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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106화 (106/813)

〈 106화 〉 103 빛이 닿지 않는 미궁

* * *

4층과 5층도 3층과 상황이 비슷비슷했다.

층은 넓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도 많았다. 군데군데 코너 안쪽에 자리 잡은 파티도 많이 보였다.

일행은 빛이 닿지 않는 미궁을 탐험하며 아래층으로 끊임없이 내려갔다.

빛 막대의 광원에 보이는 이끼와 버섯, 크리스탈처럼 반투명한 광물.

천장의 석순에서 똑, 똑 떨어져 고이는 물웅덩이.

통로 너머에서 아련히 비치는 노란 불빛과 귀를 기울여보면 자그마하게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가끔 마주치는 이형종???.

“전방 20m에 소형 괴물 지네 2마리, 작은 괴물 거미 1마리입니다.”

옆으로 살짝 비켜서며 주는 환인의 경고에 백려강은 곧장 위상력을 끌어올려 지팡이의 보석으로 흘려보냈고.

=아가씨.=

=네! 불어와 몰아치는 칼날 바람!=

레심의 신호에 짧은 술식을 외워 압축된 농구공 사이즈의 바람 공을 발사했다.

위이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바람 공이 작은 악어 사이즈의 지네와 충돌하자 초승달 모양의 칼날 바람이 주변 3m 반경에 쏟아져 두 마리를 난도질한다.

촤자자작!

소형 괴물 지네 두 마리는 저항할 틈도 없이 말 그대로 토막 쳐졌다.

칼날 바람의 범위에 살짝 걸쳐져 있던 작은 괴물 거미 또한 옆다리 세 개가 잘리는 상처를 입고 키이익­ 소리를 지르며 절뚝절뚝 도망가기 시작했지만.

쩍!

채 3걸음도 걷기 전에 켈틱 돌도끼가 배자루를 찍었고 배가 끊어진 괴물 거미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돌도끼를 회수한 환인은 주변을 체액 범벅으로 만든 괴물 지네의 키틴질 껍질을 툭툭 건드려보았다.

강철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딱딱하다.

‘미궁 앞의 부산물 시장에 키틴질 껍질이 많은 이유를 알겠군.’

이만큼 단단하면 가공해서 뭘 만들어도 만들겠지.

바람의 법술이 터진 주위를 돌아보던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법술의 위력이 상당하군요.”

=환인 님? 그렇게 놀리시면 싫어요. 저도 나름 3급 풍술사인걸요.=

겨우 1급 상대로 이 정도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하는 백려강의 이야기에 환인은 잠시 입을 닫았다가 오해라며 설명했다.

“술사가 기술을 쓰는 것은 처음 봐서 그렇습니다. 껍질이 예상외로 단단한데 이걸 가볍게 자르는 걸 보고 느낀 감상이었을 뿐이었으니……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예? 술법을 처음 보셨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표정의 레심에게 환인은 자신이 여기로 오게 된 경위를 숨길 것은 숨겨서 짧게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개구리 인간처럼 생긴 종족이 녹색 화살을 쏘는 것은 봤군요.”

=술법을 사용하는 개구리 인간이면 프로그록 샤먼인데…….=

그사이 사체를 뒤져서 위상석이 있는지 찾아본 이실리테가 돌아와서 고개를 저었다.

=위상석은 없었어요.=

“가시죠.”

환인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레심은 그 뒤를 따르면서도 연신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렸다.

3급 미궁 정도만 들어와도 법술사와 파티를 맺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환인 님은 5급도 때려잡으시지 않는가. 그런 실력으로 법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프로그록 샤먼이라면 청술?을 쓰는 4급 이형종이다.

그 정도 이형종이 술법을 쓰는 것을 봐놓고도 사람이 쓰는 술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니, 그럴 수가 있나?

이것은 모두 7급 올조트의 호수미궁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어서 나온 지식의 엇갈림이었다.

