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049 산거북
* * *
위풍도 당당하게 걸어오는 늑대인간의 모습에 환인은 픽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늑대인간이라니.”
혹시 흡혈귀도 있는 걸까, 생각하며 모래색의 늑대 인간을 살폈다.
늑대에게 길러진 인간이 아니라 늑대가 인간처럼 변한 괴물이다.
다리는 역관절이고 앞발은 발이라기보다 팔에 가깝다. 팔뚝은 환인의 허벅지만큼이나 굵고 다리는 무슨 통나무를 가져다 놓은 것 같다.
네 개의 손가락 끝에 길쭉하게 난 유백색 발톱이 자못 날카로워 보인다.
천천히 늑대인간에게 걸어가며 정보를 수집하는 동시에 죽은 얼룩 늑대의 영혼을 끌어당겨 영혼 구슬로 만든다.
남은 영혼도 사라지지 않도록 의식을 집중해서 끌고 간다.
‘영혼 방패와 강령의 남은 유지 시간은 8분 정도.’
어차피 강령 중인 효과도 하급이고 얼룩 늑대의 영혼도 하급, 리필하기보단 일단 두고 볼 생각으로 계속 걸음을 옮기는데…….
“…….”
거리가 가까워지자 늑대인간의 몸을 감싼 투명한 아우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환인의 심장도 흥분으로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약 20m 거리를 남겨두고 늑대인간과 마주 섰을 때, 환인의 가슴을 맴돌던 귀찮음은 어느샌가 씻은 듯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은 치열한 전투를 통한 짜릿한 희열, 그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칼날 멧돼지를 처음 봤을 때나 두목 유인원과 마주쳤을 때처럼 막연한 느낌은 없었다. 그저 싸워보면 즐거울 것 같다는 예감뿐.
그런 환인의 기대를 읽은 늑대인간은 고개를 치켜들고 폐부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투지를 하울링으로 표현했다.
아우우우우우——!!
고막을 뚫고 들어오는 듯한, 가슴을 뻥 뚫는 듯한 상쾌한 느낌의 포효에 얼룩 늑대들은 즉시 뒤로 물러나 갤러리처럼 엉덩이를 깔고 앉는다.
싸움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한 행동에 환인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자신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잡았다.
늑대 인간도 마찬가지로 몸을 잔뜩 낮추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다.
두 다리는 대각선으로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두 손으로 잡은 창은 창날을 땅으로 향해놓은 채 눈을 빛내는 환인.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잔뜩 낮춘 채 왼손은 땅을 짚고 오른손은 등 뒤로 숨긴 늑대인간.
서로의 눈을 뜨겁게 응시하던 두 존재는 동시에 서로를 향해 튀어 나갔다.
늑대인간의 돌진은 표현 그대로 쏜살같았다.
터질듯한 허벅지의 힘으로 단번에 20m를 좁힌 늑대인간은 나무마저 쓰러트릴 정도의 치명적인 할퀴기를 환인의 머리에 날린다.
그 전에 환인의 창은 늑대인간의 오른쪽 어깨를 이미 가르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어깨가 한 뼘이나 베이며 공격 궤도가 어긋나 길이 50cm의 손톱이 환인의 앞섶을 아슬아슬하게 베고 지나갔다.
크허어어엉!!
“흐아아압!”
서로 스쳐 지나간 둘은 동시에 몸을 돌려 상대에게 맹공을 쏟아부었다.
오른쪽 어깨에 입은 상처는 안중에도 없는지 늑대 인간의 손톱이 좌우로 폭풍처럼 몰아친다.
저 손톱에 한 번이라도 맞으면 죽는다.
환인은 극도로 집중하며 그 공격 하나하나를 일일이 쳐내고 흘리면서 늑대인간의 몸 곳곳을 찌르고 베어냈다.
챙! 퍽, 파바밧. 탁, 째재쟁!
3중 영혼 방패를 두부처럼 부수고 질기기 그지없는 정장 코트, 정장 상의, 정장 조끼의 3겹을 종잇장처럼 잘라버리는 늑대인간의 손톱을 믿기 어렵게도 검은색 창대가 완벽하게 막아낸다.
자신의 무기에 믿음이 더 강해진 환인은 머릿속에 희열이라는 탄산이 터지는 쾌감에 눈이 찌릿찌릿하면서 늑대 인간의 근육 움직임 등이 눈에 모조리 담기기 시작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곧은 창이 뱀처럼 휘어지기 시작하며 늑대인간의 공격을 빠짐없이 쳐내기 시작한다.
환인이 인지하는 세상이 묘하게 느려져 간다.
