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세이브로 따먹다-177화 (177/235)

〈 177화 〉 177 정수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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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평소처럼 서아를 따라 독립된 공간에서 식사할 예정이다.

랭킹에 따라 차별을 두는 아카데미에서 서아와 다은이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어마어마했다.

‘뭐 둘 다 내 여자라서 나도 다 누릴 수 있긴 하지만.’

매일 하는 고민이지만, 항상 고민되는 순간이다. 바로 점심 메뉴 정하기.

메뉴가 다양한 만큼 선택하기도 힘든 법이었다. 최근에 음식다운 음식들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나도 다양한 음식들을 먹는데 취미가 생기긴 했다.

“가자. 김시우.”

“응.”

옆에 있던 민지도 자리를 정리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최근에는 본인 친구들보다는 나랑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아와 민지, 그리고 나까지 3명이 함께 다니는 모습은 이제 주변인들에게는 익숙해 보였다.

수석인 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민지와 나도 나름 슈퍼 루키에 들어가 있으니 남들에게는 끼리끼리 모여있는 걸로 보이겠지.

거기에 다은이 까지 가까워 보이니까, 더 그렇게 보일거다.

‘오늘은 다은이도 같이 먹으려나?’

다은이도 같이 먹으면 좋겠지만, 소꿉친구인 정수아와 강주원 때문에 이쪽에 합류하기 어려워 보일 때가 많았다.

정수아가 계속 눈치를 주다 보니 다은이도 약간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멀찌감치 서 있는 다은이와 눈이 마주치자 다은이가 머 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저쪽에서 같이 먹을 모양이다.

“…?”

적당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옆에 있는 정수아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수아와 호감을 쌓을 기회가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움받을 짓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적개심이 가득해 보이는 눈동자였다.

‘호감도 시스템….’

[ 이름 : 정수아 ]

[ 호감도 : 21 ]

딱히 접점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줄어 있는 호감도, 히로인으로 등록된 게 아니다 보니 그동안 신경을 쓰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처음부터 나에 대한 경계심이 높긴 했지만, 그건 정수아의 성격 같았다.

하긴, 아무것도 안 했으니 호감도가 떨어져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거기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듯 강주원과 가까이 있는 정수아의 모습.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트레이닝 룸에서 다은이와 있었을 때 이후로 강주원은 거의 딴 사람 같았으니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모성애를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강주원 역시 운명등급 S였다. 나와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느려 보이는 거지, 강주원 역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저 얼굴에 그 정도 능력이면 여자가 꼬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 할 수 있었다. 민지한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걸 보면 게이도 아닌 모양이고.

그래, 역시 무시할 상대는 아닌 건가?

“주원아, 점심 먹으러 가자.”

“어? 알았어. 수아야.”

“다은아 너도 갈 거지?”

“응~ 오늘은 뭐 먹을까?”

나는 빠르게 반을 나가는 정수아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운명등급 S, 다은이의 소꿉친구, 치유 계열 헌터로 회복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거기에 희귀 능력인 버프 능력도 가능하다고 들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버프 능력 자체는 도핑제와 효과가 비슷하다.

도핑제를 사용하는 헌터들의 숫자가 많은 만큼, 버퍼 능력에 대한 평가가 낮아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 순간 힘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도핑제는, 먹은 직후에는 강력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역시 효과가 끝나는 순간이 문제가 된다.

말 그대로 약물을 통해 힘을 끌어 올린 만큼, 반동이 찾아오니까.

반동이 온 상태에서는 오히려 먹기 전보다 더 약해지기 때문에,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나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리스크가 존재하는 도핑제와는 다르게 버프 능력은 전혀 위험성이 없다. 해봤자 시전자의 마력이 소모되는 정도일까.

그렇기에 뛰어난 버퍼 능력자가 있냐 없냐에 따라서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 들의 등급이 달라진다.

‘본 능력은 치유니까…. 헌터들 사이에서는 귀족이나 다름없지.’

그러니까, 강주원에게는 너무 과분한 존재가 아닐까?

문제가 있다면, 나에 대한 호감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사실일까.

“야 김시우. 아까부터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 혼자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시우야…. 우리도 가자..”

“아. 미안! 점심 먹으러 가자!”

*

잠깐 시간을 내 민아의 교수실로 찾아갔다.

문이 열릴 때는 다른 교수들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있더니, 문이 닫히자 눈동자가 하트로 변하는 민아였다.

“서방님!”

“응 그래그래.”

나는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것 마냥 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자, 민아가 자신의 뺨을 내 손에 비비기 시작했다.

완전히 순종적인 민아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래쪽에 자극이 오는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오늘 일과가 끝나고 난 뒤라면 모를까, 지금 여기서 민아를 안기에는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컸다.