호수 미궁 또한 개방형이었기에 호수 미궁의 프로그록 샤먼 ‘유생’이 비교적 안전한 삼림형 미궁 인근의 강줄기에 자리 잡았기 때문.

그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고민하는 레심과 다르게 백려강은 환인의 정체를 대강이나마 짐작하고 있었기에 ‘저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하며 궁금증을 접었다.

대신 살짝 뛰는 가슴을 누르며 작게 미소 지었다.

백려강은 이제야 미궁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났다.

솔직히 미궁에 들어오자마자 사람 사냥꾼과 마주쳐서 크게 실망한 것은 사실이었다.

10년 넘게 품어왔던 미궁에 대한 모험과 동료들하고의 우정, 험난한 여정에서 싹트는 사랑 등, 그러한 로망이 그 일로 단숨에 망가진 것이다.

만약 이실리테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옆에서 살인을 목격하며 느낀 마음의 응어리를 밝은 목소리로 풀어주지 않았다면 백려강은 그대로 돌아가자고 말을 꺼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늘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나온 거예요. 옷도 평범한 가죽옷으로 갈아입었고요.=

=으응. 잘하신 거에요. 아가씨는 제가 이때까지 본 여자 중에서 제일 예쁘신걸요. 만약 후드를 벗고 미궁에 들어왔다면…….=

=왔다면?=

=지금까지 마주친 사람들이 모두 아가씨 뒤를 쫓아와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 거예요. 진짜로.=

=후후. 이실리테는 과장이 심하네요.=

=어어. 정말이에요. 레심 씨도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이실리테 양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아가씨는 자기 외모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해요.=

=레심도 참…….=

=객관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객관적으로!=

이런 식으로 분위기가 풀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십중팔구 미궁 탐험을 포기했을 테지.

그리고 다시 답답한 성에 갇힌 채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배고 낳으며 평생 쓸쓸하게 시들어갔을 것이다.

백려강은 옆으로 돌아와서 사체를 뒤지느라 더럽혀진 집게 도구 등을 닦는 이실리테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고마워요, 이실리테.=

=네? 뭐가요?=

=그냥 고마워서요.=

=……?=

갑자기 고맙다고 하는 백려강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본 이실리테였지만, 이런 순진한 아가씨가 나쁜 의도로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생긋 웃어주었다.

“이제 6층입니다. 여기서부터 2급 이형종도 출몰합니다. 1급은 조금 강한 동물, 곤충 정도였지만 2급부터는 확실히 이형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괴물입니다.”

파라락­ 빛이 닿지 않는 미궁 지도책을 펼쳐 6층을 보며 말을 잇는다.

“이 층부터는 노동자도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이형종과 더 자주 마주치게 될 겁니다. 긴장하도록 합시다.”

=후후.=

“무엇이 재미있으십니까?”

백려강의 순수한 웃음소리에 환인이 그녀를 돌아보며 묻자 지팡이를 쥔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대답한다.

=환인 님은 직업자인 도적 다섯을 삽시간에 해치우는 실력자이시잖아요. 그 실력이면 2급 이형종도 간단히 해치우실 텐데 긴장하자고 하셔서요.=

“이해합니다. 아가씨가 모험가 지망이었다면 크게 혼냈을 테지만, 넘어가 드리지요.”

=호, 혼낸다고요……?=

살짝 당황하며 묻는 말에 환인은 덤덤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레심도 어깨를 으쓱하면서 못 말린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려강은 그런 두 남자의 행동에 살짝 뺨을 부풀리며 항의했다.

=뭐에요, 정말. 레심도 왜 그러는 건지 설명도 안 해주고.=

=음. 제 입으로 그걸 설명하기에는 조금.=

=……?=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6층으로 내려온 계단 바로 오른쪽에 7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두 개 있었다.

미궁 돌파가 목적이라면 바로 내려가는 것이 좋지만, 이 파티의 목적은 백려강에게 미궁의 느낌을 만끽하게 해주는 것.