처음에는 집중해야 겨우 보이던 공격이 이제는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며 늑대 인간의 공격 방식 하나하나가 뇌리에 틀어박히고 있었다.
공격을 쳐내는 것뿐만 아니라 근육과 동작이 가리키는 공격 패턴을 읽고 공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관절을 찌르고 무릎을 베어내고 허벅지를 가르며 공격을 무산시킨다.
문제는 자신의 움직임도 느려졌다는 것.
환인은 근육이 파열될만큼 두 팔과 허리, 다리에 힘을 주면서 늑대 인간의 공격에 맞대응하는 한편 상처를 더욱 늘려나간다.
쿠우—오오오——오오오오——!!
덩달아 늑대 인간의 공격도 더욱 무거워지는 한편 예리해지며 환인의 방어를 무너트리려 했다.
네가 무기로 막아낸다면 나는 그 무기를 박살 내주겠다. 그러한 의도가 느껴지는 공격이다.
투콱 퍼버벅 카각, 지이익
손톱과 창대가 수십 번 격돌하며 발생하는 충격, 늑대인간의 가죽을 찌르고 베어내는 그 모든 부하가 팔뚝에 집중되며 팔의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늑대인간의 힘이 자신을 능가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거리 이동 속도 또한 압도적이다.
하지만 동체시력과 반사신경, 순발력은 자신이 훨씬 위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늑대인간이 몸에 일격을 허용하는 빈도가 늘어난다. 모래색 모피로 이루어진 몸 곳곳이 쩍쩍 벌어지며 피를 토해낸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늑대 인간은 방어를 도외시하고 있었다.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환인에게 입은 상처가 실시간으로 아물고 있었던 거다.
마치 느릿하게 시간을 되감은 듯한 광경이다.
환인은 피부가 저릿해질 정도의 소름과 희열을 느꼈다.
자신이 퍼붓는 공격은 별 효과가 없다. 그런데 이쪽은 한 대만 맞아도 치명상이다. 거기다 1초에 2번의 공방을 주고받는 초고속의 난투.
강적을 맞이해 전력을 뿜어내는 전신 근육이 환희의 비명을 지른다.
호흡 조절 때문에 소리 내 웃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순식간에 십여 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환인은 숨이 턱 아래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초조해하지 않고 눈을 빛내며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리던 때가 찾아왔다. 고착상태에 빠진 현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가.
늑대인간의 좌우 어깨 근육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환인은 눈을 날카롭게 뜨며 팔에 불끈, 힘을 주었다.
‘지금!’
왼팔로 오른쪽을 휩쓰는 공격의 징조를 포착하자마자 늑대인간의 왼쪽 팔뚝을 찔러 1/3가량 벤다.
공격 직전에 입은 타격으로 균형이 살짝 무너지며 늑대 인간의 몸이 왼쪽으로 약간 돌아갔다. 콤마 1초의 틈을 두고 이어지려던 오른팔 대각선 내려치기 동작이 그로 인해 길어진다.
직후 환인은 찔러놓은 창날을 회수하는 동시에 뒤로 살짝 물러나며 원심력으로 자루 끝을 휘두른다.
마악 도달하려는 늑대 인간의 오른쪽 팔꿈치가 목표다.
뻐걱!
크륵?!
그리고 번개 같은 속도로 정확하게 팔꿈치를 후려치는 창대 끝.
완벽하게 들어간 패리parry에 늑대인간의 상체가 왼쪽으로 홱 돌아가 버린다.
환인의 눈에는 오른쪽 늑골이 훤히 보이는 상태.
“흐아압!!”
창대로 후려치느라 오른쪽으로 돌아갔던 창날에 온 힘을 불어넣으며 왼쪽으로 휘두른다. 1m 폭의 달빛을 닮은 섬광이 늑대인간의 옆구리를 깊게 가르고 지나간다.
스걱— 펑!!
“큭…!?”
직후 환인은 복부 내장이 터질 것 같은 충격을 받고 뒤로 크게 날려졌다.
날아가며 눈에 보인 것은 옆구리가 쩍 갈라진 채 옆차기 자세로 발을 내민 늑대 인간이었다.
복횡근과 내복사근, 외복사근이 통으로 잘려 나가 다리에 힘과 회전력을 주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방금 일격으로 배가 터졌을 것이다.
환인은 호흡이 곤란할 정도의 고통 속에서도 큭큭 웃으며 왼손 중지를 내밀었고.
퍼펑!!
쩍 벌어졌던 늑대인간의 옆구리에서 2중 압축 영혼 폭발이 터졌다.
척추가 부러진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몸이 옆으로 접힌 채 땅에 처박히는 늑대인간.