“자…. 자꾸 이렇게 찾아오시면 제가 곤란해요….”

표정은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인데, 말과 행동이 달랐다.

“너…. 너무 자주 찾아오시면…. 다른 사람들한테 말이 나올 수가 있어요….”

하긴, 나처럼 이렇게 자주 교수실에 들어가는 생도들이 많지는 않을 거다. 대학 원생도 아니고 교수하고 이렇게 자주 면담하는 경우는 드물긴 하지.

그래도 주로 밤에 많이 들어왔지, 낮에는 그렇게 많이 들어온 기억은 없었다.

거기다, 무슨 고양이처럼 내 품에 얼굴을 비비면서 그렇게 말해도 설득력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정말로 다치신 곳이 없는 게 맞는 거죠?”

민아는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그때도 괜찮다고 했는데 본인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괜찮다니까.”

길고 고운 손가락이 이곳 저곳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얼굴부터 어깨, 가슴, 이제는 아래로 내려가는 민아의 손.

“확인하는 거 맞아?”

“화…. 확인만 하는 거예요. 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서방님!”

얼굴을 붉힌 민아가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미 표정에서 다 티가 나는데, 안 그런 척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민아도 내게 전혀 호감이 없었다.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던, 민지나 다은이와는 다르게 민아에게 나는 비호감이었다.

뭐 반강제로 몇 번 안아 주다 보니 이렇게 되긴 했는데.

‘정수아도 그렇게 공략해야 하나?’

민아의 경우는 잘못한 게 있기도 해서 그랬지만, 역시 그건 애매한가.

고민하고 있으니 다시 자연스럽게 품에 안겨있는 민아였다.

“아 맞다. 던전에서 이걸 얻었는데.”

그러고 보니 민아에게 던전에서 얻은 걸 보여 주기로 했었다.

나는 이번에 얻었던 청운검을 팔찌에서 다시 검으로 변환시켰다.

멋스러운 청색 도신에, 맺혀 있는 은은한 마나. 검을 본 민아의 표정이 흥미롭게 변했다.

“일반적인 검이 아니라 아티팩트 인가요?”

“응.”

“하… 한번 확인해 봐도 될까요? 서방님?”

뭐 그런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민아가 원하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응 얼마든지.”

“네..네!”

은근 이런 거 좋아하네, 나는 순종적인 민아의 모습을 보며 정수아에 대해 생각했다.

*

“뭐야 여기서 알림이 울렸는데?”

경비복을 입은 남성이 아카데미 외곽지역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울려대는 알림에 서둘러서 달려왔으나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런 게 많네. 시스템을 보수했다더니 왜 이러지.”

보안 시스템의 강도를 올리고 나서부터는 이런 식으로 아무도 없는데 알림이 울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감지 레벨을 올리면서 작은 동물이나 곤충까지도 잡아내면서 생기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옆에 있던 남성의 동료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뭐 어쩌겠냐…. 한 번만 더 침입자가 생기면 전원 감봉이라는데… 울리면 확실하게 확인해야지.”

“씨…. 그 미친 사이비 새끼는 왜 아카데미를 건드려서….”

정신이 나간 놈이 아니고서야, 대한 아카데미를 건드리지 않을 테니 나름 좋은 보직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생긴 사건으로 인해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그러면 일단 알림은 끄고… 보호막은 유지 시켜두라고 했지?”

“메뉴얼은 그렇지 뭐, 위에서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야지 어쩌겠냐?”

투덜거리는 경비병들이 사라지자, 나무 위에 있던 남성 두 명이 내려왔다.

“…”

신광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보호막을 노려보았다.

CCTV가 없는 사각지대를 노려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경보장치가 울려버린 거다.

“무슨 보안이 이렇게 철저하냐?”

그도 범죄자가 되기 전에는 헌터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출입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었다.

자신이 다녔던 아카데미와의 수준 차이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흔히 말하는 부익부 빈익빈인가.

잠재력이 높은 녀석들은 이런 대우를 받는 건가.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자 갑자기 놈들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들어가는 건 힘들어 보입니다.”

경비병들이 주변을 확인하고 보안 장치를 꺼버리면 그때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내부에서 알림만 끄고 가는 모습에 내부로 들어가는 건 힘들어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정면출입구를 제외하고는 그 흔한 개구멍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로 넓은 부지에 빈틈이 하나도 없다니, 보안 수준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대호야.”

“내부로 들어가는 게 안된다면…. 밖에서 기다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밖에서 기다린 다라…”

신광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도라고는 해도 아카데미 내부에서 평생을 살지는 않는 법,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노려 미행하기로 했다.

어차피 도망자 생활을 하면서 몸을 숨기는 것도,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이 시발 연놈들…. 귀찮게 만든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3명에 대한 분노만 더 키우는 신광호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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