술원에서 요리를 중점적으로 배웠다.

그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날붙이라곤 한평생 대검만 휘둘러왔는데 이제 와서 작은 요리용 칼을 들고 힘 조절을 배우느라 엄청나게 고생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실리테는 그 고생을 모두 보답받는 기분이었다.

‘……순수하군. 이게 이실리테의 본모습인가.’

처음 하녀 양성기술원에 보낼 때만 해도 환인은 솔직히 40일간 바뀌어봤자 얼마나 바뀌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예의범절이라도 좀 배우고 나오면 다행일 거라 생각했을 정도.

그런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변화가 엄청났다. 과장 보태서 거름 밭에 뒹굴던 보석을 물에 깨끗하게 씻은 수준이다.

냄새야 조금 나겠지만 그 냄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아름다운 보석 그 자체가 되겠지.

환인은 입꼬리를 억누르느라 입매를 앙다무는 이실리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을 향한 호감이 물질적인 것을 넘어 마음에 닿는 이실리테의 모습.

현대의 여자들에 비해 과도할 정도로 쉽게 마음을 여는 것은 살아온 환경의 차이일까, 아니면 종족 그자체의 본성일까.

류히, 에프니스, 후이니, 엔넬. 그녀들은 물론이고 오는 길에 몸을 섞었던 많은 여자와 에트브룩의 여촌장, 그리고 이엘카타와 올츠 호텔의 메이드들까지.

여태까지 본 여자들은 대부분 쉽게 마음을 열었고 호의을 가지고 다가와 주었다.

물론 아닌 여자도 있었지만, 많은 수는 이쪽이 다가가면 저쪽도 그만큼 다가와서 진심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 부스러기까지 포용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의 이실리테라면 믿어도 되지 않을까.

=주, 주인님…….=

“……?”

=출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음.”

수줍게 말하는 이실리테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자 이실리테는 붉어진 얼굴로 재빨리 머릿결을 가다듬고 커다란 짐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훔쳐보던 백려강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저것은 주종 간의 신뢰일까. 아니면 남녀 간의 사랑일까…….’

척 보기에도 무거운 중철 대검과 짐가방을 짊어지는 그 행동은 무겁다기보단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 보인다.

남자, 환인 쪽은 잘 모르겠지만 이실리테가 환인을 사모하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환인도 이실리테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애틋하게 여기고 있겠지.

저렇게 서로 간에 믿음과 신뢰가 쌓이다 보면 남녀 간의 사랑으로 감정이 변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백려강은 불현듯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졌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호화롭고 안락한 삶을 살아왔다.

삶이란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이러한 평온한 삶을 누리는 대신 사랑과 자유를 포기하는 게 여태까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비상식량. 이리 와.=

쿠에~.

=또 왜~. 그렇게 먹고도 배고파?=

쿳. 쿠쿠.

=어휴. 알았어. 자.=

짐가방에서 보존 식량을 꺼내 비상식량의 부리에 물려주는 이실리테가 자신보다 몇 배, 몇십 배는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어째서일까.

=크흠.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아가씨, 환인 님, 이실리테 양. 잘 부탁드립니다.=

“뒤는 맡겨주십시오.”

=레심 씨, 힘내세요.=

=……아. 레심, 힘내요. 응원할게요.=

=옛!=

생각하지 말자.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만 힘들어지는 거야.

백려강은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며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레심의 뒤를 따랐다.

레심이 리더 역할로 전열에 서게 되었지만, 환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레심이 전열에서 일행을 잘 이끌어주면 나쁠 게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빨간 영혼 구슬과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미궁 경험?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대강의 미궁 생태와 궁금증은 거의 해결했다.

남은 것은 미궁에서 사람들이 겪는다는 부작용과 미궁의 끝에 뭐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 정도.

이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해줄 일이다.

환인은 빨간 영혼 구슬을 하나 풀어서 엄마를 부르짖던 영혼을 불러낸 다음 뒤쪽을 잘 감시하라고 지시해보았다.

‘훗날 신의 정원에서 모친과 다시 만나고 싶다면 잘 해야 할 거다.’

「히, 히이이…….」

고양이 귀 여자처럼 강제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었다.

심약해 보이던 모습을 생각해 가볍게 겁을 주자 예상대로 공포에 질려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켰으니까.

‘이걸로 영혼을 이용한 정찰이나 감시를 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됐지만…….’

끼끼끼끼.

끼이익~.

=갑니다! 아가씨, 지원 사격 준비를!=

세 마리의 작은 도깨비lesser imp와 마주친 레심이 방패를 세우고 돌진한다.

생김새는 호브와 비슷했지만, 그보다 더 작고 악마같이 생긴 작은 도깨비가 누런 돌멩이나 빨간 침을 뱉으며 공격하지만, 레심은 능숙하게 침과 돌멩이를 방패로 튕겨낸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작은 도깨비들에게 도달한 레심은 섬광처럼 검을 휘둘렀지만.

