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94화 (94/813)

〈 94화 〉 091 소도시 웨이포드

* * *

약간 공순이 느낌의 미녀 무기점 주인이 보여주는 호들갑에 환인은 손에 쥐고 있는 회색 돌칼과 검은색 자루의 돌도끼를 내려다보았다.

“이 돌도끼의 재료에 대해서 아십니까?”

=실은 저도 보는 게 처음이에요. 웨이포드 미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소재라서요. 듣기로 땅신님의 축복을 받은 미궁에서만 간혹 나온다고 하는 소재라던데…… 괜찮으시면 잠시 살펴봐도 괜찮을까요?=

서글서글한 인상의 무기점주를 잠시 바라보다가 돌도끼를 넘겨주었다.

돌도끼를 받아들고 카운터로 돌아간 무기점주는 검사대 같은 곳에 올려놓고 돋보기 비슷한 걸 가져와 자세히 살펴보는 한편 작은 목제 손망치를 가지고 이곳저곳을 살살 두드려본다.

=음…… 과연. 혹시 직접 만드신 돌도끼인가요?=

“녹색 호브가 들고 다니던 것을 강탈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어쩐지 모양이 너무 투박하고 무게 중심이 엉망이더라니.=

돋보기와 나무망치를 치운 무기점주는 끝에 동그란 유리구슬이 달린 손바닥만 한 막대기를 가져와 돌도끼의 이곳저곳에 가져다 대본다.

유리구슬이 돌도끼에 닿을 때마다 자루 쪽에서는 청색 빛이, 돌날 부분에서는 녹색 빛이 발광한다.

=흠흠. 힐란의 검은 나무와 짐락의 바위 특징은 강철보다 단단하고 질기지만, 강철처럼 녹슬지도 않고 오염도 덜 되는 무기에요. 피가 묻어도 물에 슥슥 흔들어 씻으면 새것처럼 깨끗해지죠. 그래서 훌륭한 무기나 방어구의 재료로 사용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특성 때문에 높은 가격대를 자랑하지요.=

기본 특징은 환인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여태껏 버리지 않고 사용해왔으니까. 그런데 중요한 특성이라니.

“중요한 특성이라면?”

=위상력이 쉽게 깃드는 성질 때문에 마도구나 마도기의 소재로 더 각광받아요.=

다만 이 돌도끼 같은 경우에는 이미 특성이 부여되어있어서 새로운 특성을 부여하려다간 무기 자체가 망가져 버릴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어떤 부여 효과인지는 모르십니까?”

=아까 감정 막대를 건드렸을 때 녹색과 청색의 빛이 뿜어졌었죠? 청색은 주로 경도 관련, 녹색은 수복 관련 옵션이에요.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비술사 협회를 방문하셔서 전문 감정을 받아보시는 걸 추천해요.=

“그렇군요. 간이라지만 감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긴 무기점이다. 이런 감정도 돈을 받고 해주는 게 보통일 텐데 무료로 해준 것은 무기점주의 호의일 게 분명한 상황.

별것 없는 말 몇 마디로 호감을 살 수 있다면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인사를 받은 무기점 주인이 환히 웃으면서 손사래를 친다.

=아유. 별말씀을요. 이런 간이 감정은 몇 푼 하지도 않는데요.=

그러더니 살짝 주근깨가 난 귀염상의 얼굴을 환인에게 가까이하며 눈을 반짝인다.

=그래서 말인데요. 손님, 이 돌도끼 쓰기 어렵지 않으셨나요?=

“그런 면이 없진 않았습니다.”

=원하신다면 부품을 추가해서 밸런스를 잡아드리는데 어떠신가요? 견적을 보자면 2은화면 충분할 거예요. 돌도끼 자체는 매우 튼튼하고 옵션도 장기간 사용에 적합하니 매우 오래 쓰실 수 있으실 텐데 무게 중심이 엉망인 채로는 쓰기 어려울 거예요. 받아보시면 결코 돈 아깝지 않을 거랍니다.=

환인은 살짝 쓰게 웃었다. 이게 목적이었군.

“그게 가능합니까?”

환인의 의문에 무기점주는 계산대 뒷문으로 들어가더니 금방 이런저런 금속제 죔쇠 같은 게 가득 담긴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원하시는 형태가 있으신가요? 최대한 그 형태를 맞춰드릴 수 있어요.=

“투척도 겸해서 사용하는 돌도끼입니다. 무게는 조금 더 늘어도 상관없지만, 형태 비율은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네엡.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무기점주는 그리 대답하고 환인이 보는 앞에서 클립 형태의 크고 작은 죔쇠를 돌도끼에 부착시켜나갔다.

