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191 조금씩 스며드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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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움직일 때마다 땅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크기,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보일 정도로 커다란 크기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__꺄아아악!!!
__살려주세요!!!
등장만으로 무너진 건물이 생겨났고, 사방에서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수아는 어릴 적 영웅들의 모습을 자주 지켜보았다. 재난 속에서 사람들을 구출하고, 악이라 할 수 있는 괴물들을 쓰러트리는 장면들은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언젠가,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대한 아카데미에 들어왔다.
최전선에서 멋지게 싸우며 몬스터들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는 희망과는 다르게 치유계열 능력을 각성했다.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며 그런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영웅들의 화려한 전투 뒤에는 수많은 힐러의 노고가 있었으니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영웅이라 해도, 이런 도심지에서 몬스터가 출몰할 경우 모든 사람을 지킬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부상자가 생기기 마련.
그들을 살리는 건 바로 자신과 같은 치유 계열 헌터였다.
“사람들을 도우러 가야 해!”
아무리 뛰어난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었다. 사람의 숨이 붙어 있을 때 치료해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지금 당장 달려간다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위험이 존재하긴 하지만, 당장 죽어가는 사람들을 모른 척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헌터가 되고 난 뒤 가진 자신의 마음가짐에 반대되는 일이었으니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
당장 몬스터가 나타난 곳을 향해 달려가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막아 세웠다.
누군가 손목을 강하게 쥐었고, 정수아는 자연스럽게 짜증이 올라왔다. 1분 1초가 아까운 이 시간에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다니.
“뭐야...?”
뒤를 돌아보니 강주원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마치 저건 너무 위험하니 가면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지!”
“수아야. 그냥 몬스터도 아니고 대형 몬스터야.”
20층짜리 건물보다 더 육중한 크기, 온몸이 털로 덮인 설인 같은 모습을 한 몬스터가 팔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주변에 있던 건물들이 마치 과자처럼 부서졌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수아야. 너 지금 떨고 있어.”
“누... 누가 떨고 있다는 거야!!”
강주원의 말을 듣자, 그제야 자신의 두 다리가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몬스터가 걸을 때마다 발생하는 진동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너도 느껴지는 마력 양을 보면 알겠지만… 그냥 몬스터도 아니고 A급 대형 몬스터야. 저건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야!!”
“그래서 뭐!!”
“가면 죽을 수도 있어!!”
대형 몬스터, 흔히 몬스터의 크기에 따라 소형, 중형, 대형으로 분리되고는 한다. 소형 몬스터의 경우는 1대1로 상대하는 게 가능한 몬스터들을 의미한다.
중형은 파티 단위로 사냥이 권장되는 몬스터, 대형은 하나의 길드가 움직여야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를 의미했다.
A급 대형 몬스터라는 건, A 랭크 이상의 헌터들이 길드 단위로 상대해야 잡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자신은 물론 강주원과 함께 상대해서 쓰러트릴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__살려주세요!!!
__으아아아악!!!
“거기다 민첩형이야. 수아야 저기로 가면 죽는다고!!”
강주원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육중한 크기에 비해 재빠르게 움직이는 녀석을 상대로 도망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위험하잖아!”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데 아무것도 안 하는 건 그녀의 마음을 너무 불편하게 만들었다.
굳이 싸우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놔 줘! 네가 안 가면 나라도 갈 거니까!!”
“가서 뭘 어쩌려고 그러는데!!!”
그렇게 강주원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 사람처럼 보이는 물체가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리가 멀어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색을 내는 마력은 단 한명밖에 없었으니까. 청아하게 타오르는 푸른색의 마력을 가진 인물은 단 한명이었다.
“김시우…”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온 힘을 다해 몬스터를 공격해 보지만, 크기 때문인지 큰 효과가 없어 보였으나. 김시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간을 벌려고 하고 있어...’
의도적으로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고는 사람들이 없는 방향으로 몬스터를 유인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수아는 그 모습을 보며 강주원을 바라보았다.
‘가속 능력이라면…’
유인하는 건 강주원이 더 뛰어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밖으로는 내뱉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는 게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 알고 있었으니까.
정수아는 강주원이 한눈 팔린 사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수아야!”
“다친 사람들을 치료할 거야. 이것도 못 가게 막을 생각하지 마.”
“…알았어.”
정수아의 단호한 표정에 한발 물러선 강주원이 정수아를 품에 안았다. 저기까지 데려다 줄 생각인 걸까.
심장이 두근거려야 할 상황일지 모르겠으나, 전혀 설레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 보였던 김시우의 모습만 자꾸 눈에 밣히는 기분이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김시우에 대한 생각밖에는 없었다.