끼끼끼!

끄이~!

=칫!=

한 마리의 작은 도깨비 목을 치는 데 그쳤다.

그리고 동족이 죽는 모습에 남은 두 마리는 황급히 좌우로 도망친다.

=……—바람의 화살!=

저대로 도망치면 사방에서 다른 괴물을 이끌고 올 게 뻔한 모습.

환인은 백려강이 오른쪽으로 도망치는 작은 도깨비의 등에 바람 화살을 쏘는 것을 보고 왼쪽으로 도망가는 작은 도깨비에게 단검을 투척했다.

팍­ 펑!

왼쪽 도깨비는 뒤통수에 단검이 박혀 끄에 작은 비명과 함께 엎어졌고 오른쪽 도깨비는 장창 같은 바람 화살에 관통당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펑, 터져 죽었다.

=죄송합니다. 두 마리나 놓치다니, 이놈들 생각보다 더 날쌔군요.=

=괜찮아요. 힘내요, 레심.=

=레심 씨, 기죽으실 필요 없으니 기운내세요.=

=예. 좀 더 주의하겠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이실리테가 작은 도깨비의 시체를 확인하는 사이 환인은 다시 생각에 잠겨 들었다.

영혼을 이용한 정찰과 감시를 할 수 있어졌다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일단 정찰 임무를 맡기려면 지성이 높아야 한다. 말이 통하고 복잡한 명령도 이행할 수 있는 영혼이라면 단연코 사람의 영혼이다.

그리고 영혼도 죽은 지 얼마 안 된 영혼이라야 한다.

죽은 직후의 영혼은 지성이 뚜렷하다는 것을 인간 부스러기들을 죽이면서 알게 되었다. 죽은 지 오래된 영혼은 지성이 흐릿해지고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편이라 정찰에는 적합하지 않다.

‘묘지의 영혼은 정신이 뚜렷하지만 이런 일을 해줄 리 없고.’

그리고 사람 영혼이든 동물 영혼이든 미련이 크지 않은 영혼은 금방 성불해버린다는 점과, 영혼 구슬의 지속시간이 짧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즉 이렇게 정찰 임무를 맡기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사람의 영혼을 수급해야 한다는 뜻인데…….

“…….”

살인을 통해 영혼을 수급한다는 생각은 치웠다. 미궁 탐색의 편의를 위해 범죄살인마가 될 수는 없으니까.

현실적인 방안은 지성이 뚜렷한 영혼을 대상으로 계약을 맺는 거다.

미련을 풀어줄 테니 얼마간 자신을 따라다니며 일을 도와달라는 계약.

현재 영혼 구슬의 보유 갯수는 총 38개. 방황하는 영혼을 성불시키며 회수한 작은 빛방울로 인해 3개가 늘어났다.

구슬 유지 시간은 38시간.

미궁 하나를 탐험하는 데는 길면 몇 달을 쓰기도 하는데 38시간이라니.

적어도 나흘 정도는 되어야 쓸만할 텐데 그러려면 영혼 구슬을 96개는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웨이포드에서 흡수할 만한 영기는 거의 없는데.’

중심가의 고급 창관 여자는 거의 다 안았다. 올츠 호텔의 서비스 메이드들의 영기도 다 흡수했다.

일반 구역으로 가면 중급, 하급 창관의 창녀들이 수백 명은 될 테지만, 함부로 안다가 매독 같은 것에 걸리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진다.

‘아니 신전을 찾아서 질병 치료를 받으면 해결되는 일인가.’

약 21일간 63명을 안으며 영혼 구슬 보유량을 9개 더 늘렸다. 630명이면 이론상 90개를 더 늘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역시 꺼려진다.

웨이포드에서 40일간 활동하며 이런저런 지식을 흡수한 덕에 초능력에 대한 약간의 생각이랄게 생겼다.

그러니까 마구잡이로 영기를 흡수해나가다간 밸런스가 무너져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단순한 지식의 편향이라면 문제 되지 않겠지만, 영기는 초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질적인 에너지다.

사람의 몸은 무심한듯하면서도 예민해서 컨디션이 살짝만 무너져도 감기·몸살에 걸리기 일쑤다. 그런데 영기처럼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마구 흡수한다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않는가.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삼림형 미궁에서 강요받던 선택지와 비교하면 위험성은 없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지.’

하이에른=조드의 조언이 있었다지만 현재로서는 누군가의 추적도 없고 시간 제약 같은 일도 없다. 마음에 여유를 두고 움직이도록 하자.

그때 작은 도깨비를 해체하던 이실리테가 희색을 띠며 손을 들어 올렸다.

=위상석이 나왔어요.=

장갑을 낀 엄지와 검지 사이에 새끼손톱만 한 녹색 돌멩이가 끼워져있었다.

그걸 본 환인의 눈빛이 깊어진다.

‘특수 효과 돌멩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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