피가 아니라 갈기갈기 찢어진 내장 조각이 흩날리는데도 늑대인간은 죽지 않고 몸을 일으킨다. 환인도 통증에 아랑곳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코와 입에서 피를 게워내면서도 투지를 잃지 않은 늑대인간을 보며 환인도 감각이 사라진 복부에 신경을 끊고 늑대인간에게 달려간다.
늑대인간도 옆구리 상처에 신경 쓰지 않고 내장을 밧줄처럼 늘어트린 채 환인에게 달려들었다.
“흐아아아압!!”
크흐어어억!
그 뒤도 이전과 다름없는 난타전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늑대인간은 오른팔을 거의 쓰지 못했고 속도와 위력도 대폭 낮아진 것과, 환인도 예리함과 날카로움을 크게 잃어버리고 창을 몽둥이처럼 휘두른다는 것.
펑!
크르럭!
퍼벙!
커걱……!
그러나 환인에게는 영혼을 다루는 기술이 남아있었다.
환인은 늑대 괴물의 공격을 쳐내는 데 집중하며 괴물이 뜯어먹은 것 마냥 너덜너덜해진 늑대인간의 옆구리에 영혼 폭발을 일으켰다.
집요하게 여러 번 터트린다.
폭발이 이어질수록 늑대인간의 옆구리는 점점 벌어지다 못해 복부까지 찢어졌다. 잘 보면 희끄무레한 척추뼈가 보일 정도.
늑대 인간은 공격력도, 속도도 90% 이상 상실했다.
통나무 굵기의 다리와 성인 남자의 허벅지만 한 팔뚝에서 나오는 공격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그 공격력을 받쳐줄 속도가 사라진 상황.
스걱
휘청이다 틈을 노출한 늑대인간은 허벅지가 절반 가까이 끊어지는 상처를 입고 땅에 철퍼덕 쓰러졌다.
내 승리다.
창을 두 손으로 높게 든 환인이 쓰러진 늑대 인간의 목줄에 꽂으려는 순간이었다.
=아아악!!=
=은인니이임!!=
좀비처럼 날뛰는 늑대인간의 목을 잘라서 이래도 죽지 않는지 확인하려던 환인은, 흥분으로 막힌 귀를 뚫고 들어온 여자들의 비명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자신이 이기고 있는데 웬 비명이란 말인가.
=도망치세요오오!!=
=옆!! 옆이요오옷!!=
=은인님 옆을 보세요오옥!!=
‘옆?’
자연스럽게 오른쪽을 본 순간 환인은 1초 정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야 빌딩만 한 거대한 절굿공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목격하면, 굳이 환인이 아닌 다른 현대인이라도 정신적인 스턴에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환인은 도망칠 타이밍을 놓쳤고, 절굿공이는 땅을 내려찍었다.
꾸우우우웅——!!!
둘레만 수백 미터를 넘어가는 절굿공이가 5m 옆을 내려찍은 탓에 고막이 터질 것처럼 찌릿찌릿하고 내장이 뒤흔들리는 것처럼 몸이 크게 진동한다.
환인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진동 덕분에 정신을 차린 환인은 즉시 뒤돌아서 여자들을 향해 달렸다.
퍼버버버벙…!!
물론 남은 영혼 구슬을 모두 던져 늑대인간의 몸속에서 터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죽는다면 그것도 늑대인간의 운명일 것이다.
“허억, 허억!”
=은인님!=
=으아앙! 은인님 죽는 줄 알았어요~!”
여자들이 있는 곳에 도달한 환인은 여자들의 격렬한 환영을 받으며 뒤를 돌아보았고, 그제야 빌딩 사이즈 절굿공이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쿠드드드드드…… 쿠우웅
꾸그그그그그그그… 쿠우우웅
항공모함 사이즈의 산거북이 이쪽에는 말 그대로 티끌만 한 관심도 없는 모습으로 세상 태평하게 이동 중이었다.
“허…….”
자신이 목격한 것이 산거북의 앞발이었다는 걸 눈치챈 환인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얼굴을 굳혔다.
산거북이 늑대인간을 살리기 위해 개입한 건가?
‘그건 아니겠지.’
개미 두 마리가 발밑에서 투덕거린다고 사람이 신경 쓸리 없지 않은가.
그건 산거북도 마찬가지였다.
등껍질 대신 산을 지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지만, 행동이나 모습은 육지거북과 다를 게 없다. 산거북은 그저 느릿하게 능선을 가로지를 뿐이다.
쿠우우웅……. 쿠우우우웅……….
여자들과 함께 산거북이 큰 족적을 남기며 능선을 가로지르는 것을 지켜보던 환인은 문득 늑대 인간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늑대인간이 널브러져 있던 곳에는 내장 조각이 둥둥 떠다니는 피 웅덩이 뿐이었다.