‘김시우가 다치면 어떻게 하지... 김시우가...”
*
__펑!!
“크오오오오오오!!!!!”
폭탄을 계속해서 맞은 놈은 화가 난 듯 자기 가슴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게 또 얼마나 큰지 멀리 떨어진 내 몸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확실히 크기가 깡패긴 하네.’
검기로 휘두른 공격이 통하긴 했으나, 그 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 피를 조금 흘리게 만드는 것으로 끝났다.
머리를 자를 생각으로 목을 노리고 공격해 보려고도 했는데, 가죽이 그게 쉽지 않았다. 움직임은 재빨라서 위험부담도 큰 편이다.
그래도 나름 팔에 자상을 남겨 피가 흐르고 있긴 하지만, 저걸로 저놈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형 몬스터는 솔직히 선을 넘었다. 나는 왜 이렇게 감당도 못 할 놈을 상대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냥 본능적으로 움직였다고 할까.
영웅이 되고 싶다거나, 강자와 싸우고 싶은 호승심 때문에 움직인 건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가족을 잃어본 경험이 있기에, 몬스터에게 가족이 죽임을 당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었다. 솔직히 우리 애들이 없었다면 그럴 때마다 많이 힘들었겠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다른 이들은 그런 고통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꼬마야. 여기에 잘 숨어 있어야 해.”
“훌쩍.. 훌쩍.. 네.. 오빠..”
나는 품에 안겨있던 여자아이를 내려놓고는 마력을 끌어모아 건물 옥상으로 도약했다.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탓인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계속 저러다가는 주변 건물들을 다 부실 기세였다.
“이쪽이다. 이 새끼야!!”
나는 인벤토리에 폭탄을 꺼내 놈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 투척 스킬에 의해 정확도가 상승합니다. ]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하게 놈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는 폭탄, 일부러 잘 보이게 항마의 마력을 피우고 있어서 그런지 금방 날 발견한 모양이다.
“크아아아아!!!!”
놈이 화난 듯 포효하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놈의 발 앞에 자동차들이 걸렸으나, 그게 놈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발밑에 있는 걸 모두 박살 내며 이쪽으로 달려와 팔을 들어 올렸다.
‘돌풍의 축복’
그때 던전에서 얻었던 팔찌가 빛나기 시작했다. 허공을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티팩트.
이게 없었다면 솔직히 죽지 않았을까?
__콰아아아앙!!!!!!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내가 있던 곳의 건물이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그래도 이쪽 건물은 대피할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안쪽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런 대형 몬스터는 무조건 지하로 대피해야 하는 게 상식이었다.
도심지에 나타난 놈들은 자신의 눈앞에 거슬리는 건 다 파괴하는 습성이 있기에 건물에 숨는 게 더 위험했으니까.
“크오오오오!!!”
“시끄러워 새끼야.”
나는 포효하는 녀석에 입안에 폭탄 하나는 넣어줬다.
__퍼어어엉!!!!”
“크아아아아!!!!”
“더럽게 튼튼하네! 진짜.”
보통 속살은 약하기 마련인데, 저놈은 뭐 어떻게 된 놈인지 몸 안에서 폭탄이 터져도 멀쩡했다. 이렇게 폭탄을 대량으로 쓸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으면 협회에서 움직이겠지.”
어차피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다른 길드든 뭐든 움직여 줄 거라 생각했다.
그냥 폭탄을 계속 던지며 돌풍의 축복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갑자기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오싹거리는 느낌이 들어 몬스터를 쳐다보니 아까처럼 멍청하게 반응하던 녀석이 가만히 서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온몸이 짓눌릴 정도로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아까는 버틸 만 했는데 이제는 숨도 쉬기 힘든 상황.
갑자기 놈의 피부 표면이 우그려 지기 시작했다. 소름 끼치지는 소리와 함께 뼈와 살이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놈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불안한데...”
[ 위험이 감지 되었습니다. ]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고 온몸의 감각이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엄청난 인명피해로 이어질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하..하..”
그런 감정과는 상관없다는 듯 놈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더니 20층 건물의 크기에서 10층 건물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뭐가 달라진 거지?’
새하얀 털들이 우수수 떨어지더니, 쪼그라든 가죽 속에서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털을 뒤집어쓰고 있던 녀석이 말없이 내가 서 있던 방향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악마처럼 입꼬리가 올라갔다.
“...!!”
[ 위험이 감지 되었습니다. ]
알림음과 함께 내 눈앞에 보인 건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거대한 손이었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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