잠시 후 환인의 손에 돌아온 돌도끼는 이곳저곳에 켈틱 문양 같은 띠가 둘러진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

돌도끼를 든 순간 환인은 상당히 놀랐다.

돌도끼를 쥐는 것만으로도 팔뚝 안쪽에 부담이 가는 수준이었는데 죔쇠를 부착한 것만으로도 굉장히 편해졌다.

무게 중심이 돌날의 뒷부분에 강하게 몰려있었는데, 지금은 정석이라 할 수 있는 자루 머리 쪽에 모여있었던 것.

그러면서 공격력 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걱정되던 결합부를 더 강하게 이어놓아 내구성도 덩달아 오른 느낌이다.

=한 번 투척해보시겠어요? 여기.=

무기점 주인이 지름이 20cm는 되는 통나무를 끙차, 들어서 카운터에 올려둔다. 환인은 그 통나무를 향해 돌도끼를 던졌다.

쐐액­ 콰직!!

흉흉한 소리와 함께 통나무에 단숨에 틀어박히는 돌도끼.

가볍게 던졌는데도 불구하고 속도도, 위력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훌륭하군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그럼 잠금쇠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체결작업을 할게요. 부착물을 떼어내시려면 중급 대장간 이상을 방문해서 떼달라고 하시면 돼요.=

그러더니 인두같이 생긴 것을 가져와 부착물을 하나하나 물리적으로 체결해나가는 무기점주다.

‘저게 마도구인가.’

아무것도 연결되어있지 않고 형태도 단순한 막대기인데 끄트머리에서 열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마도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정말 신기한 세상이군.’

초능력이 있고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 등장할법한 매직 아이템 같은 것도 있고 몬스터도 있고 황인 흑인 백인 같은 차이가 아니라 정말 종이 다른 종족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계.

어쩌면 판타지 소설을 처음 쓴 작가는 경험담을 적은 게 아닐까 생각해보는 환인이었다.

한층 강화된 켈틱 돌도끼를 챙기고 비상식량과 함께 제2 공동묘지에 도착한 환인은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밤이 되어가는 시간에 혼자서 움직였다. 불법적인 일을 한다면 이때를 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다니는 행인이 있어서였나.’

어쨌든 공동묘지로 들어가자 묘지를 순찰 중이었는지 이엘카타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저쪽 길에서 나타났다.

차이점이라면 후드를 벗고 있다는 것.

환인을 발견한 이엘카타의 얼굴에 반가움이 번진다.

=오셨습니까.=

다가와 살짝 미소 짓는 모습에 새벽녘의 공허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어제보다 밝아지고 부드러워진 표정에 환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제 괜찮으신 듯 하군요.”

=……아, 아침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제 억지에 어울려주신 것도 감사한 일인데 배웅도 해드리지 못하고…….=

“많이 피곤하셨을 테니 이해합니다.”

=…….=

환인은 수줍은 듯이 고개 숙인 이엘카타의 모습에서 자신을 향한 호의가 듬뿍 묻어나고 있음을 눈치챘다.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서 살을 섞은 여자들은 크든 작든 자신에게 호감을 가져주었었으니까.

‘그녀 같은 경우에는 첫 경험의 대상이라는 점까지 더해진 거겠지.’

환인은 그녀와 함께 공동묘지를 한 바퀴 돌면서 눈에 띄는 영혼에게 말을 걸어 신상을 봉안해둔 사당으로 집합시켰다.

그리고 영혼들끼리 대조해서 빠진 영혼은 없는지 확인 작업을 진행했고, 그렇게 모인 영혼의 숫자는 총 31명.

뚜렷한 자의식을 가지고 웅성거리는 영혼들을 보며 이엘카타에게 물었다.

“이곳에 안장된 시신은 몇 구입니까?”

=정원에 묻힌 분은 498명. 사당에 봉납 된 분은 4,176명입니다.=

루크랑의 장례 풍습은 풍장風?과 화장火?, 매장??의 세 가지.

그중 정원, 바깥의 공원 같은 곳에 묻힌 시신은 대부분 재산은 충분하지만, 지위와 명예의 부족으로 고족 거리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묻힌 장소였다.

사당은 지구의 납골당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으로 중심가에서 살 수 있을 정도의 부자들이 묻히는 곳.

향후 300년은 더 묘지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설명을 이엘카타에게 듣고 영혼들을 둘러보았다.