6층의 분위기를 간단히 살펴보기 위해 안쪽으로 연결된 통로로 향하며 지도책을 레심에게 건네준 환인이 걸음을 옮기자 백려강은 그 뒤를 따라가면서도 입술을 살짝 내밀며 불만스러워했다.

뭘 잘못했는지 가르쳐줘야 고칠 텐데 가르쳐주지도 않고…….

그런 백려강의 모습을 이실리테는 반칙이라고 할 만큼 귀엽다고 생각하며 대신 대답했다.

=방금은 아가씨가 실수하신 거예요.=

=……어떤 실수였는지 가르쳐주세요.=

=방심하면 7급 전사도 2급 전사한테 죽는 게 이 바닥이에요.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이쪽의 목숨을 노리는 적인데 얕보는 행동은 절대 금물이죠.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조심을 한다고 하잖아요?=

=아…….=

그제야 환인과 레심의 반응을 이해한 백려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창피해했다. 그리고 이실리테는 참지 못하고 백려강을 와락 끌어안으며 즐거워했다.

=아가씨 너무 귀여워요! 그렇게 예쁜 얼굴로 귀엽기까지 하다니, 진짜 반칙이에요.=

=아읏. 이, 이실리테. 너무 가까워요…….=

환인은 뒤에서 두 여자가 꽁냥거려도 신경 쓰지 않고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 근처에 귀를 열어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꺅, 아가씨 너무 부드러워요. 근육이 아예 없으신 거 아니에요?=

=아앗. 이실리테, 어딜 만지는 건가요……!=

아니, 살피려 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때문에 살필 수가 없다.

환인은 백려강과 이실리테를 돌아보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나서야 통로 건너편의 미약한 소음이 조금씩 들려왔다.

다리가 많은 것이 자작거리면서 움직이는 듯한 소리. 거친 숨소리 비슷한 것도.

환인은 생각해두었던 것을 시행하기 위해 빨간 영혼 구슬 하나를 팔에서 떼어놓은 뒤 명령했다.

‘원래대로 돌아가라.’

화아악­

영혼이 구슬로 변화하는 장면을 거꾸로 감은 것처럼 구슬이 사람 영혼으로 변한다.

대상은 앙칼진 고양이 귀의 여자. 매우 반항적이며 반골 기질이 높은 인물이다.

알몸의 영혼체 상태로 돌아온 고양이 귀 여자는 어리버리한 표정을 지었다가 환인을 발견하곤 표독스러운 얼굴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통로 너머의 상황을 보고 와라.’

「…….」

‘명령’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고양이 귀 여자는 으득, 이빨 가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렸을 만큼 선명하게 이빨을 갈며 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온 고양이 귀 여자는 환인을 죽이고 싶다는 듯이 노려보기만 했다.

‘뭘 보고 왔는지 자세하게 말해라.’

이어진 명령에 고양이 귀 여자는 절대 말하고 싶지 않은지 두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강제력 때문에 입이 저절로 열리며 자신이 본 것을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으극…… 주, 중형 괴물 지네 1마리하고 작…은 지네 괴물 2마리…… 비명, 괴물 1마리가 있었……다.」

환인은 고개를 돌려 일행에게 신호를 보낸 뒤 소리 없이 조용히 12m에 달하는 통로를 지나간다.

“통로 너머에 괴물의 소리가 들립니다. 4마리인 듯 하니 준비하십시오.”

「웃기고 있네. 내게 정찰시켜놓고 잘도 떠벌리는군. 이딴 새끼가…….」

‘주둥이 닥쳐.’

「무슨 영호우읍, 우우웁……?!」

그리고 통로 입구에 도달했을 때 파티는 수십 미터는 되는 넓은 동굴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4마리의 이형종을 볼 수 있었다.

키잇­

키시시시­

레심이 든 빛 막대의 불빛에 반응한 크고 작은 지네 괴물 3마리가 다가온다. 그 뒤에 팔이 세 개, 눈이 5개, 입이 두 개 달린 작은 누더기 괴물이 끼에에에엑! 비명을 질렀다.