“…….”
웅덩이에서 시작된 흔적이 비탈길 아래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면 하체를 질질 끌면서 도망친 것으로 보였다.
여자들이 그 흔적을 보며 혀를 내두른다.
=뱃가죽이 다 찢어진 상태로 도망간 거야?=
=우와. 생명력이 엄청 끈질기다.=
=바르둘이니까 그럴지도…….=
짧았지만 흥분이 넘치고 짜릿한 희열까지 느낀 전투를 치렀기 때문일까, 은근히 가슴과 머리를 채우던 귀찮음이 싹 사라졌기에 환인은 평소처럼 다감한 어조로 물었다.
“그 늑대 인간을 바르둘이라고 합니까?”
=앗, 네. 원래 우리 루크랑 통일 종족의 한 갈래였는데 신님의 축복을 거부하고 짐승처럼 살아가다가 끝내 짐승이 되고 만 자들이에요.=
“…….”
사람처럼 두 발로 서있어서 늑대 인간이라고 한 거지, 아무리 봐도 사람이 아니었는데 여자들과 같은 종족이라고?
의문이 더 들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아닌 거 같아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다고 하니까 그러려니 할 뿐.
그보다 걷어차였던 배에 감각이 돌아오면서 욱신거리는 게 더 신경 쓰인다.
‘내장이 파열된 건 아니겠지.’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서 있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런 건 아닐 거다.
=……?=
그때 피 웅덩이를 힐끔거리던 엔넬이 웅덩이 속에서 손가락 크기만 한 핏빛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걸 본 후이니가 다가와서 묻는다.
=그거 뭐야?=
=나도 몰라. 피묻은 돌은 아닌데……. 바르둘이 흘린 걸까.=
=그럼 장비 소재 아냐?=
고개를 끄덕인 엔넬은 자기가 입고 있는 가죽옷에 피를 깨끗하게 닦고 환인에게 공손히 건넨다.
칼날 멧돼지의 어금니는 커서 자기들이 가지고 다니지만, 이렇게 작은 것은 환인이 직접 들고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은인님. 여기요.=
“……?”
핏빛 돌멩이를 건네받은 환인은 진주색 돌멩이처럼 묘한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 몸 전체로 퍼지는 것을 감지했다.
진주색 돌멩이는 몸속의 훈기와 한기 흐름을 한층 부드럽게 해주는데 핏빛 돌멩이는 몸을 아주 약간 따끈따끈하거나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느낌?
‘이것도 진주색 돌멩이처럼 특이한 힘을 지닌 건가.’
그런데 핏빛 돌멩이의 감촉이나 몸을 따끈따끈하게 해주는 느낌이 꽤 좋다. 냉찜질과 온찜질을 번갈아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지 않아도 늑대 인간과 싸우면서 혹사한 근육의 피로가 풀어지는 기분이다.
핏빛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며 능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산거북을 쳐다보던 환인이 여자들에게 말했다.
“늑대인간도 얼룩 늑대도 사라졌으니 바로 협곡을 건너겠습니다.”
=네!=
=넵!=
협곡을 지나가는 중에 다시 습격받는 일은 없었다.
그대로 강령을 펼쳐가며 1시간가량 달려 낮은 능선이 높은 능선과 합쳐지는 지점에 도착한 환인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시야가 확 넓어진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수다! 호수가 보여!!=
=아아아…… 드디어, 드디어…….=
=…….=
전방에는 수평선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같은 대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호수 연안에 부자연스러운 산이 우뚝 솟아있는데 저건 그 산거북의 등껍질이겠지.
물론 대호수가 가깝다는 것은 아니다. 호수와 현재 서있는 위치 사이에 낮은 언덕도 있고 숲도 있다.
걸어서 가려면 한나절은 꼬박 이동해야 할 거리.
뒤를 돌아보니 자신들이 통과해온 장소라고 생각되지 않는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대지의 척추처럼 펼쳐진 능선들과 그런 능선을 지키듯 무성한 숲과 작게 보이는 강줄기.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다시 저곳으로 들어가라고 한다면…….
‘적어도 혼자 가고 싶군.’
고개를 작게 저은 환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때마침 비상식량과 눈이 마주쳤지만 비상식량은 아무런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하늘을 느긋하게 선회한다.
산거북이 이동한 여파 때문에 괴물이나 짐승이 다 도망친 모양이다.
“저 산거북이 지나간 탓에 근처의 동물이나 짐승이 전부 도망쳤나 봅니다. 이 기회에 목적지까지 거리를 줄이겠습니다. 빠르게 이동합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