“…….”

자신을 바라보는 반투명한 회색 영혼들의 시선에 환인은 눈을 잠깐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여러분들도 짐작하셨다시피, 저는 영혼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성불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오! 진짜 영혼사님이셨어!」

「영혼사님, 제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이대로라면 분통 터져서 성불할 수가 없어요!」

“조용.”

서로 자기 억울함을 들어달라며 아우성치는 영혼들은 환인의 날카로운 시선과 목소리에 몸이 떨리는 감각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하늘에 맹세코, 정말 억울한 사연이 있다면 저도 최대한 도움을 드릴 겁니다. 하지만…….”

환인이 왼팔을 들어 천천히 검지를 세우자 영혼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그 손끝을 바라본다.

「헉. 저게 뭐야.」

「엄멈머.」

「어어…….」

이어 왼팔에 붙어있던 영혼구슬 35개가 한 번에 흩어져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고,

그중 세 개의 구슬이 손끝으로 올라와 하나의 화살로 변하는 광경에 영혼들이 부르르 떨면서 환인에게서 멀어졌다.

영혼이라서 그럴까, 환인의 왼팔에 붙어있던 영혼 구슬이 보이는지 두려움에 가득 찬 모습이다.

그것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분풀이나 사욕을 위한 왜곡, 호도하며 산 자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자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피잉­!

영혼 화살이 쏜살처럼 사당 입구로 날아가 모습을 감추었다.

대놓고 하는 위협에 영혼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자들의 특징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들어달라며 아우성 거리던 자들이었다.

‘예상대로군.’

어제 이엘카타는 영혼이란 다들 선량하다는 식으로 말했었다. 그러나 환인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의식이 뚜렷할수록 생전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데 성격을 유지하고 있단 말은 나쁜 기질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뜻.

중심가의 공동묘지에 묻힌 자들은 이곳 사회의 상류층 인사들이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욕심도 많을 텐데 의식까지 유지 중이다?

그런 놈들에게 이용당할 생각은 1g도 없던 환인은 보란 듯이 그들에게 위협을 가했고, 예상대로 31명의 영혼 중 태반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환인을 무서워하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태반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곱게 늙은 듯한 흰머리의 인묘족 여성이 다가와 허리를 숙인다.

「영혼사님. 저는 중심가 7번 거리에 자식을 모두 잃고 하나뿐인 핏줄인 손녀와 함께 살던 노파였습니다…….」

적어도 손녀가 결혼할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고 싶었지만, 수명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를 혼자 두게 했다고 설명했다.

「손녀는 너무나 착한 아이입니다. 나쁜 놈이 꼬이지 않을까 너무나 걱정이 되어 성불하지도 못하고 그 아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살아있을 적부터 눈엣가시던 놈팽이 놈이 손녀를 꼬드겨 후처나 첩도 아닌 애첩으로 만들려 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손녀에게 경고라도 해주고 싶다는 부탁을 너무도 간절히 해왔다.

환인은 이엘카타에게 하얀 후드 로브를 빌려 얼굴을 가린 뒤 영혼들을 이끌고 노파 영혼이 말한 집으로 향했다.

=하, 할머니……? 할머니!!=

「얘야…….」

그리고 두 조손의 상봉을 도와주었고, 손녀에게서 그 놈팽이와 절대 연관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은 노파는 미련이 다한 얼굴로 손녀가 보는 앞에서 환한 빛을 퍼트리며 성불했다.

=감사합니다, 영혼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의 할머니는 하늘에서 계속 당신을 지켜볼 겁니다. 이 세상에 혼자라고 외로워하지 마시고 힘내서 삶을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네, 네……!=

그리고 노파 영혼이 성불하고 남은 자리의 작은 빛 구슬을 흡수한 환인은 영혼을 이끌고 제2 공동묘지의 사당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도덕과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이제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나와서 말씀해주십시오.”

이 말이 용기를 주었을까.

환인의 무력 시위에 기가 눌렸던 영혼 몇 명이 용기를 내 앞으로 나와 환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저기…… 저도 영혼사님께 부탁이…….=

=저도, 저도 있습니다…….=

공동묘지에 들어와 6시간이 지났을 때 31명의 영혼은 13명으로 줄어있었다.

일부는 환인을 매개로 생전 하지 못한 말을 하고 성불했다.

죽은 자신을 잊지 못하는 연인에게 자신을 잊고 행복하게 살라는 말.

자신이 죽을 때까지 보살펴주어서 고맙다는 말.

