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080 나비 효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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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했던 수업이 끝나가고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슬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몸이 슬슬 음식을 원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음식은 질 좋고 맛있기로 유명한 만큼, 자연스럽게 식욕이 올라왔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먹는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게 음식이다.
아카 코인만 있다면 질 좋은 음식을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보니 점심시간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일 거다.
“그럼 이번 수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식사 맛있게 먹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빠르게 생도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당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먼저 갈수록 음식을 빠르게 받을 수 있다 보니, 먼저 가는 게 유리한 법이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심시간이 줄어드니, 달려가는 생도들도 있었다.
오늘도 민지의 친구들이 민지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딘지 모르게 표정이 안 좋았지만, 적당히 웃으면서
오늘도 친구들에게 끌려가는 민지를 보며 손을 흔들어 줬다.
‘나는 서아가 있으니까 상관없지.’
나에게는 서아가 있었다. 엘리트들에게만 따로 제공되는 공간에는 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거기에 기다릴 필요 없이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식사를 할 수 있으니 다른 생도들과는 다르게 여유가 넘쳤다.
앞쪽에서 졸고 있던 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오늘도..같이먹자..”
“응, 서아야 근데 어제 기프티콘 너무 많이 보낸 거 아니야?”
어제 헤어지고 나서 저녁을 잘 챙겨 먹으라고 기프콘을 보내줬다.
얼마나 챙겨 먹으라는 건지 종류별대로 치킨, 피자, 햄버거, 한식, 양식, 일식 등 다 보내줬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랬어..”
“그래도 매번 이렇게 받기만 하면 미안한데.”
“괜찮아..”
어제부터 자꾸 뭐 하나라도 챙겨주려 하는 게 고맙기는 한데, 이거 너무 받기만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가 받기만 하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혹시 들어본 적 있어?”
“몰라..”
모른 척 하는 모습을 보니까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아랑 같이 살면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이게 기둥서방이 된 느낌인가?
“그냥..주고싶어..히”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웃는 모습은 언제 봐도 귀여운 느낌이다.
“그럼 이제 밥 먹으러 갈까?”
“응..”
식당으로 간다고 하니까 무표정한 서아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둘이 있을 때 뭘 하는 상상을 하고 있을까?
'귀엽다니까.'
서아랑 같이 식당으로 출발하려는 도중에 교실 밖에서 민지가 나타났다.
“지금 밥 먹으러 가는 거야?”
“응?”
친구들에게 끌려갔던 민지가 혼자서 돌아왔다. 혹시 물건을 놔두고 간 건가?
“어제 식당에서는 안 보이던데 혹시 다른 곳에서 먹었어?”
“어제? 그러니까 상위권에만 제공되는 공간이 따로 있더라고, 거기서 서아랑 같이 먹었어.”
“아.. 서아야 혹시 나도 같이 가도 돼?”
서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 것처럼 보였지만, 금방 돌아왔다.
“친구들은..?”
"아~ 일 있다고 먼저 간다고 했어. 그래도 방학 동안 같이 먹었잖아. 혹시 불편해?"
민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서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같이먹자.”
"고마워 서아야!"
민지는 서아를 품에 안았다.
"답답해.."
단둘이 있을 수 없는 게 아쉬워 보였지만, 3명이 함께 있는 것도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
“어제 여기서 먹은 거야? 그래서 안 보였구나.”
민지도 이런 공간이 있는 줄 몰랐는지 신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도 어제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저런 표정이었지.
나는 몰래 서아의 뒤에 서서 뒷목을 살짝 만졌다.
“…하지마.”
민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서아, 이전보다 민감해졌는지 확실히 반응이 좋아졌다.
“왜 기분이 별로야?”
“지금은..안돼..”
나는 킥킥거리며 민지를 확인했다. 구석구석 구경하는 게 끝났는지 이쪽을 볼 것 같아서 서아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서아가 음식을 가지러 떠났다. 상위권 학생들만 배식이 가능한 공간이 따로 있어서, 우리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너 어제도 여기서 단둘이 먹은 거야?”
“응? 둘이서 먹었지.”
“…”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지의 옆으로 가서 가볍게 스킨쉽을 시작했다.
부드럽게 민지의 몸을 쓸어내리는 손길에 민지가 당황했는지 날 밀어냈다.
“서..서아가 오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게?”
“머…. 멍청이가 진짜.. 내가 아카데미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
미어캣 처럼 입구부분만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 놀리고 싶어졌지만,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겠지.
곧 서아가 음식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랑 민지는 서아에게 다가가서 음식을 받아 들었다.
“매번 서아한테 미안하네..”
“괜찮아..”
“방학 때도 얻어먹기만 했던 거 같은데, 정말로 괜찮아?”
“한 달 안에 안 쓰면.. 다 사라져..”
솔직히 이렇게 매번 얻어먹으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서아가 그러고 싶다고 하는데,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거기에 매월 지급되는 아카 코인은 그달에 다 쓰지 않으면 사라졌다. 서아는 수석이라 우리와는 수치가 다를 정도의 아카코인을 지급받았다.