=저것들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아가씨, 원호를!=

레심이 순식간에 접근하는 중형 지네 괴물을 향해 달려 나가며 은빛 검을 매끄럽게 휘두른다.

깔끔한 ∠자 검격에 중형 지네 괴물의 몸통이 절반 정도 잘리며 체액을 뿌리고, 그새 발치에 도달한 작은 지네 괴물을 뻥 소리 나게 걷어 차버린다.

=꿰뚫는 바람이여!=

그사이 술법을 완성한 백려강이 지팡이를 내밀며 귀따가운 비명을 계속 지르는 비명 괴물, 쉬리커를 향해 장창 같은 바람 화살을 쏘았다.

끼에에에에…….

푸직!

화살에 머리가 날아간 쉬리커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던 자세 그대로 쓰러져 침묵했고 레심도 그사이 꾸물꾸물 기어 온 소형 괴물 지네 한 마리의 머리를 날렵하게 푸푸푹 찔렀다.

“절지류는 단면적인 공격이 효과적입니다.”

=음!=

환인의 조언에 자신의 실태를 깨달은 레심은 머리를 찔려 몸을 베베 꼬는 소형 괴물 지네에게 즉시 2연베기를 넣어 몸통을 갈랐다.

걷어차여 날아갔던 마지막 지네 괴물도 백려강이 쏜 바람 구슬에 푸직, 소리를 내며 터지는 것으로 전투는 종료.

“수고하셨습니다.”

검을 휘둘러 체액을 떨쳐낸 레심은 환인의 인사에 뻘쭘한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실전, 실전 하나 봅니다. 이형종을 적지 않게 공부했는데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군요.=

“레심 씨도 여기가 첫 미궁입니까?”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올해부터 가문에서 미궁 출입 허가를 내어준지라……. 하지만 영지에 출몰한 괴물 토벌에 참여한 경험은 있어 괴물은 조금 익숙한 편입니다.=

아마도 직접 싸운 것은 아니고 견학한 것이리라.

환인은 그가 곤란하지 않게 대강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백려강 씨도 잘하셨습니다. 대상에 따라 술법을 적절히 바꿔 쓰시는 게 훌륭합니다.”

=감사해요.=

환인은 광원이 닿지 않는 동굴 저 안쪽에서 몇 마리의 괴물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흑창을 빼 들었다. 그러자 백려강이 후드를 벗고 눈을 가늘게 뜨며 어둠 속을 바라본다.

=괴물이 다가오고 있나요? 저는 전혀 안 보여요.=

“펑거스 로머와 젤라틴 큐브입니다.”

뼈가 없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는 키 120cm 정도의 송이버섯을 닮은 버섯 인간. 그리고 출렁거리며 폴짝, 폴짝, 점프해오는 한 변의 길이가 50cm가량인 정사각형 녹색 젤리 큐브.

‘펑거스 로머는 색계통이 연녹색이군. 먹어도 무방한 개체인가.’

그에 비해 사각형 젤라틴 큐브는 녹색이면서 매우 선명한 청색이다. 게다가 내부에 아메바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니는 모양새라 혐오스럽다.

흑창을 들고 걸어가자 느긋하게 다가오던 펑거스 로머가 느릿하게 팔꿈치를 뒤로 당긴다.

그 행동에 펑거스 로머가 노리는 가슴 쪽이 살짝 저릿저릿해짐을 느꼈다. 그 감각만으로 보면 바르툴, 미궁 근처의 늑대 인간과 만났을 때 느꼈던 감각과 흡사하다.

‘지금’

팔꿈치를 당기던 펑거스 로머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읽은 환인은 시험 삼아 허리춤의 돌도끼를 잡아 투척하려는 순간.

「끼야아아악!!」

고양이 귀 여자의 영혼이 괴성과 함께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시야를 가로막았다.

스걱­

피이이이.

시야 방해에도 불구하고 환인은 미리 읽었던 공격 궤적에 맞춰 창을 휘둘러 펑거스 로머의 팔을 베어내는 동시에 스윽­ 창을 휘둘러 허리도 잘라낸다.