당신이 남편이어서 행복했다는 말.

또 다른 일부는 생전에 미처 전해주지 못한 지식을 가족에게 전달해주고 후련한 표정으로 성불했다.

누구누구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그 증거가 어디에 있으며, 누구누구한테 큰 은혜를 입혔으니 꼭 받아내고, 어디 어디에 보물을 묻어놨으니 꼭 찾아서 회수하고…….

그런 속물적인 부탁을 전해준 환인은 영혼들의 안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유족들에게 사례를 갈취했다.

유족들은 대부분이 2층집, 3층집을 넘어 저택을 보유 중이었거나 하인, 하녀도 고용하고 있는 부자들이었다.

영혼이 직접 가족들에게 당부해서 사례금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환인이 직접 나서서 영혼들이 가야 할 길을 좀 더 편히 보낼 수 있도록 갈고닦을 길, 그러니까 수행비를 명목으로 뜯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다섯 명을 성불시켜주고 받은 돈이 물경 금화 아홉 닢. 9억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환인을 따라다니며 그의 성불행을 지켜보던 이엘카타는 환인이 사례비를 갈취하는 모습을 본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어, 어떻게 영혼사로서 영혼의 성불을 돕고 유족들에게 사례금을 갈취…… 아니 보답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오직 사회를, 평화를 위해서 봉사할 생각만 하고 있던 이엘카타에게 이런 속물적인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부류였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마음 한편에 환인이라면 자신이, 영혼사가 되지도 못한 어리석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류의 영혼 성불행을 따라다닌 결과 이엘카타는 환인을 향한 믿음을 더욱 강하게 먹었다.

마지막 부류는 불쌍하다고 할 수 있는 일부였다.

자신이 죽은 뒤 집안이 쫄딱 망해 남은 가족들이 일반 거주 구역으로 쫓겨난 이들의 영혼.

세상에 남은 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해 성불을 미뤄가면서까지 지켜보던 그들의 소망은 오직 하나, 가족들의 안녕이었다.

이 대목에서 환인은 꽤 고민했다.

9금화가 큰돈이긴 하지만 영혼의 유족들 삶에 평온을 줄 만큼 큰돈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움직였다.

영혼들이 알려준 곳은 치안이 나쁜 편인 일반 구역에서도 슬럼이라 할 수 있는 뒷골목 판자촌이었기에 늦은 밤이었지만 스사의 저택을 찾아 브릴릿을 빌려왔다.

직업자를 호위로 대동하면 너절한 시비는 간단히 차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브릴릿에게도 하얀 후드 로브를 씌운 뒤 첫 영혼의 가족이 사는 곳을 방문한 환인은…….

“자리부터 옮겨야겠군요.”

역겨운 악취가 가득 고인, 똥물이 작은 냇물처럼 흐르는 판자촌 한구석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풍경에 충격받은 듯, 브릴릿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일반 구역에서 괜찮은 여관을 알고 있습니다. 주인장 부부도 양심적이고 숙박객들 수준도 나쁘지 않은 곳입니다. 일반 구역의 여관이라 여관비도 비싸지 않고요.=

“거기로 가죠. 여러분, 절 따라오십시오.”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들의 모습에 앙상하게 마른 유가족들은 겁에 질렸지만, 환인이 강령을 걸어주자 더더욱 겁먹고 환인의 뒤를 따라 나왔다.

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데다 늙기까지 한 노파와 그나마 살이 있는 30대 중후반 정도 되는 여인 둘, 마지막으로 왼팔이 어깨부터 없는 20대 초반의 남자.

이동하며 사정을 들어보니 여자 두 명은 24살이지만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겉늙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는 일은 몸을 파는 일.

고작 철화 몇 푼에 몸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4인 가족을 브릴릿이 안내한 여관에 밀어 넣고 방 2개, 10일치 숙박비 10동화를 먼저 지불했다.

‘물가가 상상 이상으로 차이나는군. 올츠 호텔 하루 숙박비가 이곳의 100일치 숙박비라니.’

그다음으로 찾아간 영혼의 가족들도 상황이 비슷했기에 같은 여관에 밀어 넣었다.

세 번째 영혼의 가족은 그나마 자식 중 남자가 둘이라 그나마 평범한 통나무집에서 그나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죽은 남편을 본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죽을 거면 차라리 우리도 데려가지 왜 혼자만 갔느냐고.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자신들을 찾아왔냐고.