다 사용하지 못하고 남는 게 대부분이라 이렇게라도 쓸 수 있어서 좋다는 모양이다.
대리석 식탁은 크고 길어서 자리를 잡기 애매했다.
두 명이 있으니까 나 혼자 앉고 맞은편에 둘이 같이 앉으려나.
내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자, 서있던 두 명이 양옆에 앉았다.
“서아도 거기 앉아?”
“응.. 안되는 거야..?”
“아니.. 김시우 옆에 앉으면 불편하지 않아?”
“괜찮아..그럼 민지는?”
“나..나는 시우랑 파트너라서 계속 같이 있어서 괜찮아.”
“나도.. 방학때 같이 있어서.. 괜찮아..”
“…”
“…”
평소에는 안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둘 사이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진 거 같았다. 괜히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내가 입을 열었다.
“점심시간 끝나겠다. 빨리 먹자!”
“응..”
“알았어.”
둘 다 사이가 좋아서 그런지 어색했던 분위기도 금세 풀어졌다.
역시 밥은 다 같이 먹는 게 좋은 거 같다.
*
__ 쟤가 홍류석이야?
__ 진짜 못생겼다.
처음 대한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는 선택된 사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아카데미 실기 꼴등,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분명 학기 초만 해도 내 밑에 많은 학생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성장하는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게, 계속 정체된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성장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제자리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 내 뒤에 있는 인간들을 보며 위안으로 삼았다.
김시우, 남들이 다 각성을 한순간에도 혼자만 각성을 못 한 체로 남아있던 도태된 인간.
노력해도 성장이 멈추고, 계속해서 성적이 떨어져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저 머저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고개를 돌리면 뒤에 있었고, 적어도 김시우보다는 내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__쟤가 그 시우한테 까불던 걔야?
__얼굴만큼 성격도 더럽네.
직접 대련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시우와의 대련에서 홍류석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처음 김시우가 윤서아를 상대로 승리했을 때도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그저 비겁한 승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등수가 꼴찌로 나왔을 때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아슬아슬한 패배도 아니었다.
원하는 만큼 계속해서 반복할 수 있었고, 단 한 번의 공격도 성공 못 한 그야말로 처참한 패배였다.
그리고 다음에 있었던 강주원과의 대련을 보고 격차를 깨달아 버렸다.
자신의 실력은 아득히 넘어서 버렸다는 걸 말이다.
분명 자신의 아래 있었는데,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도 2차 각성을 할 수 있다면 김시우를 넘어설 수 있다.
‘ 저 새끼가 뭐가 좋다는 거지?’
저딴 얼굴이 뭐가 좋다고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걸까, 자신의 얼굴이 더 잘생겼는데 말이다.
자신도 2차 각성만 하면 김시우보다 더 잘생겨질 자신이 있었다.
김시우가 그렇게 성장한 건 다 능력의 차이었다.
2차 각성만 할 수 있다면 김시우나 강주원처럼 달라질 수 있다.
‘시발.. 시발! 시발!!!’
강민지와 윤서아 옆에서 떠들며 웃고 있는 김시우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은 이렇게 비참한데,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저 새끼는 왜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걸까?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고 좆 같았다.
“시우야~ 오늘도 혹시 괜찮을까?”
멀리서 이다은이 김시우에게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다은, 다른 여자애들은 모두 자신을 무시할 때에도 자신에게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준 유일한 여자 생도였다.
봄처럼 따스한 미소와 사랑스러운 얼굴과 커다란 가슴까지, 이다은은 그야말로 여신이었다..
얼굴은 예쁘지만 무서운 강민지나, 말도 없고 반응도 없는 윤서아와는 차원이 다른, 마음까지도 착한 여자였다.
‘근데 왜.. 김시우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지어?’
자신 앞에서 웃는 것보다 더 밝은 미소.
내 앞에서 웃으며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던 건 다 거짓이었던 거야?
얼굴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건 다 연기였던 거야?
갑자기 역한 기운이 올라와 반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밖으로 도망쳤다.
곧 수업이 있었지만 아무도 자신을 붙잡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은 아싸였으니까.
__ 쟤는 어디 가는 거야?
__몰라. 갓파가 어딜 가든 말든 그런 걸 왜 신경 써.
__갓파? 너무했다 킥킥
‘시발!!! 시발!!!’
곧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지만 정신없이 달렸다.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모든 게 싫어졌다. 자신을 꼴찌로 만든 김시우도, 이다은도, 아카데미도, 이 세상도 모든 게 싫어졌다.
“시발.. 시발.. 좆같은 년.. 개 시발년.. 사랑했다..”
나중에 결혼하면 어디에서 집을 구해야 할지, 애는 몇 명을 나을지 고민했던 게 모두 쓸모없는 일이 돼버렸다.
“사랑했다… 시발년아.”
이다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시발 걸레 같은 년.. 여자는 다 똑같아.. 시발.. 시발년..”
다 죽여버리고 싶다.
그런 감정이 짙어지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나타났다.
“하아.. 이딴 쓰레기라..”
검붉은 로브를 쓴 남성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누…. 누구세요?”
“세상에 복수하고 싶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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