소리 없이 허리가 2/3 가까이 베인 펑거스 로머는 상체와 하체가 나뉜 채 풀썩 쓰러졌다.

뒤를 돌아본 고양이 귀 여자는 위아래로 두 동강이 난 버섯을 보고 칫, 혀를 찼다.

펑거스 로머의 공격력은 동굴 벽도 무너트릴 정도다. 훼방을 잘 놓았다면 저 주먹에 맞았을 테고 그럼 영혼사 놈도 죽었을 텐데.

아쉬워하며 환인을 돌아본 고양이 귀 여자 영혼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공포를 느꼈다.

“…….”

사람의 눈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무기질 같은 시선에 고양이 귀 여자가 뒤늦게 벌벌 떨기 시작했다.

잘못 건드렸다.

자기가 속해있던 조직의 두목도 눈빛이 사납다는 평가를 받지만, 저 남자의 눈빛에 비교하면 새끼 고양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두목의 눈에는 사람의 감정이 담겨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저 남자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자그마한 감정이라도 담겨있는 게 정상인데 저 남자의 눈은 유리알처럼 번들거리고만 있었다.

저런 눈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착한 인간일 리 없다.

환인은 고양이 귀 여자 영혼을 응시하면서 젤라틴 큐브의 핵으로 추정되는 동그란 구슬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푸욱, 단검이 젤라틴 큐브의 반고체를 뚫고 들어가 구슬을 찌르자 단단하게 굳어있던 젤라틴 큐브가 연기를 뿜어내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앗, 단검이 녹고 있어요.=

=저 젤리 큐브는 부식성을 띠고 있나 보군요. 아가씨,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연기도 위험할지 모릅니다.=

백려강과 레심의 대화에 퍼뜩 정신을 차린 고양이 귀 여자는 그제야 환인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요, 용서해주세요. 잘못, 잘못했어요. 하라는 거 다 할 테니까 제발……!」

무서운 것 없이 한평생 앙칼진 고양이처럼 사방을 물어뜯으며 살아온 여자였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무서운 것을 보지 못했기에 할 수 있었던 만용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은 이미 죽었지만, 죽는 것보다 더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여자는 필사적으로 손바닥을 비비며 용서를 구했지만…….

환인은 뒤에서 보이지 않게끔 손가락을 들어 영혼 화살 4중첩을 장전, 영혼의 머리에 쏘았다.

핏­

「———!!」

영혼 화살이 꿰뚫고 지나간 머리에 작은 구멍이 생기더니 풍선이 터지는 것처럼 머리가 펑, 하고 사라진 여자 영혼은 온몸으로 절규를 표현하다가 천천히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이실리테가 이상함을 눈치챈 것은 그때였다.

=……주인님?=

긴가민가하며 환인을 부른 이실리테는 평소와 다름없는 환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불렀으면 말을 해라.”

=앗. 아니에요. 어쩐지 주인님이 조금 화나신 것처럼 보여서…….=

=저…… 제가 너무 시끄럽게 했나요?=

이실리테의 발언에 백려강이 환인의 눈치를 보며 묻는다.

“아닙니다. 주변이 이상해서 조금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빛 막대를 들고 있던 레심은 환인의 말에 빛 막대로 이리저리 동굴을 비춰보았지만, 이상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제 눈에 이상한 것은 안보입니다만…… 그보다 이실리테 양?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어떤 버섯 인간은 식용할 수 있거든요. 이것도 파인 펑거스라서 엄청 희소하면서도 비싼 식재에요. 마침 좀 있으면 점심시간이잖아요? 이걸로 요리를 해보려고요.=

=이, 이형종을 드신다는 이야기입니까……?!=

=네.=

=……!=

이형종을 먹는다니?! 충격받아서 말을 잇지 못하는 백려강이 귀여워 웃음이 나올 것 같은 이실리테였다.

저 아가씨한테는 이 버섯 인간을 꼭 먹여봐야지.

[6층 지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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