그렇게 한동안 울음바다를 만들던 가족들은 뒤늦게 환인의 존재를 인식하곤 겨우 울음을 그치고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사람……. 그래서 성불도 하지 않고 우리 주위를 돌아다녔다는 거예요?=

「미안하오. 정말로…… 미안하오…….」

=됐어요. 이미 죽은 사람을 붙잡고 우리가 뭐라고 하겠어……. 그러니 더 이상 귀하신 영혼사님 힘들게 하지 말고 얼른 성불이나 해버려요. 우리도 여기서 사는 데 적응했고 살 만큼 산 뒤에 따라갈 테니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 참으로 미안하오…….」

영혼은 더 이상 원망을 드러내지 않고 허무한 듯 말하는 아내에게, 눈물을 찍어내는 자식들에게 회한이 담긴 목소리로 사죄하며 눈물 몇 방울과 함께 옅은 빛무리로 화해 사라졌다.

원래는 남은 가족들이 평온을 얻길 바랐는데 앞선 두 영혼의 가족들이 끔찍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아서일까. 상대적 행복감을 느끼며 그만 성불해버린 거였다.

그걸 지켜본 가족들은 다시금 눈물을 보이며 울음소리를 참았다.

어찌 됐든 성불한 영혼은 자신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존재였으니. 그나마 영혼사님의 인도에 성불했기에 신의 정원에 들기는 어렵지 않을 거란 사실을 위안으로 삼을 뿐.

“부인.”

=네, 네. 영혼사님.=

“이걸 받으십시오. 남편분께서 남긴 마음입니다.”

나이보다 10년은 더 늙은 듯한 그녀의 손바닥에 올려둔 돈은 5열은화.

여인과 가족들은 5천만원이나 되는 큰돈에 눈을 부릅떴다.

이 돈이면 거리에 작은 가게를 낼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습니다. 거금을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져 검은 욕망의 목표가 되지 않도록 조심히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네, 네네. 영혼사님의 말씀을 유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인은 눈물을 왈칵 흘리며 환인에게 연신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아파서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치료비를, 일반 구역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이들에게는 아주 약간의 금전적인 도움을, 둘 다 필요한 이들에게는 둘 다를 지원해준 환인은 중심가의 제2 공동묘지로 돌아와 한숨을 쉬며 후드를 벗었다.

이엘카타는 환인에게서 후드 로브를 건네받으며 감동했다.

설마 가진 자들에게 받은 사례비를 힘든 이들에게 베풀어 안녕을 선물해주실 줄이야.

환인은 이엘카타의 경외심을 눈치채지 못하고 선망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브릴릿에게 말했다.

“첫 번째 영혼과 두 번째 영혼의 가족은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차라리 촌락으로 이주를 권하는 쪽이 좋겠습니다. 이주 지원금은 제가 낼 수 있으니 스사 씨에게 한 번 의중을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돌아가는 즉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주인님이라면 당연히 환인 님을 도우실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켕기는 점이 있어서 나서지 못한 13명의 영혼을 제외한 18명의 영혼, 3명의 평범한 영혼과 5명의 욕심쟁이 영혼, 10명의 불쌍한 영혼을 성불시킨 환인은 남은 영혼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도 각자 나름의 억울함은 있겠지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죽은 사람입니다. 산 사람들의 삶에 개입할 권리도, 의무도 없습니다.”

「…….」

「…….」

앞서 성불한 18명 중 10명의 충격적인 현황을 봐서일까. 13명의 영혼은 아무 말도 못하고 환인의 시선을 피하기만 한다.

“미련을, 원한을 너무 깊게 갖지 마십시오. 그러한 미련과 원한은 여러분을 혼재로 이끄는 원인이 될 테니까요.”

혼재라는 말에 영혼들의 표정이 흐려졌다.

죽어서도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자들답게 보신에 민감한 모양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억지긴 했어.」

뚱뚱한 인돈족人?? 남자가 뭔가 많이 내려놓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더니 희미한 빛무리에 둘러싸이다가 빛 가루로 변해 하늘로 올라갔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산 사람은 산 사람이라는 거겠지…….」

옆에 있던 인견족 남자도 해탈한 얼굴로 승천했고 그들의 뒤를 따라 여덟 명이 더 성불을 이루었다.

남은 3명의 영혼은 성불할 기색도 없었고 그렇다고 환인에게 이야기를 꺼낼 기색도 없었다.

단 한 명.

「저, 영혼사님. 저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첫날 영혼의 마음속에 꺼림칙함을 느꼈던 인호족 남자, 헬마르=베레만 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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